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왕관을 쓰고 밍크코트를 걸친 '사모님'이 "김기사 운전해!" 라고 외칠 때, 나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 '사모님' 역을 맡고 있는 개그우먼 김미려가 준플레이오프전에서 시구를 할 때, 정말 "떳구나!" 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이효리나 쟈넷리와 같은 당대 최고의 스타만이 할 수 있다는 시구를 김미려가 한 것이다. 그만큼 사모님의 인기는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놓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개그프로 속의 '사모님'이 이렇다 할 직업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뻔뻔스럽게 왕성한 소비활동을 영위해나간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김기사는 놀고 먹는 사모님의 온갖 뒤치닥거리를 마다않고 해야하는 가엾은 월급쟁이,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이들 사이에 놓인 것은 너무도 극명한 계급차이지만, 이들의 장벽은 지극히 희화화되어 우리에게 산뜻한 웃음을 선사하고는 한다. 그리고 생산에서는 비주체, 소비에서는 주체라는 점에서 '사모님'은 옛날에도 비슷한 이미지를 유포하며 유행의 중심이 돼있었다.
사모님......
본래 사모님의 스승의 부인을 높여 일컫는 말이었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그 의미가 상승하거나 하락하기도 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사모님'은 본래의 뜻에 비하여 지나치게 하락해 버린 존칭 중의 하나로 꼽히면서, 사모님도 아니면서 사모님처럼 구는 기혼여성들을 비꼴 때 쓰이곤 했다. 대표적으로 1950년대 가정부인의 일탈이라는 파격적인 주제로 인기를 끌었던 영화 에서의 '사모님' 이미지를 꼽아볼 수 있다.
은 정비석의 신문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침체된 전후 사회에 퇴폐와 향락 풍토를 풍자하는 데 주력한 영화다. (개봉당시 수많은 부인들이 극장에 몰렸는데, 이들을 일명 '고무신 관객'이라고 일컫어졌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자유부인 오선영을 비롯하여, 전부 유부녀와 이혼녀이다. 그녀들에게 따라붙는 호칭은 '사모님'인데, 교수 사모님, 회장 사모님, 국회의원 사모님 등이다. 그녀들의 이름을 따로 호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작가의 시선은 "남편의 자리 덕에 놀고 노는 사모님", "문명의 호화를 누리는 데에만 급급한 사모님" 등으로 고정화되어 있다. 덕분에 1950년대라는 시대의 궁핍을 견뎌야했던 수많은 관객들은 그녀들을 비난하며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다. ('사모님'은 50년대의 대표적인 유행어이다. 당시에 라디오 코미디 프로그램이 인기였는데, 역시 '사모님'을 풍자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1950년대, "망국의 지름길은 사치" , "퇴폐와 사치를 조장하는 땐스홀 폐쇄하라" 등의 제목의 기사가 신문에 빈번히 실리던 시대, 사치스러움과 향락을 죄악시하던 사회 분위기에서 쇼핑을 즐기고 땐스홀에 출입하는 사모님은 죄악의 근원으로 지목되며, 비난의 대상으로 사용되곤 했다. 그러면서도 일반 아줌마들과 구별된다는 점에서 '사모님'이라는 호칭은 경외의 상징이기도 했다. 전후의, 수많은 가난한 여성들 속에서 교수나 기업 사장의 부인만이 '사모님'이라고 호명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주부잡지에서 사모님은 아줌마와 구별되는 소비의 주체, 우아한 이미지 자체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래서였을까. 특별한 존재라는 것은 경외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질투의 대상이 된다.
1950년대 한국사회에서 사모님은 그렇게 이중적인 시선을 받으며 존재했던 부류였던 것이다.
반면 2006년, 개그우먼 김미려가 연기하는 사모님은 상큼한 웃음을 전파하는 캐릭터로 각광받는다. 그럼에도 50년대의 사모님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면 생산의 주체인 남성에게 의지한 채, 고마운 줄도 모르고 사치스러운 소비행위를 일삼는 주체적이지 못한 모습으로 그려지며 풍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착잡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로 그려졌던 50년대의 사모님에 비하여 김미려의 사모님은 마냥 유쾌한 웃음을 전파하는 이미지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어쨌든 2006년, 사모님은 귀환했고 그것은 성공했다. 암울하지 않은 시대적분위기 속에서(실상은 그렇지 않지만, 아직도 살기 힘들지만, 모든지 가뿐하게 웃어넘기길 바라는 분위기?) 사모님은 남편인지 애인인지 확실치 않은 회장님이 준 돈으로 마음껏 소비생활을 즐기면서, 김기사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도 유쾌하다. 상쾌하다.
그리고 여전히 사치스러움의 지표로서, 비난의 대상으로 치부되는 '사모님'을 바라보며, 나는 착잡하다. 웃으면서도.
