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어: 김종건(필묵 대표) 박철원(필묵 캘리그라피스트) 원은혜(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시각정보디자인 전공, 디자인정글아카데미 캘리그라피과정 1기) 손희수(Arthur D. Little 그래픽 디자이너, 디자인정글아카데미 캘리그라피과정 1기) 유현성(경원대학교 대학원 시각디자인 전공, 필묵커뮤니티 회원) 안복환(일본 문화의장학원 의복전문과정 의장과 학생, 필묵커뮤니티 회원)
1. 서예가 그리고 캘리그라피스트가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제가 처음으로 붓을 든 것은 10살쯤 초등학교 붓글씨 시간. 담임 선생님이 유명한 서예가로, 예술가 기질이 있는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붓글씨가 종이에서 튀어나가거나 종이가 찢어지거나 해도, “튼튼하고 씩씩해서 참 좋다!!”라고 칭찬을 하시던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예가 좋아지고 중학교 때부터 서예학원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돈되고 아름다운 글씨만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여 그러한 글씨 연습을 열심히 했는데, 중국의 고전을 배우면서 정돈된 글씨만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는 영어를 전공하였는데, 전공쪽에는 별로 힘을 기울이지 않고 매일매일 서예의 임서, 창작만을 하였습니다. 그때쯤 중국의 유명한 고서라는 고서는 다 임서하고(원본을 보고 그대로 씀), 그렇게 노력한 보람이 있어, 당시 최고의 서예가라 불리우던 저명대학 교수로부터도 “이미 독자적인 서풍을 이루었다”라고 평을 받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교사가 되어, 22세부터 29세까지 중학교에서 영어와 서예를 가르쳤습니다. 그때에 여러군데 서예전에도 출품을 하여, 일본 서단의 최고봉 중 하나인 서단원전에서는, 최고상인 ‘서단원상’등도 수상하였습니다. 당시 학교 교사로서 현실과 이상과의 거리감에 괴로워하며, 힘들게 나날을 보내고 있을 무렵, 서점에서 ‘상업서도’라는 한 권의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서예가나 디자이너가 쓰지 못하는 신선한 글자. 캘리그라피가 한눈에 들어와, 몸에 전류가 흐를 정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 천직이다라고 그때 깨달았던 것입니다. 논어에 ‘서른 살 때 입신했다. (三十而立)’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제가 서른이 되었을 때 교직을 그만두고, 당시 소속되어 있던 서예단체의 사범이나 임원직을 모두 그만두고서 글씨에 내 생애를 걸 것을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2. 캘리그라피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에게 흔히 캘리그라피 제작을 할 때 ‘서로 다르게 쓰는 것이 힘들지는 않은지요?’ 라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됩니다만 저는 조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컨셉에 맞게끔 변형 시키는 것은 남의 흉내가 아닌 자기자신의 작품이고, 또한 자신의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러이러한 이미지로’라고 주문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상대방의 감성과 아이디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힘들기는커녕 좋은 공부를 한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경우, 나는 최소 3개의 안건에서 많을 때는 50개의 안건을 냅니다. 요구받으면 같은 문자를 100개든 1000개든 다르게 쓰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건 자랑을 하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 글씨체는 무한하고 속 깊은 것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선택되지않고 반대로 버릴려다가 일단 보류했던 것이 선택되어질 때도 있습니다. ‘도대체 왜?’라고 그때는 생각합니다만,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것이 맞을 때도 있어 ‘바둑은 대국자보다 구경꾼이 여덟 수 더 앞을 내다본다’라는 일본어 속담이 있는데, 제3자이기 때문에 사물의 본질이 더 잘 보이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3. 일본에서의 캘리그라피 디자인의 현황은 어떠한가요? 옛날에는 전문 캘리그라피스트는 것이 거의 없어서 상품의 문자나 가게 로고 등은 디자이너 또는 간판가게 사람이 만들거나, 그것 역시 여의치 않으면 일반 서예가에게 의뢰하여 제작하거나 했었습니다. 그러나 약 10년 전, 제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서서히 캘리그라피라는 세계의 전문성이 세상에서 인정을 받게 되면서, 현재에 이르러서는 디자인의 중요 요소의 하나로 인식되어지게 되었습니다. 