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막 1 장
Present
시은이가 24시간 편의점에서 나왔다. 화장실만 이용하기 미안했는지 손에는 비닐 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건 뭐야?"
정우는 차에 오르는 시은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미소를 띄우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빵이야."
"빵? 누나, 배고파?"
정우는 차 안의 시계를 보았다. 디지털 시계가 11시 0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 그냥 샀어. 옛날 생각이 나서‥‥‥."
"옛날? 제과점 앞에서 마네킹 노릇할 때?"
"먹어 봐. 단팥빵이야."
시은이는 대답 대신 봉지에서 빵과 음료수 캔을 꺼내 내밀었다. 빵은 정말로 제과점에서 만들었던 것과 모양이나 색깔이 흡사했다.
"누나, 한 가지 물어봐도 돼?"
"응, 뭐든지."
시은이가 봉지를 조심스럽게 뜯으며 말했다.
"우리가 제과점에서 일 그만두던 날 아저씨가 빵을 줬었잖아. 그런데 왜 누나는 하나도 안 먹었어?"
"먹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어."
"치사해서?"
"아니‥‥‥. 그 때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기분이었어."
"돈을 하나도 못 받아서 그랬구나?"
"그보다도‥‥‥ 아주머니 말에 내심 충격을 받았거든. 부모 없는 아이들은 반드시 티가 난다는 그 말에‥‥‥."
시은이가 빵 봉지를 내려놓고는 잠시 창 밖을 보았다.
정우는 시은이의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며 빵을 손톱으로 조금 뜯어서 입안에 밀어 넣었다. 만든 지 꽤 되었는지 마른 풀잎 냄새가 났다.
"사실‥‥‥ 내가 소망원에서 나온 건‥‥‥ 미군 부부 때문이었어."
"미군 부부?"
정우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래. 십일월 중순경이었어. 원장 선생님이 불러서 원장실로 가봤더니 백인 병사와 화장을 짙게 한 한국 여자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거야. 그들은 십이월 중순에 미국으로 가는데 너를 입양시키고 싶다는 거였어."
"날? 아니, 애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왜 나야?"
"여자가 아기를 못 낳는데 며칠째 계속해서 어린아이와 들판에서 노는 꿈을 꿨대. 그러다 우연히 꿈속의 아이와 똑같은 널 발견하고 남편하고 같이 소망원을 찾아온 거래."
정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옛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여자에 대한 기억이 어딘가에 조금은 남아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기억을 창고를 샅샅이 뒤 져 보았지만 깜깜했다.
"원장 선생님은 네 행복을 위해서 보내자고 하셨어. 난 한사코 안된다고 했지. 난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가 반드시 데리러 올 거라고 믿었거든. 그래서 이렇게 애원했어. 원장 선생님, 정우를 보내면 절대로 안 돼요. 엄마가 오면 전 어떡해요? 엄마에게 뭐라고 말해요? 정우만은 안 돼요!"
정우가 시은이의 절박한 심정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 선생님은 어머니는 결코 오지 않는다고 하셨어. 그러면서 나를 꾸짖으셨지. 내 동생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다며‥‥‥. 좋은 누나라면 동생의 미래를 위해서 보내 줘야 한다는 거야.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어머니가 돌아온다고 해도‥‥‥ 잘 했다고 칭찬을 하면 칭찬하지 결코 탓하지는 않을 거라면서‥‥‥."
시은이는 잠시 말을 끊고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눈가에서 물고기 비늘 같은 것이 반짝거렸다.
"그 여자도 나에게 애걸을 했어. 자기 남편이 얼마나 자상하고 착한 남자인가에 대해서 말하고 나서는 기지촌에서 몸을 팔다가 남편을 만났지만, 널 미국으로 데려가면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다는 거야. 왜냐 하면‥‥‥ 온갖 불행을 다 겪어 봤기에‥‥‥ 불행이 안겨 주는 고통을 너무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기에‥‥‥ 너만은 마음 고생 안 하게 할 자신이 있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정우는 내가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했더니‥‥‥ 그 여자가 혀를 차면서 이러더구나."
시은이는 잠시 말을 끊고 눈을 감았다. 뭘 생각하는 건지 격해지려는 감정을 쉰 듯한 음성으로 여자의 목소리를 흉내냈다.
