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해당버스들을 오전 7시대와 오후 19시대에 매일 이용을 하는 편이다. 개인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경기도 검단4거리다. 오전시간에 직장으로 출근을 하려고 집을 나서면서 집앞의 버스정류장을 버릇처럼 쳐다보게 된다. 예전에는 자가용을 이용해 편안하게 출근을 할 때에는 그런것을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사정상 대중교통을 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와 업무 특성으로 인해 만원 버스와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오전에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나의 시선은 버스정류장에 늘어선 학생들의 수를 세어본다.
그리고 버스정류장까지 서서히 걷는다. 학생들이 많고 특정버스가 도착하면 쏴아 하고 몰려가는 학생들이 많이 있으면 나는 해당 버스를 먼저 보낸다. 그럼으로 인해 나의 출근시간대는 좀 늦추어진다. 그러나 다음에 오는 버스에는 학생들이 몰리지 않아 그야말로 편안하게 직장을 갈 수 있다.
일전에 특정지역에 살 때에도 그랬다.
그때에는 17-1번 버스를 애써 피했다. 왜냐구요. 이른아침에 출근을 하려고 해당버스에 오르면 모두가 60대 이상의 노인층들이다. 어디를 그렇게 부지런히 나서는 지 도저히 알길이 없다. 이미 그나이 때면 직장에서 퇴사를 했거나 쫓겨났음직한 연령대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그분들의 행색이 정장차림은 아니다. 전형적인 시골촌부와 같은 모습이다. 이른 아침에는 그들을 피해 버스 맨뒤의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들에게 자리를 선뜻 내줄만큼 젊지도 않은 나이이지만, 어찌됐든 해당시간에는 그들에 비해 한참 젊은이에 속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노인층들을 만나는 불편함을 지금은 검단4거리로 이사를 한 결과 없어진 상태이다. 그러나 노인들을 만났을 때보다 더한 고통을 주는 적들을 만났다. 이른바 어른을 존경할 줄 모르고 그러면서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같은 인성교육도 되어 있지 못한 고등학생들을 떼로 만나는 시간이 출. 퇴근시간때다.
그들을 버스안에서 만나는 것은 정말 큰 곤욕이다.
어른에 대한 공경심과 무거운 짊을 나누어 주던 그시절을 보냈던 사람으로서 자식보다 더 어린나이의 학생들을 보는 것 그것도 남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한 자신들끼리의 전혀 정제되지 않은 막말을 큰 소리로 쏟아내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 목불인견 그 자체이다.
오늘도 퇴근시간대에 학생집단들을 만났다. 오늘은 예전과 다르게 버스가 놎게 도착하면서 한 30분을 채 넘기지 않은 시점에서 버스가 도착하여 버스에 오르니 버스안은 모조리 나이어린 남녀 고등학생 아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또한 버스안은 그야말로 돗대기 시장판 이상으로 정말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요란뻑적지근하였다. 그들 사이에 흰머리가 난 어른인 내가 손잡이를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나는 그런 버스안의 풍경이 전혀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 그냥 내려 집까지 30여분 거리를 걷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은 개인적으로 매우 피곤하였다.
용산역까지 가기 위해서 급행전철을 기다리다 이용했다. 왠걸 오늘따라 급행전철을 타는 젊은이들이 유독 눈에 많이 들어온다. 그리고 자식보다 어린 젊은 여성들이 애들을 데리고 이용한다. 정말 만원전철이다. 그렇게 꼬박 서서갔다. 다른때에는 편안하게 앉아 갔는데. 말이다.
용산역에서 일을 보고 돌아올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오늘따라 만나기 싫은 풍경들을 만났다. 그럼으로 피곤해 지친몸으로 그냥 서서 버티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과정에서 만났던 것이 퇴근길에 만원버스안의 남녀 학생들이었다. 나는 그런 풍경을 싫어한다. 그런 풍경이 싫어서 출근시간대와 퇴근시간대에는 남녀 학생들이 덜 타는 버스를 이용하게 된다.
그러면 하루의 출발과 하루의 일과를 마감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나는 내일도 모래도 글피도 이런 생활을 반복해야 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내가 좀 움직여야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 느끼는 행복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이 이용하는 시간대는 피한다
인천에서 운행하는 7번버스와 17-1번 버스는 애써 피한다.