디자인에 사용되는 캘리그라피의 필자는 세 종류로 분류됩니다. “디자이너, 일반 서예가, 전문 캘리그라피스트” 확실한 수치는 아니지만 현재 50%이상은 디자이너들이 스스로 제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을 서예가와 전문 캘리그라피스트가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직접 제작하는 이유는 서예가나 전문 캘리그라피스트에게 의뢰를 하고 싶어도 예산면에서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전과는 틀려진 것이 현재는 디자이너 역시 캘리그라피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어, 특히 일본 고유의 디자인을 다루는 디자이너 중에는 제가 주최하고있는 캘리그라피 교실에 참가하여 캘리그라피의 질 향상에 노력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또한 디자이너들이 서예를 못쓸 경우, 일반 서예가에게 캘리그라피를 의뢰하였었는데 일반 서예가의 대부분은 서예 자체는 훌륭하나, 상품이나 디자인의 컨셉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근래 주목을 받게 된 것이, 디자인서(書)의 스페셜리스트인 캘리그라피스트인 것입니다. 상품의 디자인 컨셉을 존중하면서 디자인적으로도 서적(書的)으로도 수준 높은, 그리고 강렬하며 독창적인 캘리그라피를 만드는 스페셜리스트, 그것이 전문 캘리그라피스트 입니다. 현재까지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스스로 캘리그라피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문가에게 의뢰할 금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돈을 지급하는 것은 클라이언트인데 그들 중에는 “붓으로 써져 있고 읽을 수 있기만 하면 된다”라는 정도로 밖에 생각을 안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물론이고 클라이언트들의 의식개혁 또한 앞으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4. 일본에서의 캘리그라피스트들의 현황은 어떠한가요? 제가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을 때, 그걸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 전문가는 제가 아는 한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일본 디자인 서도명감(書道明鑑)’에 수록되어 있는 디자인 서예가는 약 500명. 게재되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書라는 직종에 관련되어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 중 전문가로서 디자인書만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몇 십명 밖에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의 사람들은 디자이너이면서 서예학원을 운영하거나 등 다른 직업과 같이 겸해서 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수준역시 상당히 훌륭한 작품부터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만한 작품까지 실로 다양합니다.
5. 일본의 캘리그라피의 흐름과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본에서의 캘리그라피에 관한 다채로운 양상은 서예가보다는 오히려 디자이너 또는 다른 예술 분야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일반 서예가처럼 중국의 고전서예를 최고로 인식하고 탐구하는 자세로는 현재의 일본 여러 곳에서 눈에 띄는 다채로운 글씨체는 생겨나지 않았을 겁니다. 중국의 번화가 등을 걷다 보면, 고전 서예적인 간판이 많고 대신 다양성은 별로 많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지금도 중국에서는 고전적인 글씨체에 대한 존경심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비해 일본은, 시메트리(대칭, 좌우의 균형) 보다는 자연스러운 기울림에 정취를 느끼는 문화적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문화를 서예에 처음 구체화 시킨 것은, 서예가보다는 화가나 판화가 그리고 조각가나 시인 또는 승려 등 다른 분야의 문인들이었고, 그리고 감성의 세계에서 승부를 다투는 디자이너들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서예를 일반 대중이 많이 배우고, 매년 커다란 서예전이 여기저기서 열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예가의 작품은 일반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고 오히려 전문 서예가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작품쪽이 인정을 받곤 합니다. 서예가의 그것은 대부분 단순히 기교적이기만 하고 가슴을 울리는 것이 적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대중문화에 직결되어 있는 디자이너쪽이 글자를 통해 인간 감성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동기나 감각에 있어 필연적으로 서예가보다도 훨씬 높은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디자이너는 뛰어난 감각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서예를 쓰는 기술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등장한, 현재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전문 캘리그라피스트인 것입니다. 디자이너의 감성과 서예가의 테크닉을 모두 갖춘, 디자인쪽과 서예쪽 모두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높은 수준의 캘리그라피를 창작하는 스페셜 리스트, 21세기에 있어 그 존재의의는 점점 더 높아지고 활동의 장 또한 점점 더 넓어질 것입니다.
