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속에 피어난 인간미 / 민화와 상상력 7

정병모200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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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속에 피어난 인간미 / 민화와 상상력 7
아예 드러누어서 만나주지도 않는 제갈 량, 끝까지 공손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유비,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성을 내는 장비와 이를 애써 말리는 관우. 삼국지의 캐릭터들이 우수꽝스럽고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 개인소장

 

 

 

 

웃음 속에 피어난 인간미 

 

 

     S자형으로 구부러진 버드나무에는 두마리의 새가 우짖는다. 시적인 정취가 흐르는 배경과 달리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왠지 원만치 않다. 제갈량은 방 안에 비스듬히 누어 예물까지 들고 찾아온 유비에 대해 동자를 대신 내세울뿐 좀처럼 만나줄 의사가 보이지 않는다. 경사가 진 기단 아래에는 제갈공명의 건방진 태도에 화를 참지 못하고 흥분한 장비를 관우가 극구 말리고 있다.  이 장면은 삼국지연의 "삼고초려" 가운데 첫번째나 두번째의 방문 장면일 것이다. 유비가 제갈량을 찾아가 동자 앞에서도 공손함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자세나 관우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장비를 말리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머금게 한다. 제멋대로 휘날리는 관모의 각도 웃음꽃을 활짝 피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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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 화풍으로 그린 삼국지도에는 전혀 웃음기가 없고 근엄함을 넘어 비장함이 화면을 지배한다. 동묘에 봉안되었던   중 , 서울역사박물관 소장.(이미지 출처 : 반갑다 우리민화)

    

     그런데 삼국지의 영웅들의 위용은 간데 없고 왜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것일까? 민화에서는 어떠한 권위도 허용하지 않는다. 백수의 왕인 호랑이나 중원을 호령하던 삼국지의 영웅들도 민화 속에서는 우리와 같은 존재로 무장해제된다. 그것도 웃음을 통해서 간단하게 끌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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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에서 손권, 유비 연합군이 조조의 군대를 불로 공격하려고 했을 때, 이를 성공시킬 수 있도록 제갈량이 제단을 쌓아놓고 동남풍을 하늘에 비는 장면이다. 부분.


    궁중 화풍으로 그린  (서울역사박물관소장)는 보다 장중하고 그림 속에 웃음기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이 그림은 원래 동묘에 걸려있는 그림인데, 시중으로 흘러나왔다가 지금은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지성단제갈제풍"이란 제목부터 고급스런 궁중의 편액으로 고급스럽게 꾸몄다. 좌우의 청록산수와 그 사이의 도식적인 물결표현은 전형적인 궁중회화의 양식이다. 임금의 어좌 뒤에 설치된 일월오병도가 바로 이러한 산수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궁중회화의 장식성과 사실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 위 구름으로 둘러쌓여 있는 기단 위에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갈량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적벽대전에서 손권, 유비의 연합군이 조조으 군대를 화공으로 공격하자, 제갈량이 이의 성공을 위해 제단을 쌓고 동남풍을 하늘에 빌고 있는 장면이다. 민화 삼국지의 우스운 캐릭터와 달리, 중원을 호령한 영웅호걸의 위용에서는 근엄함을 넘어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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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우의 고향인 산시성 운성시에 세워진 관제묘(정병모 사진) 

 

    우리가 보통 '삼국지'라고 간략하게 부르는 삼국지연의는 조선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이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어린이들이 삼국지연의를 만화, 동화 등 어떤 형태로든지 읽거나 접할 만큼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소설 삼국지연의 덕분에 중국의 관우신앙은 자연스럽게 조선에 전파되었다. 흥미진진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 관우에 대한 존경과 동경심이 우리 백성들의 가슴 속에 싹 튼 것이다.

    관우는 주군의 충심으로 모시고 동료와 의를 중시하는 충의의 화신이다. 그런데 관우가 죽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지역신으로 추앙받고, 다시 송나라 때 국가의 신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송나라 조정에서는 북방민족인 요, 금과 전쟁을 하면서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호국신으로 관우신앙을 내세웠다. 명대에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유행하면서 관성제군이라는 황제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명대에 호국신인 관우는 중국 변방의 방어를 상징하는 신이 되었다. 동남쪽의 동중국해와 남중국의 해안과 여러 섬, 서쪽의 티베트와 실크로드 지역, 북쪽의 흑룡강성에 관제묘를 건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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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4개의 관왕묘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동묘이다. (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홈피)

    

     특히 중국의 군인들은 외적과 싸우러 나갈 때 관제묘에서 제사를 드린 후에 출진하면 승리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우러 온 명나라의 장수 진린(陣璘)은 전쟁 때 입은 상처를 관우신앙을 통해 깨끗히 낳는 기적을 경험하였다. 이에 진린은 남대문밖에 임시 사묘를 만들고 참배하다가 1598년에 조선 정부의 도움을 받아 남묘를 세웠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관왕묘이다. 1602년에는 명나라 조정의 공식적인 요청으로 서울 창신동에 동묘를 세웠다. 관우신앙을 조선에 전파하기 위한 명나라의 의도이다. 그리고 200여 년이 지난 1883년에 민비의 총애를 받는 무당인 진령군이 북묘를 세우고, 1902년에는 궁내부 특진관 조병식의 주청에 의하여 서묘가 건립되었다. 서묘는 주신이 관우가 아니라 유비이고, 아울러 제갈공명, 조운, 마초, 황충, 옥보, 주창, 조루,. 관평 등을 배향했다. 그러다가 1908년 2월에 공식적인 칙령에 의하여 관왕묘가 철폐되기에 이른다. 이로 말미암아 관우신앙은 국가주도의 신앙에서 민간신앙으로 급속히 확산된다. 이때 관우상이 무속신으로 모셔지기도 한다. 

