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금니 부녀이야기오늘도 난 전단지를 들고 거리로 나간다. 내 딸 아연이의 수술비를 위해... 난 가진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큰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내 딸 아연이는 아프다. 그래 내 병이 유전 되었지. 지난날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 내 모습이 떠오른다. 바보 같은 난 그저 병원에서 울기만 했다. 내 자신을 원망하며... 딸 아연이 는 2003년 출생했다. 천사란 바로 내 아이를 말하는 것 같았다. 남들이 말하는 후광... 바로 내 앞에 아연이는 강한 빛을 내며 내게 행복과 사랑을 선물했다. 난 기도드렸다. “아버지... 내가 이 못난 내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건가요.” 내기도... 늘 가려진 내 기도소리... 난 1994년도에 국내에 난치성 희귀병환자로 처음 등록된 사람이다. 얼굴 전체에 종양이 자라는 병... 병명 또한 알 수 없고, 수술방법이라고는 하지만 끝없이 종양을 제거하는 방법만이 유일한 치료인병... 내 초등학교 시절은 너무나 힘들었던 시절이다. 늘 웃고 친구들과 놀아야 할 나이... 하지만 난 늘 혼자였다. 얼굴전체에 종양이 나와서 남들은 날 장애인, 기형아라고 놀렸다. 그때 내 나이 9살... 그 아픔을 견디기에 난 너무나 어렸다. 늘 학교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학교가면 친구들이, 형들이, 누나들이 날 마치 사람이 아닌 시선으로 보는 것이 너무나 아프다. 아무도 모른다. 그 시선의 아픔을... 그래도 난 학교에 갔다. 어머니가 날 사랑해주셨으까. 우리어머니는 가난한 집으로 시집온 강원도 사람이다. 성격은 누구보다 좋고 맑은 영혼을 가지신 우리 어머니. 우리가족은 전부 5식구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형과 누나, 막내인 나. 6평 남짓한 작은 지하셋방이 우리가족의 보금자리다. 가난했지만 행복을 말하고, 먹을 것은 없지만 사랑으로 배부른 시절... 난 병에 걸렸다. 하지만 수술비는 뒷전 이였다. 국내 어디서도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때당시 호주와 일본에서 나와 비슷한 병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외국에서만이 유일하게 수술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많은 수술비를 감당하기에는 우리가족은 너무나 가난 하였다. 그래도 나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와 아버지는 뛰고 달리셨다. 내 얼굴은 온통 종양이 퍼져 얼굴형체 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9살짜리 꼬마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현실이었다. 어린 시절의 난 늘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이 모든 것이 꿈이길 기도하면서... 꿈속의 난 너무나 행복했다. 난 정상인이고 난부자다. 많은 사랑을 받고, 많은 사랑을 하고, 남들 앞에서 크게 웃고, 노래까지 부르면서... 하지만 잠에서 깨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오늘 내일... 죽을 날만을 기다리면서...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을까. 서울대학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어머니와 난 급히 서울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난 살 수 있다는 기대에 어머니와 많은 검사를 받고, 2년 뒤 수술을 받기로 했다. “나 학교가기 싫어“ 어머니는 날 때리셨다. 난 내가 왜 맞아야하는지 몰랐다. 난 그냥 집에서 숨어서 지내고 싶은데... 어머니는 왜 날 학교로 보내실까... 지금은 내가 이해를 하지만 그때는 그런 어머니를 미워했던 철없던 내 어린 시절. “학교가면 애들이 놀리고 정말 죽고 싶어 엄마... ” 어머니는 날 꼭 껴안으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미안해... 영학아.... 엄마가 미안해...” 아무 말도 없이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엄마... 미안해. 울지마. 학교에 갈게...” 난 오늘도 학교에 간다. 혹시라도 누가 볼까 실내화 주머니로 내 얼굴을 가린 채 난 거리를 걸어 다닌다. 지금은 음악시간... 친구들이 노래를 부른다. 나도 부르고 싶지만 부를 수가 없다. 내 종양이 너무나 커서 남들이 볼까 무서워... 난 노래를 부를 수가 없다. 그때 음악선생님께선 내게 넌 왜 노래를 부르지 않는냐고 하시며 날 혼내셨다. 수업이 끝난 뒤 난 집으로 울면서 달려갔다. 난 곧장 집으로 달려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면서 노래를 크게 불렀다. 나도 잘 부를 수 있는데... 이렇게 크게 부를 수 있는데... 꿈속에서는 난 노래를 크게 부르는데 왜 현실에서는 그게 안될까... 난 늘 기도한다. 내 노래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부모가 아닌 친구들이... 매일 똑같은 힘든 일상속에서 난 탈출하고 싶었다. 