"아무리 사람이 한 치 앞을 못 본다고 하지만 왜 이렇게 먹이고 입히겠다는 거야? 네 앞가림을 하며 살기도 힘들 텐데‥‥‥. 그러면서 나더러 정말로‥‥‥ 친동생이냐고 묻는‥‥‥ 거야. 정우야, 무‥‥‥물 좀‥‥‥ 줄래?"
뭔가 가슴에 얹혔는지 시은이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말했다.
정우는 가방에서 페트병에 넣어 온 보리차를 꺼내 주었다. 그녀는 한 모금 마시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열 살 소녀가 감당해 내기에는 실로 어려운 선택이었어. 내가 고집을 꺾지 않자 결국 끝이 난 줄 알았는데‥‥‥ 끝이 아니었어. 나의 소망대로 어머니가 돌아왔다면 추억으로 남았겠지. 그런데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 일은 내 가슴속에 커다란 의문으로 남은 거야. 원장 선생님이나 그 여자 말대로 내가 너의 행복을 가로막은 건 아닐까? 하고 말야. 그래서 소망원을 떠났던 거야. 어린 마음에‥‥‥ 그들과 함께 미국에 건너가서 생활하는 것보다 너를 더 행복하게 해 주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시은이가 고개를 떨구며 손가락으로 슬쩍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낙엽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앞유리 창으로 떨어져 내렸다. 가로수 잎은 벌레가 먹어 삼분의 일은 패여 있었다. 벌레 먹은 낙엽을 보고 있으니 암세포에서 잠식당해 있을 시은이의 위가 떠올랐다. 어쩌면 시은이의 가슴에도 저런 구멍이 수 없이나 있을지 몰랐다.
"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습관처럼 그때 일을 떠올렸어. 그리고는 나에게 이렇게 물어보곤 했지. 내가 널 보내지 않은 게 과연 잘한 일일까, 하고‥‥‥."
"그랬구나. 난 전혀 몰랐는데‥‥‥."
"너에게는 나중에 말해 주려고 했어."
"나중에 언제?"
"네가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오손도손 살아갈 때쯤‥‥‥."
그리 먼 훗날은 아니었다. 물론 시은이에게는 갈 수 없는 날이 되어 버렸지만.
"누나, 고마워."
정우는 더 늦기 전에 말을 해 줘야겠다 싶어서 슬쩍 시은이의 손을 잡았다. 시은이가 눈빛으로 '뭐가?'하고 물었다.
"나를 낯설고 물설은 이국으로 보내지 않아서‥‥‥. 누나, 생각해봐. 피부도 다르고 말도 다른 내가 미국 땅에 가서 행복하면 얼마나 행복하겠어? 물론 먹기야 훨씬 잘 먹었겠지만 배가 부르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 난 누나하고 보냈던 날들이 너무도 좋았어."
"정우야, 고맙다. 네가 그렇게 말해 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구나."
시은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손등을 어루만졌다. 뼈마디가 고스란히 드러난 시은이의 손은 낙엽을 모두 떨궈 버린 나뭇가지를 닮아 있었다.
"그런데 부모 없는 아이들은 꼭 티가 난다는 말에 왜 충격을 받은거야?"
정우가 화제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려는 것 같아서 슬쩍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았다.
"그 아주머니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내 힘만으로도 너를 훌륭하게 키울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맥이 탁 풀리는 거야. 아,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부모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는 거구나, 하는 걸 절실히 느낀 거지."
"그랬구나. 난 그 때 돼 지 처 럼 먹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그 나이 때는 다 그래."
"누나는 안 그랬잖아?"
"아냐. 솔직히‥‥‥ 나도 그랬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남몰래 군침을 삼키며 살았으니까."
많은 이야기를 해서 피곤한지 시은이가 스르르 눈을 감았다.
야윈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 한끝이 바늘로 찌른 듯이 쿡쿡 쑤셔 왔다. 정우는 잠시 심호흡을 한 뒤에 차를 출발시켰다. 신호등은 어느 새 적색등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지선 앞에 차를 세우자, 함박눈이 쏟아지는 눈길을 걸어가고 있는 오누이의 모습이 보였다. 뒤 처져 오는 소년이 눈 속에서 허겁지겁 빵을 먹고 있는데 앞서 가는 소녀가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소설] 해/바/라/기 ---- 3막 1장
작은 새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막 1 장
Present
시은이가 24시간 편의점에서 나왔다. 화장실만 이용하기 미안했는지 손에는 비닐 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건 뭐야?"
