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키는 대표적인 영웅 수퍼맨 그가 돌아왔다. 완벽에 가까운 컴퓨터 그래픽을 등에 업고 더욱 강력하고, 더욱 빠르게 말이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필자는 수퍼맨의 광팬임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2억불이 넘는 세계 영화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자랑하며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 수퍼맨 2억불이 애들 장난이 아닌 이상 우리는 이 유별나게 '비싼' 영화를 보기 전에 몇가지 공부를 해보자. 그것이 지금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에게 충분히 영화가 제값을 할 수 있도록 해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주 최강의 영웅을 자처하는 빨간팬티 아저씨 수퍼맨. 그의 탄생부터 알아보자. 수퍼맨이란 캐릭터는 1914년생의 SF만화광 "제리시겔"과 "조슈스터"라는 두 청년에 의해 코믹북으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세계적인 경제공황으로 불황의 탈출구를 찾던 미국인들의 감성을 자극해서였을까? 1938년 액션코믹스에 최초로 연재되기 시작한 수퍼맨은 연일 발매부수 기록을 깨며 '수퍼맨 광풍'을 일으키며 그 찬란한 데뷔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이후 수퍼맨은 라디오 드라마, TV시리즈, 애니메이션등 매체를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며 수십년간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 대표적인 영웅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SF라는 장르의 특수성과 당시의 스크린 기술력의 한계때문에 쉽게 영화화 되지는 못한다. 또한 무엇보다 방대한 세계관이 영화화를 시도한 몇몇 작가들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판권을 가지고 있던 워너브러더스는 총력을 기울여 꾸준히 영화화를 시도한다. 이러한 수퍼맨이 '오멘'을 히트시키며 스타감독의 반열에 합류하기 시작한 "리차드 도너"와 "크리스토퍼 리브"라는 무명 연극배우를 만나며 제작에 가속도가 붙는다. 또한, 베트남전의 후유증과 그칠줄 모르는 인플레이션 현상등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당시의 미국의 시대적인 상황이 그들을 대변할 영웅을 더욱 갈망하게 만들었다. 워너는 수퍼맨 이야기를 집대성할 작가를 찾기 시작했고 결국 '대부'의 "마리오 푸조"가 그 선택이 되었다. 수퍼맨 역할을 맡긴 "크리스토퍼 리브"에 관한 프로필등은 철저한 비밀에 부쳐졌고 "진 핵크먼","말론 브란도"라는 희대의 명배우들을 주요배역으로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특이할 만한 점은 워너가 수퍼맨의 아버지 조엘 역할에 캐스팅한 "말론 브란도"는 단 10분 출연으로 400만달러라는 기록적인 개런티를 안겨준 반면, 주인공 배역의 "크리스토퍼 리브"에게는 35만달러라는 저렴한(?) 개런티를 안겨주었다는 점이다. 수퍼맨 영화는 이 외에도 "리차드 도너"와 워너 브러더스의 갈등이야기등 수많은 이야기 거리를 낳기도 하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1979년작 "수퍼맨 THE MOVIE" "수퍼맨 THE MOVIE" 는 개봉과 동시에 평단의 호평과 미국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에 힘입어 연일 박스오피스를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며 미국내에서만 9,000만 달러가 넘는 흥행수익을 기록하며 성공한다. "크리스토퍼 리브"는 수퍼맨이라는 영화 한 편으로 인해 단숨에 최고의 스타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수퍼맨 시리즈 전통의 '저주' 때문인지 수퍼맨을 제외한 출연작에서는 신통치 않은 결과만 거듭하게 된다. "수퍼맨 THE MOVIE" 로 톡톡한 재미를 본 워너는 속편 제작에 착수한다. 