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음번 책에서, 우리 세대가 항상 물을 준비는 되어 있으나 결코 대답을 듣지 못하는 듯 보이는 의문 - 인간 삶의 의미 혹은 가치는 무엇인가? -을 정면으로 다루어볼 생각입니다. 지금까지는 이 의문을 이크나톤Ikhnaton(고대 이집트의 왕이자 종교 개혁가), 노자를 위시해 베르그송, 슈펭글러Spengler에 이르기까지 주로 이론가들이 다루어왔지요. 그 결과 일종의 지적 자살이 발생했다. 다시 말해 사고의 발전 그 자체가 삶의 가치와 의미를 파괴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처럼 수많은 개혁가들과 이상주의자들이 염원했던 지식의 성장과 확산이 신봉자들에게 - 그리고 감염에 의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 가져다 준 것은, 자칫하면 우리 인류의 정신마저 말살시킬 수도 있는 환멸뿐입니다.
천문학자들은, 인간사는 행성의 궤도에서 단지 한순간을 이룰 뿐이라고 말합니다. 지질학자들은, 문명을 무수한 빙하 시대들 사이에 잠시 끼어든 불확실한 막간극이라고 말하지요. 생물학자들은, 모든 삶이 전쟁이다, 개체와 집단과 국가와 동맹과 종족들 간의 생존 투쟁이라고 말합니다. 역사가들은, ‘진보’는 망상이다, 진보의 영광은 결국 쇠퇴로 끝나고 만다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의지와 자아는 유전과 환경의 무기력한 도구다, 따라서 한때의 썩지 않은 정신은 두뇌가 잠시 백열白熱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산업 혁명은 가정을 파괴시켰고, 피임 도구의 발견은 가족과 옛 도덕을 파괴함은 물론 (지성인의 씨를 말림으로써) 어쩌면 인류마저 파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은 과도한 육체 관계 속에서 분해 되어 버리고, 결혼은 일시적인 생리적 편의로 변하여 난혼보다 조금 나은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민주주의는 밀로Milo(1세기에 활약한 로마의 정치가)시대 로마에서나 있었음직한 부패로 타락하여,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라는 우리의 젊은 꿈은 사라지고, 하루하루 눈에 보이는 것은 사람들의 지칠 줄 모르는 욕심뿐입니다. 새로운 발명은 강자를 더 강하게 약자를 더 약하게 만들 뿐이고, 새로운 기계는 인간을 대신하고 전쟁의 공포를 가중시키는 것들뿐이지요. 한때 우리 짧은 생의 위안이었고 여읨과 고통의 피난처였던 신은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려, 어떤 망원경이나 어떤 현미경으로도 그를 찾아내지 못하지요. 철학이라는 이 총체적인 시각에서 볼 때 삶이란 것은 지구상에서 인간이란 벌레들이 잠시 번식하는 것, 우리 행성이 곧 낫게 될 습진에 잠시 걸려 있는 것에 불과하니, 그러한 철학 속에는 패배와 죽음 - 결코 깨어나지 못할 잠이라고 할까 - 외에는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 역사에서 가장 큰 실수는 진리의 발견이었다고 결론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진리는 망상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고, 제약으로 우리를 지켜주었다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진리는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즐겁게 해주지도 못했으니, 그처럼 열렬한 추구의 대상이 될 자격도 없지요. 이제 그것을 바라보노라면 왜 우리가 진리를 찾으려고 그렇게 서둘렀던가 의문하게 됩니다. 우리에게서 살아야 할 이유를 모조리 앗아가고 다만 순간의 쾌락과 내일의 사소한 희망만 남겨놓은 듯 보이니 말입니다.