왜냐구요!
개인적으로 해당버스들을 오전 7시대와 오후 19시대에 매일 이용을 하는 편이다. 개인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경기도 검단4거리다. 오전시간에 직장으로 출근을 하려고 집을 나서면서 집앞의 버스정류장을 버릇처럼 쳐다보게 된다. 예전에는 자가용을 이용해 편안하게 출근을 할 때에는 그런것을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사정상 대중교통을 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와 업무 특성으로 인해 만원 버스와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오전에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나의 시선은 버스정류장에 늘어선 학생들의 수를 세어본다.
그리고 버스정류장까지 서서히 걷는다. 학생들이 많고 특정버스가 도착하면 쏴아 하고 몰려가는 학생들이 많이 있으면 나는 해당 버스를 먼저 보낸다. 그럼으로 인해 나의 출근시간대는 좀 늦추어진다. 그러나 다음에 오는 버스에는 학생들이 몰리지 않아 그야말로 편안하게 직장을 갈 수 있다.
일전에 특정지역에 살 때에도 그랬다.
그때에는 17-1번 버스를 애써 피했다. 왜냐구요. 이른아침에 출근을 하려고 해당버스에 오르면 모두가 60대 이상의 노인층들이다. 어디를 그렇게 부지런히 나서는 지 도저히 알길이 없다. 이미 그나이 때면 직장에서 퇴사를 했거나 쫓겨났음직한 연령대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그분들의 행색이 정장차림은 아니다. 전형적인 시골촌부와 같은 모습이다. 이른 아침에는 그들을 피해 버스 맨뒤의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들에게 자리를 선뜻 내줄만큼 젊지도 않은 나이이지만, 어찌됐든 해당시간에는 그들에 비해 한참 젊은이에 속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노인층들을 만나는 불편함을 지금은 검단4거리로 이사를 한 결과 없어진 상태이다. 그러나 노인들을 만났을 때보다 더한 고통을 주는 적들을 만났다. 이른바 어른을 존경할 줄 모르고 그러면서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같은 인성교육도 되어 있지 못한 고등학생들을 떼로 만나는 시간이 출. 퇴근시간때다.
그들을 버스안에서 만나는 것은 정말 큰 곤욕이다.
어른에 대한 공경심과 무거운 짊을 나누어 주던 그시절을 보냈던 사람으로서 자식보다 더 어린나이의 학생들을 보는 것 그것도 남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한 자신들끼리의 전혀 정제되지 않은 막말을 큰 소리로 쏟아내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 목불인견 그 자체이다.
오늘도 퇴근시간대에 학생집단들을 만났다. 오늘은 예전과 다르게 버스가 놎게 도착하면서 한 30분을 채 넘기지 않은 시점에서 버스가 도착하여 버스에 오르니 버스안은 모조리 나이어린 남녀 고등학생 아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또한 버스안은 그야말로 돗대기 시장판 이상으로 정말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요란뻑적지근하였다. 그들 사이에 흰머리가 난 어른인 내가 손잡이를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나는 그런 버스안의 풍경이 전혀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 그냥 내려 집까지 30여분 거리를 걷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은 개인적으로 매우 피곤하였다.
용산역까지 가기 위해서 급행전철을 기다리다 이용했다. 왠걸 오늘따라 급행전철을 타는 젊은이들이 유독 눈에 많이 들어온다. 그리고 자식보다 어린 젊은 여성들이 애들을 데리고 이용한다. 정말 만원전철이다. 그렇게 꼬박 서서갔다. 다른때에는 편안하게 앉아 갔는데. 말이다.
용산역에서 일을 보고 돌아올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오늘따라 만나기 싫은 풍경들을 만났다. 그럼으로 피곤해 지친몸으로 그냥 서서 버티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과정에서 만났던 것이 퇴근길에 만원버스안의 남녀 학생들이었다. 나는 그런 풍경을 싫어한다. 그런 풍경이 싫어서 출근시간대와 퇴근시간대에는 남녀 학생들이 덜 타는 버스를 이용하게 된다.
그러면 하루의 출발과 하루의 일과를 마감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나는 내일도 모래도 글피도 이런 생활을 반복해야 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내가 좀 움직여야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 느끼는 행복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