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석강 불타오르던 피빛 노을이 왜 이리도 그리운지

바다와 술잔2003.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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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석강 불타오르던 피 빛  노을이 왜 이리도 그리운지

    

카메라 둘러메고 노을을 담으려 노을 쏟아지는 산하를  헤매고 다닌 적이 있었다. 노을을 주제로 하여 다도해, 서해, 제주도로 노을 내리는 곳을 부지런히도 따라 다녔다.

노을 그 속에는 별별 무지개가 다 만들어진다. 보는 곳에 따라, 노을 내리는 곳에 따라 주변의 환경에 따라 시시 철철 수 만 가지 빛의 색깔을  다듬어낸다. 노을 그것은 황혼 한나절 하늘이라는 거대한 화폭에 담겨지는 색채의 무릉도원이고 찬란한 만다라의 세계다. 어떻게 그리도 심상 얼얼한 장엄을 펼치는가.

바다가 불타오르는 것을 보았는가. 산 노을이 새색시 다홍치마에 소담히 담겨 편안하게 잘 익은 노을이라면 바다에 쏟아지는 노을은 바다를 불 태워 버리려는 용솟음의 질펀한 불바다다. 다도해의 노을은 끌고 가는 섬들이 기가 막히다.

노을은 물이 있어야 금상첨화다. 어차피 해는 서산으로 지는 것. 카메라의 앵글도 서 쪽 땅을 향할 수 밖 에 없는 숙명을 지녔기에 내 눈도 해 질 무렵이면 서 쪽 땅을 바라다보는 사시가 된다. 노을이 내린 바다를 바라다 볼 때 불타는 빛의 화염에 나를 태우고 싶은 욕망이 섬광처럼 내달린다. 그 순간만은 망념에 시달리는 세상살이를 잊을 수 있다.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 “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 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내 발을 씻으리라. 굴원의 그 유명한 <어부사>의 한 구절이다. 나는 굴원이 보지 못한 뜨겁게 불타는 붉은 노을 잠긴 바닷물에 마음을 담가 세정의 온갖 비린내 묻은  마음의 땟국을 흔적 없이 지워 낸다.


그런데 노을을 사진으로 담아내어 현상 확대한 뒤 잘 생긴 그림틀 속에 놓고 지인들 보고 한 점만, 딱 한 점만 가지시라고 하면 여자들은 해금강 초입 도장포 내려가기 전 언덕배기에서 잡은 노을의 그림을 곧 잘 선택한다. 그곳의 노을 풍경은 화려함이나 황홀함이 없는 담담한 수채화의 군더더기 없는 노을이다. 산뜻한 느낌을 주는 노을, 산초향내 긴 여운이 남아나는 노을이라 표현 하면 될지 싶다. 하늘이 그렇게 붉지도 않고 분홍빛에 가깝다.  물에 떨어진 노을의 잔영은 오히려 바다를 옥색비단으로 휘 감아버린 분위기를 연출 한다. 단지 뒤쪽 병풍처럼 둘러 처진 산자락과 오른쪽 새색시 아미처럼 잘 생긴 산자락의 끝이 바다에 발을 담그는 담박한 모습이다. 하늘 흐르는 연한 핑크빛과 바다 가볍게 담은 옥빛의 소담함, 암묵으로 빚어진 산그늘의 처연함이 균형의 구도를 잡아 줄 뿐 노을의 흥취를 눈이 서걱거리도록 잡아 내지 못 하는 소박함이 담겨있다. 여자들은 대부분 이 담담하고 소박한 노을 그림을 잘 택한다.

내 방에는 엉뚱하게도 군산 비행장 가는 중간쯤 이름 모르는 저수지에 저녁 그물 거두어들이는 쪽배 탄 어부의 어깨위로 부드럽게 내리는 노을이 걸려있다.

반면에 남자들은 돌산도 군내 리에서 작금 사이의 금오도 부근으로 점점이 흩어진 섬들을 배경으로 김발이나 통통배 사이로  불바다가 된 노을에 눈길을 멈춘다.

여수만의 수많은 섬들이 아득하게 어둠 속으로 잠겨가는 그 모습들을 좋아 한다. 포구로 돌아가는 고깃배의 흐르는 동적인 분위기에 감탄 한다.

남자들은 보편적으로 빛이 부드럽게 흘려진 느린 셧트를 좋아하고 표준이상 70mm 이상의 대 구경에 묻어난 그림들을 즐긴다. 여자들은 조리개가 조여진 빠른 셧트나 광각렌즈의 섬세하고 품이 차지게 담긴 노을을 좋아 한다. 그리고 부분이 아닌 전체를 담아낸 그림을 좋아한다.

남자와 여자의 다른 점을 노을 사진에서도 느낄 수 있어서 실없는 웃음을 흘린 적이 있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기가 막히도록  잘생긴 노을을 보고 허겁지겁 삼각대를 설치하다 보면 마음은 급한데 한 뼘 남았던 붉은 해는 가을날 홍시 떨어지듯 산 너머로 꼴딱 떨어져버려 아쉬워하던 마음이 한두 번 아니다. 눈으로나마 그 잘생긴 노을을 바라보다 바다에 어둠이 내리면 아른거리는 잔영에 한 참을 흥에 취하여 실눈 뜨고 바라보다가 독한 한 잔 술로 여독을 풀러 간다.


마음이 산만해져서인지 변산 채석강 만권 불태우는 노을이 오늘은 왜 이다지도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겨울  바닷바람처럼 쇠를 녹이려 불타오르는 노을만큼이나 정열로 가득 차 있으면 좋으련만 하 이다지도 스산한 바람만 불어오는지........

마음 다잡아보려 하지만  방정맞지 못한  갈등만 짙어지는 하루다.  채석강 불타오르던 피빛  노을이 왜 이리도 그리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