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데이

이성준2006.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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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발장을 열어 본다. 거기엔 황금색 포장지로 포장된 상자가 들어있다.
"뭐지..?"
자전거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연다. 자전거를 타기 전 상자에 붙어 있는 편지를 뜯어본다. 하지만 그 편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상자까지 뜯어본다. 그 안에는 먹다 만 듯한 초콜렛 하나가 들어 있다.


"좋아하는 얘 있어?"
손을 뒤로 모은 채 물어본다.
"좋아하는 얘? 글쎄. 아직 좋아한다는 의미가 뭔지 잘 모르겠어서."
"그럼 없는 거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그런 셈인가? 그건 그렇고 너는 있어? 이번 발렌타인 때 초콜렛 줄 사람."
"으응? 아..없어"
"뭐야. 싱겁게. 우리반 여자얘들 보니까 초콜렛 챙긴다고 난리도 아니던데. 더 분발하라구."
웃으며 말하며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다.
"안녕. 그럼 내일봐"
"아..으응. 안녕"

2.
"야! 그 소식 들었어?"
"무슨?"
갑자기 교실로 뛰어들어온 아이의 목소리가 하나로 주목된다.
"이번 발렌타인 데이말이야, 학교에서 대대적으로 축제 아이템으로 사용한대!"
그 소리를 듣자, 환희에 찬 아이들의 그룹과 절망에 빠진 그룹으로 나뉜다.
"웬일이냐, 우리 학교가. 또 이 몸이 휩쓸겠구만. 이 지역 초콜렛을. 크하하"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옆의 아이는,
"이런 개떡같은 학교가 다 있나. 초콜렛이 뭔 대수라고. 그런 상업적인 아이템을 신성한 교육의 전당에 사용하다니. 이것은 필히 뭔가 결탁이 있었던 게야. 이런 농간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반대 서명 운동 준비에 들어가자!"
"임마. 오버하지마. 이 형이 두개 받으면 하나 주마."
그러자 혁명의 빨간 두건을 쓰려는 아이의 눈이 가늘어진다.
"내가 그런 자만심 가득한 술수에 넘어갈 것 같으냐...부탁합니다."
"크헤헤. 축제는 즐기라고  있는거야."

한편, 여자 아이들은 초콜렛을 줘야 하는 의무감에 시달린다.
"아, XX. 왜 우리가 초콜렛을 바쳐야 하는건데."
"그러게. 우리 학교 얘들이 잘났으면 또 몰라."
"반대운동서명할까?"
여러명의 여자 아이들이 모여서 얘기를 하고 있다. 그 때, 갑자기 복도로부터 알 수 없는 빛이 비쳐나온다.
"아앗. 이 빛의 정체는?"
"아..잊고 있었다.."
그렇다. 이 학교에도 완소남은 존재했다. 그 이름은 남완소. 그는 교실 문을 통해 자기 자리를 찾아 앉는다. 그 때까지 여학생들은 교실에 내리는 꽃비를 체험한다.
"우리 완소..를 위해 초콜렛!"
"그래. 완소가 있으니까 인정한다 이번 축제!"
그렇게 반대 서명운동은 자연스레 자취를 감추었다.

3.
"엄마. 초콜렛 어떻게 만들어?"
"이노무 가시나 웬 바람이 들었나. 갑자기 초콜렛은 왜?"
"그런게 있어. 엄마는 몰라도 돼."
엄마의 미간에 내 천자가 새겨진다. 빠직. 그리고 날아오는 밥주걱.
"엄마는 몰라도 돼? 평소에 밥이라도 좀 하고 그러면 엄마가 미운 짓해도 예뻐하지. 이 노무 자식은 누굴 닮아서 이래."
갑자기 멈쳐서는 엄마의 딸.
"...엄마 닮았대."

부엌의 앞치마를 두른 두 모녀,
"엄마는 그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싸구려 초콜렛 마케팅은 용납못한다. 하지만!"
"하지만?"
두 모녀가 눈을 맞춘다.
"직접 만드는 건 인정한다. 그래서 가르쳐 주기로 했다."
그러자, 딸의 얼굴은 화색이 돋는다. 엄마의 목에 매달려 안는다.
"고마워."
"아이구야. 이 년은"
엄마도 웃고 있다.