사실 속편 제작은 1편과 동시에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영화의 대부분이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 하지만 수퍼맨의 두번째 영화의 탄생도 그리 순탄치 않는 길을 걷는다. 워너는 제작 기간 내내 "리차드 도너"와 충돌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그를 해고하고 "리차드 레스터"라는 B급영화 전문 감독을 속편의 감독 자리에 앉히게 된다. (하지만 이미 90%이상이 "리차드 도너"의 손에 완성된 상태였으므로 많은 수퍼맨 팬들은 리차드 레스터의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고있다.) 1981년 우여곡절 끝에 "수퍼맨2"가 개봉되었고 전편의 기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역시 7,000만불이 넘는 수익을 거두며 성공한다. 하지만 돈에 눈이 먼 워너는 "리차드 도너"를 해고하고 제작비를 줄여 제작한 3편이 흥행참패와 평단의 악평까지 받는 바람에 캐논이라는 소규모 영화사에 4편의 영화화 판권을 넘겨버린다. "크리스토퍼 리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던 4편은 최악의 수퍼맨 영화라는 오점을 찍으며 쓸쓸하게 물러난다. 3편과 4편의 연이은 흥행실패로 이후의 모든 수퍼맨 영화화는 잠정 보류되었고 호사가들의 입에서 수퍼맨 5편에 대한 이야기가 솔솔 나돌기 시작할 즈음 "크리스토퍼 리브"가 낙마사고를 당한다. 그렇게 주인공을 잃어버린 수퍼맨의 5편에 대한 소문은 소리없이 수그러 들었다. 워너는 이후 수퍼맨의 드라마 시리즈에 집중하기 시작하고 드라마 시리즈가 연이은 성공을 거두며 다시금 수퍼맨 영화화를 추진하기 시작한다. 90년대 워너사는 "배트맨 리턴즈"를 히트시킨 헐리우드의 괴짜감독 "팀버튼"을 기용하고 본격적인 수퍼맨 부활 프로젝트에 착수하기에 이른다. "팀버튼"은 인기배우 "니콜라스 케이지"를 수퍼맨 역할로 캐스팅까지 완료시키고 제작에 착수하지만 경영진이 원하던 수퍼맨의 세계관과 자신이 추구하던 세계관이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 워너에 의해 해고당하게 된다. 하지만 수퍼맨 팬들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차기 수퍼맨이라는 소리에 기겁을 했었기 때문에 "대머리 수퍼맨"의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에 환호성을 내지르는 웃지못할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후 워너는 "볼프강 페터슨"에게 "수퍼맨vs배트맨"이라는 언밸런스 히어로물을 주문하기도 하는등 수퍼맨 부활 프로젝트에만 수많은 돈을 투자한다. 하지만 번번히 영화화 계획은 물거품이 되버리고 지치기 시작한 워너 경영진은 수퍼맨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기 시작한다. 하지만 경쟁사인 유니버셜영화사에서 DC코믹스의 "수퍼맨"에 버금가는 팬층을 소유한 마블코믹스의 "스파이더맨"을 "샘레이미"라는 괴짜천재감독의 손에 맡기게 된다. 이 괴짜 감독은 진일보한 컴퓨터그래픽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스파이더맨"의 영화화에 성공하고 막대한 흥행수익을 거두며 헐리우드에 히어로물 부활붐을 일으킨다. 당황한 워너 경영진은 또다시 수퍼맨 부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또한 베트남전 후유증이 심각했던 1979년 "수퍼맨 THE MOVIE" 로 재미를 봤던 워너로써는 9.11 참사와 또다시 새로운 경제위기에 직면한 미국의 분위기를 놓칠 수 없었다. 이번에 선택된 감독은 "미녀 삼총사"를 스크린으로 성공적으로 부활시킨 "McG"였다. 하지만 수퍼맨 팬들의 반대가 거셌고 "McG"의 미온스런 반응에 실망한 워너는 러시아워 시리즈로 화려한 비주얼과 볼거리를 보여준 "브렛 레트너"에게 메가폰을 맡긴다. "브렛 레트너"는 헐리우드에서도 유명한 수퍼맨의 광팬이었으며 호시탐탐 수퍼맨 부활 프로젝트에 욕심을 보였던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워너는 "유주얼 서스펙트"로 스토리 텔링 능력을 입증하고 x맨 시리즈로 히어로물에 새로운 느낌을 불어넣은 폭스의 "브라이언 싱어"와 바람을 피우기 시작한다. "브렛 레트너" 못지않은 수퍼맨 광팬이었던 "브라이언 싱어"는 이미 "X맨-최후의 전쟁"의 제작에 착수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폭스를 배신하고 워너의 떡밥을 덥썩 물어버린다. 