아니 내게 주어진 아픔을 버리고 싶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아픔과 시선의 아픔들... 그걸 견디기에는 난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 “이제 포기하고 다시 태어나는 거야.” 그리고 난 약국으로 향했다. 감기약 3일치를 구입했다. 지금 문득 생각하면 정말 웃음만 나오는 일이지만 당시의 난 약만 많이 먹으면 죽는 줄 알았다. 그래 이제 하늘로 가서 다시 태어나게 해달라고 해야지. “하느님 저 이제 죽어요. 저 다시 태어나면 예쁜 얼굴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 난 죽기 전 어머니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래 유서를 써야지.” 난 어머니가 혹시 내 유서를 못 보실까봐 오디오에도 녹음을 했다. “엄마... 사랑해요. 나 이제 죽어요. 너무 힘들어요. 엄마는 나 때문에 울기 때문에 난 학교생활이 힘들다는 말을 못하겠어요. 엄마가 또 우니까. 엄마 나 학교가기 싫어. 살고 싶은데 너무나 힘들어. 나도 노래도 불러보고 싶고,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난 그게 안된데... 엄마... 엄마 미안해. 나 감기약 3일치 먹었어. 내가 죽어서 꼭 하나님께 다시 태어나게 해달라고 할게. 엄마 그때 다시 만나자. 엄마 사랑해. 엄마사랑해요. 엄마 사랑합니다.“ 유서를 쓰고, 녹음을 하고 난 약을 먹었다. 머리가 아프다. 속이 울렁거린다. 토하고 싶다. 이게 죽는 건가 난 이제 죽나보다. 그리고 얼마 후 어머니께서 들어오셨다. 난 울면서 엄마 품으로 달려갔다. “엄마 나죽어....나 감기약 3일치 먹었다.” 어머니는 내손에 꽉 쥐어진 유서를 보시고, 날 꼭 껴안으시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영학아... 넌 너무 예뻐... 학교가기 힘드니...” 이제야 어머니께서는 내 아픔을 느끼셨다. 아니 그전에도 아셨지만 그 정도로 내가 힘들어 했나... 그런 생각에 내게 한없이 미안해 하셨다. 어머니는 다음날 학교에 가셔서 선생님들과 상담을 하시고는 내게 기회를 주셨다 매일 학교 가서 인사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거다. 매일 조퇴 처리가 가능하다. 3일 조퇴 한번이 결석1일... 그래도 난 고학년에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난 매일 어머니 손잡고 학교에 간다. 비록 5분정도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거지만 어머니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내손을 꼭 붙잡고 학교로 가셨다. 난 매일 실내화 가방으로 얼굴을 가린 채... 다른 손으로 어머니 손을 꼭 잡았다. 그 순간만큼은 학교 가는 길이 싫지 않았다. 내 옆엔 든든한 수호천사인 엄마가 항상 계셨으니까... 나는 총 4번의 수술을 받았다. 집안사정 으로 인해 수십 차례 더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더 이상의 수술은 할 수 없었다. 난 이제 성인이 되었다.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내가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난 분명 울기보다 더 웃고, 학교안가기보다 학교를 더욱 가고 싶어하고, 노래 또한 남들보다 더욱 더 크게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내 어린 시절의 부모님은 안계시다. 아니 벌써 예전에 이별을 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과 어머니의 눈물이 내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날 남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셨다. 비록 지금은 그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없지만... 난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내가 이렇게나마 이 세상에 태어나 우리 부모님을 만난 것에 대해서 너무나 자랑스럽고, 감사드린다고 말해드리고 싶다. 두 분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이 말을 꼭 해드리고 싶다. 이젠 내가 부모가 되었다. 난 기도드렸다. 내가 이 못난 내가 부모가 될 수 있냐고... 하늘은 내게 부모라는 이름을 주셨다. 내 가족... 사랑하는 아내 미선이, 그리고 딸 아연.. 너무나 행복했다. 가진 것 하나 없지만 늘 사랑의 노래를 했으니... 난 몸이 아프다. 그래서인지 많은 일을 하지 못한다. 3차례 수술결과 난 턱뼈를 제거하고 골반뼈를 이식했다. 하지만 너무나 어린시절 했던 수술이라서 입을 조금만 벌려도 내 턱뼈는 빠진다. 내겐 너무나 작은 턱뼈이다. 그리고 잇몸을 긁어냈다. 입안에는 모든 치아가 사라지고... 이젠 어금니 하나만 남아있다. 그래서 내가 어금니 아빠다. 난 그전에 이보다 많은 글을 썼다. 거의 10년 정도 쓴 글인데 모두 불태워 버렸다. 이 책의 제목은 원래는 어금니 아빠의 사랑이다. 어금니만 있는 아빠가 딸을 키우는 이야기... 하지만 아연이가 태어나고 얼마 후... 제목이 바뀌어버렸다. 내 병이 아연이에게 유전이 되었2
세상에서 가장슬픈건.... 우리부녀이야기
어금니 부녀이야기
오늘도 난 전단지를 들고 거리로 나간다.