과학과 철학이 우리를 데리고 온 길이 바로 이런 길입니다. 오랜 세월 철학을 사랑했던 저는 이제 그것을 뒤로 하고 다시 삶 자체로 돌아가면서, 생각과 삶을 동시에 지켜온 당신에게 요청하는 바입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아마도 삶을 사는 사람들의 판정과 생각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판정은 다르겠지요. 잠시 시간을 쪼개어 답해 주십시오. 당신에게는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종교가 - 만약 종교가 있다면 - 어떤 도움을 주는지, 당신을 계속 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당신의 영감과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인지, 당신이 일하는 목적 혹은 원동력은 무엇인지, 당신은 어디에서 위안과 행복을 발견하는지, 최후의 수단으로 당신의 보물은 어디에 놓여 있는지, 바쁘면 간략하게 쓰십시오. 그러나 가능하면 천천히 길게 써주십시오. 당신의 한마디 한마디가 제게는 다 소중할 테니.
본인소개 ; 『철학 이야기The Story of philosophy』, 『변천Transition』, 『철학 변천사The Mansions of Philosophy』, 『철학과 사회 문제Philosophy and the Social Problem』 기타 다수의 저자, 컬럼비아 대학 철학과 졸업, 철학 박사(컬럼비아), 인문 과학 박사(시러큐스).
추신 ; 램지 맥도널드, 윈스턴 처칠, 버나드 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등 세계적인 다른 명사들에게도 이와 같은 편지를 보낼 예정입니다.
순수하게 철학적인 목적에서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답변들을 곧 출간될 나의 책 『삶의 의미에 대하여On the Meaning of Life』에 인용하더라도 무방하리라 믿습니다. 저는 그 책의 한 장을 할애하여, 생존해있는 가장 저명한 남녀들의 인생에 대한 태도를 설명해 볼 생각입니다.
미국 뉴욕, 1931년 6월 8일
친애하는 듀랜트 씨
미안하지만 지금은 내가 인생에 의미 따위가 있다고 믿어지지도 않을 만큼 바쁘오. 따라서 당신의 질문들에 현명하게 대답하기 힘들 것 같소.
나는 우리가 진리의 발견이 초래한 결과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소. 지금까지 아무것도 발견된 바 없으니까.
어떤 편지와 그 답장
친애하는 러셀 백작
분주한 생활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저와 함께 철학 게임이나 해보시겠습니까?
저는 다음번 책에서, 우리 세대가 항상 물을 준비는 되어 있으나 결코 대답을 듣지 못하는 듯 보이는 의문 - 인간 삶의 의미 혹은 가치는 무엇인가? -을 정면으로 다루어볼 생각입니다. 지금까지는 이 의문을 이크나톤Ikhnaton(고대 이집트의 왕이자 종교 개혁가), 노자를 위시해 베르그송, 슈펭글러Spengler에 이르기까지 주로 이론가들이 다루어왔지요. 그 결과 일종의 지적 자살이 발생했다. 다시 말해 사고의 발전 그 자체가 삶의 가치와 의미를 파괴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처럼 수많은 개혁가들과 이상주의자들이 염원했던 지식의 성장과 확산이 신봉자들에게 - 그리고 감염에 의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 가져다 준 것은, 자칫하면 우리 인류의 정신마저 말살시킬 수도 있는 환멸뿐입니다.
