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반준환기자]"나 하나 망가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망가지면 우리 가족이 모두 망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다시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빚을 갚을 때까지는 이발비도 아깝다는 생각에 2년동안 머리도 깎지 않았고, 일회용 면도기 두 개로 1년을 버티기도 했지요"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등 온갖 불행을 겪었지만 삶에 대한 뜨거운 의지와 저축정신으로 자립에 성공한 두부장사 저축왕이 11년만에 웃음을 지었다.
인평신협 조합원인 김충근씨(45세, 사진)는 31일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제43회 저축의날 행사에서 국민포장을 받았다. 그는 소형트럭에 두부 등 먹거리를 싣고 아파트단지를 돌아다니는 일명 두부장사다. 두부장사를 시작한 뒤 11년만에 빚을 청산하고 이제는 적금과 1000만원짜리 정기예탁금 통장도 가진 김 씨. 큰 돈은 아니지만 그의 미소가 따뜻한 것은 이유가 있다.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간 한국사회가 겪어왔던 모든 굴곡이 빠짐없이 들어있다.
김 씨는 1962년 부모도 모르고 태어나 돌이 될 무렵 나주로 입양됐다. 넉넉한 집안의 양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그가 중2때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서 양아버지가 사망하고 가세도 기울기 시작했다. 양어머니는 재가를 했고, 그가 사춘기에 양어머니로부터 "너는 내 핏줄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이젠 널 포기하는 거다'라고 해석했다고 한다. 반항심과 함께 여러 심리적인 갈등과 어려움 속에서 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하고 말았다.
이후 서울과 부산을 두루 돌며 구두닦이, 신문배달, 건설현장 막노동, 덤프트럭 화물차 운전 등 닥치는 대로 힘을 쓰는 일이면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러나 당시에는 돈을 벌면 버는 대로 쓰고 노름에도 손을 대서 큰 돈을 날려보기도 했다. 인생이 너무도 고달퍼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무의미했다. 그저 하루하루 입에 풀칠해가며 먹고사는 것에 중요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내다가 우여곡절 끝에 11년 전 친구의 도움으로 인천으로 올라와 소형트럭에 두부를 싣고 다니는 두부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큰 아이가 2살이었는데 아이가 크면 두부장수인 아버지를 싫어할까봐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부두장사를 해서 돈을 모아보자는 욕심에 시작한 것이다. 장사 초기에는 고생한 만큼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IMF가 지나고 주식시장이 활황일때 주식에 손을 댄 것이 또다시 화근이 되어 4000만원이라는 큰 빚을 지고 말았다.
자식의 미래를 책임지기 위해 모은 돈을 모두 날렸지만 이를 악물고 재기에 나섰다. 이발비 뿐 아니라 지출을 최대한 줄이며 다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눈물나는 어려움을 견디자 결국 빚도 갚을 수 있었고 여유돈도 생기며 정상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김 씨의 저축이 의미있는 것은 이 과정에도 주위의 불우이웃을 돕기위해 시작했던 성금기탁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9년간 꾸준히 불우이웃 성금을 기탁해온 돈은 생필품을 아껴 모은 돈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김 씨는 올해 2월에는 막내아이를 입양하기도 했다. 올해 2월 외국에 입양된 우리나라 아이들이 학대를 많이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렇게 외국에 보내느니 우리가 하나 더 키우자고 결정한 것이다. 이는 입양아였던 그의 양어머니와의 사랑을 다시 연결하는 고리도 됐다.
김 씨는 지난 3월 서먹서먹했던 양어머니에게 입양사실을 말했는데, 한참을 말이 없던 어머니는 "야이 썩을 놈아, 네가 아들이 없냐, 딸이 없냐"며 역정을 냈다.
김 씨는 "내가 어머니 마음을 알고 싶어서 승민이를 입양했어요. 나를 입양하신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서야 좀 알것 같습디다. 어머니 사랑해요"라고 답했다.
오랫동안 닫혀왔던 양어머니와의 관계는 그렇게 막내아이 입양과 사랑표현을 계기로 풀려버렸다. 김 씨는 막내아이가 형제들과 터울이 크다는 걱정에 아이를 하나 더 입양할 생각도 하고 있다. 현재는 한국입양홍보회(일명 '엠팩', www.mpak.co.kr) 회원으로 열심히 입양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김 씨는 저축왕에 오르기까지 어려모로 도움을 준 신협에도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9년째 기부금을 통해 불우한 이웃을 돕고 있는 그는 일주일에 보통 두세 번은 신협을 찾는다. 식구같이 가깝다고 정이 들어서 더욱 그렇다고 한다.
"신협은 참 고마운 것이 기부금을 송금해도 수수료를 안 받더라구요. 게다가 잔돈도 교환할 수 있고, 사람이 많지 않아 복잡하지도 않고, 이자도 많이 주고... 참 신협 거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꾸준한 저축을 위해 신용카드를 잘 써야 한다는 충고도 이어졌다.
