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등장하는 한스 악셀 폰 페르젠(Hans Axel von Ferzen)은 실제 인물로서 스웨덴 귀족의 장남이다. 스웨덴 귀족 중 손꼽히는 집안의 아들로서 프랑스에 유학생으로 들어왔다가 우연히 가장무도회에 참가하여 마리 앙뜨와네트와 첫만남을 가진 후에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마리 앙뜨와네트의 정부로 은밀히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에 대해 불편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그는 돌연히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한 프랑스군에 자원해 미국으로 떠나버리고
훗날 루이 16세 부부의 프랑스 탈출에 많은 도움을 주려했지만 루이 16세가 거절하는 바람에 끝까지 도움을 주지 못했다. 마리 왕비와 페르젠의 스캔들은 혁명이후 시민들의 분노에 더욱 불을 당겨 루이 17세가 루이 16세의 아들이 아니라 페르젠의 아들이라는 소문까지 돌기도 했다.
결국 페르젠은 마리 앙뜨와네트가 처형당하는것을 막지 못하고 스웨덴으로 쓸쓸히 다시 돌아가게 되는데 마리가 죽고 난 후 사람이 변해버려 상당히 냉혹한 독재적인 성품이 되었다.
그의 최후는 이러하다. 스웨덴 황태자와 동행하다가 갑자기 황태자가 급서하는 바람에 그는 황태자를 독살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는데 독재적인 정치로 인해 그간 시민들의 그에 대한 평판은 좋지 않았던 데에다 그에 대한 적대감정은 기름에 불붙듯이 퍼져가게 된다.
급기야 그의 측근들은 황태자의 장례식에 참가하지 말것을 정중히 권고하였는데 이를 거절하고 페르젠은 고집을 부려 장례식에 참가하기로 한다. 분노한 스웨덴 시민들은 그가 장례식장에 나타나자 "황태자의 살해범이다"하고 외치며 그를 말에서 끌어내려 몰매를 가해 마침내 죽이게 되고 며칠이나 하수구에 처박혀있던 그의 시체는 옷도 다 찢어진 채로 알몸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에서의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상당히 씁쓸한 최후..
우연히도 그들의 사망 날짜는 연도는 다르지만 같은 6월 20일이다.
'내게 있어서 나의 전 생애를 걸었던 여성! 변함 없는 사랑을 바쳐왔던 여성! 아니, 한순간도 잊을 수 없었던 여성! 모든 것을 희생해도 후회가 없었던 그 사람! 나는 지금에야말로 그 사람이 나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던가를 가슴 속 뼈저리게 느끼고 있단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구나.
오오, 신이여, 어째서 나에게 이렇게도 심한 고통을 주시는 것입니까? 이렇게도 당신의 노여움을 사다니 대체 내가 얼마나 나쁜 짓을 했다는 것입니까? 아아, 나의 변함 없는 동생이여. 아아, 나는 왜 그녀의 곁에서 죽지 못했을까? 그녀를 위해 그 6월 20일에 죽는 편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나의 모든 것이던 그 사람은 이미 없구나.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나의 깊은 애정을 깨달았다. 그녀의 모습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 떠나지 않고 항상 내 곁에 있을 것이다.....'
-마리의 죽음을 전해듣고 자신의 동생에게 썼다는 페르젠의 편지 중_
2. 오라뮨데 부인과 젊은 백작.
중세 독일 바덴이라는 지방에 젊은 백작은 덴마크를 여행할때 길을 잃은 그는 문득 아름다운 성을 발견하여 하룻밤 신세를 지려고 문을 열고 들어서니, 두 아이와 살고 있는 아름다운 미망인이 있었다. 오라뮨데 백작 부인으로 왕족의 피를 이어받은 명문 출신이었다. 둘은 사랑에 빠졌지만 자신을 기다릴 부모님생각에 언제까지 그곳에 머무를 수 없었던 청년은 부인에게 네개의 눈이 사라질면 다시 올것을 기약하고 둘은 헤어졌다. 수개월후 부모님의 허락을 받은 백작은 부인의 성으로 갔다. 그러나 성의 분위기는 음침하고 백작부인은 딴사람 같아 보였다. 부인은 네개의 눈이 없어졌으니 이제 결혼을 해줄것인지 묻는다. 그러자 백작은 정색을하며 이미 그 네개의 눈에게 허락을 받았으며 당신의 두 아이는 어디 있는지 묻는다.그리고는 부인이 자신과의 결혼을 위해 두 아이를 죽인것을 알고 도망친다.그후 백작은 꿈에서 백작부인을 본후 죽었고 하얀귀부인-오라뮨데-의 혼령은 죽음을 예언하였다. 1825년 어떤대공은 하얀귀부인을 보고 가벼운 중풍으로 숨졌다.
