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The Devil Wears Prada
영화에 대한 감상은, 극장을 나서는 순간의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울면서 나서든 웃으면서 나서든 착잡한 심정으로 나서든, 드러나는 감정들과는 별개인 '느낌'이 존재하며, 영화를 평가할 때 이는 상당히 정확하다. 물론 알딸딸한 기분으로 보았는데 생각할 수록 괘씸하다거나, 잘 몰라서 우왕좌왕했는데 이것저것 알아보니 썩 나쁘지는 않더라, 같은 경우는 있을 수 있지만 극단적으로 좋거나 싫을 경우는 대부분 확실하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느낌'이라는 기준만으로 판단한다면, 는 별 5개짜리 영화다. 유쾌했다. 1시간 5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일단, 의 유머감각은 단연 최고였다. 에밀리가 드레스를 빼입고 나타난 안드레아에게 쉬크하다고 말하자, 안드레아도 잠시 더듬대다 말라보인다고 답한다. 그 말에 격양된 목소리로 "Do I?"라고 묻는 에밀리, 설사를 하면 금상첨화라고 할 때는 거의 넘어갔다. 에밀리라는 캐릭터 자체가 매우 재밌다. 선임이라는 권위를 세우며 못됬게 굴지만 한 꺼플만 벗겨보면 실수 투성이인. 빨개진 코를 하고는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고 세뇌시키며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는 에밀리는, 밉지 않다. 오히려 사랑스럽다. 마지막 장면, 미란다가 기사를 향해 "안가?(Go)"라고 명령하는 부분도 관객을 웃으며 나가게끔 한다. 동시에 미란다 프레슬리라는 캐릭터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지 않았나 한다.
패션을 소재로 한 영화로서 볼거리 역시 확실하게 제공한다. 명품들로 몸을 감싸고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거리로 나서는 런웨이 걸들을 보여주는 첫 출근 시퀀스와 안드레아와 미란다가 입고 나오는 대담하고 세련된 의상들은 관객들이 기대했던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원작에서는 악마일 뿐이었던 미란다를 입체화 시킨 각색도 훌륭하다. 이로써 미란다는 단순히 성격 이상한 상사에서 직장과 가정에서의 두 역할을 모두 잘 수행하기를 강요받는 현대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새롭게 태어났다. 미란다를 새디스트로 몰아가는 톰슨에게 안드레아가 했던 "만약 미란다가 남자였다면 모두 그를 존경했을 것"이라는 말은 인상적이다. 상대적으로 평등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일하는 여자는 성공이라는 빛 뒤로 많은 어둠을 짊어져야만 한다. 미란다가 새디스트에 괴물인 이유의 어느 정도는,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중요하다고는 해도, 다 보고난 직후의 '느낌'은 영화를 평가하는 많은 기준 중에 하나일 뿐이다. 유쾌했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패션에 대한 관점이 그러하다. 초반부, 영화는 패션에 관심이 없는 것이 자신의 지성을 대변하는 양 이를 무시하는 안드레아에게 나이젤과 미란다의 입을 빌려 힘껏 역설한다. 패션은 네가 생각하는 것 만큼 하찮은 것이 아니다, 일상 생활과 맞닿은 예술 중의 예술이자 패션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다, 라고. 괴팍하긴 하지만 일에서만은 확실한 미란다와 그런 미란다의 신임 받는 나이젤을 보면, 패션을 얕보았던 관객들도 마음을 돌리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반전 아닌 반전을 맞이한다. 네이트는 일에 휘둘리는 안드레아에게 "초심을 잃지 말라"고 한다. 그 초심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패션계를 그저 잠시 거쳐가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더 고귀한 일인 글 쓰는 일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는 것을 말하는가? 분명 일에 매달려 반드시 지켰어야 할 소중한 것들을 아차하는 사이에 놓쳐버린 안드레아에게는 어떤 충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런 충고는 아니다. 일과 사적인 영역의 균형을 잘 잡으라던가 그래도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아서는 안된다와 같은 말이여야 하지 왜 전에는 무시했던 패션에 오히려 빠져드니, 는 아니다. 원래의 꿈이 무엇이었든, 지금 패션계에 몸 담고 있다면 거기에 사력을 다하는 것이 맞다. 비판 대상은 일에 휘둘리는 안드레아여야 하지 패션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직업은, 그것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희망이다. 그러한 꿈꾸는 이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사회라는 거대한 수레바퀴가 굴러왔고, 굴러가고 있다.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열망하는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그 꿈을 좇으면 되고 패션잡지의 에디터가 되려하는 사람들은 또 그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면 된다. 시사와 신문은 우월하고 패션과 잡지는 열등하다는 사고는 받아들일 수 없다.
뉴요커의 면접관이 왜 런웨이 같은 잡지로 샜냐고 묻자 안드레아가 한 말이 달랐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패션은 저속한 것으로 취급되기 쉽고, 또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 다음, "그래도 많이 배웠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밟히지 않으려면 밟아야 하는 패션계의(혹은 미란다의) 생존논리에 염증을 느끼고 그만두었지만, 런웨이의 직원들도 뉴요커지의 직원들만큼 일에 대한 열정으로 충분하다는 것은 깨닫지 않았을까.
는 전체적으로 매우 유쾌한, 잘 만들어진 영화였지만 패션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이 중심을 못 잡았다. 패션 감각 제로인 저널리스트는 매력없다. 패션은, 영화의 관점처럼 열등한 것이 아니다.