내 딸 아연이의 수술비를 위해...
난 가진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큰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내 딸 아연이는 아프다. 그래 내 병이 유전 되었지.
지난날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 내 모습이 떠오른다.
바보 같은 난 그저 병원에서 울기만 했다.
내 자신을 원망하며...
딸 아연이 는 2003년 출생했다.
천사란 바로 내 아이를 말하는 것 같았다.
남들이 말하는 후광... 바로 내 앞에 아연이는
강한 빛을 내며 내게 행복과 사랑을 선물했다.
난 기도드렸다.
“아버지...
내가 이 못난 내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건가요.”
내기도...
늘 가려진 내 기도소리...
난 1994년도에 국내에 난치성 희귀병환자로
처음 등록된 사람이다.
얼굴 전체에 종양이 자라는 병...
병명 또한 알 수 없고, 수술방법이라고는 하지만
끝없이 종양을 제거하는 방법만이 유일한 치료인병...
내 초등학교 시절은 너무나 힘들었던 시절이다.
늘 웃고 친구들과 놀아야 할 나이...
하지만 난 늘 혼자였다.
얼굴전체에 종양이 나와서 남들은 날 장애인,
기형아라고 놀렸다. 그때 내 나이 9살...
그 아픔을 견디기에 난 너무나 어렸다.
늘 학교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학교가면 친구들이, 형들이, 누나들이 날 마치
사람이 아닌 시선으로 보는 것이 너무나 아프다.
아무도 모른다. 그 시선의 아픔을...
그래도 난 학교에 갔다. 어머니가 날 사랑해주셨으까.
우리어머니는 가난한 집으로 시집온 강원도 사람이다. 성격은 누구보다 좋고 맑은 영혼을 가지신 우리 어머니. 우리가족은 전부 5식구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형과 누나, 막내인 나.
6평 남짓한 작은 지하셋방이 우리가족의 보금자리다.
가난했지만 행복을 말하고,
먹을 것은 없지만 사랑으로 배부른 시절... 난 병에
걸렸다. 하지만 수술비는 뒷전 이였다.
국내 어디서도 수술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때당시 호주와 일본에서 나와 비슷한 병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외국에서만이 유일하게 수술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많은 수술비를 감당하기에는
우리가족은 너무나 가난 하였다.
그래도 나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와 아버지는 뛰고 달리셨다.
내 얼굴은 온통 종양이 퍼져
얼굴형체 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9살짜리 꼬마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현실이었다.
어린 시절의 난 늘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이 모든 것이 꿈이길 기도하면서...
꿈속의 난 너무나 행복했다.
난 정상인이고 난부자다. 많은 사랑을 받고,
많은 사랑을 하고, 남들 앞에서 크게 웃고,
노래까지 부르면서...
하지만 잠에서 깨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오늘 내일... 죽을 날만을 기다리면서...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을까.
서울대학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어머니와 난 급히 서울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난 살 수 있다는 기대에 어머니와 많은 검사를 받고,
2년 뒤 수술을 받기로 했다.
“나 학교가기 싫어“
어머니는 날 때리셨다. 난 내가 왜 맞아야하는지 몰랐다. 난 그냥 집에서 숨어서 지내고 싶은데...
어머니는 왜 날 학교로 보내실까...
지금은 내가 이해를 하지만 그때는 그런 어머니를
미워했던 철없던 내 어린 시절.
“학교가면 애들이 놀리고 정말 죽고 싶어 엄마... ”
어머니는 날 꼭 껴안으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미안해... 영학아.... 엄마가 미안해...”
아무 말도 없이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엄마... 미안해. 울지마. 학교에 갈게...”
난 오늘도 학교에 간다.
혹시라도 누가 볼까 실내화 주머니로
내 얼굴을 가린 채 난 거리를 걸어 다닌다.
지금은 음악시간... 친구들이 노래를 부른다.
나도 부르고 싶지만 부를 수가 없다.
내 종양이 너무나 커서 남들이 볼까 무서워...
난 노래를 부를 수가 없다.
그때 음악선생님께선 내게 넌 왜
노래를 부르지 않는냐고 하시며 날 혼내셨다.
수업이 끝난 뒤 난 집으로 울면서 달려갔다.
난 곧장 집으로 달려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면서 노래를 크게 불렀다.
나도 잘 부를 수 있는데...
이렇게 크게 부를 수 있는데...
꿈속에서는 난 노래를 크게 부르는데
왜 현실에서는 그게 안될까...
난 늘 기도한다. 내 노래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부모가 아닌 친구들이...
매일 똑같은 힘든 일상속에서 난 탈출하고 싶었다.
아니 내게 주어진 아픔을 버리고 싶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아픔과 시선의 아픔들...