3. 철종과 양순이 이야기
조선 25대 왕인 철종은 강화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원범이란 이름의 시골도령으로 자라다가 그야말로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 사람입니다. 24대왕인 헌종의 7촌 아저씨 뻘이 되죠.
그가 무지랭이 농사꾼으로 강화에서 살던 시절 양순이란 천민의 처녀와 혼약을 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었다고 합니다.
왕족이었던 철종이 평범한 사람으로 농사를 지으며 두메산골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어린 시절을 지내게 되었던 배경에는 그의 증조부인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에 원인이 있습니다. 사도세자의 아들이면서 원범의 할아버지인 은언군은 영조의 미움을 받아 제주도에 유배되기도 하고 여러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 순조때에 사사되는데 은언군의 아들인 전계대원군(원범의 아버지)마저 역모사건에 휘말려 죽음을 당하게 되면서 남아있던 원범의 가족들은 모두 강화로 피신해서 왕족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농사꾼으로 근근히 목숨을 부지했던 거죠.
헌종이 죽기전까지만 해도 원범의 가족은 그냥저냥 입에 간신히 풀칠이나마 하면서 살아가고 왕족이라는 자부심만 버린다면 그냥 마음편하게 살고 있던 것 같습니다. 원범을 헌종의 후계로 삼은 것은 헌종비를 비롯한 안동 김씨들의 횡포와도 같았을 겁니다. 그들은 똑똑한 사람이 분명 원범 말고도 왕족 중에 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낱 농사꾼이면서 무지랭이에 불과한 원범을 자기 맘대로 다루기 쉽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헌종의 뒤를 잇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데려다가 즉위시킨 거니까요.
어쨌든 갑자기 원범은 왕위계승자가 되고 한양으로 올라가 주상전하가 됩니다.
그러나 평범한 시골처녀인 양순은 그곳으로 따라갈 수 없는 처지였죠.
철종이 헌종의 뒤를 이어 얼떨결에 상감마마가 되고 양순에 대한 상사병과 엄격한 궁중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로 시름시름 앓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일이 잦아지자
헌종비 효현왕후와 익종비 신정왕후를 비롯한 왕가의 사람들은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 양순을 독살시킵니다. 천민인 양순을 궁에 들일 수도 없고 천민으로 살았던 철종이 천민의 여자에게 정을 준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고 천민으로 살던 시절의 것은 모두 잊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죠. 그럼 후궁으로 들이면 되지 않겠느냐 하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천민은 원칙적으로 궁녀가 될 수 없습니다. 고작해야 무수리가 된다면 모를까.. 영조의 어머니가 무수리인 사실도 있지만 그일 자체는 조선왕실 사람들에게 상당한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고 그들은 그런 일의 반복을 다시는 원치 않았죠.
차라리 죽게 되면 잊을 것이다 해서 사람을 보내 은밀히 죽였다고 합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철종은 비탄을 이기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삼정의 문란과 국가의 잇다른 민란을 자초하게 되지만 그런 것을 어떻게 수습할 의욕도 가지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죽습니다.
4. 동성애로 인해 쫓겨난 왕- 에드워드 2세
백년 전쟁을 일으킨 에드워드 3세의 아버지이다. 그는 호전적이고 호탕한 성품으로 대내외적으로 많은 발전을 기록했던 아버지 에드워드 1세와는 달리 심약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 카페왕조의 필리프 4세의 공주인 이사벨라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이사벨라는 야심많고 정력적인 성격이라 항상 소심하고 내성적인 남편이 불만이었다. 에드워드 2세역시 그런 왕비와 맞지 않아 급기야 자신의 재사였던 남성 가베스턴을 사랑하게 된다. 은밀히 진행되었던 그들의 관계는 어느새 남의 눈에 하나둘씩 뜨이게 되고 궁궐 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큼 노골적인 관계가 된다.