재미있는 것은 수퍼맨 프로젝트에서 물러난 "브렛 레트너"가 "브라이언 싱어"가 제작하던 "X맨-최후의 전쟁"의 바통을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워너는 "브라이언 싱어"에게 수퍼맨의 영광을 재현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브라이언 싱어"가 들고온 새로운 수퍼맨에 대한 기획안은 워너 경영진으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만들었고 워너는 2억불에 달하는 세계 영화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쏟아 부으며 촬영을 시작한다. 영화의 제목이 2005년 언론을 통해 공개 되면서 대중의 관심도 새롭게 돌아올 영웅에 환호하기 시작한다. 영화의 제목은 "수퍼맨 리턴즈" 수많은 헐리우드의 배우들이 수퍼맨 역할에 거론되었으나 누구도 "브라이언 싱어"를 만족시키진 못했다. "브라이언 싱어"는 주인공을 물색하던 중 이미 오디션에서 탈락한 배우들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보게 되었고 캐스팅 비디오에서 어느 무명 배우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브라이언 싱어"에게서 환호성을 이끌어낸 배우는 다름아닌 "브랜든 루스" 기껏해야 시트콤 몇 편 출연한 경력이 전부일 정도로 철저한 무명 배우 였다. "브랜든 루스"를 만난 "브라이언 싱어"는 바로 그 자리에서 흡족해하며 OK사인을 냈다고 한다. "수퍼맨 THE MOVIE" 의 수퍼맨을 맡았던 "크리스토퍼 리브"와 거의 완벽할 정도로 흡사한 외모와 분위기, 심지어 무명 배우 출신이라는 배경상황과 수퍼맨에 캐스팅된 나이까지 비슷한 "제2의 크리스토퍼 리브"를 발견한 것이다. 워너 경영진 조차 "브랜든 루스"를 보고 경악했으며 "수퍼맨 리턴즈"를 제작하는 도중 고인이 되어버린 "크리스토퍼 리브"의 부인 "다나 리브" 조차 "브랜든 루스"의 얼굴을 보고 남편이 살아돌아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수퍼맨 리턴즈"는 그렇게 1987년 수퍼맨 4편 이후 정확히 19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브라이언 싱어"는 "리차드 도너"가 제작했던 "수퍼맨 THE MOVIE" 를 수퍼맨의 클래식이라고 평할 정도의 "수퍼맨 THE MOVIE" 의 추종자였고 이러한 점때문인지 "수퍼맨 리턴즈"는 "수퍼맨 THE MOVIE"와 흡사한 이야기 구조, 동일한 세계관을 지니게 되었다. 영화의 시작조차 "수퍼맨 THE MOVIE" 의 5년 뒤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그 시작을 알린다. (사실 싱어는 수퍼맨2,3,4편은 수퍼맨 영화사의 오점이라고 지적할 정도) 너무나 "수퍼맨 THE MOVIE" 를 신봉했던 탓인지 영화의 곳곳에 의도적으로 원작의 분위기를 차용했으며 오프닝 부분과 테마 음악까지 1979년에 개봉된 "수퍼맨 THE MOVIE" 와 일치하고 있다. 영화의 내용은 안보신 분들을 위해서 PASS~ 하기로 하겠다. 하지만 철저히 올드팬들을 위해 제작된 탓인지 요즘 세대의 팬들에겐 그다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며 흥행수입 역시 간신히(?) 제작비를 회수하는 정도로 그치게 된다. (사실 2억 5천만불 이라는 흥행수입은 어마어마한 흥행이지만 워낙에 제작비가 막대했던 탓에 워너는 만족하지 못한다) 워너와 "브라이언 싱어" 역시 갈등이 시작되었지만 최근 들려온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차기작에서도 "브라이언 싱어"를 신임하고 메가폰을 맡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사실 싱어는 X맨 시리즈 역시 1편은 가벼운 소개형식으로 전개하였고 2편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또한 당연하게(?) 차기작의 주인공 역시 "브랜든 루스"로 결정되었다고 하니 (이번 리턴즈의 비교적인 흥행실패로 대부분의 팬들에게서 감독경질은 허용하나 "브랜든 루스" 교체는 불가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다음 수퍼맨 영화에서도 하늘을 나는 그의 멋진 모습을 볼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지금까지 수퍼맨 시리즈의 간단한 역사와 "수퍼맨 리턴즈"의 제작비화를 이야기 해보았다.