4.
"야. 그 얘기는 그만 좀 해라."
완소가 말한다.
"넌 인기가 많으니까 걱정이 없는거야. 난 어쩌냐 이제."
"어쩌긴 뭘. 그깟 초콜렛 하나 못 받는다고 인생에 큰 오점이라도 되니?"
완소와 함께 자전거를 끌고 골목길을 걷는 일명 솔직한 얼굴, 자칭 저주받은 여드름 해서 통칭 솔직한 여드름이라 불리는 솔여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휴우. 발렌타인에 받는 초콜렛은 말이야. 그렇게 단순한 의미가 아니란 말이다. 상업적이다 뭐다 말은 많지만 말이야 그런 의미를 넘어서 이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관심을 측정하는 일종의 매체란 거야. 난 초콜렛 0개의 관심을 넌 초콜렛 14개의 관심을 말이지. 쩝."
이제는 모든 세상사을 초월한 듯한 무표정으로 말하는 솔여의 얼굴을 완소는 뚫어져라 쳐다보다 갑자기 폭소를 터뜨린다.
"푸하하하하"
"야! 난 진지한데 넌 뭐가 그렇게 웃겨! 지금 초콜렛 0개의 인생을 비웃는거냐?"
솔여의 화에 간신히 웃음을 그친 완소가 말한다.
"큭큭. 그렇게 관심을 받고 싶다 그거지. 그럼 내가 사랑해줄께. 자, 이리와봐."
"으웩~됐네요. 관심 끊으세요!"
왁자지껄한 골목길에 석양의 빛이 아름답게 비춘다.

5.
학교의 축제는 예상보다 큰 행사로 치뤄졌다. 대강당에 모든 학생들이 모여 서로의 초콜렛을 겨루는 이벤트를 시작으로 가장 많이 초콜렛을 받은 학생의 프리허그 행사, 랜덤 커플의 댄스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눈을 가장 빼앗은 것은 바로 방송국의 카메라였다. 교내 커플을 반대하는 대부분의 남녀 공학 학교 속에서 이런 행사를 마련한 이상한 학교를 취재하러 온 것이다.
"저희 학교 진짜 좋아요! 이런 학교 다신 없어요. 최고!"
"아 XX, 존나 좋아요. 앗, 지금 건 편집이구요. 다시 갑니다. 네, 오늘 같이 학교의 중요한 행사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구요. 다른 학교도 이런 좋은 행사가 많이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예요. 컷. 됐죠?"
"사실, 이런 학교의 정책에 있어 의심이 가는 부분은 최근 들어 발렌타인 데이의 초콜렛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학교 측이 아이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점. 이런 점을 보았을 때, 학교와 초콜렛 회사의 결탁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아이들의 광기와 같은 인터뷰로 말미암아 하루동안 쓴 카메라의 필름은 웬만한 영화필름의 두배 정도가 나왔다.

초콜렛을 많이 받은 남학생을 뽑는 이벤트는 예상외로 접전이였다. 당초 남완소의 완승으로 점쳐졌던 것이 예상치 못했던 경쟁자의 등장에 그 결과를 함부러 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어때, 완소! 놀랬지? 내 인기가 이 정도라고."
일명 돈있는 돈(豚), 자칭 다니엘 헤니, 통칭 다니엘 돈 이라 불리는 아이가 옆에 선 완소에게 말한다. 그의 얼굴에는 기름기가 흐른다.
"그러시던지."
완소가 시니컬하게 답한다.
"야, 돼지! 넌 닥치고 있어."
완소의 옆에 탄탄한 복근과 테리우스 스타일의 외모를 자랑하는 축구부 주장, 통칭 복태가 말한다. 그는 1학년 때부터 많은 여학생들의 마음을 훔친 경력자로 유명하다. 복태가 축구 경기를 마친 후 웃옷을 벗고 생수를 머리에 붓고 뒤로 넘길때 여학생들의 눈에는 그것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인다는 전설이 있다. 여자에 관심이 없는 완소와는 달리 자신의 인기를 즐기는 타입.
"야, 완소! 너 이번에 몇개나 받을 거 같냐?"
"글쎄. 난 별로 신경안써."
그러자 복태가 완소의 어깨에 손을 얹고 느끼하게 말한다.
"이번에 형이 널 이겨도 되겠니?"
완소는 어깨에 놓인 손을 치우며 말한다.
"아 글쎄. 난 신경 안쓴대니까."
"엄머. 얘가 뭘 모르네."
다시 어깨를 두르며 복태가 말한다.
"완소야. 너 임마. 지금 너한테는 별로 신경 안쓰이는 거일 수 있어. 그 깟 초콜렛 하면서 말이지. 근데 말이지. 남자로 태어난 이상 말이야. 너에게 붙는 여자들이 뭘 의미하는 줄 알아?"
"몰라"
완소는 귀찮은 듯 말한다.
"바로 경쟁력이야."
복태는 검지를 내밀며 진지하게 말한다. 그 때, 돈이 끼여든다.
"무슨 얘길 그렇게 비밀스럽게 해? 나도 끼여줘~"
"됐어! 이 돼지야!"
복태의 일격은 충분히 돼지 살상력을 지녔다.

