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IYF 태국 글로벌캠프 자원자 한국방문!"

유치호200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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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태국 글로벌캠프 현지 자원봉사 대학생들 워크숍 위해 한국에 방문"

 

 

"2007 IYF 태국 글로벌캠프 자원자 한국방문!"

 

 

 

태국 글로벌캠프 자원봉사자 3차 워크숍 소식

 

인천공항을 통해 지난 22∼23일에 걸쳐 입국한 태국 대학생들의 얼굴에는 한국방문에 대한 기대와 긴장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태국에서 이미 가졌던 두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IYF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곧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월요일 오전 11시, IYF 서울센터에서 환영식을 시작으로 모든 일정이 시작되었다. 이 자리에서 IYF 박옥수 대표고문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늘 대비하는 삶을 살았던 강인한 한국민들의 예화를 들면서 "이번 워크숍 기간 동안 한국의 자연과 문화를 체험할 뿐 아니라 성경을 통해 주님으로 말미암아 형편과 상관없이 소망스럽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세계를 배울 것"을 당부했다.

 

이 후 태국 대학생들은 IYF 서울센터 여러 곳을 둘러본 후 서울(남산)타워,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용인)민속촌 등 한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전통문화를 마음껏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한류열풍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장소(의정부)를 찾아 둘러본 후 전통의상 한복을 입어보기도 하는 등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수요일에는 한국전자산업의 중심지 구미산업공단 견학과 금오산도립공원 산행을 하였는데

태국 대학생들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한국의 가을 날씨와 아름답게 물든 단풍을 보며 탄성을 자아냈다.

낫(19세, 女, 씰라빠껀대학)은 "한국의 전통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 가장 인상 깊었다. 한국의 옛 생활모습이 신기했고 전통문양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소감을 말했다.

 

삼일간의 한국관광을 마친 이들은 25일 IYF 대덕센터에 모여 진지하게 성경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복음반과 그룹교제 등으로 나뉘어 긴 시간 동안 설교를 들었는데 국민 대부분이 불교를 믿는 나라에서 온 대학생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종 열띤 모습이었다.

 

김성훈 IYF 사무총장은 마태복음 27장에 나오는 바라바는 반역자로서 십자가에서 마땅히 죽어야 했지만 예수님이 그를 위해 죽으심으로 그를 살린 것처럼 우리도 죄인이었지만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의인이 된 것을 설명하였다.

복음반에서 말씀을 들은 비(20세, 女, 어섬션대학)는 "태국 친구로부터 한국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다고 들었는데 IYF 사람들은 다른 것 같다. 성경이 좀 어렵긴 하지만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 흥미롭다."고 말했다.

 

이들은 금요일 대전에서 열리고 있는 박옥수 목사 성경세미나에 참석하여 박옥수 목사와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고 주말에는 한국가정을 체험한 후 10.29∼30일 양일간에 걸쳐 태국으로 떠났다.

 

태국 대학생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가진 이번 3차 워크숍은 내년 1월에 태국에서 있을 글로벌캠프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불교의 나라 태국에 '2007 IYF 글로벌 캠프'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는 역사적인 일 앞에 이들 대학생들이 쓰임 받을 것을 생각할 때 큰 소망이 생긴다.

 


태국글로벌캠프 자원자 워크숍 영상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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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IYF 태국 글로벌캠프 자원자 한국방문!"

 

 

"아프리카에서 찾은 나"

 G.N.C 5기 / 카메룬 이한솔   

 

나는 망나니

 

나는 교회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지금 스무 살이 넘었다.  

아버지께서 사역자 아이는 부유해선 안 된다면서 그 흔한 장난감 한 번 사주시지 않고 언제나 엄하게 대하셨다. 나는 아버지께 자주 맞기도 했고, 아버지가 무서워서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잘 못했다. '사역자 아들이 아니면 장난감도 가질 수 있고 이렇게 많이 맞지도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을 곧잘 했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잘못해도 맞는 건 늘 나였다. 불만스러웠다.

 

사역자 아들로 태어나서 교회 안에 산다는 이유로 모든 일에 피해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교회가 싫은데 아버지는 정말 행복해 하셨다.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보다 교회에 더 마음을 두고 사시는 아버지가 싫었다. 그러면서 나는 교회가 싫어졌고 늘 문제만 일으키는 망나니가 되었다. 중학생 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술 마시러 다니며 부모님께도 늘 대들었다.

 

한번은 세계대회 기간에 대덕수련원에서 친구들과 성찬식용 포도주를 털었다. 물론 내가 앞장섰다. 그날 밤 우리는 훔쳐온 포도주를 가지고 웃기지도 않는 짓을 했다. "임명철 목사, 잔을 위해 기도하고, 이한솔 장로, 떡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라고 성찬식 흉내를 내면서 술파티를 벌였다.