천문학자들은, 인간사는 행성의 궤도에서 단지 한순간을 이룰 뿐이라고 말합니다. 지질학자들은, 문명을 무수한 빙하 시대들 사이에 잠시 끼어든 불확실한 막간극이라고 말하지요. 생물학자들은, 모든 삶이 전쟁이다, 개체와 집단과 국가와 동맹과 종족들 간의 생존 투쟁이라고 말합니다. 역사가들은, ‘진보’는 망상이다, 진보의 영광은 결국 쇠퇴로 끝나고 만다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의지와 자아는 유전과 환경의 무기력한 도구다, 따라서 한때의 썩지 않은 정신은 두뇌가 잠시 백열白熱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산업 혁명은 가정을 파괴시켰고, 피임 도구의 발견은 가족과 옛 도덕을 파괴함은 물론 (지성인의 씨를 말림으로써) 어쩌면 인류마저 파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은 과도한 육체 관계 속에서 분해 되어 버리고, 결혼은 일시적인 생리적 편의로 변하여 난혼보다 조금 나은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민주주의는 밀로Milo(1세기에 활약한 로마의 정치가)시대 로마에서나 있었음직한 부패로 타락하여,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라는 우리의 젊은 꿈은 사라지고, 하루하루 눈에 보이는 것은 사람들의 지칠 줄 모르는 욕심뿐입니다. 새로운 발명은 강자를 더 강하게 약자를 더 약하게 만들 뿐이고, 새로운 기계는 인간을 대신하고 전쟁의 공포를 가중시키는 것들뿐이지요. 한때 우리 짧은 생의 위안이었고 여읨과 고통의 피난처였던 신은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려, 어떤 망원경이나 어떤 현미경으로도 그를 찾아내지 못하지요. 철학이라는 이 총체적인 시각에서 볼 때 삶이란 것은 지구상에서 인간이란 벌레들이 잠시 번식하는 것, 우리 행성이 곧 낫게 될 습진에 잠시 걸려 있는 것에 불과하니, 그러한 철학 속에는 패배와 죽음 - 결코 깨어나지 못할 잠이라고 할까 - 외에는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 역사에서 가장 큰 실수는 진리의 발견이었다고 결론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진리는 망상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고, 제약으로 우리를 지켜주었다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진리는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즐겁게 해주지도 못했으니, 그처럼 열렬한 추구의 대상이 될 자격도 없지요. 이제 그것을 바라보노라면 왜 우리가 진리를 찾으려고 그렇게 서둘렀던가 의문하게 됩니다. 우리에게서 살아야 할 이유를 모조리 앗아가고 다만 순간의 쾌락과 내일의 사소한 희망만 남겨놓은 듯 보이니 말입니다.
과학과 철학이 우리를 데리고 온 길이 바로 이런 길입니다. 오랜 세월 철학을 사랑했던 저는 이제 그것을 뒤로 하고 다시 삶 자체로 돌아가면서, 생각과 삶을 동시에 지켜온 당신에게 요청하는 바입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아마도 삶을 사는 사람들의 판정과 생각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판정은 다르겠지요. 잠시 시간을 쪼개어 답해 주십시오. 당신에게는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종교가 - 만약 종교가 있다면 - 어떤 도움을 주는지, 당신을 계속 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당신의 영감과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인지, 당신이 일하는 목적 혹은 원동력은 무엇인지, 당신은 어디에서 위안과 행복을 발견하는지, 최후의 수단으로 당신의 보물은 어디에 놓여 있는지, 바쁘면 간략하게 쓰십시오. 그러나 가능하면 천천히 길게 써주십시오. 당신의 한마디 한마디가 제게는 다 소중할 테니.
본인소개 ; 『철학 이야기The Story of philosophy』, 『변천Transition』, 『철학 변천사The Mansions of Philosophy』, 『철학과 사회 문제Philosophy and the Social Problem』 기타 다수의 저자, 컬럼비아 대학 철학과 졸업, 철학 박사(컬럼비아), 인문 과학 박사(시러큐스).
추신 ; 램지 맥도널드, 윈스턴 처칠, 버나드 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등 세계적인 다른 명사들에게도 이와 같은 편지를 보낼 예정입니다.
순수하게 철학적인 목적에서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답변들을 곧 출간될 나의 책 『삶의 의미에 대하여On the Meaning of Life』에 인용하더라도 무방하리라 믿습니다. 저는 그 책의 한 장을 할애하여, 생존해있는 가장 저명한 남녀들의 인생에 대한 태도를 설명해 볼 생각입니다.
미국 뉴욕, 1931년 6월 8일
친애하는 듀랜트 씨
미안하지만 지금은 내가 인생에 의미 따위가 있다고 믿어지지도 않을 만큼 바쁘오. 따라서 당신의 질문들에 현명하게 대답하기 힘들 것 같소.
나는 우리가 진리의 발견이 초래한 결과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소. 지금까지 아무것도 발견된 바 없으니까.
1931년 6월 20일
<버트런드 러셀이 윌 듀랜트와 주고받은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