정우는 차에 오르는 시은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미소를 띄우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빵이야."
"빵? 누나, 배고파?"
정우는 차 안의 시계를 보았다. 디지털 시계가 11시 0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 그냥 샀어. 옛날 생각이 나서‥‥‥."
"옛날? 제과점 앞에서 마네킹 노릇할 때?"
"먹어 봐. 단팥빵이야."
시은이는 대답 대신 봉지에서 빵과 음료수 캔을 꺼내 내밀었다. 빵은 정말로 제과점에서 만들었던 것과 모양이나 색깔이 흡사했다.
"누나, 한 가지 물어봐도 돼?"
"응, 뭐든지."
시은이가 봉지를 조심스럽게 뜯으며 말했다.
"우리가 제과점에서 일 그만두던 날 아저씨가 빵을 줬었잖아. 그런데 왜 누나는 하나도 안 먹었어?"
"먹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어."
"치사해서?"
"아니‥‥‥. 그 때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기분이었어."
"돈을 하나도 못 받아서 그랬구나?"
"그보다도‥‥‥ 아주머니 말에 내심 충격을 받았거든. 부모 없는 아이들은 반드시 티가 난다는 그 말에‥‥‥."
시은이가 빵 봉지를 내려놓고는 잠시 창 밖을 보았다.
정우는 시은이의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며 빵을 손톱으로 조금 뜯어서 입안에 밀어 넣었다. 만든 지 꽤 되었는지 마른 풀잎 냄새가 났다.
"사실‥‥‥ 내가 소망원에서 나온 건‥‥‥ 미군 부부 때문이었어."
"미군 부부?"
정우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래. 십일월 중순경이었어. 원장 선생님이 불러서 원장실로 가봤더니 백인 병사와 화장을 짙게 한 한국 여자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거야. 그들은 십이월 중순에 미국으로 가는데 너를 입양시키고 싶다는 거였어."
"날? 아니, 애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왜 나야?"
"여자가 아기를 못 낳는데 며칠째 계속해서 어린아이와 들판에서 노는 꿈을 꿨대. 그러다 우연히 꿈속의 아이와 똑같은 널 발견하고 남편하고 같이 소망원을 찾아온 거래."
정우는 미간을 찌푸리고 옛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여자에 대한 기억이 어딘가에 조금은 남아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기억을 창고를 샅샅이 뒤 져 보았지만 깜깜했다.
"원장 선생님은 네 행복을 위해서 보내자고 하셨어. 난 한사코 안된다고 했지. 난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가 반드시 데리러 올 거라고 믿었거든. 그래서 이렇게 애원했어. 원장 선생님, 정우를 보내면 절대로 안 돼요. 엄마가 오면 전 어떡해요? 엄마에게 뭐라고 말해요? 정우만은 안 돼요!"
정우가 시은이의 절박한 심정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 선생님은 어머니는 결코 오지 않는다고 하셨어. 그러면서 나를 꾸짖으셨지. 내 동생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다며‥‥‥. 좋은 누나라면 동생의 미래를 위해서 보내 줘야 한다는 거야.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어머니가 돌아온다고 해도‥‥‥ 잘 했다고 칭찬을 하면 칭찬하지 결코 탓하지는 않을 거라면서‥‥‥."
시은이는 잠시 말을 끊고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눈가에서 물고기 비늘 같은 것이 반짝거렸다.
"그 여자도 나에게 애걸을 했어. 자기 남편이 얼마나 자상하고 착한 남자인가에 대해서 말하고 나서는 기지촌에서 몸을 팔다가 남편을 만났지만, 널 미국으로 데려가면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다는 거야. 왜냐 하면‥‥‥ 온갖 불행을 다 겪어 봤기에‥‥‥ 불행이 안겨 주는 고통을 너무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기에‥‥‥ 너만은 마음 고생 안 하게 할 자신이 있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정우는 내가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했더니‥‥‥ 그 여자가 혀를 차면서 이러더구나."
시은이는 잠시 말을 끊고 눈을 감았다. 뭘 생각하는 건지 격해지려는 감정을 쉰 듯한 음성으로 여자의 목소리를 흉내냈다.