세계대회 때 제주도에 갔을 떄는 하루도 안 빠지고 저녁마다 술을 마시러 나갔다. 그렇게 친구들과 모여서 한 잔 하며 인생을 논하는 것이 내 삶의 기쁨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마음이 잘 통했고 늘 교회에 대한 불만을 쌓아갔다. 그러다 집을 나가서 친구 장용이와 같이 창원에서 일을 했다. 공장에 다니며 기숙사에서 지내는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교회를 떠나서 잘살아보겠다고 온 곳이 기껏 공장이라니. 비참했고 불투명한 내 앞날이 암울했다.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은데….' 밑바닥 인생 같아서 싫었다. 그렇지만 다른 길이 없었다. 다른 길이란 교회로 돌아가는 길뿐이었다.

 

어렵기만 한 단기선교지 카메룬

 

이렇게 살 바에야 한번 교회의 말을 듣고 단기선교를 가보고 싶었다. 나도 바뀌고 싶었다.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부담스럽지만 단기선교를 지원했다. 원래 1, 2차 훈련을 받지 않아서 갈 수 없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보내주셨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살던 내가 단기선교를 가서 잘 지낼 수 있을까?' 한편으로 두렵기도 했다.

 

단기선교사로 카메룬으로 오게 되었다. 모든 게 힘들었다. 마음대로 살다가 갑자기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니 온몸이 비명을 질러댔고 목사님께 책망을 들을때마다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마음은 럭비공마냥 이리저리 튕겨나갔다. 무엇보다도 말을 배우는 게 어려웠다.

 

초등학교 이후로, 아니 초등학생 때조차도 공부하기 싫어서 펜을 놓은 지가 어언 10년이다. 나는 공부를 못 했다기보다는 싫어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 번도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늘 '저기요'라고 불러 싸가지 없다고 혼났다. 공부는 나의 적이었는데, 불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은 나에게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카메룬에서 만나는 일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피할 데가 없었다. 정말 내 마음으로는 살 수 없었다.

 

성경이 보이다

 

그렇지만 지난 8개월을 되돌아보면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세밀하게 나를 이끌어오신 것을 느낄 수 있다. 카메룬에 살면서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성경 읽기, 공부, 전도하는 것 등 한 번도 안 해본 일들뿐이었다.

처음 왔을 때 선교사님께서 성경 읽는 게 중요하다며 틈만 나면 성경을 읽으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6주 만에 성경을 한 번 다 읽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국에서는 성경을 다 읽어본 적이 없었다. 성경을 읽는 동안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참 많은 일을 하셨다. 아플 땐 나을 것이라는 말씀을 보여주셨고, 육신에 빠질 때는 그것이 가짜라고 보여주셨다. 모든 상황에 맞춰 말씀을 주시는 게 너무 놀라웠다.

 

특히, 나는 모자 쓰는 걸 좋아해서 집 안이건 집 밖이건 밥 먹을 때건 늘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한국에서 아버지가 그렇게 모자를 벗으라고 해도 벗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고전 11:4)라는 말씀을 보여주시면서 모자를 벗게 하셨다. 모든 게 놀라웠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이런 세계를 경험하면 할수록 오묘했다. 내 마음에 믿음이 없지만 하나님의 종인 목사님의 말씀을 따르고 목사님 아래 있을 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 세계대회 기간이 되어 목사님께서 한국에 가시고 얼마 후부터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목사님이 안 계시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역시 나는 안 돼. 괜히 단기선교 와서 이 고생이야. 돌아가자'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지독하게도 어려웠다.

그런데 목사님이 돌아오시자 그렇게 크게만 보였던 문제들이 다 해결되었다. 내가 세계대회 기간에 일으켰던 문제들을 목사님께 맡기니까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종은 내 모습을 보지 않으셨다. 늘 말씀을 통해 나를 보셨다. 목사님은 항상 말씀을 이야기하시지만 나는 모든 게 불가능한 것 같고 나와 상관없는 말씀들로만 여겼다. 그렇지만 단기선교 초기에 목사님께서 해 주셨던 약속의 말씀, "내 영혼을 소생시키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3) 이 말씀대로 하나님은 내 모습과 상관없이 당신을 위하여 나를 이끄셨다.

 

정말 연약하기만 하고 생각에 자주 빠지는 나지만 하나님께서 내 모습대로가 아니라 말씀대로 일하시는 것이 너무 감격스럽고 믿음도 없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일해 주시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음푸'에서 배운 것들

 

얼마 전에 선교학생 임마누엘 형제와 3주간 음푸(Mfou, '허무하다'라는 뜻)에 있는 지역 교회에 다녀왔다. 4월 말에 그 곳으로 전도여행을 갔던 단기선교사와 선교학생 형제에게 복음을 듣고 그 곳 목사님이 구원받았다.

음푸의 에드윈 목사님은 우리가 무전전도여행을 왔다는 소리를 듣고 천사들이 왔다며 영접해주었다. 그 교회 성도들도 구원받아서 지금 음푸 교회는 우리 지역 교회가 되었다.

 

에드윈 목사님 가족은 모두 12명인데 하루 한 끼만 먹고 살았다. 참 가난하고 굶기를 밥먹듯 하는 곳이다. 음푸에서 며칠 지낸 후 나는 말라리아에 걸렸다. 병이 심해져서 고열이 나고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프니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무리하지 말고 쉬어야겠다'였다. 쉬고 싶었는데 임마누엘 형제는 계속 복음을 전하러 가자고 했다. 온몸에 열이 나고 계속 토하고 있는 나에게 전도를 나가자니 매정하게만 느껴졌다.