 

   

웃음 속에 피어난 인간미 / 민화와 상상력 7

작 익은 대춧빛 얼굴에 봉황처럼 길게 찢어진 눈, 누에처럼 누워 있는 굵은 눈썹, 입술은 연지를 바른 것 같이 붉은 입술, 그리고 청룡언월도를 들고 있는 모습이 관우의 트레이트 마크이다. 무속화의 신으로 모셔진 .

 

     민화에서 해학은 단순히 우리에게 웃음을 전하기 위한 장치만은 아니다. 그 웃음 속에는 세상을 풍자하는 비판의 서슬이 퍼렇다. 날카로운 칼날을 직접 대지 않고 에둘러 웃음을 통해서 사회의 왜곡된 부분을 고치고 구부러진 부분을 바로 펴가는 것이 우리 민초들의 지혜이다.

    기메박물관 소장 는 언뜻 보면, 조선시대 역사의 한 장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바로 그 유명한 중국 주나라 강태공의 이야기를 패러디한 그림이다. 등장인물을 우리와 친숙한 조선의 인물로 바꾸었기 때문에 우리의 이야기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강태공은 위수의 강가 반계라는 곳에서 매일 낚시를 하였다. 그런데 그는 낚시에 미끼를 기우지 않은 채 낚시 바늘을 물에 드리웠다. 미끼도 없는 낚시에 물고기가 걸려 들리는 만무이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가 낚시를 하는 까닭은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낚으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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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기메박물관 소장.(이미지 출처 : Nostagies coreenness)
       

      드디어 강태공에게 기회가 왔다. 주문왕은 은나라를 정벌하기 위해서는 현인이 필요하였는데, 마침 태사의 점괘에 따라 위수로 사냥을 떠났고 반계에서 강태공을 찾은 것이다. 강태공에게 다가간 주문왕은 천하의 정세에 대해 몇 마디 나누다 그의 비상함에 감탄하여 그를 자신의 수레에 태워 대궐로 돌아왔다. 강태공은 주문왕의 소망처럼 은을 멸망시키는 데 큰 공을 새우고 제후국인 제나라의 임금에 봉해진다. 언젠가 때가 되면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나 출세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이야기이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주문왕이 강태공을 찾았을 때 강태공의 나이가 팔십이니 참으로 긴 세월의 인내가 필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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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강태공, 그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는 주문왕,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들끼리 떠드는 병사들.  부분.

 

     중국의 고사를 그린 강태공조어도가 민화에서는 우리의 현실에 맞게 각색되었다. 강태공이나 그를 찾아온 주문왕의 일행이 조선인의 옷에 조선의 얼굴이다. 게다가 강태공의 눈치를 살피는 주문왕의 표정은 해학적이다. 왕으로서의 위엄이나 권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뒤에 따라 온 병사들은 산만하게 떠들고 있다. 왕의 행렬치고는 꽤 인간적이다. 이 민화의 작가는 비록 중국의 내용이라 하더라도 우리 식으로 각색하여 우리 이야기처럼 낯설지 않게 변용시킨 것이다. 또한 지나치게 권위적인 캐릭터는 적절하게 그 권위를 낯추어 친근하게 바꾸었다. 어떠한 그림이라도 민화의 용광로 속에 들어가면, 탈권위적이고 자기화된 그림으로 탈바꿈된다. 이것이 민화가 갖고 있는 장점이다. 

 

    이 세상의 권위는 민초들에게 적어도 민화 속에서는 인정되지 않는다. 민화에서는 모든 것들이 평등하다. 삼국지는 중국을 차지하려고 온갖 지략과 용맹을 다투는 영웅들의 역사를 그린 소설이다. 이들 영웅이 민화 속에서는 민초와 다름 없이 친근한 존재로 무장해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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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이 웃음바다로 가득하다. 풍속화에서 맛볼 수 있는 해학미이다. 김홍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홈피)


     해학 하면 흔히 김홍도의 풍속화를 떠올린다. 김홍도의 을 보면, 서당 전체가 웃음으로 가득하다. 심지어 점잖은 훈장어른조차도 웃음을 참느라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풍속화도 기본적으로 서민의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해학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설사 사회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하더라도 직설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해학이라는 간접적인 비유를 통하는 재치를 보여준다. 그만큼 기층문화의 가치관은 여유롭고 건강하다. 해학은 풍속화에 국한 된 것은 아니다. 민간미술, 그것도 조선시대 민간미술의 전면에 걸쳐 드러나는 특징이다. 궁중회화와 민간회화, 사대부회화와 민간회화를 구분 짓는 특징을 들라면 무엇보다도 '해학'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궁중회화에 충만한 근엄함이나 사대부회화에 풍겨나는 아취는 보이지 않지만, 민간회화에는 자유분방함이 넘친다. 민간회화에는 우스꽝스러운 변형, 재미있는 표정 등을 통해서 민간 특유의 감성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 @ 정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