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박승희 학생의 분신 모습이었다. 잔디밭에서 반휴식을 취하던 동료 사진기자들은 누구랄 것 없이 튀어나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
로이터를 통해 전송된 이 사진은 다음날 한겨레신문 1면에 게재됐으며 시사저널 표지 일러스트 밑그림으로 사용됐고, 학생들의 집회 대자보에도 자주 사용됐다.
그러나 다음날 축제분위기에 젖어있는 편집국을 떠나 전남대로 왔을 때 나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전대신문사 후배 기자가 이렇게 한마디 했다.
"오선배 사진좋데, 그런데 불 끌 생각은 없었수?"
후배가 내뱉은 이 한마디는 비수가 되어 나의 가슴을 도려내는 듯 했다. 과연 나는 카메라 대신 점퍼를 손에 들 생각은 없었는가. 휴머니즘, 휴머니스트, 특종, 낙종 등등... 정신을 가다듬고 회사로 돌아왔다. 축하인사가 손가락질로 여겨졌다. 추천을 해야겠다는 기협분회장의 얼굴이 미워보였다. 그때 마침 창간 준비중이던 광주매일에서 제의가 왔다. 나는 쾌히 응했다. 우선 쉬고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니 환경을 바꾸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한 장의 사진이 역사를, 사회를 바꾼 적은 있지만 나의 운명을 바꾸었던 것이다.
나의 운명을 바꿔놓은 한 장의 사진
1991년 4월 29일
바로 박승희 학생의 분신 모습이었다. 잔디밭에서 반휴식을 취하던 동료 사진기자들은 누구랄 것 없이 튀어나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
로이터를 통해 전송된 이 사진은 다음날 한겨레신문 1면에 게재됐으며 시사저널 표지 일러스트 밑그림으로 사용됐고, 학생들의 집회 대자보에도 자주 사용됐다.
그러나 다음날 축제분위기에 젖어있는 편집국을 떠나 전남대로 왔을 때 나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전대신문사 후배 기자가 이렇게 한마디 했다.
"오선배 사진좋데, 그런데 불 끌 생각은 없었수?"
후배가 내뱉은 이 한마디는 비수가 되어 나의 가슴을 도려내는 듯 했다. 과연 나는 카메라 대신 점퍼를 손에 들 생각은 없었는가. 휴머니즘, 휴머니스트, 특종, 낙종 등등... 정신을 가다듬고 회사로 돌아왔다. 축하인사가 손가락질로 여겨졌다. 추천을 해야겠다는 기협분회장의 얼굴이 미워보였다. 그때 마침 창간 준비중이던 광주매일에서 제의가 왔다. 나는 쾌히 응했다. 우선 쉬고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니 환경을 바꾸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한 장의 사진이 역사를, 사회를 바꾼 적은 있지만 나의 운명을 바꾸었던 것이다.
-나의 취재기 中 굿데이 오영상 기자
4월 29일 내 생일.
뒤늦지만 전남대 고 박승희 학생의 명복을 빕니다.
충격적인 사진. 그리고 씁쓸한 기자정신.
하지만 이 씁쓸한 기자정신이 없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