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야마 고지 秋山幸二

김성진200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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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야마 고지 秋山幸二

1962년생으로 프로경력 22년차의 현역 최연장자 타자인 아키야마 고지(다이에)가 2002시즌 후반기에 유니폼을 벗었다. 철저한 체력관리의 대명사였던 그가 20년동안 그라운드를 뒹굴며 남긴 기록은 화려 그 자체. 통산 2187경기에 출장해 7995타수 2157안타 타율0.270 홈런은 437개를 날렸고, 1312타점에 도루도 303개나 기록했다. 쾌타준족(快打駿足)은 아키야마를 표현할 때 어쩌면 가장 적절한 표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가 올린 1231득점 가운데는 유명한 일본시리즈에서의 덤블링 홈인도 있다.
186cm 86kg의 우투우타인 아키야마는 구마모토현의 야츠시로고(八代高) 시절 투수였다. 투수 겸 4번타자였던 그는 3학년대인 80년 여름 구마모토현대회 결승에서 이토 츠토무가 버틴 구마모토공고(熊本工)와 맞붙어 4-3으로 리드하고 있던 9회초 대거 3실점하며 4-6 역전패했다. 이 때문에 고시엔 무대에 선을 뵐 기회를 놓친 아키야마는 81년 드래프트외로 세이부에 입단했다. 후문이긴 하지만 아키야마의 존재를 알고 있던 몇몇 구단은 아키야마가 대학에 진학한다는 소문에 지명 자체를 포기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손쉽게(?) 아키야마를 손에 넣는 행운을 안은 세이부는 그의 타격을 높게 평가, 내야수(3루수)로 등록하였다.
당시 세이부 1위 지명자는 이시게(현 오릭스 감독)였다. 데뷔 첫해(81년) 아키야마는 2군리그(이스턴리그)서 56경기 타율0.247 홈런7을 기록했고, 주니어 올스타전에도 참가하는 등 미래의 거포로서 착실한 준비과정을 거쳤다. 시즌 막판인 9월29일 1군에 올라와 3경기에 출장해 남긴 1군 데뷔 성적은 5타수1안타(3루타) 1득점 2삼진 타율0.200 1사구. 4차례의 수비기회서 실책 1을 기록해 수비율은 0.750이었다. 그의 82~83시즌은 본격적인 1군생활을 위한 마지막 점검기간이었다. 82년에는 타율0.300에 13홈런으로 이스턴리그 홈런왕을 차지했고,83년에는 세이부의 젊은 유망주 4명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 싱글A급 캘리포니아리그에 소속되 88경기에 출장 308타수78안타로 타율0.253, 홈런7, 타점43을 올렸다. 현 MLB 커비 퍼켓(미네소타 트윈스)도 이 당시 같은 리그서 뛰며 0.314의 타율을 올리기도 했다.
입단 4년째인 84년. 아키야마는 개막부터 1군에 들어가 3루수와 중견수를 오가며 주로 7~9번 타순에 포진했다. 4월14일 세이부구장서 벌어진 한큐전서 2회말 대타로 등장 좌완 모리투수로부터 프로 첫 홈런을 날리는 감격을 맛봤다. 84년 그가 거둔 성적은 54경기 140타수 33안타 타율0.236 홈런4 타점14 도루6. 수비는 외야수로 33경기, 3루수로 27경기에 출장했다.
85년부터 10여년간은 이른바 '아키야마의 전성기'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자신의 전성기는 세이부팀의 전성기와도 맞물려 더욱 빛을 발했다. 포지숀을 외야수로 고정시킨 이 기간동안 3년연속(85~87) 40홈런을 기록했고,90년에는 51개의 도루로 도루왕에 등극했다. 87년에는 일본 프로야구 통산 7번째(6명째)로 30홈런-30도루를 기록했는데 사실 홈런 43개에 도루는 38개로 전인미답의 40-40 기록도 가능했던 명플레이어였다. 당시 시즌 마지막 경기인 긴테쓰전까지 43홈런 36도루를 기록하고 있던 그는 1회말 중전안타로 나간뒤 연속해서 2-3루를 훔쳐 38개까지 기록했으나 이후 도루 추가에 실패해 대기록 달성을 눈앞에서 아깝게 놓친 바 있다.
아키야마는 9년연속(85~93) 30이상 홈런, 7년연속(85~93) 베스트나인, 10년연속(87~96) 골든글러브의 영예를 안았다. 아키야마는 다이에에 소속된 99년에도 골든글러브를 수상해 골든글러브 11회 수상자이기도 하다. 그는 통산 수비율이 0.991일 정도로 수비도 잘했다. 아키야마가 속한 세이부는 그가 활약하던 85년~93년까지 9년간 모두 8차례 퍼시픽리그를 제패했고, 86~88년 및 90~92년에는 일본시리즈를 각각 3연패했다. 특히 아키야마 본인은 91년 히로시마와 맞붙은 제42회 일본시리즈에서 타율0.276 홈런4 타점8을 올려 MVP 에 뽑혔다.
세이부시대에만 모두 325홈런-227도루의 쾌타준족을 과시한 아키야마는 94년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로 팀을 옮겼다. 세이부 시절 9년연속 30홈런을 기록하던 아키야마는 세이부구장보다 규모가 큰 후쿠오카돔 첫 시즌 24개에 머물러 10년연속 기록에 차질(?)을 빚었다. 이적 첫해 타율0.254 홈런24 타점73 도루26의 수준급 성적을 올린 아키야마는 딱 꼬집어 슬럼프라고 할 만한 시기가 없었던 선수였다. 96년 홈런이 9개로 줄어들었지만 타율은 0.300을 올리며 타격 랭킹은 자신의 역대 최고 성적인 5위에 랭크되었다. 37세인 99년 일본시리즈에선 20타수6안타 홈런2 타점3으로 두 번째 MVP를 따내기도 했다. 85년부터 2002년까지 18년연속 올스타전 출장은 그의 또 하나의 자랑스런 훈장이다. 이는 오 사다하루(60~80년), 노무라 가츠야(57~77년)의 21년연속 출장에 이은 3번째 기록이다.
2002년 8월20일 아키야마는 그를 키워주었고 그가 키워왔던 세이부 라이온즈를 상대로 프로 마지막 경기를 가졌다. 우익수에 8번타자로 출장한 그는 첫 타석 유격수 플라이, 두 번째 타석 중전안타, 세 번째 타석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아쉬운 고별식을 가졌다. 아키야마의 실질적 은퇴 사유는 정확히는 않지만 고질적인 요통 악화로 알려지고 있는데, 본인 표현에 의하면 "스윙이 내맘대로 되질 않는다" 라고 하고 있다. 즉 예전같지 않은 야구감각이 결국은 천하의 아키야마도 은퇴의 길로 접어들 게 한 것이다. <2002.9.20>

<추신>
1. 400홈런 이상 친 선수 중 300이상 도루를 기록한 선수는 아키야마와 장훈(504홈런-319도루).
2. 혈액형 O형인 아키야마의 취미는 얼마전까지 음악감상이었으나 최근 연감에 따르면 수채화그리기이다.
3. 현역시절 아키야마는 독특한 체력훈련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다. 해마다 겨울철이면 단신 괌으로 날아가 독자적인 체력훈련을 소화한 후 귀국해 팀의 동계훈련에 참여했다.
4. 아키야마의 통산 삼진은 1712개. 병살타는 191개를 기록했다.
5. 아키야마의 은퇴와는 상관없이 현역 최다 홈런 기록은 교진 기요하라(淸原和博)의

*이기사는 다른 사이트서 퍼온 확실한 그의명세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