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나 많지만 필자의 피곤함 -.-;; 때문에 대~~충 마무리 들어간다. ㅋ 읽느라 무척 수고하셨다......하지만 이걸 다 쓴 나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마지막으로 "크리스토퍼 리브"와 "브랜든 루스"의 비교사진을 첨부한다. (가르마 방향 빼고 너무나 닮은 두 사람) @수퍼맨의 저주 = 수퍼맨의 저주를 본문에서도 잠깐 이야기 했지만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해보기로 하겠다. 수퍼맨 드라마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맹활약했던 "조지 리브스"는 의문의 권총자살로 세상을 떠났으며 "크리스토퍼 리브"는 낙마사고로 인하여 눈을 감는 순간까지 전신마비의 장애를 가지고 살아갔다. "수퍼맨 THE MOVIE"에서 로이스 레인 역할을 맡았던 "마곳 키더"는 약물 중독에 시달렸으며 지금까지 다행히(?) 살아있는 역대 수퍼맨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 역시 후속 출연작의 연이은 실패로 대중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심지어 "로이스와 클락" 이라는 90년대의 대표적인 수퍼맨 TV시리즈의 한국판에서 수퍼맨 역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장세준"이라는 성우 조차도 여객기 추락사고로 세상을 등졌다. 최근 화제가 되는 것은 과연 "수퍼맨 리턴즈"의 새로운 수퍼맨 "브랜든 루스"는 이러한 저주에서 안전할 것인가에 대한 팬들의 궁금증이다. 3
수퍼맨 리턴즈 - 올드팬들이여! 다시 한 번 날자꾸나!
지구를 지키는 대표적인 영웅 수퍼맨
그가 돌아왔다.
완벽에 가까운 컴퓨터 그래픽을 등에 업고 더욱 강력하고, 더욱 빠르게 말이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필자는 수퍼맨의 광팬임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2억불이 넘는 세계 영화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자랑하며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 수퍼맨
2억불이 애들 장난이 아닌 이상 우리는 이 유별나게 '비싼' 영화를 보기 전에 몇가지
공부를 해보자. 그것이 지금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에게 충분히 영화가 제값을 할 수 있도록
해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주 최강의 영웅을 자처하는 빨간팬티 아저씨 수퍼맨.
수퍼맨이란 캐릭터는 1914년생의 SF만화광 "제리시겔"과 "조슈스터"라는 두 청년에 의해
코믹북으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세계적인 경제공황으로 불황의 탈출구를 찾던 미국인들의
감성을 자극해서였을까? 1938년 액션코믹스에 최초로 연재되기 시작한 수퍼맨은 연일 발매부수
기록을 깨며 '수퍼맨 광풍'을 일으키며 그 찬란한 데뷔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이후 수퍼맨은 라디오 드라마, TV시리즈, 애니메이션등 매체를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며
수십년간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 대표적인 영웅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SF라는 장르의 특수성과 당시의 스크린 기술력의 한계때문에 쉽게 영화화 되지는 못한다.
또한 무엇보다 방대한 세계관이 영화화를 시도한 몇몇 작가들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판권을 가지고 있던 워너브러더스는 총력을 기울여 꾸준히 영화화를 시도한다.
이러한 수퍼맨이 '오멘'을 히트시키며 스타감독의 반열에 합류하기 시작한 "리차드 도너"와
"크리스토퍼 리브"라는 무명 연극배우를 만나며 제작에 가속도가 붙는다.
또한, 베트남전의 후유증과 그칠줄 모르는 인플레이션 현상등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당시의 미국의 시대적인 상황이 그들을 대변할 영웅을 더욱 갈망하게 만들었다.