"일단 저축부터 하고 난 다음에 나머지로 쓸 궁리를 해야 하는 합니다. 그래야 돈이 모아집디다. 지출하는 거의 모든 비용은 신용카드로 합니다. 자신의 지출내역이 기록으로 남아서 제대로 돈을 쓰면서 생활하고 있나 하는 방향을 가늠하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두부장사 저축왕 "아끼려고 2년간 이발도 안했죠"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등 온갖 불행을 겪었지만 삶에 대한 뜨거운 의지와 저축정신으로 자립에 성공한 두부장사 저축왕이 11년만에 웃음을 지었다.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간 한국사회가 겪어왔던 모든 굴곡이 빠짐없이 들어있다.
김 씨는 1962년 부모도 모르고 태어나 돌이 될 무렵 나주로 입양됐다. 넉넉한 집안의 양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그가 중2때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서 양아버지가 사망하고 가세도 기울기 시작했다. 양어머니는 재가를 했고, 그가 사춘기에 양어머니로부터 "너는 내 핏줄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이젠 널 포기하는 거다'라고 해석했다고 한다. 반항심과 함께 여러 심리적인 갈등과 어려움 속에서 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가출하고 말았다.
이후 서울과 부산을 두루 돌며 구두닦이, 신문배달, 건설현장 막노동, 덤프트럭 화물차 운전 등 닥치는 대로 힘을 쓰는 일이면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러나 당시에는 돈을 벌면 버는 대로 쓰고 노름에도 손을 대서 큰 돈을 날려보기도 했다. 인생이 너무도 고달퍼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무의미했다. 그저 하루하루 입에 풀칠해가며 먹고사는 것에 중요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내다가 우여곡절 끝에 11년 전 친구의 도움으로 인천으로 올라와 소형트럭에 두부를 싣고 다니는 두부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큰 아이가 2살이었는데 아이가 크면 두부장수인 아버지를 싫어할까봐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부두장사를 해서 돈을 모아보자는 욕심에 시작한 것이다. 장사 초기에는 고생한 만큼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IMF가 지나고 주식시장이 활황일때 주식에 손을 댄 것이 또다시 화근이 되어 4000만원이라는 큰 빚을 지고 말았다.
자식의 미래를 책임지기 위해 모은 돈을 모두 날렸지만 이를 악물고 재기에 나섰다. 이발비 뿐 아니라 지출을 최대한 줄이며 다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눈물나는 어려움을 견디자 결국 빚도 갚을 수 있었고 여유돈도 생기며 정상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김 씨의 저축이 의미있는 것은 이 과정에도 주위의 불우이웃을 돕기위해 시작했던 성금기탁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9년간 꾸준히 불우이웃 성금을 기탁해온 돈은 생필품을 아껴 모은 돈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김 씨는 올해 2월에는 막내아이를 입양하기도 했다. 올해 2월 외국에 입양된 우리나라 아이들이 학대를 많이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렇게 외국에 보내느니 우리가 하나 더 키우자고 결정한 것이다. 이는 입양아였던 그의 양어머니와의 사랑을 다시 연결하는 고리도 됐다.
김 씨는 지난 3월 서먹서먹했던 양어머니에게 입양사실을 말했는데, 한참을 말이 없던 어머니는 "야이 썩을 놈아, 네가 아들이 없냐, 딸이 없냐"며 역정을 냈다.
김 씨는 "내가 어머니 마음을 알고 싶어서 승민이를 입양했어요. 나를 입양하신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서야 좀 알것 같습디다. 어머니 사랑해요"라고 답했다.
오랫동안 닫혀왔던 양어머니와의 관계는 그렇게 막내아이 입양과 사랑표현을 계기로 풀려버렸다. 김 씨는 막내아이가 형제들과 터울이 크다는 걱정에 아이를 하나 더 입양할 생각도 하고 있다. 현재는 한국입양홍보회(일명 '엠팩', www.mpak.co.kr) 회원으로 열심히 입양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김 씨는 저축왕에 오르기까지 어려모로 도움을 준 신협에도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9년째 기부금을 통해 불우한 이웃을 돕고 있는 그는 일주일에 보통 두세 번은 신협을 찾는다. 식구같이 가깝다고 정이 들어서 더욱 그렇다고 한다.
"신협은 참 고마운 것이 기부금을 송금해도 수수료를 안 받더라구요. 게다가 잔돈도 교환할 수 있고, 사람이 많지 않아 복잡하지도 않고, 이자도 많이 주고... 참 신협 거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꾸준한 저축을 위해 신용카드를 잘 써야 한다는 충고도 이어졌다.
"일단 저축부터 하고 난 다음에 나머지로 쓸 궁리를 해야 하는 합니다. 그래야 돈이 모아집디다. 지출하는 거의 모든 비용은 신용카드로 합니다. 자신의 지출내역이 기록으로 남아서 제대로 돈을 쓰면서 생활하고 있나 하는 방향을 가늠하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반준환기자 abcd@<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