6. 한국에서 캘리그라피스트가 되고자 하는 분들에게 캘리그라피스트가 되기 위한 어프로치에는 3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디자이너이고 또 하나는 서예가, 그리고 마지막은 다른 분야에서의 어프로치입니다. 디자이너들은 각자 독자적인 훌륭한 디자인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살리면서 서예 기술을 높여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우선 붓에 익숙해 질 것, 붓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될 것, 무조건 많이 써보는 연습을 합시다. 그리고 때로는 우수한 캘리그라피 작품을 따라해서 써 보는 것도 좋겠고, 스스로 과제를 만들어서 그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법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창작해 나가는 것도 좋겠지요. 디자인 서예를 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고전 서예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고전은 발상과 기법의 보고라고 할 수 있으므로, 접해서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고, 서적(書的)인 면에서의 고품격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고전은 반드시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예가들은 우선 고전서예의 기존 개념을 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해주십시오. 고전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어차피 과거 유물일 뿐입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새로운 서예 세계를 목표로 삼고 있다면, 고전이라는 속박물에서 자신을 해방 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전 서예를 공부한 것이 결코 소용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고전에서 배운 발상과 기법에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자기 고유의 오리지널리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어프로치로부터 캘리그라피스트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역시 ‘서예의 표현기술을 닦을 것’, ‘감성을 수련할 것’ 이 두 가지가 필요불가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예의 표현 기술을 닦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많이 쓰면서 붓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전 서예를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성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캘리그라피 작품을 많이 볼 것과 또한 서예 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분야 쪽에도 흥미를 가지고, 人▪物▪自然 등 어떠한 것이든 자신의 마음을 끄는 것들에게 많이 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의 뜻 있는 여러분들, 특히 젊은이가 캘리그라피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캘리그라피스트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에 대해 저는 대단히 기뻐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훌륭한 전통문화에 현대의 신선함을 접목시킬 수 있을 지의 여부는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분들, 특히 시대를 리드하는 아티스트나 디자이너들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 서울에서 제게 찾아와주신 젊은이들의 열정에 접하였을 때, 저의 꿈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국·일본 그리고 아시아의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지금 예감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지금 함께 새로운 세계의 장을 열어 아시안파워로써 세계에 선풍을 일으킵시다.
똥의 심층적분석
김종건(필묵 대표)
박철원(필묵 캘리그라피스트)
원은혜(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시각정보디자인 전공, 디자인정글아카데미 캘리그라피과정 1기)
손희수(Arthur D. Little 그래픽 디자이너, 디자인정글아카데미 캘리그라피과정 1기)
유현성(경원대학교 대학원 시각디자인 전공, 필묵커뮤니티 회원)
안복환(일본 문화의장학원 의복전문과정 의장과 학생, 필묵커뮤니티 회원)
1. 서예가 그리고 캘리그라피스트가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제가 처음으로 붓을 든 것은 10살쯤 초등학교 붓글씨 시간. 담임 선생님이 유명한 서예가로, 예술가 기질이 있는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붓글씨가 종이에서 튀어나가거나 종이가 찢어지거나 해도, “튼튼하고 씩씩해서 참 좋다!!”라고 칭찬을 하시던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예가 좋아지고 중학교 때부터 서예학원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돈되고 아름다운 글씨만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여 그러한 글씨 연습을 열심히 했는데, 중국의 고전을 배우면서 정돈된 글씨만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는 영어를 전공하였는데, 전공쪽에는 별로 힘을 기울이지 않고 매일매일 서예의 임서, 창작만을 하였습니다. 그때쯤 중국의 유명한 고서라는 고서는 다 임서하고(원본을 보고 그대로 씀), 그렇게 노력한 보람이 있어, 당시 최고의 서예가라 불리우던 저명대학 교수로부터도 “이미 독자적인 서풍을 이루었다”라고 평을 받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 교사가 되어, 22세부터 29세까지 중학교에서 영어와 서예를 가르쳤습니다. 그때에 여러군데 서예전에도 출품을 하여, 일본 서단의 최고봉 중 하나인 서단원전에서는, 최고상인 ‘서단원상’등도 수상하였습니다.