워너는 수퍼맨 이야기를 집대성할 작가를 찾기 시작했고 결국 '대부'의 "마리오 푸조"가 그 선택이 되었다.
수퍼맨 역할을 맡긴 "크리스토퍼 리브"에 관한 프로필등은 철저한 비밀에 부쳐졌고 "진 핵크먼","말론 브란도"라는
희대의 명배우들을 주요배역으로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특이할 만한 점은 워너가
수퍼맨의 아버지 조엘 역할에 캐스팅한 "말론 브란도"는 단 10분 출연으로 400만달러라는 기록적인 개런티를 안겨준 반면,
주인공 배역의 "크리스토퍼 리브"에게는 35만달러라는 저렴한(?) 개런티를 안겨주었다는 점이다.
수퍼맨 영화는 이 외에도 "리차드 도너"와 워너 브러더스의 갈등이야기등 수많은 이야기 거리를 낳기도 하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1979년작 "수퍼맨 THE MOVIE"
"수퍼맨 THE MOVIE" 는 개봉과 동시에 평단의 호평과 미국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에 힘입어
연일 박스오피스를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며
미국내에서만 9,000만 달러가 넘는 흥행수익을 기록하며 성공한다.
"크리스토퍼 리브"는 수퍼맨이라는 영화 한 편으로 인해 단숨에 최고의 스타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수퍼맨 시리즈 전통의 '저주' 때문인지 수퍼맨을 제외한 출연작에서는 신통치 않은 결과만 거듭하게 된다.
"수퍼맨 THE MOVIE" 로 톡톡한 재미를 본 워너는 속편 제작에 착수한다.
사실 속편 제작은 1편과 동시에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영화의 대부분이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
하지만 수퍼맨의 두번째 영화의 탄생도 그리 순탄치 않는 길을 걷는다.
워너는 제작 기간 내내 "리차드 도너"와 충돌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그를 해고하고
"리차드 레스터"라는 B급영화 전문 감독을 속편의 감독 자리에 앉히게 된다.
(하지만 이미 90%이상이 "리차드 도너"의 손에 완성된 상태였으므로 많은 수퍼맨 팬들은 리차드 레스터의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고있다.)
1981년 우여곡절 끝에 "수퍼맨2"가 개봉되었고 전편의 기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역시 7,000만불이 넘는 수익을 거두며 성공한다.
하지만 돈에 눈이 먼 워너는 "리차드 도너"를 해고하고 제작비를 줄여 제작한 3편이 흥행참패와 평단의 악평까지 받는 바람에
캐논이라는 소규모 영화사에 4편의 영화화 판권을 넘겨버린다.
"크리스토퍼 리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던 4편은 최악의 수퍼맨 영화라는 오점을 찍으며 쓸쓸하게 물러난다.
3편과 4편의 연이은 흥행실패로 이후의 모든 수퍼맨 영화화는 잠정 보류되었고
호사가들의 입에서 수퍼맨 5편에 대한 이야기가 솔솔 나돌기 시작할 즈음 "크리스토퍼 리브"가 낙마사고를 당한다.
그렇게 주인공을 잃어버린 수퍼맨의 5편에 대한 소문은 소리없이 수그러 들었다.
워너는 이후 수퍼맨의 드라마 시리즈에 집중하기 시작하고 드라마 시리즈가 연이은 성공을 거두며
다시금 수퍼맨 영화화를 추진하기 시작한다.
90년대 워너사는 "배트맨 리턴즈"를 히트시킨
헐리우드의 괴짜감독 "팀버튼"을 기용하고 본격적인 수퍼맨 부활 프로젝트에 착수하기에 이른다.
"팀버튼"은 인기배우 "니콜라스 케이지"를 수퍼맨 역할로 캐스팅까지 완료시키고 제작에 착수하지만 경영진이 원하던
수퍼맨의 세계관과 자신이 추구하던 세계관이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 워너에 의해 해고당하게 된다.