"아무리 사람이 한 치 앞을 못 본다고 하지만 왜 이렇게 먹이고 입히겠다는 거야? 네 앞가림을 하며 살기도 힘들 텐데‥‥‥. 그러면서 나더러 정말로‥‥‥ 친동생이냐고 묻는‥‥‥ 거야. 정우야, 무‥‥‥물 좀‥‥‥ 줄래?"
뭔가 가슴에 얹혔는지 시은이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말했다.
정우는 가방에서 페트병에 넣어 온 보리차를 꺼내 주었다. 그녀는 한 모금 마시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열 살 소녀가 감당해 내기에는 실로 어려운 선택이었어. 내가 고집을 꺾지 않자 결국 끝이 난 줄 알았는데‥‥‥ 끝이 아니었어. 나의 소망대로 어머니가 돌아왔다면 추억으로 남았겠지. 그런데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 일은 내 가슴속에 커다란 의문으로 남은 거야. 원장 선생님이나 그 여자 말대로 내가 너의 행복을 가로막은 건 아닐까? 하고 말야. 그래서 소망원을 떠났던 거야. 어린 마음에‥‥‥ 그들과 함께 미국에 건너가서 생활하는 것보다 너를 더 행복하게 해 주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시은이가 고개를 떨구며 손가락으로 슬쩍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낙엽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앞유리 창으로 떨어져 내렸다. 가로수 잎은 벌레가 먹어 삼분의 일은 패여 있었다. 벌레 먹은 낙엽을 보고 있으니 암세포에서 잠식당해 있을 시은이의 위가 떠올랐다. 어쩌면 시은이의 가슴에도 저런 구멍이 수 없이나 있을지 몰랐다.
"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습관처럼 그때 일을 떠올렸어. 그리고는 나에게 이렇게 물어보곤 했지. 내가 널 보내지 않은 게 과연 잘한 일일까, 하고‥‥‥."
"그랬구나. 난 전혀 몰랐는데‥‥‥."
"너에게는 나중에 말해 주려고 했어."
"나중에 언제?"
"네가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오손도손 살아갈 때쯤‥‥‥."
그리 먼 훗날은 아니었다. 물론 시은이에게는 갈 수 없는 날이 되어 버렸지만.
"누나, 고마워."
정우는 더 늦기 전에 말을 해 줘야겠다 싶어서 슬쩍 시은이의 손을 잡았다. 시은이가 눈빛으로 '뭐가?'하고 물었다.
"나를 낯설고 물설은 이국으로 보내지 않아서‥‥‥. 누나, 생각해봐. 피부도 다르고 말도 다른 내가 미국 땅에 가서 행복하면 얼마나 행복하겠어? 물론 먹기야 훨씬 잘 먹었겠지만 배가 부르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 난 누나하고 보냈던 날들이 너무도 좋았어."
"정우야, 고맙다. 네가 그렇게 말해 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구나."
시은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손등을 어루만졌다. 뼈마디가 고스란히 드러난 시은이의 손은 낙엽을 모두 떨궈 버린 나뭇가지를 닮아 있었다.
"그런데 부모 없는 아이들은 꼭 티가 난다는 말에 왜 충격을 받은거야?"
정우가 화제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려는 것 같아서 슬쩍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았다.
"그 아주머니의 말을 듣기 전까지는‥‥‥ 내 힘만으로도 너를 훌륭하게 키울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맥이 탁 풀리는 거야. 아,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부모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는 거구나, 하는 걸 절실히 느낀 거지."
"그랬구나. 난 그 때 돼 지 처 럼 먹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그 나이 때는 다 그래."
"누나는 안 그랬잖아?"
"아냐. 솔직히‥‥‥ 나도 그랬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남몰래 군침을 삼키며 살았으니까."
많은 이야기를 해서 피곤한지 시은이가 스르르 눈을 감았다.
야윈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 한끝이 바늘로 찌른 듯이 쿡쿡 쑤셔 왔다. 정우는 잠시 심호흡을 한 뒤에 차를 출발시켰다. 신호등은 어느 새 적색등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지선 앞에 차를 세우자, 함박눈이 쏟아지는 눈길을 걸어가고 있는 오누이의 모습이 보였다. 뒤 처져 오는 소년이 눈 속에서 허겁지겁 빵을 먹고 있는데 앞서 가는 소녀가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녀의 어깻죽지가 작은 새의 날개처럼 미세하게 떨렸다.
[KIES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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