그걸 견디기에는 난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
“이제 포기하고 다시 태어나는 거야.”
그리고 난 약국으로 향했다. 감기약 3일치를 구입했다.
지금 문득 생각하면 정말 웃음만 나오는 일이지만
당시의 난 약만 많이 먹으면 죽는 줄 알았다.
그래 이제 하늘로 가서 다시 태어나게 해달라고 해야지.
“하느님 저 이제 죽어요. 저 다시 태어나면 예쁜 얼굴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
난 죽기 전 어머니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래 유서를 써야지.” 난 어머니가 혹시 내 유서를
못 보실까봐
오디오에도 녹음을 했다.
“엄마... 사랑해요. 나 이제 죽어요. 너무 힘들어요.
엄마는 나 때문에 울기 때문에 난 학교생활이
힘들다는 말을 못하겠어요. 엄마가 또 우니까.
엄마 나 학교가기 싫어. 살고 싶은데 너무나 힘들어.
나도 노래도 불러보고 싶고,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난 그게 안된데...
엄마... 엄마 미안해. 나 감기약 3일치 먹었어.
내가 죽어서 꼭 하나님께 다시 태어나게 해달라고 할게. 엄마 그때 다시 만나자. 엄마 사랑해.
엄마사랑해요. 엄마 사랑합니다.“
유서를 쓰고, 녹음을 하고 난 약을 먹었다.
머리가 아프다. 속이 울렁거린다. 토하고 싶다.
이게 죽는 건가 난 이제 죽나보다.
그리고 얼마 후 어머니께서 들어오셨다.
난 울면서 엄마 품으로 달려갔다.
“엄마 나죽어....나 감기약 3일치 먹었다.”
어머니는 내손에 꽉 쥐어진 유서를 보시고,
날 꼭 껴안으시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영학아... 넌 너무 예뻐... 학교가기 힘드니...”
이제야 어머니께서는 내 아픔을 느끼셨다.
아니 그전에도 아셨지만 그 정도로 내가 힘들어 했나... 그런 생각에 내게 한없이 미안해 하셨다.
어머니는 다음날 학교에 가셔서 선생님들과
상담을 하시고는 내게 기회를 주셨다
매일 학교 가서 인사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거다.
매일 조퇴 처리가 가능하다.
3일 조퇴 한번이 결석1일...
그래도 난 고학년에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난 매일 어머니 손잡고 학교에 간다.
비록 5분정도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거지만
어머니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내손을 꼭 붙잡고
학교로 가셨다. 난 매일 실내화 가방으로 얼굴을 가린 채... 다른 손으로 어머니 손을 꼭 잡았다.
그 순간만큼은 학교 가는 길이 싫지 않았다.
내 옆엔 든든한 수호천사인 엄마가 항상 계셨으니까... 나는 총 4번의 수술을 받았다.
집안사정 으로 인해 수십 차례 더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더 이상의 수술은 할 수 없었다.
난 이제 성인이 되었다.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내가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난 분명 울기보다 더 웃고,
학교안가기보다 학교를 더욱 가고 싶어하고,
노래 또한 남들보다 더욱 더 크게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내 어린 시절의 부모님은 안계시다.
아니 벌써 예전에 이별을 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과
어머니의 눈물이 내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날 남들과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셨다.
비록 지금은 그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없지만...
난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내가 이렇게나마 이 세상에 태어나
우리 부모님을 만난 것에 대해서 너무나 자랑스럽고,
감사드린다고 말해드리고 싶다.
두 분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이 말을 꼭 해드리고 싶다.
이젠 내가 부모가 되었다. 난 기도드렸다.
내가 이 못난 내가 부모가 될 수 있냐고...
하늘은 내게 부모라는 이름을 주셨다.
내 가족... 사랑하는 아내 미선이, 그리고 딸 아연..
너무나 행복했다.
가진 것 하나 없지만 늘 사랑의 노래를 했으니...
난 몸이 아프다.
그래서인지 많은 일을 하지 못한다.
3차례 수술결과 난 턱뼈를 제거하고 골반뼈를 이식했다. 하지만 너무나 어린시절 했던 수술이라서
입을 조금만 벌려도 내 턱뼈는 빠진다.
내겐 너무나 작은 턱뼈이다.
그리고 잇몸을 긁어냈다.
입안에는 모든 치아가 사라지고...
이젠 어금니 하나만 남아있다.
그래서 내가 어금니 아빠다.
난 그전에 이보다 많은 글을 썼다.
거의 10년 정도 쓴 글인데 모두 불태워 버렸다.
이 책의 제목은 원래는 어금니 아빠의 사랑이다.
어금니만 있는 아빠가 딸을 키우는 이야기...
하지만 아연이가 태어나고 얼마 후...
제목이 바뀌어버렸다.
내 병이 아연이에게 유전이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