하지만 수퍼맨 팬들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차기 수퍼맨이라는 소리에 기겁을 했었기 때문에
"대머리 수퍼맨"의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에 환호성을 내지르는 웃지못할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후 워너는 "볼프강 페터슨"에게 "수퍼맨vs배트맨"이라는 언밸런스 히어로물을 주문하기도 하는등 수퍼맨 부활 프로젝트에만
수많은 돈을 투자한다. 하지만 번번히 영화화 계획은 물거품이 되버리고 지치기 시작한 워너 경영진은 수퍼맨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기 시작한다. 하지만 경쟁사인 유니버셜영화사에서 DC코믹스의 "수퍼맨"에 버금가는 팬층을 소유한 마블코믹스의 "스파이더맨"을
"샘레이미"라는 괴짜천재감독의 손에 맡기게 된다.
이 괴짜 감독은 진일보한 컴퓨터그래픽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스파이더맨"의 영화화에 성공하고 막대한 흥행수익을 거두며 헐리우드에 히어로물 부활붐을 일으킨다.
당황한 워너 경영진은 또다시 수퍼맨 부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또한 베트남전 후유증이 심각했던 1979년 "수퍼맨 THE MOVIE" 로 재미를 봤던 워너로써는
9.11 참사와 또다시 새로운 경제위기에 직면한 미국의 분위기를 놓칠 수 없었다.
이번에 선택된 감독은 "미녀 삼총사"를 스크린으로 성공적으로 부활시킨 "McG"였다.
하지만 수퍼맨 팬들의 반대가 거셌고 "McG"의 미온스런 반응에 실망한 워너는 러시아워 시리즈로
화려한 비주얼과 볼거리를 보여준 "브렛 레트너"에게 메가폰을 맡긴다.
"브렛 레트너"는 헐리우드에서도 유명한 수퍼맨의 광팬이었으며 호시탐탐 수퍼맨 부활 프로젝트에
욕심을 보였던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워너는 "유주얼 서스펙트"로 스토리 텔링 능력을 입증하고
x맨 시리즈로 히어로물에 새로운 느낌을 불어넣은 폭스의 "브라이언 싱어"와 바람을 피우기 시작한다.
"브렛 레트너" 못지않은 수퍼맨 광팬이었던 "브라이언 싱어"는 이미 "X맨-최후의 전쟁"의 제작에 착수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폭스를 배신하고 워너의 떡밥을 덥썩 물어버린다. 재미있는 것은 수퍼맨 프로젝트에서 물러난 "브렛 레트너"가
"브라이언 싱어"가 제작하던 "X맨-최후의 전쟁"의 바통을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워너는 "브라이언 싱어"에게 수퍼맨의 영광을 재현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브라이언 싱어"가 들고온 새로운 수퍼맨에 대한 기획안은 워너 경영진으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만들었고 워너는 2억불에 달하는 세계 영화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쏟아 부으며 촬영을 시작한다.
영화의 제목이 2005년 언론을 통해 공개 되면서 대중의 관심도 새롭게 돌아올 영웅에 환호하기 시작한다.
영화의 제목은 "수퍼맨 리턴즈"
수많은 헐리우드의 배우들이 수퍼맨 역할에 거론되었으나 누구도 "브라이언 싱어"를 만족시키진 못했다.
"브라이언 싱어"는 주인공을 물색하던 중 이미 오디션에서 탈락한 배우들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보게 되었고 캐스팅 비디오에서 어느 무명 배우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브라이언 싱어"에게서 환호성을 이끌어낸 배우는 다름아닌 "브랜든 루스"
기껏해야 시트콤 몇 편 출연한 경력이 전부일 정도로 철저한 무명 배우 였다.
"브랜든 루스"를 만난 "브라이언 싱어"는 바로 그 자리에서 흡족해하며 OK사인을 냈다고 한다.
"수퍼맨 THE MOVIE" 의 수퍼맨을 맡았던 "크리스토퍼 리브"와 거의 완벽할 정도로 흡사한 외모와 분위기,
심지어 무명 배우 출신이라는 배경상황과 수퍼맨에 캐스팅된 나이까지 비슷한 "제2의 크리스토퍼 리브"를 발견한 것이다.