6.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돈의 승리였다.
"말도 안돼~"
많은 여학생들은 물론 전교생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나 복태의 충격은 컷다.
"이럴수가..내가 저 따위 지방덩어리에게 지다니.."
무릎을 꿇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복태의 앞에 돈이 선다.
"훗. 이제 모두 나의 진가를 알아보는군. 어때, 복태?"
"크흑, 분하다."
복태의 굴욕을 바라보며 완소는 쓴웃음을 짓고 있다.

솔여는 역시나 초콜렛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 구석의 어두운 공간만이 그를 받아줄 뿐이다. 자신의 가장 친한 완소가 가장 높은 곳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현실과 대비되어 자신의 처지가 꼴사나울 뿐이다.
"저기.."
"응?"
고개를 들자 안경을 쓴 여학생이 서있다.
"저기..이거.."
손에는 초콜렛이 들려있다. 초콜렛이다. 초콜렛이다. 초콜렛이다. 초콜렛...드디어 나에게도...
"완소에게 좀 전해줄수 있어? 완소랑 친하지?"
순간 펴졌던 솔여의 얼굴이 굳어버린다. 추락하는 자에게 날개는 없다.
"그래. 친해."
그러고서 받는 솔여의 손이 떨린다.

학생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 돈의 최고인기남의 등극은 보류되었다. 학생들은 자체진상규명회를 조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고 그 대표는 복태가 되기로 잠정적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다. 초콜렛을 먹은 아이들이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진 것이다. 화장실은 만원이 되었고 방송국의 카메라는 필름을 모두 써버린 것을 후회하며 생생한 집단복통현상의 촬영은 담겨지지 못했다.

7.
학교가 대대적으로 실시했던 이벤트는 악몽으로 끝나고 말았다. 조사 결과, 학교가 초콜렛 회사와 결탁한 것은 사실로 드러났으며 공급했던 대부분의 초콜렛이 유통기한이 지난 불량품으로 드러났다. 덕분에 방송국이 학교에서 촬영된 대부분은 뉴스에 쓰였다. 물론 모자이크 처리는 되었다.
"엄머. 저거 너 아니여?"
"아니여! XX. 내가 왜 저런걸 찍었지.XX"
한동안 떠돌아다닌 인터뷰 동영상은 당사자를 괴롭게 했다.
동시에 학교에 잘났다고 소문난 아이들은 모두 초콜렛을 먹었기 때문에 그 모두 끊임없는 복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중, 가장 많은 초콜렛을 받고 가장 많은 초콜렛을 먹은 돈은 그 상태가 심히 심각하여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게 되었다. 후에 진상규명회가 조사를 한 결과, 돈의 우승은 몇몇 여학생들의 실토를 통해 돈으로 매수되었음이 밝혀졌다. 그와 함께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완소의 정상 자리는 지켜지게 되었다.

"어이, 축하한다."
솔여는 앞을 바라보며 말한다.
"뭘?"
"일등한거. 초콜렛 대회서."
"야. 그런 대회서 일등한게 뭐가 좋냐?"
"...너란 놈은 참.."
솔여는 자전거 뒤에 놓은 가방속에 손을 넣는다.
"완소야."
"으응?"
자전거를 끌고 가는 골목길의 저녁은 조용하다.
"됐다."
솔여는 가방에서 다시 손을 꺼낸다.
"뭐야. 싱겁기는."

8.
"너네 학교 왜 저러니?"
"원래 저래. 신경안써도 돼, 엄마는"
티비에 몇주 내내 방송되는 학교를 보고 말하는 엄마에게 귤을 까먹으며 뒹굴고 있는 딸이 대답한다.
"원래? 얼굴이 좀 폈다?"
"그런게 있어~"
"초콜렛..잘 줬나보지?"
엄마가 딸 옆구리를 찌르며 말한다.
"잘해봐 우리 딸년"
"됐어~"
일어서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딸의 뒷모습이 발랄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로 향한다. 골목길을 여러개 거쳐야 학교에 도착하는 악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얼굴은 밝고 다리는 가볍다.
"화이트데이..기대해도 될까?"
혼자 수줍게 말한다. 혼자만의 상상에 웃음이 번진다.

골목길에 고양이가 한마리 있다.
"와~귀여워"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새끼고양이는 낯선 사람이 다가오자 금세 도망친다.
"아, 뭐야. 도망치기는."
아쉬운 듯 입술을 내밀고는,

쓰레기통에 있는 자신의 초콜렛을 발견한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9.
"내일봐, 그래,"
완소는 조용해진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혼자 책을 읽은 후 늦은 저녁이 되서야 자리에서 일어선다.
복도에 나온다.
신발장을 열어 본다. 거기엔 황금색 포장지로 포장된 상자가 들어있다.
"뭐지..?"
자전거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연다. 자전거를 타기 전 상자에 붙어 있는 편지를 뜯어본다. 하지만 그 편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상자까지 뜯어본다. 그 안에는 먹다 만 듯한 초콜렛 하나가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