에드워드 2세는 가베스턴에게 높은 작위를 내려 자신의 곁에 두려고 하지만 가베스턴은 그를 혐오하는 귀족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왕과 가베스턴과의 동성애로 인해 있는대로 자존심이 상해버린 이자벨라 왕비는 스코틀랜드의 정벌이 연이어 실패하자 자신의 정부였던 모티머와 손을 잡아 반란을 일으켜 왕의 무능함과 성의 문란함을 이유로 하여 그를 폐위시키고 탑에 유폐시킨 뒤 그를 살해하고 아들 에드워드 3세를 왕위에 오르게 한다. 섭정대신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모티머 역시 에드워드 2세의 아들 에드워드 3세에게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5. 김유신과 천관녀
삼국통일을 달성한 김유신이 청년시절 기녀인 천관을 만나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유신이 천관에게 마음을 빼앗겨 학업을 게을리하자 이를 걱정한 어머니가 꾸짖으매, 김유신은 다시는 천관의 집에 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활쏘기 연습에 지쳐 말등에서 꾸벅꾸벅 졸던 김유신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말이 천관녀의 집 앞에 서있는 것을 보자 화가 솟구쳐 그만 칼을 빼어들고 말의 목을 쳐버려 두동강을 내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유신의 모습을 보고 반갑게 뛰어나오던 천관은 그만 피가 낭자한 말의 목을 보자 혼절하였고 다시는 유신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여 스스로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고 한다. 김유신은 김춘추와 함께 힘을 합쳐 삼국통일의 대업을 성취하고 난 이후 다시 천관녀를 찾았으나 그녀는 김유신을 따르기를 거부했다. 여기에는 또다른 설이 있는데 당시 왕족인 김춘추가 천관녀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으므로 유신이 김춘추와의 대립을 원하지 않아 천관녀와의 인연을 끊어 그로인해 김춘추의 신임을 얻고 또 훗날엔 자신의 누이까지 그에게 시집을 보내 출세의 발판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당시 가야에서 귀화한지 얼마되지 않아 정치적 혈연적 발판이 부족한 김유신으로서는 충분히 가능한 추론이긴 하다.
** 역사 속 금지된 사랑 **
역사속 금지된 사랑
1. 마리 앙트와네트의 연인 페르젠.
에 등장하는
한스 악셀 폰 페르젠(Hans Axel von Ferzen)은
실제 인물로서 스웨덴 귀족의 장남이다.
스웨덴 귀족 중 손꼽히는 집안의 아들로서
프랑스에 유학생으로 들어왔다가
우연히 가장무도회에 참가하여 마리 앙뜨와네트와
첫만남을 가진 후에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마리 앙뜨와네트의 정부로 은밀히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에 대해 불편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그는 돌연히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한 프랑스군에 자원해
미국으로 떠나버리고
훗날 루이 16세 부부의 프랑스 탈출에 많은 도움을 주려했지만
루이 16세가 거절하는 바람에 끝까지 도움을 주지 못했다.
마리 왕비와 페르젠의 스캔들은 혁명이후 시민들의 분노에
더욱 불을 당겨 루이 17세가 루이 16세의 아들이 아니라
페르젠의 아들이라는 소문까지 돌기도 했다.
결국 페르젠은 마리 앙뜨와네트가 처형당하는것을 막지 못하고
스웨덴으로 쓸쓸히 다시 돌아가게 되는데
마리가 죽고 난 후 사람이 변해버려
상당히 냉혹한 독재적인 성품이 되었다.
그의 최후는 이러하다.
스웨덴 황태자와 동행하다가
갑자기 황태자가 급서하는 바람에
그는 황태자를 독살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는데
독재적인 정치로 인해 그간 시민들의 그에 대한 평판은 좋지 않았던 데에다
그에 대한 적대감정은 기름에 불붙듯이 퍼져가게 된다.
급기야 그의 측근들은 황태자의 장례식에 참가하지 말것을
정중히 권고하였는데 이를 거절하고 페르젠은 고집을 부려
장례식에 참가하기로 한다.
분노한 스웨덴 시민들은 그가 장례식장에 나타나자
"황태자의 살해범이다"하고 외치며 그를 말에서 끌어내려
몰매를 가해 마침내 죽이게 되고
며칠이나 하수구에 처박혀있던 그의 시체는 옷도 다 찢어진 채로
알몸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에서의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상당히 씁쓸한 최후..
