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와 예수의 다른점>>>

이승복2006.11.05
조회132

석가모니와 예수의 다른점

 

(감상 感傷과  감수성 感受性이  서로 다르듯이,

석가모니는 예수와는 다른 의미의 기적을 행한 사람이다.)

 

 

다음의 글은, 필자의 논문

“Sensitivity and Humility (Lee, Sang Bong: La Salle Graduate School, 1998)”

에서, 일부분을 인용 번역하여 놓은 것이다.   

       

지금 현재, 그대들의 지적 수준이, 감수성과 감상(感傷)의 차이점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없을지라도....

나는 그대들의 영성 계발을 위해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계속 들려 줄 용의가 있다.   

       

Bible 속에는, 예수에 의하여 행해진

"죽었다가 살아 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러번 나오고 있다.

(Matthew 9, Mark 5, Luke 7, John 11)

 

마태오(9장)에 나오는 Jairus의 딸을 살려 낸 일을 비롯하여...

마르크(5장)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Talitha Koum!’(소녀야, 어서 일어나거라!)"라는 표현을 쓴 것 뿐이다.   

   

그리고 루가(7장, 8장)에도 두번씩이나

"죽었다가 살아 난(부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요한(11:38~44)에서는, Mary와 Martha의 오빠인

Lazarus(라자로)의 동굴 무덤으로 예수가 찾아가서,

죽은지 이미 나흘이나 지나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 데도,

“라자로야 나오너라" 하고 외치자,

그 죽었던 사람이 밖으로 나왔는데,

손발은 베로 묶여 있었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겨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예수는 죽은 사람들을 살려서,

슬픔에 젖어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예수의 초능력에 의하여 ‘부활된 그 사람들(Resurrected People)’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가?

죽음을 물리쳤다는 그 사람들은 과연 지금 쯤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부활 하였다는 사람들도…

아마도, 다른 사람들 처럼…

얼마쯤 살다가 또 다시 죽었을 것이다!

       

죽었다가 부활 하였다는 그 사람들이,

엄연히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였다는 그 사람들이,

지금 이 세상에 없다면…

그렇다면?

그것이 무슨 부활(Resurrection)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

단지, 수명만 조금 더 연장하는 것이 전부 라면?

그것이 무슨 부활이며 또한 그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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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상황이 석가모니에게도 일어났다.

 

석가모니가 어느 마을에서 머물고 있을 때에,

한 여인이 죽은 아이를 안고서 울면서 찾아왔다.

 

갑자기 죽은 그 아이는, 그 여인이 외아들 이었기 때문에,

(Luke 7장에 나오는 여자도 과부였으며, 외아들이었고, 슬퍼서 오열을 한 점도 똑 같다.)

그 여인은 오열 하면서…

석가모니에게 "죽은 아이를 살려 주십시요!"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따라서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울리고 있었다.

       

그 연인을 따라 온 마을 사람들도 울고 있었고,

하다 못해 석가모니의 제자들까지도 눈물을 흘리면서,

자비심 많은 스승이 그 무슨 일인가를 꼭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석가모니 이렇게 말했다.

 

"너무 슬퍼 하지 마시고, 제가 부탁하는 일을 제대로 하면,

저 아이는 다시 살아 날 수가 있습니다.

저 아이를 여기에 두고, 지금, 당장, 마을로 내려가서,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을 찾아내서, 아무 것이라도 얻어 오신다면...

저 아이는 다시 살아 날 것입니다.

그러니 지체하지 마시고, 지금, 당장, 마을로 내려가 보세요!"   

"...???"

       

그 여인은 이제 한가닥 희망을 잡게 되어,

급히 마을로 내려가서, 집집 마다 찾아 다니게 되었는데...

가는 집 마다, 모두 다, 죽어 간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닌가!

       

차츰 차츰,

그 여자의 마음 속에서는, 석가모니의 말이 의심스러워졌다.

 

이것이야 말로 속임수가 아닌가!

도대체 사람이 죽지 않은 집안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 크지도, 넓지도 않는, 그 마을을 다 돌고 나게 되자…

그 여자의 가슴 속에서는 희망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자기도 알 수 없는 평온함이 찾아들게 되었으니....   

  

"그렇다! 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나 다 죽은 것이구나!" 라는,

엄연한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었다.

       

한참 만에, 다시, 석가모니에게로 되돌아온 그 여인은,

아무말 없이, 석가모니의 발 밑에 엎드려서

"선생님이야 말로 정말로 자비심이 많은 분이시군요"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 여자의 내부에서,

그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석가모니의 제자인 아난다(Ananda)가 이렇게 불평했다.

"선생님은 저 아이를 되살려 내셨어야만 됩니다!

저 여인이 저렇게 슬퍼하고 있는 것도 모르신단 말입니까?"

       

"저 아이는 다시 살아 난다고 해도, 언제가는 또 다시 죽을 것이다."   

 

"아니, 자비심 많다는 선생님께서,

어찌 남의 슬픔을 느낄수 있는 감성(感性)이 그다지도 없으십니까?"

       

그러자… 석가모니가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감성(感受性: Sensitivity)이 없다니?

자네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감상(感傷)일 뿐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슬퍼만 하는.... 유치한 슬픔과 눈물일 뿐이다.

그러한 감상적인 머리를 가지고서는 모든 현상들을 올바로 볼 수가 없다!

 감성과 감상은 전혀 다른 것이다!

  (You are sentimental, I am sensitive.)"

 

그렇다!

感性(Sensitivity)과 感傷적인 것(Sentimentality)하고는

전혀 다른 것이다.

 

바로, 이 차이점을 혼동하는 우(愚)를 범하지 마시라!

 

그대!

그대에게 ‘석가모니의 차원’을 이해할 만한 머리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석가모니는 예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기적을 행한 사람이다!

       

그렇다!

석가모니는 단순한 기적을 행한 사람이 아니라,

그 여인에게 죽음의 정체를 깨닫게 하였고,

그리하여, 그 여인 자신의 죽음 까지를,

스스로, 넘어 설 수 있도록 가르친 사람이었다!

       

마찬가지 이다!

전정한 가르침은 목마를 때에 물 한잔 주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가르침은 배고플 때에 물고기 한마리 던져 주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가르침은?

우물을 파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만 하는 것이다!

알겠는가?

 

 

~ 글/ 이상봉 (철학박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