모두가 잠들만한 새벽녘의 시간은 나에게로선 활력의 시간이다. 고요한 정적이 맴돌며, 두껍게 깔린 흑암을 환하게 밀어내는 스탠드의 불빛은 익숙하다 못해 친숙해진 광경이다. 기껏해야 방원들의 조용한 숨소리와 창밖으로 조금씩 흘러드는 별과 달의 연약한 줄기만이 이 시간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일까? 컴퓨터 자판앞에 서서 두드리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자연스레 취침시간은 뒤로 밀려나야 했던 것 같다. 때로는 열심히, 때로는 책임감에, 또 때로는 자격지심에 시달리며 달려오곤 했던 시간들이 간간이 기억속에서 스치지만 아직 과거라 불리기에는 커다란 백지장에 두줄을 꼬깃하게 우겨넣은 부끄러운 이력서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작게나마 성장하는 모습은 분명 기분좋은 일인 것 같다. 간혹 뒤돌아보게 되는 초창기의 글들을 보면 오늘의 것들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들을 보게 된다.
요즈음에는 옛말의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 속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것처럼 '아는 것이 병'인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처음 쓸 때보다 익숙해지고 수월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씩 깊이를 알아가게 될수록 어려워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무언가를 글로서 표현한다는 것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게 만드는 이유일 수도 있지만 그 경지에까지 오르기에는 분명 험한 여정임이 틀림없다.
며칠 전에는 한 편의 서평을 쓰게 되었다. 서평이라는 분야는 다른분야보다도 서툴러서 그만큼 심사숙고해야 했다.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작가는 누구이고,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을 총망라한 개인의 총평에 이르기까지를 원고지 약 10매 분량안에 완성해야 했다. 익숙하지 않은 만큼 많은 공을 들였고,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그리고는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른 분께 자문을 구했다. 선생님은 친절하게도 먼저 칭찬을 해주셨지만, 달콤한 격려뒤에는 쓰디쓴 약도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그 분의 말씀대로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한편의 글로서 완성되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다듬질이 필요했다. 가만히 방으로 와서 다시금 글을 훑어내리기 시작했다. 요리조리 생각하고 고심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문제는 '어떻게'가 아니라 '어디를' 이었다. '어떻게'에 대한 부분은 자문을 구한 부분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주셨기 때문에 조금만 생각해도 보완할 부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분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기존의 써놓았던 글의 '어느 부분을' 삭제하고 첨가해야 될지 고민하게 되었다. 어느 부분은 삭제하면 글의 중심이 흐트러져 버렸고, 또 다른 부분을 삭제하면 내용의 의도가 뒤바껴 버리기도 하였다. 참 난감한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는 것보다 지우는 게 어렵습니다. 그려서 선명해진 그림을 지워서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제 몇 가닥 선으로 모양을 잡아가는 회원님, 부디 처절하고 날카로운 지우개질을 겸비하길 염원합니다.'
언젠가 학교의 선배가 해주신 조언이었다. 한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 다듬질이 꼭 필요하다는 의미가 이제서야 조금씩 와 닿는다. 그러고 보면 벌써 5년이나 지났을 법한 한 교수님의 이야기도 생각난다. 100점짜리 글을 쓰는 법에 대하여 말씀하셨었는데, 지금 깨닫게 되는 내용과 상통하는 것 같다. 내용인 즉, 100점짜리 글을 쓰려면 처음 쓴 글은 50점 정도 밖에 안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그 50점짜리 글을 한번 다듬으면 70점이 되고, 다시 한번 다듬으면 80점이 된다고 하셨다. 그렇게 100점에 가까운 글을 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는 몇 점짜리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불현듯 떠오른 질문 속에는 어쩌면 답은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글로서 표현하는 분야에서 100점이라는 의미는 나타나기 보다는 만들어간다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 같다. 펜대 앞의 검은 잉크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의 조언처럼 '처절하고 날카로운 지우개질'을 겸비하는 것이 바로 정답을 찾아가는 탈출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더 적절하게 지우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하여 더욱 노력해야 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우는 방법 모두가 잠들만한 새벽녘의 시간은 나에
*지우는 방법
모두가 잠들만한 새벽녘의 시간은 나에게로선 활력의 시간이다. 고요한 정적이 맴돌며, 두껍게 깔린 흑암을 환하게 밀어내는 스탠드의 불빛은 익숙하다 못해 친숙해진 광경이다. 기껏해야 방원들의 조용한 숨소리와 창밖으로 조금씩 흘러드는 별과 달의 연약한 줄기만이 이 시간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일까? 컴퓨터 자판앞에 서서 두드리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자연스레 취침시간은 뒤로 밀려나야 했던 것 같다. 때로는 열심히, 때로는 책임감에, 또 때로는 자격지심에 시달리며 달려오곤 했던 시간들이 간간이 기억속에서 스치지만 아직 과거라 불리기에는 커다란 백지장에 두줄을 꼬깃하게 우겨넣은 부끄러운 이력서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작게나마 성장하는 모습은 분명 기분좋은 일인 것 같다. 간혹 뒤돌아보게 되는 초창기의 글들을 보면 오늘의 것들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들을 보게 된다.