우연히도 그들의 사망 날짜는 연도는 다르지만
같은 6월 20일이다.
'내게 있어서 나의 전 생애를 걸었던 여성!
변함 없는 사랑을 바쳐왔던 여성! 아니, 한순간도 잊을 수 없었던 여성!
모든 것을 희생해도 후회가 없었던 그 사람! 나는 지금에야말로 그 사람이 나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던가를 가슴 속 뼈저리게 느끼고 있단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구나.
오오, 신이여, 어째서 나에게 이렇게도 심한 고통을 주시는 것입니까? 이렇게도 당신의 노여움을 사다니 대체 내가 얼마나 나쁜 짓을 했다는 것입니까? 아아, 나의 변함 없는 동생이여. 아아, 나는 왜 그녀의 곁에서 죽지 못했을까?
그녀를 위해 그 6월 20일에 죽는 편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나의 모든 것이던 그 사람은 이미 없구나.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나의 깊은 애정을 깨달았다.
그녀의 모습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 떠나지 않고 항상 내 곁에 있을 것이다.....'
-마리의 죽음을 전해듣고 자신의 동생에게 썼다는 페르젠의 편지 중_
2. 오라뮨데 부인과 젊은 백작.
중세 독일 바덴이라는 지방에 젊은 백작은 덴마크를 여행할때 길을 잃은 그는 문득 아름다운 성을 발견하여 하룻밤 신세를 지려고 문을 열고 들어서니, 두 아이와 살고 있는 아름다운 미망인이 있었다.
오라뮨데 백작 부인으로 왕족의 피를 이어받은 명문 출신이었다. 둘은 사랑에 빠졌지만 자신을 기다릴 부모님생각에 언제까지 그곳에 머무를 수 없었던
청년은 부인에게 네개의 눈이 사라질면 다시 올것을 기약하고 둘은 헤어졌다.
수개월후 부모님의 허락을 받은 백작은 부인의 성으로 갔다. 그러나 성의 분위기는 음침하고 백작부인은 딴사람 같아 보였다.
부인은 네개의 눈이 없어졌으니 이제 결혼을 해줄것인지 묻는다.
그러자 백작은 정색을하며 이미 그 네개의 눈에게 허락을 받았으며 당신의 두 아이는 어디 있는지 묻는다.그리고는 부인이 자신과의 결혼을 위해 두 아이를 죽인것을 알고 도망친다.그후 백작은 꿈에서 백작부인을 본후 죽었고 하얀귀부인-오라뮨데-의 혼령은 죽음을 예언하였다.
1825년 어떤대공은 하얀귀부인을 보고 가벼운 중풍으로 숨졌다.
3. 철종과 양순이 이야기
조선 25대 왕인 철종은 강화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원범이란 이름의 시골도령으로 자라다가
그야말로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 사람입니다.
24대왕인 헌종의 7촌 아저씨 뻘이 되죠.
그가 무지랭이 농사꾼으로 강화에서 살던 시절
양순이란 천민의 처녀와 혼약을 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었다고 합니다.
왕족이었던 철종이 평범한 사람으로
농사를 지으며 두메산골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어린 시절을 지내게 되었던 배경에는
그의 증조부인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에 원인이 있습니다.
사도세자의 아들이면서 원범의 할아버지인 은언군은
영조의 미움을 받아 제주도에 유배되기도 하고
여러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 순조때에 사사되는데
은언군의 아들인 전계대원군(원범의 아버지)마저
역모사건에 휘말려 죽음을 당하게 되면서
남아있던 원범의 가족들은 모두 강화로 피신해서
왕족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농사꾼으로 근근히 목숨을 부지했던 거죠.
헌종이 죽기전까지만 해도 원범의 가족은
그냥저냥 입에 간신히 풀칠이나마 하면서 살아가고
왕족이라는 자부심만 버린다면 그냥 마음편하게 살고 있던 것 같습니다.
원범을 헌종의 후계로 삼은 것은
헌종비를 비롯한 안동 김씨들의 횡포와도 같았을 겁니다.
그들은 똑똑한 사람이 분명 원범 말고도 왕족 중에 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낱 농사꾼이면서 무지랭이에 불과한 원범을
자기 맘대로 다루기 쉽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헌종의 뒤를 잇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데려다가 즉위시킨 거니까요.