당시 학교 교사로서 현실과 이상과의 거리감에 괴로워하며, 힘들게 나날을 보내고 있을 무렵, 서점에서 ‘상업서도’라는 한 권의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서예가나 디자이너가 쓰지 못하는 신선한 글자. 캘리그라피가 한눈에 들어와, 몸에 전류가 흐를 정도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 천직이다라고 그때 깨달았던 것입니다. 논어에 ‘서른 살 때 입신했다. (三十而立)’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제가 서른이 되었을 때 교직을 그만두고, 당시 소속되어 있던 서예단체의 사범이나 임원직을 모두 그만두고서 글씨에 내 생애를 걸 것을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2. 캘리그라피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에게 흔히 캘리그라피 제작을 할 때 ‘서로 다르게 쓰는 것이 힘들지는 않은지요?’ 라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됩니다만 저는 조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컨셉에 맞게끔 변형 시키는 것은 남의 흉내가 아닌 자기자신의 작품이고, 또한 자신의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러이러한 이미지로’라고 주문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상대방의 감성과 아이디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힘들기는커녕 좋은 공부를 한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경우, 나는 최소 3개의 안건에서 많을 때는 50개의 안건을 냅니다. 요구받으면 같은 문자를 100개든 1000개든 다르게 쓰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건 자랑을 하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 글씨체는 무한하고 속 깊은 것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선택되지않고 반대로 버릴려다가 일단 보류했던 것이 선택되어질 때도 있습니다. ‘도대체 왜?’라고 그때는 생각합니다만,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것이 맞을 때도 있어 ‘바둑은 대국자보다 구경꾼이 여덟 수 더 앞을 내다본다’라는 일본어 속담이 있는데, 제3자이기 때문에 사물의 본질이 더 잘 보이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3. 일본에서의 캘리그라피 디자인의 현황은 어떠한가요?
옛날에는 전문 캘리그라피스트는 것이 거의 없어서 상품의 문자나 가게 로고 등은 디자이너 또는 간판가게 사람이 만들거나, 그것 역시 여의치 않으면 일반 서예가에게 의뢰하여 제작하거나 했었습니다. 그러나 약 10년 전, 제가 이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서서히 캘리그라피라는 세계의 전문성이 세상에서 인정을 받게 되면서, 현재에 이르러서는 디자인의 중요 요소의 하나로 인식되어지게 되었습니다.
디자인에 사용되는 캘리그라피의 필자는 세 종류로 분류됩니다.
“디자이너, 일반 서예가, 전문 캘리그라피스트”
확실한 수치는 아니지만 현재 50%이상은 디자이너들이 스스로 제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을 서예가와 전문 캘리그라피스트가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직접 제작하는 이유는 서예가나 전문 캘리그라피스트에게 의뢰를 하고 싶어도 예산면에서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전과는 틀려진 것이 현재는 디자이너 역시 캘리그라피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어, 특히 일본 고유의 디자인을 다루는 디자이너 중에는 제가 주최하고있는 캘리그라피 교실에 참가하여 캘리그라피의 질 향상에 노력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또한 디자이너들이 서예를 못쓸 경우, 일반 서예가에게 캘리그라피를 의뢰하였었는데 일반 서예가의 대부분은 서예 자체는 훌륭하나, 상품이나 디자인의 컨셉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근래 주목을 받게 된 것이, 디자인서(書)의 스페셜리스트인 캘리그라피스트인 것입니다. 상품의 디자인 컨셉을 존중하면서 디자인적으로도 서적(書的)으로도 수준 높은, 그리고 강렬하며 독창적인 캘리그라피를 만드는 스페셜리스트, 그것이 전문 캘리그라피스트 입니다.
현재까지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스스로 캘리그라피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문가에게 의뢰할 금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돈을 지급하는 것은 클라이언트인데 그들 중에는 “붓으로 써져 있고 읽을 수 있기만 하면 된다”라는 정도로 밖에 생각을 안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물론이고 클라이언트들의 의식개혁 또한 앞으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을 때, 그걸로 생계를 꾸리고 있는 전문가는 제가 아는 한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일본 디자인 서도명감(書道明鑑)’에 수록되어 있는 디자인 서예가는 약 500명. 게재되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書라는 직종에 관련되어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 중 전문가로서 디자인書만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몇 십명 밖에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의 사람들은 디자이너이면서 서예학원을 운영하거나 등 다른 직업과 같이 겸해서 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수준역시 상당히 훌륭한 작품부터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만한 작품까지 실로 다양합니다.
