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 노트 감상기

배재문2006.11.01
조회42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탓인지 그나마 괜찮았던 영화다.

자, 이제 그 이유 몇가지를 소개하겠다.

 

1.

 

내가 이 영화를 기대를 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원작 만화가

그토록 인기가 있었고, 또한 그럴 수 밖에 없도록 한 것에 상당부분

기여한 것인 엄청난 대사,지문 그리고 독백의 분량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엄연히 소설이나 만화와는 다른 법.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눈과 들리는 귀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이

영화는 이미 태생부터가 자체적인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과연 원작을 얼마나 잘 살릴지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고, 이 의구심은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잘 나타났다.

 

 

2.

 

또한 원작 데스 노트가 큰 인기가 있었던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라이토"라는 캐릭터에게 가장 큰 공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이 라이토라는 주인공은 꽤나 독특한 캐릭터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라이토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대폭 줄였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한계 때문이다.

캐릭터 설정이라는 것이 이미 만화에서 잘 되어 있었다면 그 캐릭터

를 제대로 묘사해야만 함에도 이 영화는 터무니 없이 부족하다.

그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실행할 수 있는 라이토라는 인물말이다.

영화에선 공부 잘하고, 아버지가 경찰 고위간부란게 거의 전부다.

악인지 선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는, 가끔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한 인물이기도 했던 라이토에 대한 설명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3.

 

역시나 이것 또한 태생적 한계로 봐도 무방하겠지만...

만화와 같은 그런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전혀 뿜어내지 못한다.

원작 자체가 가진 아우라가 워낙 대단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영화는 전체적인 촬영부터가 너무 밝다.

조명 감독이나 촬영 감독도 이런 엉망에 한 몫 단단히 했을 것이다.

 

 

4.

 

도대체 이 영화의 캐스팅은 누가 했나?

주요 인물을 보더라도 정말 예고편부터 어처구니 없었다.

그래, 좋다, 키라는 그럭저럭 연기도 좋고 넘어가주마.

하지만 아무리 좋게 봐도 이 작품에서 쌍두마차 중 한명인 "L"은

도저히 눈 감고 봐주기도 민망하다.

마츠야마 켄이치의 연기도 볼썽 사납지만 그 분장은 정말이지...

이건 감독이든, 분장사든 원작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밖에

볼 수가 없거나, 애초에 포기했거나 둘 중 하나다.

다시 말하자면, 만화 속 L에 맞는 인물을 찾은 것이 아니라 배우에

게 L을 맞춰서 준비했다고 밖에 생각이 되지 않는다.

L의 아우라만 좀 더 갖춰졌어도 훨씬 좋은 작품이었을 것이다.

 

 

5.

 

캐스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한 명 또 있다.

이 영화에서 후반부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미사"

도대체가...

속된 말로 연기를 발로 하니?

사신조차 반해버린 이 캐릭터를 어쩜 그 따구로 연기하니?

아주 잠깐 동안의 출연이었지만 정말 기대를 할 수 없게 만든

당신의 그 대단한 연기력에 경의를 표하오.

 

 

6.

 

류크는 정말 제대로 잘 그려냈다.

만화 속 류크를 그대로 옮겨 놓았더군.

만화가 아닌 이 영화에서 가장 맘에 드는 캐릭터였다.

 

 

7.

 

만화와 별 다를게 없어서 였겠지만 L의 등장도 제법 좋았다.

원작을 보지 않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설득력 있고

매력적인 등장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8.

 

음...

이것도 또 캐스팅과 관계된 얘긴데...

제발 의상에 어울리는 배우만이라도 찾아라.

내 얘기는 "미소라 나오미" 말이다!

시간적 배경과도 동떨어진 그 가죽 의상은 어울리지도 않더라.

 

 

9.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은데...

원작이 가졌던 "살인으로 정화하는 세상"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고뇌 같은 것이 거의 없다시피 희석 되어 있고, 또한 관객으로 하여

금 그런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 줄 장치조차 없다.

이것 역시도 원작과는 다른 매체에 따른 한계 때문이겠지만 결국

그것으로 인해 이 영화는 원작의 절반에 미치기도 힘들다.

아니면 역시나 이것도 애초에 포기하고 재미만을 선택한 것일까?

하긴, 상당 부분 생략 되어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자, 마지막 10번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안 보는 것이 좋다.

 

 

10.

 

하지만 이 영화가 그나마 괜찮았던 것은 영화의 가장 마지막 시퀀스

에 등장하고 원작에는 없던 라이토의 여자친구 시오리의 사망이다.

(사실 잘 기억이... 하지만 만화에선 비중도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시퀀스를 아주 제대로 활용해서 전환점을 꽤 만족스럽게 마련을

한 것이 그나마 이 영화에 대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다.

결국 원작과 같은 방법을 택하기에는 어떠한 면에서든 부족하다고

생각을 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어쨌든 탁월한 선택이라고 본다.

그나마 이 영화가 이 시퀀스마저 없었다면 역시나 일본 애니 혹은

만화를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는 거의 대다수가 엉망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선입견을 그대로 재생산한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