어쨌든 갑자기 원범은 왕위계승자가 되고
한양으로 올라가 주상전하가 됩니다.
그러나 평범한 시골처녀인 양순은
그곳으로 따라갈 수 없는 처지였죠.
철종이 헌종의 뒤를 이어 얼떨결에 상감마마가 되고
양순에 대한 상사병과 엄격한 궁중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로
시름시름 앓아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일이 잦아지자
헌종비 효현왕후와 익종비 신정왕후를 비롯한
왕가의 사람들은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 양순을 독살시킵니다.
천민인 양순을 궁에 들일 수도 없고
천민으로 살았던 철종이 천민의 여자에게 정을 준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고
천민으로 살던 시절의 것은 모두 잊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죠.
그럼 후궁으로 들이면 되지 않겠느냐 하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천민은 원칙적으로 궁녀가 될 수 없습니다.
고작해야 무수리가 된다면 모를까..
영조의 어머니가 무수리인 사실도 있지만
그일 자체는 조선왕실 사람들에게 상당한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고
그들은 그런 일의 반복을 다시는 원치 않았죠.
차라리 죽게 되면 잊을 것이다 해서
사람을 보내 은밀히 죽였다고 합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철종은
비탄을 이기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삼정의 문란과 국가의 잇다른 민란을 자초하게 되지만
그런 것을 어떻게 수습할 의욕도 가지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죽습니다.
4. 동성애로 인해 쫓겨난 왕- 에드워드 2세
백년 전쟁을 일으킨 에드워드 3세의 아버지이다.
그는 호전적이고 호탕한 성품으로 대내외적으로
많은 발전을 기록했던 아버지 에드워드 1세와는 달리
심약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 카페왕조의 필리프 4세의 공주인
이사벨라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이사벨라는 야심많고 정력적인 성격이라
항상 소심하고 내성적인 남편이 불만이었다.
에드워드 2세역시 그런 왕비와 맞지 않아
급기야 자신의 재사였던 남성 가베스턴을 사랑하게 된다.
은밀히 진행되었던 그들의 관계는
어느새 남의 눈에 하나둘씩 뜨이게 되고
궁궐 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큼 노골적인 관계가 된다.
에드워드 2세는 가베스턴에게 높은 작위를 내려
자신의 곁에 두려고 하지만
가베스턴은 그를 혐오하는 귀족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왕과 가베스턴과의 동성애로 인해
있는대로 자존심이 상해버린 이자벨라 왕비는
스코틀랜드의 정벌이 연이어 실패하자
자신의 정부였던 모티머와 손을 잡아 반란을 일으켜
왕의 무능함과 성의 문란함을 이유로 하여
그를 폐위시키고 탑에 유폐시킨 뒤 그를 살해하고
아들 에드워드 3세를 왕위에 오르게 한다.
섭정대신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모티머 역시 에드워드 2세의 아들 에드워드 3세에게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5. 김유신과 천관녀
삼국통일을 달성한 김유신이 청년시절
기녀인 천관을 만나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유신이 천관에게 마음을 빼앗겨 학업을 게을리하자
이를 걱정한 어머니가 꾸짖으매, 김유신은 다시는
천관의 집에 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활쏘기 연습에 지쳐 말등에서 꾸벅꾸벅 졸던
김유신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말이 천관녀의 집 앞에
서있는 것을 보자 화가 솟구쳐 그만 칼을 빼어들고
말의 목을 쳐버려 두동강을 내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유신의 모습을 보고 반갑게 뛰어나오던 천관은
그만 피가 낭자한 말의 목을 보자 혼절하였고
다시는 유신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여
스스로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고 한다.
김유신은 김춘추와 함께 힘을 합쳐 삼국통일의 대업을
성취하고 난 이후 다시 천관녀를 찾았으나
그녀는 김유신을 따르기를 거부했다.
여기에는 또다른 설이 있는데
당시 왕족인 김춘추가 천관녀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으므로
유신이 김춘추와의 대립을 원하지 않아
천관녀와의 인연을 끊어 그로인해 김춘추의 신임을 얻고
또 훗날엔 자신의 누이까지 그에게 시집을 보내
출세의 발판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당시 가야에서 귀화한지 얼마되지 않아 정치적 혈연적 발판이
부족한 김유신으로서는 충분히 가능한 추론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