워너 경영진 조차 "브랜든 루스"를 보고 경악했으며 "수퍼맨 리턴즈"를 제작하는 도중 고인이 되어버린 "크리스토퍼 리브"의 부인
"다나 리브" 조차 "브랜든 루스"의 얼굴을 보고 남편이 살아돌아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수퍼맨 리턴즈"는 그렇게 1987년 수퍼맨 4편 이후 정확히 19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브라이언 싱어"는 "리차드 도너"가 제작했던 "수퍼맨 THE MOVIE" 를 수퍼맨의 클래식이라고 평할 정도의
"수퍼맨 THE MOVIE" 의 추종자였고 이러한 점때문인지 "수퍼맨 리턴즈"는 "수퍼맨 THE MOVIE"와
흡사한 이야기 구조, 동일한 세계관을 지니게 되었다.
영화의 시작조차 "수퍼맨 THE MOVIE" 의 5년 뒤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그 시작을 알린다.
(사실 싱어는 수퍼맨2,3,4편은 수퍼맨 영화사의 오점이라고 지적할 정도)
너무나 "수퍼맨 THE MOVIE" 를 신봉했던 탓인지 영화의 곳곳에 의도적으로 원작의 분위기를 차용했으며
오프닝 부분과 테마 음악까지 1979년에 개봉된 "수퍼맨 THE MOVIE" 와 일치하고 있다.
영화의 내용은 안보신 분들을 위해서 PASS~ 하기로 하겠다.
하지만 철저히 올드팬들을 위해 제작된 탓인지 요즘 세대의 팬들에겐 그다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며
흥행수입 역시 간신히(?) 제작비를 회수하는 정도로 그치게 된다.
(사실 2억 5천만불 이라는 흥행수입은 어마어마한 흥행이지만 워낙에 제작비가 막대했던 탓에 워너는 만족하지 못한다)
워너와 "브라이언 싱어" 역시 갈등이 시작되었지만
최근 들려온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차기작에서도 "브라이언 싱어"를 신임하고 메가폰을 맡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사실 싱어는 X맨 시리즈 역시 1편은 가벼운 소개형식으로 전개하였고 2편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또한 당연하게(?) 차기작의 주인공 역시 "브랜든 루스"로 결정되었다고 하니
(이번 리턴즈의 비교적인 흥행실패로 대부분의 팬들에게서 감독경질은 허용하나 "브랜든 루스" 교체는 불가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다음 수퍼맨 영화에서도 하늘을 나는 그의 멋진 모습을 볼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지금까지 수퍼맨 시리즈의 간단한 역사와 "수퍼맨 리턴즈"의 제작비화를 이야기 해보았다.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나 많지만 필자의 피곤함 -.-;; 때문에 대~~충 마무리 들어간다. ㅋ
읽느라 무척 수고하셨다......하지만 이걸 다 쓴 나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마지막으로 "크리스토퍼 리브"와 "브랜든 루스"의 비교사진을 첨부한다.
(가르마 방향 빼고 너무나 닮은 두 사람)
@수퍼맨의 저주 = 수퍼맨의 저주를 본문에서도 잠깐 이야기 했지만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해보기로 하겠다.
수퍼맨 드라마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맹활약했던 "조지 리브스"는 의문의 권총자살로 세상을 떠났으며
"크리스토퍼 리브"는 낙마사고로 인하여 눈을 감는 순간까지 전신마비의 장애를 가지고 살아갔다.
"수퍼맨 THE MOVIE"에서 로이스 레인 역할을 맡았던 "마곳 키더"는 약물 중독에 시달렸으며
지금까지 다행히(?) 살아있는 역대 수퍼맨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 역시 후속 출연작의 연이은 실패로
대중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심지어 "로이스와 클락" 이라는 90년대의 대표적인 수퍼맨 TV시리즈의
한국판에서 수퍼맨 역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장세준"이라는 성우 조차도 여객기 추락사고로 세상을 등졌다.
최근 화제가 되는 것은 과연 "수퍼맨 리턴즈"의 새로운 수퍼맨 "브랜든 루스"는 이러한 저주에서 안전할 것인가에 대한
팬들의 궁금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