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영화>Azur et Asmar 눈물나게 아름다운 것이란

이진200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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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Azur et Asmar   (아주르와 아스마르)

감독 : Michel Ocelot

         France 2006

 

이럴수가 .....   이렇게 아름다와도 되는거야 ....

(하는 생각이 수없이 드는 영화다)

 

키리쿠와 마녀 카라바를 본 사람들이라면 두말하지 않고 찾아가 볼영화이다. 미셸 오슬로가 6 여년에 걸쳐 제작한 애니매이션이 드디어 개봉하던날 나도 두말하지 않고 찾아갔다. 역쉬....

 

* 줄거리

 

아주르와 아스마르는 두 소년의 이름이다. 금발에 푸른눈을 가진 아주르와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아스마르.  아주르는 성주의 아들이며 아스마르는 유모의 아들로 둘은 아스마르의 엄마이자 아주르의 유모인 제난의 손에 형제처럼 자란다.  둘의 가장 큰 즐거움은 아랍인인 제난이 들려주는 아랍의 한전설, 저멀리 암흑의 나라에 갖힌 진의 요정을 구하기 위해 떠나는 모험이야기를 듣는것.

모든것을 함께 나누던 그들은 성주가 강제로 아주르를 도시로 보내고 아스마르와 제난을 쫓아내면서 연락이 끊긴다.

 

세월은 흘러 이제 아름다운 청년으로 성장한 아주르는 어린시절의 꿈대로 저멀리 바다건너에 있는 진의 요정을 구하기 위해 배를 탄다. 폭풍우에 모든것을 잃고 목숨만 겨우 건진 아주르가 다다른곳은 어린시절 다정한 유모의 나라, 아랍의 땅. 그러나 부드러웠던 유모와는 달리 그가 맞닥뜨린 것은 푸른눈은 불길하다는 미신을 가진 사람들의 냉대와 거부뿐이다.

 

절망에 빠진 아주르는 눈을 감고 다시는 눈을 뜨지 않기로 결심한다. 장님이 된 아주르에게 크라푸 라는 의심쩍은 거지가 접근하여 자신을 등에 태우면 아주르의 눈이 되어주겠노라는 제안을 한다. 자신도 아주르처럼 푸른눈이지만 거대한 안경을 쓰고 다니며 20년간 그사실을 숨겨온 크라푸. 그 안경만큼이나 기괴한 편견에 젖은 크라푸에게는 거대한 야자수숲이나 아름다운 노래도 모두 피폐하고 천박해 보일 뿐이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아주르.

 

그렇게 시내에 들어선 아주르는 낯익은 유모의 목소리를 듣게된다. 죽은줄로만 알았던 유모는 아주 부유한 상인이 되어있었고, 그의 대문을 두드라는 아주르.  믿으려 하지 않는 유모 앞에서 아주르는 눈을 뜨고 그의 푸른눈을 보여준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며 기뻐하는 유모. 그러나 아스마르는 과거에 쫓겨나며 겪었던 모욕을 아직 잊지못하는 듯 하다.

 

이나라의 많은 청년들처럼 아주르와 아스마르도 진의 요정을 구하러 떠나게 된다.   먼저 도착하여 요정을 구하는 사람이 요정과 결혼을 할것이다.  

 

강도 무리로부터 아스마르는 구하려다 부상을 당하는 아주르와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아스마르.  아주르를 구하기 위해 치명적인 상처를 무릅쓰는 아스마르.  쓰러진 아스마르를 등에 업고 아주르는 모험을 계속한다.

 

불의 문, 독가스의 문, 칼의 문을 지나 마지막으로 어둠과 빛의 선택의 문에 선 두사람.

아주르 : 어느문으로 들어가지? 한쪽은 영원한 어둠의 동굴, 한쪽은 요정이 있는 빛의 궁전. 하지만 이제까지 사람들이 선택한 문은 항상 어둠의 동굴이었어. .... 오른쪽으로 들어가자.

아스마르 : 왜지?

아주르  : 왼쪽은 불길하다고들 하잖아.

아스마르 : 그런건 미신일 뿐이야. 마치 내눈처럼 검은 고양이나 네눈처럼 푸른눈이 불길하다고 하는 것처럼.

 

왼쪽문으로 들어가는 두사람.  어둠뿐이던 방안은 불현듯 찬란한 빛으로 가득차고 모든게 틀렸다며 절망하던 아주르에게 요정의 목소리가 들린다. 축하하는 요정에게 아주르는 실제로 승리자는 아스마르라며 죽을 고비에 처한 그를 살려주길 부탁한다.

 

아스마르는 살아나고 이제 누가 승리자이며 요정과 결혼할 것인가를 가려내는 일이 문제다. ^^

    

* 나의 감상문

 

가장 크게 특이한 구성으로 꼽을점은 대사의 반은 아랍어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아랍어를 이해하지 못할것이 분명한 관객들을 위해 그 대사들을 해석해 주는 친절은 없다. 여기서 아랍어는 이방의 말을 대표한다고 보면 되겠다. 이방의 말을 못알아 듯는거는 당연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관객은 영화 대사중 반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인데, 그래도 되느냐고?  난 이게 영화의 중심 주제라고 확신한다. 이방의 말과 우리 말을 반반의 비중을 두는거. 다른 말을 쓴다고 따돌리거나 강요하지 않고 우리 말과 똑같은 비중으로 존중하는 것.

어디 언어뿐이랴. 문화, 종교, 생활습관, 음식 등등.. 어느 분야건 다른점들이 무시받아서는 안된다. 

영화에서 대사의 반을 대담하게 이방언어에 할애하는 구성은 똘레랑스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주절 주절 설명없이 보여주는 감동적인 실천이라 하겠다.  

 

똘레랑스를 언어에서만 실천한것은 아니다. 

거대한 야자수숲, 색색의 이국적인 꽃들, 가짓수를 헤아릴수 없는 향신료들, 석양에 드리우는 여인의 노래, 빛을 받아 반짝이는 푸른색의 타일들. 뛰어난 애니매이션과 현란한 색채로 표현된 이 이국땅의 풍경들은 너무나 아름다우나 기괴한 안경을 쓴 크라푸와 자진해서 눈을 감은 아주르는 이것을 보지 못한다.  나중에 아주르는 눈을 뜨길 잘했다고 말한다.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아주르와 아스마르, 두청년은 결국 진의 요정과 엘프의 요정에게 각각 결혼을 하며 모두 행복하게 살것이다. 좋은 사람들은 모두 살아남아 원하는것을 이루었고 나쁜 사람들은 사라지거나 달아났다. 누가 죽거나 억울하게 당하거나 그런거 하나도 없다. 무서운 사자나 전설의 새도 야수의 말로 얘기하면 부탁을 들어준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중이나 보고 난 후에도 한참동안 가슴에서 마구 죄어 올라오며 찡해지는 것은 왜일까. 슬픈일은 하나도 없는 영화를 보고난후 자꾸 울고 싶어지는 것은 왜냔말이다.

 

너무나 아름답다.

유모가 들려주는 자장가도, 밤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도, 피부색이 다른 형제들이 나누는 진한 형제애도,

눈물나게 아름답다는 말은 이런데 쓰는 말인가...

 

 

<강추영화>Azur et Asmar 눈물나게 아름다운 것이란


   

    

 

<강추영화>Azur et Asmar 눈물나게 아름다운 것이란


 

예고편 감상은 여기로 :

http://azuretasmar-lefilm.com/ba.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