2006.10.30 관람
2006.11.5 작성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The Devil Wears Prada 영화에 대한 감상은, 극장을 나서는 순간의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울면서 나서든 웃으면서 나서든 착잡한 심정으로 나서든, 드러나는 감정들과는 별개인 '느낌'이 존재하며, 영화를 평가할 때 이는 상당히 정확하다. 물론 알딸딸한 기분으로 보았는데 생각할 수록 괘씸하다거나, 잘 몰라서 우왕좌왕했는데 이것저것 알아보니 썩 나쁘지는 않더라, 같은 경우는 있을 수 있지만 극단적으로 좋거나 싫을 경우는 대부분 확실하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느낌'이라는 기준만으로 판단한다면, 는 별 5개짜리 영화다. 유쾌했다. 1시간 5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일단, 의 유머감각은 단연 최고였다. 에밀리가 드레스를 빼입고 나타난 안드레아에게 쉬크하다고 말하자, 안드레아도 잠시 더듬대다 말라보인다고 답한다. 그 말에 격양된 목소리로 "Do I?"라고 묻는 에밀리, 설사를 하면 금상첨화라고 할 때는 거의 넘어갔다. 에밀리라는 캐릭터 자체가 매우 재밌다. 선임이라는 권위를 세우며 못됬게 굴지만 한 꺼플만 벗겨보면 실수 투성이인. 빨개진 코를 하고는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고 세뇌시키며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는 에밀리는, 밉지 않다. 오히려 사랑스럽다. 마지막 장면, 미란다가 기사를 향해 "안가?(Go)"라고 명령하는 부분도 관객을 웃으며 나가게끔 한다. 동시에 미란다 프레슬리라는 캐릭터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지 않았나 한다. 패션을 소재로 한 영화로서 볼거리 역시 확실하게 제공한다. 명품들로 몸을 감싸고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거리로 나서는 런웨이 걸들을 보여주는 첫 출근 시퀀스와 안드레아와 미란다가 입고 나오는 대담하고 세련된 의상들은 관객들이 기대했던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원작에서는 악마일 뿐이었던 미란다를 입체화 시킨 각색도 훌륭하다. 이로써 미란다는 단순히 성격 이상한 상사에서 직장과 가정에서의 두 역할을 모두 잘 수행하기를 강요받는 현대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새롭게 태어났다. 미란다를 새디스트로 몰아가는 톰슨에게 안드레아가 했던 "만약 미란다가 남자였다면 모두 그를 존경했을 것"이라는 말은 인상적이다. 상대적으로 평등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일하는 여자는 성공이라는 빛 뒤로 많은 어둠을 짊어져야만 한다. 미란다가 새디스트에 괴물인 이유의 어느 정도는,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중요하다고는 해도, 다 보고난 직후의 '느낌'은 영화를 평가하는 많은 기준 중에 하나일 뿐이다. 유쾌했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패션에 대한 관점이 그러하다. 초반부, 영화는 패션에 관심이 없는 것이 자신의 지성을 대변하는 양 이를 무시하는 안드레아에게 나이젤과 미란다의 입을 빌려 힘껏 역설한다. 패션은 네가 생각하는 것 만큼 하찮은 것이 아니다, 일상 생활과 맞닿은 예술 중의 예술이자 패션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다, 라고. 괴팍하긴 하지만 일에서만은 확실한 미란다와 그런 미란다의 신임 받는 나이젤을 보면, 패션을 얕보았던 관객들도 마음을 돌리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반전 아닌 반전을 맞이한다. 네이트는 일에 휘둘리는 안드레아에게 "초심을 잃지 말라"고 한다. 그 초심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패션계를 그저 잠시 거쳐가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더 고귀한 일인 글 쓰는 일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는 것을 말하는가? 분명 일에 매달려 반드시 지켰어야 할 소중한 것들을 아차하는 사이에 놓쳐버린 안드레아에게는 어떤 충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런 충고는 아니다. 일과 사적인 영역의 균형을 잘 잡으라던가 그래도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아서는 안된다와 같은 말이여야 하지 왜 전에는 무시했던 패션에 오히려 빠져드니, 는 아니다. 원래의 꿈이 무엇이었든, 지금 패션계에 몸 담고 있다면 거기에 사력을 다하는 것이 맞다. 비판 대상은 일에 휘둘리는 안드레아여야 하지 패션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직업은, 그것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희망이다. 그러한 꿈꾸는 이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사회라는 거대한 수레바퀴가 굴러왔고, 굴러가고 있다.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열망하는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그 꿈을 좇으면 되고 패션잡지의 에디터가 되려하는 사람들은 또 그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면 된다. 시사와 신문은 우월하고 패션과 잡지는 열등하다는 사고는 받아들일 수 없다. 뉴요커의 면접관이 왜 런웨이 같은 잡지로 샜냐고 묻자 안드레아가 한 말이 달랐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패션은 저속한 것으로 취급되기 쉽고, 또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 다음, "그래도 많이 배웠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밟히지 않으려면 밟아야 하는 패션계의(혹은 미란다의) 생존논리에 염증을 느끼고 그만두었지만, 런웨이의 직원들도 뉴요커지의 직원들만큼 일에 대한 열정으로 충분하다는 것은 깨닫지 않았을까. 는 전체적으로 매우 유쾌한, 잘 만들어진 영화였지만 패션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이 중심을 못 잡았다. 패션 감각 제로인 저널리스트는 매력없다. 패션은, 영화의 관점처럼 열등한 것이 아니다. 2006.10.30 관람 2006.11.5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