안 가려고 하는 나에게 임마누엘 형제가 이야기했다. "너를 이곳에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이렇게 누워 있으라고 보냈겠어? 복음 전하면 하나님이 낫게 하실 거야." 믿음 없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구원받은 지 5개월밖에 안 된 형제의 마음엔 믿음이 있는데 나에겐 그저 나를 도사리는 마음밖에 없었다. 너무 부끄럽고 마음에 도전이 되었다.

 

아프지만 전도를 나갔다. 걷기는커녕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복음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겠다는 마음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한 아주머니를 만나 복음을 전했는데 아주머니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굉장히 기뻐했다.

그 다음엔 어떤 아가씨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 아가씨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할렐루야라며 기뻐하는 게 아닌가!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복음 전하는 맛이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이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나오게 하셨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몸은 여전히 아팠지만 아픈 것 같지 않았다. 교회로 돌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토했고 그날 거의 사경을 헤맸다. 더 심해져서 숨까지 안 쉬어졌다. 너무 힘들었다. 야운데에 있었으면 목사님이 계시니까 마음에서 의지라도 할 텐데 그 곳에서는 의지할 데가 없으니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난생 처음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찾았다.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만 의지하는 걸 잘 몰랐다. 그런데 음푸에서 아프면서 나에겐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고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걸 발견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 몸을 지켜주셨다. 만 4일 동안 아팠고, 나는 계속 하나님께만 구하고 그분만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 전도 시간만 되면 힘을 주셔서 늘 전도를 나갈 수 있었고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걸 보면 아파도 전도를 안 나갈 수 없었고 하나님은 나에게 힘을 주셨다. 그리고 결국 낫게 하셨다.

 

내가 아플 때 에드윈 목사님은 나를 위해 그 귀한 닭을 사다 주셨다. 아무에게도 안 주고 3일 동안 숨겨 놓았다가 나와 임마누엘 형제에게만 주었다. 내가 뭐라고 하나님께서 이런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지 너무 감사했다. 정말 복음 하나 때문에 부족하고 연약하기만 한 나를 이 귀한 자리에 앉혀 주셨다. 내가 무엇이라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이 귀한 자리에…. 감당할 수 없는 은혜다.

 

아프리카에서 너무나 행복한 시간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 또 내 마음을 꺾고 하나님의 종의 음성을 듣는 삶이 이렇게 행복하고 감사한 줄 몰랐다.

행복이란 더 잘살 때 느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삶이 더 나아질수록 나는 욕망을 채우지 못해 불평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가난하고 많은 것들이 없는 가운데 늘 감사를 느끼며 지냈다. 이곳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만 복음 앞에 있을 때 내 영혼은 무엇보다 복되고 행복해하는 걸 느꼈다.  

 

하나님은 음푸(허무하다)라는 이름대로 내 마음에 육신의 허무함을 발견하게 하셨고 세상에 종지부를 찍게 하셨다. 음푸는 정말 형편이 어려웠다.

치약이 없어서 빨래비누로 이를 닦아야 했고(그 곳 사람들은 치약이 비싸서 빨래비누로 양치한다), 볼일을 보고 화장지가 없어서 손으로 뒤처리를 해야 했다. 많이 굶기도 했고, 비가 많이 와서 전도하면서 비에 다 젖기도 했다. 목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벌레에게 많이 물리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혀 감사할 조건이 없는 것 같은 이런 환경 속에서 나는 감사를 느끼며 3주를 지냈다.

 

한국에서 나는 늘 불행하다고 생각했고 마음에 만족을 찾기 위해 술, 담배, 돈, 친구들에 의지해 살려고 했다. 그때는 복음 속에 있는 이런 진정한 행복을 볼 만한 눈이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또 많은 목사님들께서 나를 이 귀한 곳에 참여시키기 위해 늘 싸워주셨다. 그때는 몰랐다. 그냥 모든 걸 간섭이라고 생각했고, 목사라는 의무감으로 그렇게 대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부모님께, 목사님들께 정말 감사하다. 모두들 내 영혼을 진정으로 위해서 그 동안 싸워주신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이곳에서 정말 많은 은혜를 입으며 지내고 있다.

 

진작 마음을 꺾고 지냈다만 얼마나 많은 감사를 느꼈을까. 내 마음을 꺾으면 꼭 망할 것만 같았는데 내 마음이 꺾일수록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더욱 감사가 넘쳐나는 걸 보았다. 내 몸이 힘들어도 누군가 복음을 듣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더 행복하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때로는 마음이 힘들어서 목사님께 대들기도 했고 믿음 없는 내 모습에 매여 시험에 들기도 했지만, 목사님은 끊임없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보살펴주셨다. 티끌같은 나에게 너무 큰 사랑을 입혀주고 품어주시는 게 정말 감격스럽다. 교회의 사랑이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다. 소망 없이 살던 나에게 감사와 진정한 행복을 주신 하나님께, 그리고 교회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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