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우리는

박선영2006.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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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겨울, 방황의 최고조에 달았던 그때.

집을 마치 목욕탕 처럼 이용하던 그때. 

2달동안 오토바이에 흠뻑 빠져있었던 때가 있었다.

 

한겨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허벅지가 얼얼하고 얼굴이 깨질 정도로 실컷 달리고 나면

그것이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오토바이를 멈추고 내려서도 몇분간 이어지는 그 짜릿함.

그것은 감히 뭐라할 수 없을정도의 감동이였다.

 

찢어질 듯한 추위만 아니라면

그 어떤 놀이보다도 중독성이 강한 것이라.

 

특히 빠른속도로 커브를 돌 때나,

터널속에 씽씽달리는 차들사이에서

뻥튀기를 즐기는 등의 스릴은

그 어느 놀이기구와도 비교될 것이 못 되었다.


주말이나 3.1절 815등이 되면

폭주족이라 불리우는 놈들의 오토바이들이

몇십대가 떼를지어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도로를 활보하는 것을 자주 보곤한다.

 

그리고, 그 오토바이 뒷자석에 매달려서

코끝이 시려져가면서도 좋다고 소리를 질러대며

헤벌쭉 거리는 여자들.

 

그 모습을 보면 쪽팔리지도 않냐며 손가락질을 하면서도,

정작 그 때 뒷자석에 매달려 있던 나는 당체 쪽팔린 줄을 몰랐다.

 

VF나 엑시브를 타고 시내를 나갈때면

내 자신이 뭐라도 되는 냥 흐뭇한 웃음을 지어보이곤 했었다.

 

CBR을 타고난 다음날에는 친구들을 만나

자랑하기에 바빳던 것으로 기억되는. 

 

물론, 그 속에 속해있을 때에는

쪽팔린다는 생각 따위 할 겨를도 없었던 게지.

그것 또한 감히 내 인생의 한부분이라고 할까.

 

내가 하면 흥행영화작이고,

남이 하면 삼류영화에 지나지 않는.

지금 우리사람들네의 이기심과 같은 그런.


지금같아서는 하늘을 찌를 듯한 쇼바와

듣기조차 짜증나는 그런 시끄러운 오토바이 뒷자석에 매달려

서울시내, 아니. 구석진 동네를 누비는 일은,

창피하고 쪽팔려서 자신이 없을 일인데,

 

그 때는 왜 남의 따가운 시선따위,

남의 불편함 따위에는 그렇게 눈을 감았던건지.

 

방황이라는 길로 드어선 아무런 생각없는

중학생들의 최고의 놀이거리.

 

그때의 오토바이는 놀이 이상의 돌파구였다.

신나게 달리고 달리다보면 어른들의 기대감따위 없는

그런 자유의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할 정도였으니.

 

그때는 독착지도 행선지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것들이 존재하는 순간 자유라는 의미는

산산조각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다.

 

간혹, 오토바이를 타는 이들을 "새벽의 질주" 라 칭하곤 한다.

그것은 그 어느곳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불쌍한 아이들의 주목받기 위한 발악이 아니였을까.

 

그것으로 자신도 선망의 대상이 되고자 했던

얄팍한 술수가 아니였을까.

 

어쩌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뒤에서 따라오는 빽차도,

날라오는 곤봉도,

 

공부만을, 올바른 길만을 강요하는

어른들의 못난 이기심도,

 

쯧쯧거리는 비아냥도,

따가운 시선의 손가락질도 아닌

사랑과 관심이었을지도.

 

 

5년만에 몸도 마음도 훌쩍 자라버린 내가

그때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매달려

정신나간 아이처럼 웃어재끼던 나에게.

 

그 짜릿함을 함께 달리던 우리에게

꼭 집고넘어가야할 문제를 뱉어본다.

 

 

 

도대체 그때 우리는

무엇을 향해 그토록 끊임없이 달렸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