요즈음에는 옛말의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 속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것처럼 '아는 것이 병'인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처음 쓸 때보다 익숙해지고 수월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씩 깊이를 알아가게 될수록 어려워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무언가를 글로서 표현한다는 것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게 만드는 이유일 수도 있지만 그 경지에까지 오르기에는 분명 험한 여정임이 틀림없다.
며칠 전에는 한 편의 서평을 쓰게 되었다. 서평이라는 분야는 다른분야보다도 서툴러서 그만큼 심사숙고해야 했다.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작가는 누구이고,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을 총망라한 개인의 총평에 이르기까지를 원고지 약 10매 분량안에 완성해야 했다. 익숙하지 않은 만큼 많은 공을 들였고,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그리고는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른 분께 자문을 구했다. 선생님은 친절하게도 먼저 칭찬을 해주셨지만, 달콤한 격려뒤에는 쓰디쓴 약도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그 분의 말씀대로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한편의 글로서 완성되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다듬질이 필요했다. 가만히 방으로 와서 다시금 글을 훑어내리기 시작했다. 요리조리 생각하고 고심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문제는 '어떻게'가 아니라 '어디를' 이었다. '어떻게'에 대한 부분은 자문을 구한 부분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주셨기 때문에 조금만 생각해도 보완할 부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분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기존의 써놓았던 글의 '어느 부분을' 삭제하고 첨가해야 될지 고민하게 되었다. 어느 부분은 삭제하면 글의 중심이 흐트러져 버렸고, 또 다른 부분을 삭제하면 내용의 의도가 뒤바껴 버리기도 하였다. 참 난감한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는 것보다 지우는 게 어렵습니다. 그려서 선명해진 그림을 지워서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제 몇 가닥 선으로 모양을 잡아가는 회원님, 부디 처절하고 날카로운 지우개질을 겸비하길 염원합니다.'
언젠가 학교의 선배가 해주신 조언이었다. 한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 다듬질이 꼭 필요하다는 의미가 이제서야 조금씩 와 닿는다. 그러고 보면 벌써 5년이나 지났을 법한 한 교수님의 이야기도 생각난다. 100점짜리 글을 쓰는 법에 대하여 말씀하셨었는데, 지금 깨닫게 되는 내용과 상통하는 것 같다. 내용인 즉, 100점짜리 글을 쓰려면 처음 쓴 글은 50점 정도 밖에 안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그 50점짜리 글을 한번 다듬으면 70점이 되고, 다시 한번 다듬으면 80점이 된다고 하셨다. 그렇게 100점에 가까운 글을 쓰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는 몇 점짜리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불현듯 떠오른 질문 속에는 어쩌면 답은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글로서 표현하는 분야에서 100점이라는 의미는 나타나기 보다는 만들어간다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 같다. 펜대 앞의 검은 잉크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의 조언처럼 '처절하고 날카로운 지우개질'을 겸비하는 것이 바로 정답을 찾아가는 탈출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더 적절하게 지우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하여 더욱 노력해야 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