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대장정] 신선 사는 곳이 여기 "늘재~이화령 구간"

허영우200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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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대장정] 신선 사는 곳이 여기 "늘재~이화령 구간"
▲ 청화산 용유동 계곡에 새겨진 '洞天(동천)'. 개운조사(開雲組師)가 맨손으로 쓴 것이라 한다.미동도 없는 대기. 깊이를 가늠할 길 없는 연못 같은 땡볕. 훅-, 숨이 막힐 것 같은 정적 속으로 화살처럼 쏟아지는 매미 울음소리. 머리 속이 어찔어찔해지면서, 한순간 정지 모드였던 세상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다.

배낭 위에 한가득 매미울음 올려놓으며 늘재(490m)에 선다. 속리산과 청화산 사이의 고갯마루다. 청화산을 향한다. 청화산 초입에는 근년에 새로 세운 성황당이 있다. 성황당의 내력을 밝힌 비문에는 아예 ‘백두대간 성황당’이라고 새겨두고 있다. 늘재가 한강과 낙동강 수계를 가르는 남쪽 최초의 분수령이라는 점도 허름했던 옛 성황당을 허물고 새롭게 짓게 된 이유다.

성황당을 뒤로 하고 30분쯤 지나자 또 하나의 비석이 보인다. 비석의 몸돌 중앙에는 ‘정국기원단(靖國祈願壇)’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오른쪽과 왼쪽에는 ‘백의민족중흥성지’·‘백두대간 중원지’라는 글자가 한자로 병기돼 있다. 이제 백두대간은 현대적 산악신앙의 경배대상으로 자리 잡았음을 실감하게 한다.

[백두대간 대장정] 신선 사는 곳이 여기 "늘재~이화령 구간"
▲ 옅은 구름 속에 지워질 듯 아스라한 여름 백두대간의 봉우리들. 한걸음 한걸음 다가서는 만큼 맨가슴을 열어 보인다.늘재에서 청화산(984m)은 2.5㎞ 정도지만 두 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표고차 500m 정도로 제법 가파르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짧은 암릉이 있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특히 원적사가 내려다보이는 바위 위 조망처의 눈맛은 보통이 아니다. 청화산인 이중환이 “흙으로 된 봉우리에 둘린 돌은 모두 밝고 깨끗하여 살기(殺氣)가 적다”고 한 말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님을 알겠다.

청화산 정상으로 다가가자 진주의 종주팀원 김종현씨와 정인숙·신동국(진서산악회)씨가 수박을 쪼개 놓고 기다리고 있다. 감정 표현이 곰 발바닥 같은 사람도 이런 경우는 코끝이 시릴 것이다. 한여름 장기 산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젓가락도 반 토막만 가지고 다닌다는 무게 공포에서 수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늦은 점심을 해결한 다음 조항산을 향한다. 부드러운 오르내림을 반복하지만 갓바위재까지는 전체적으로는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조망도 괜찮은 편인데 연신 땀을 훔치느라 주위를 둘러볼 겨를이 없다. 송글송글 맺혔다 주루룩 흐르는 땀방울이 아니라 땀구멍 하나하나가 열린 수도꼭지 같다.

조항산(951m)을 오른다. 괴산군 청천면과 문경시 농암면에 걸쳐 있다. 몸을 돌려 세우자 문장대에서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불꽃같은 암릉이 이내 속에서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북쪽으로는 대야산과 동쪽으로 둔덕산의 우람한 자태가 손에 잡힐듯 가까이 다가선다. 조항산에서 고모치까지는 경쾌한 내리막이다. 땀방울은 끊임없이 쏟아져 내린다. 고모치 옆 샘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이제 온전히 백두대간과 한몸이 되어 대야산(931m)을 오른다. 백두대간의 남한 부분 중 지리산과 설악산 사이에서 으뜸의 산악미를 보여 주는 산이 바로 이번 구간의 대야산과 희양산이다. 특히 대야산은 기슭 곳곳에 빼어난 계곡을 빚어놓고 있다. 정상 부근의 기묘한 바위와 북동쪽으로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는 암릉은 울창한 수림과 조화를 이루며 산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경관을 압축해 놓고 있다.

대야산 정상에서 하루 산행객들이 얼려 온 캔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종주팀은 맹물에 안주(간식)만 먹고 걸음을 옮긴다. 곰넘이봉을 넘어 다시 30분 쯤 내려서자 버리미기재다. ‘벌어먹이다’의 경북 내륙 지방 사투리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손바닥만한 땅뙈기에 목숨을 의탁해야 했던 궁벽한 산골 살림살이가 굳은살처럼 박혀 있다.

구왕봉(877m) 오름길은 아주 가파르다. 구왕봉은 달리 구룡봉으로도 불렸는데, 지증대사가 봉암사 터를 잡기 위해 그 자리에 있던 연못을 메울 때 그곳에 살고 있던 아홉 마리 용을 쫓았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봉암사 스님들은 이 봉우리를 날개봉이라고도 부른다. 지도를 놓고 보면 희양산 좌우로 구왕봉과 시루봉이 봉암사를 향해 날아드는 새의 날개와 거의 흡사하다.

비가 그치면서 희양산 위로 구름이 비껴가고 있다. 언뜻언뜻 시야가 열리면서 암봉으로 이루어진 정상 언저리가 참선 삼매에 빠진 고승의 풍모를 보여준다.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봉암사가 별천지인양 아스라하다.

이번 구간 늘재에서 이화령까지는 실거리 약48㎞로 상당히 먼 거리지만, 빼어난 조망처와 암릉 그리고 산책길 같은 분위기를 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무게와 거리에서 오는 고통만큼 즐거움도 컸다.

[백두대간 대장정] 신선 사는 곳이 여기 "늘재~이화령 구간"
이중환은 이 산의 이름을 따 스스로를 청화산인(靑華山人)이라 칭했다. 그는 이 산을 이렇게 말했다. “청화산은 내외 선유동을 위에 두고, 앞으로는 용유동을 가까이에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수석의 기이함은 속리산보다 훌륭하다. 산의 높고 큼은 비록 속리산에 미치지 못하지만 속리산 같이 험한 곳은 없다. 흙으로 된 봉우리에 둘린 돌은 모두 밝고 깨끗하여 살기(殺氣)가 적다. 모양이 단정하고 좋으며 빼어난 기운을 가린 곳이 없으니 거의 복지다.”(‘택리지’, 복거총론-산수)

왜 이토록 청화산을 극찬했을까? 생리(生利)와 인심을 강조한 그의 국토관으로 미루어 볼 때, 단순히 산의 빼어남만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청화산 남쪽 기슭 용유리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소의 뱃속, 이른바 우복동(羽腹洞)이라 불리는 승지(勝地)가 바로 상주시 화북면의 용유리다.

속리산의 남쪽 백두대간은 형제봉에서 갈령 쪽으로 가지 줄기를 뻗어 동북쪽으로 도장산(827.9m)을 솟구쳐 올린다. 청화산에서도 동남쪽으로 가지를 쳐 한 봉우리를 세우는데 그것이 바로 시루봉이다. 마주보고 선 시루봉과 도장산 사이로는 한줄기 물길이 흐른다. 병천이다. 이들 산줄기를 선으로 그어보면 시루봉-청화산-늘재-문장대-천황봉-형제봉-갈령-도장산이 된다. 흡사 그 모양이 시위를 팽팽히 당긴 활 모양인데, 그 사이의 분지가 바로 용유리다. 외부세계로 열린 곳이라고는 병천밖에 없다. 그래서 소의 뱃속처럼 안온한 곳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