사모님의 유쾌한 귀환
머리에 왕관을 쓰고 밍크코트를 걸친 '사모님'이 "김기사 운전해!" 라고 외칠 때, 나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 '사모님' 역을 맡고 있는 개그우먼 김미려가 준플레이오프전에서 시구를 할 때, 정말 "떳구나!" 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이효리나 쟈넷리와 같은 당대 최고의 스타만이 할 수 있다는 시구를 김미려가 한 것이다. 그만큼 사모님의 인기는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놓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개그프로 속의 '사모님'이 이렇다 할 직업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뻔뻔스럽게 왕성한 소비활동을 영위해나간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김기사는 놀고 먹는 사모님의 온갖 뒤치닥거리를 마다않고 해야하는 가엾은 월급쟁이,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이들 사이에 놓인 것은 너무도 극명한 계급차이지만, 이들의 장벽은 지극히 희화화되어 우리에게 산뜻한 웃음을 선사하고는 한다. 그리고 생산에서는 비주체, 소비에서는 주체라는 점에서 '사모님'은 옛날에도 비슷한 이미지를 유포하며 유행의 중심이 돼있었다.
사모님......
본래 사모님의 스승의 부인을 높여 일컫는 말이었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그 의미가 상승하거나 하락하기도 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사모님'은 본래의 뜻에 비하여 지나치게 하락해 버린 존칭 중의 하나로 꼽히면서, 사모님도 아니면서 사모님처럼 구는 기혼여성들을 비꼴 때 쓰이곤 했다. 대표적으로 1950년대 가정부인의 일탈이라는 파격적인 주제로 인기를 끌었던 영화 에서의 '사모님' 이미지를 꼽아볼 수 있다.
은 정비석의 신문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침체된 전후 사회에 퇴폐와 향락 풍토를 풍자하는 데 주력한 영화다. (개봉당시 수많은 부인들이 극장에 몰렸는데, 이들을 일명 '고무신 관객'이라고 일컫어졌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자유부인 오선영을 비롯하여, 전부 유부녀와 이혼녀이다. 그녀들에게 따라붙는 호칭은 '사모님'인데, 교수 사모님, 회장 사모님, 국회의원 사모님 등이다. 그녀들의 이름을 따로 호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작가의 시선은 "남편의 자리 덕에 놀고 노는 사모님", "문명의 호화를 누리는 데에만 급급한 사모님" 등으로 고정화되어 있다. 덕분에 1950년대라는 시대의 궁핍을 견뎌야했던 수많은 관객들은 그녀들을 비난하며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다. ('사모님'은 50년대의 대표적인 유행어이다. 당시에 라디오 코미디 프로그램이 인기였는데, 역시 '사모님'을 풍자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1950년대, "망국의 지름길은 사치" , "퇴폐와 사치를 조장하는 땐스홀 폐쇄하라" 등의 제목의 기사가 신문에 빈번히 실리던 시대, 사치스러움과 향락을 죄악시하던 사회 분위기에서 쇼핑을 즐기고 땐스홀에 출입하는 사모님은 죄악의 근원으로 지목되며, 비난의 대상으로 사용되곤 했다. 그러면서도 일반 아줌마들과 구별된다는 점에서 '사모님'이라는 호칭은 경외의 상징이기도 했다. 전후의, 수많은 가난한 여성들 속에서 교수나 기업 사장의 부인만이 '사모님'이라고 호명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주부잡지에서 사모님은 아줌마와 구별되는 소비의 주체, 우아한 이미지 자체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래서였을까. 특별한 존재라는 것은 경외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질투의 대상이 된다.
1950년대 한국사회에서 사모님은 그렇게 이중적인 시선을 받으며 존재했던 부류였던 것이다.
반면 2006년, 개그우먼 김미려가 연기하는 사모님은 상큼한 웃음을 전파하는 캐릭터로 각광받는다. 그럼에도 50년대의 사모님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면 생산의 주체인 남성에게 의지한 채, 고마운 줄도 모르고 사치스러운 소비행위를 일삼는 주체적이지 못한 모습으로 그려지며 풍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착잡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로 그려졌던 50년대의 사모님에 비하여 김미려의 사모님은 마냥 유쾌한 웃음을 전파하는 이미지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어쨌든 2006년, 사모님은 귀환했고 그것은 성공했다. 암울하지 않은 시대적분위기 속에서(실상은 그렇지 않지만, 아직도 살기 힘들지만, 모든지 가뿐하게 웃어넘기길 바라는 분위기?) 사모님은 남편인지 애인인지 확실치 않은 회장님이 준 돈으로 마음껏 소비생활을 즐기면서, 김기사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도 유쾌하다. 상쾌하다.
그리고 여전히 사치스러움의 지표로서, 비난의 대상으로 치부되는 '사모님'을 바라보며, 나는 착잡하다. 웃으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