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김은 “미국은 한국의 우방이니 맹방이니 하지만, 실제로 한국에 중요한 정보를 나눠주지 않는다. 영국이나 캐나다 등에는 제공하는 한반도 관련 정보를 한국에는 제공하지 않은 적도 있다. 나는 정보가 공유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한국이 꼭 알아야 하는 정보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정보기관은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를 제외한 그 어떤 나라도 완전한 우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네 나라 외에는 어떤 나라도 미국에 대해 등을 돌리고, 미국의 국익에 맞서거나 혹은 적어도 그럴 소지를 늘 갖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듯 미국과의 중요한 정보공유 체제에서 밀려나있던 한국의 상황은 미국의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로버트 김에게는 안타깝게 느껴졌고, 한국 관련 정보를 제공해달라는 백동일 대령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로버트 김이 백동일 대령에게 전달한 정보들은 한국군과 한국정부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북한주민과 북한군의 동요 여부, 국제사회가 보내준 식량이 북한군에 유입되었는지의 여부, 휴전선 부근의 북한군 배치 실태, 북한이 해외로 수출하거나 수입하는 무기현황, 북한해군의 동향, 북한 주민의 탈북실태 등 우리 軍이나 정부가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백동일 대령은 “김 선생이 보내준 자료에는 야, 소리가 나올 정도로 좋은 정보도 있었다.”고 말하고 있고, FBI가 도청한 두 사람의 전화통화 내용에도 “김 선생님이 보내준 노란 봉투를 편지함에서 꺼내보았을 때 내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자료들을 참고하여 보고한 것으로 인해 본부로부터 많은 격려와 칭찬을 받았다”면서 백대령이 고마워하는 부분이 있다. 이 증거로 인해 로버트 김에게는 ‘정보수집죄’에다가 ‘공모죄’까지 덧붙여졌지만, 한국 정부가 그를 통해 중요한 정보를 제공받았다는 것이 다시 한번 밝혀진 셈이다.
로버트 김은 정보를 직접 전달받은 백 대령은 물론 한국정부로부터 단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 백 대령의 증언에 의하면 고마움의 표시로 몇 차례 식사 초대를 했지만, 그 때마다 선약이 있다거나 다른 이유를 들어 정중하게 거절했고, 쉐라톤 호텔에서 한국에서 온 해군정보장교들과 만났을 때에는 백대령이 볼일이 있어 먼저 일어섰다고 한다.
그 후 딱 한번 로버트 김을 접대한 적이 있는데, 그가 FBI에 체포되기 며칠 전인 1996년 9월 초, 한국에서 연수차 미국에 온 제독 두 사람을 로버트 김에게 소개시키게 되어 워싱턴 DC 근교에 있는 미 육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교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 것이 로버트 김이 받은 접대의 전부였다. 이전 정권에서 로버트 김 사건을 “우리와는 관계도 없고, 관심도 없다”, “미국의 사법당국에 넘어간 이상 미국 법 집행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등의 방관적인 입장을 보인 것은 정보제공의 순수성과 그 정보의 중요성으로 볼 때 한국 정부로서는 책임을 회피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체스넛 검사는 최후 논고에서 “로버트 김은 그의 고용주인 해군 정보국은 물론 미 합중국의 시민으로서의 중요한 책임을 저버리고, 타국(한국)에 대한 사랑을 택했다”고 말하였다. 로버트 김은 한국에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기밀을 수집하고, 마치 미국의 안보를 해친 중범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그의 희생에 대해 우리는 결코 방관할 수 없다.
What did Robert Kim do for Korea?
미국의 정보기관은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를 제외한 그 어떤 나라도 완전한 우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네 나라 외에는 어떤 나라도 미국에 대해 등을 돌리고, 미국의 국익에 맞서거나 혹은 적어도 그럴 소지를 늘 갖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듯 미국과의 중요한 정보공유 체제에서 밀려나있던 한국의 상황은 미국의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로버트 김에게는 안타깝게 느껴졌고, 한국 관련 정보를 제공해달라는 백동일 대령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로버트 김이 백동일 대령에게 전달한 정보들은 한국군과 한국정부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북한주민과 북한군의 동요 여부, 국제사회가 보내준 식량이 북한군에 유입되었는지의 여부, 휴전선 부근의 북한군 배치 실태, 북한이 해외로 수출하거나 수입하는 무기현황, 북한해군의 동향, 북한 주민의 탈북실태 등 우리 軍이나 정부가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백동일 대령은 “김 선생이 보내준 자료에는 야, 소리가 나올 정도로 좋은 정보도 있었다.”고 말하고 있고, FBI가 도청한 두 사람의 전화통화 내용에도 “김 선생님이 보내준 노란 봉투를 편지함에서 꺼내보았을 때 내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자료들을 참고하여 보고한 것으로 인해 본부로부터 많은 격려와 칭찬을 받았다”면서 백대령이 고마워하는 부분이 있다. 이 증거로 인해 로버트 김에게는 ‘정보수집죄’에다가 ‘공모죄’까지 덧붙여졌지만, 한국 정부가 그를 통해 중요한 정보를 제공받았다는 것이 다시 한번 밝혀진 셈이다.
로버트 김은 정보를 직접 전달받은 백 대령은 물론 한국정부로부터 단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 백 대령의 증언에 의하면 고마움의 표시로 몇 차례 식사 초대를 했지만, 그 때마다 선약이 있다거나 다른 이유를 들어 정중하게 거절했고, 쉐라톤 호텔에서 한국에서 온 해군정보장교들과 만났을 때에는 백대령이 볼일이 있어 먼저 일어섰다고 한다.
그 후 딱 한번 로버트 김을 접대한 적이 있는데, 그가 FBI에 체포되기 며칠 전인 1996년 9월 초, 한국에서 연수차 미국에 온 제독 두 사람을 로버트 김에게 소개시키게 되어 워싱턴 DC 근교에 있는 미 육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교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 것이 로버트 김이 받은 접대의 전부였다.
이전 정권에서 로버트 김 사건을 “우리와는 관계도 없고, 관심도 없다”, “미국의 사법당국에 넘어간 이상 미국 법 집행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등의 방관적인 입장을 보인 것은 정보제공의 순수성과 그 정보의 중요성으로 볼 때 한국 정부로서는 책임을 회피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체스넛 검사는 최후 논고에서 “로버트 김은 그의 고용주인 해군 정보국은 물론 미 합중국의 시민으로서의 중요한 책임을 저버리고, 타국(한국)에 대한 사랑을 택했다”고 말하였다. 로버트 김은 한국에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기밀을 수집하고, 마치 미국의 안보를 해친 중범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그의 희생에 대해 우리는 결코 방관할 수 없다.
로버트 김은 우리와 ‘깊은 관계가 있고, 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