5. 일본의 캘리그라피의 흐름과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본에서의 캘리그라피에 관한 다채로운 양상은 서예가보다는 오히려 디자이너 또는 다른 예술 분야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일반 서예가처럼 중국의 고전서예를 최고로 인식하고 탐구하는 자세로는 현재의 일본 여러 곳에서 눈에 띄는 다채로운 글씨체는 생겨나지 않았을 겁니다.
중국의 번화가 등을 걷다 보면, 고전 서예적인 간판이 많고 대신 다양성은 별로 많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지금도 중국에서는 고전적인 글씨체에 대한 존경심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비해 일본은, 시메트리(대칭, 좌우의 균형) 보다는 자연스러운 기울림에 정취를 느끼는 문화적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문화를 서예에 처음 구체화 시킨 것은, 서예가보다는 화가나 판화가 그리고 조각가나 시인 또는 승려 등 다른 분야의 문인들이었고, 그리고 감성의 세계에서 승부를 다투는 디자이너들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서예를 일반 대중이 많이 배우고, 매년 커다란 서예전이 여기저기서 열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예가의 작품은 일반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고 오히려 전문 서예가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작품쪽이 인정을 받곤 합니다. 서예가의 그것은 대부분 단순히 기교적이기만 하고 가슴을 울리는 것이 적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대중문화에 직결되어 있는 디자이너쪽이 글자를 통해 인간 감성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동기나 감각에 있어 필연적으로 서예가보다도 훨씬 높은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디자이너는 뛰어난 감각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서예를 쓰는 기술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등장한, 현재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전문 캘리그라피스트인 것입니다. 디자이너의 감성과 서예가의 테크닉을 모두 갖춘, 디자인쪽과 서예쪽 모두에서 지금까지 없었던 높은 수준의 캘리그라피를 창작하는 스페셜 리스트, 21세기에 있어 그 존재의의는 점점 더 높아지고 활동의 장 또한 점점 더 넓어질 것입니다.
캘리그라피스트가 되기 위한 어프로치에는 3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디자이너이고 또 하나는 서예가, 그리고 마지막은 다른 분야에서의 어프로치입니다. 디자이너들은 각자 독자적인 훌륭한 디자인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살리면서 서예 기술을 높여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우선 붓에 익숙해 질 것, 붓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될 것, 무조건 많이 써보는 연습을 합시다. 그리고 때로는 우수한 캘리그라피 작품을 따라해서 써 보는 것도 좋겠고, 스스로 과제를 만들어서 그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법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창작해 나가는 것도 좋겠지요.
디자인 서예를 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고전 서예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고전은 발상과 기법의 보고라고 할 수 있으므로, 접해서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고, 서적(書的)인 면에서의 고품격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고전은 반드시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예가들은 우선 고전서예의 기존 개념을 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해주십시오.
고전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어차피 과거 유물일 뿐입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새로운 서예 세계를 목표로 삼고 있다면, 고전이라는 속박물에서 자신을 해방 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전 서예를 공부한 것이 결코 소용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고전에서 배운 발상과 기법에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자기 고유의 오리지널리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어프로치로부터 캘리그라피스트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역시 ‘서예의 표현기술을 닦을 것’, ‘감성을 수련할 것’ 이 두 가지가 필요불가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예의 표현 기술을 닦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많이 쓰면서 붓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전 서예를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성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캘리그라피 작품을 많이 볼 것과 또한 서예 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분야 쪽에도 흥미를 가지고, 人▪物▪自然 등 어떠한 것이든 자신의 마음을 끄는 것들에게 많이 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의 뜻 있는 여러분들, 특히 젊은이가 캘리그라피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캘리그라피스트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에 대해 저는 대단히 기뻐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훌륭한 전통문화에 현대의 신선함을 접목시킬 수 있을 지의 여부는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분들, 특히 시대를 리드하는 아티스트나 디자이너들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 서울에서 제게 찾아와주신 젊은이들의 열정에 접하였을 때, 저의 꿈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국·일본 그리고 아시아의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지금 예감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지금 함께 새로운 세계의 장을 열어 아시안파워로써 세계에 선풍을 일으킵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