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가자- 산에서 느끼는 가을

최운경200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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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가자- 산에서 느끼는 가을

그림책 이야기를 오래 전부터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첫 이야기를 이렇게 꺼내 본다.

 

산에 오른 기억을 떠올려보자.

 

1번 그림- 아빠가 방학이면 우리 형제들을 모조리 깨워 동네 야산의 약수터로 끌고 가다시피 해 서 데리고 다니던 기억이 난다. 갈 때는 찡그리고 갔지만 올 때는 싱그러운 이슬을 머금고 왔다.

 

2번 그림- 여고시절, 전주의 남고산성에서부터 3-4개 마을을 산으로 넘었던 기억이 있다. 가을이었고, 단풍이 무척 아름다웠다. 다리는 아팠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다. 후백제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던 장소를 우리는 마치 전사가 된 양 씩씩하게 걸었었다.

 

3번 그림- 대학교 3학년 가을, 아버지 학교의 선생님 몇 분과 전북 진안의 구봉산을 올랐다. 별 준비없이 따라 갔다가 정말 호되게 고생했던 기억이 있지만, 그 또한 무척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날 처음 순대국을 먹었다. 먹을 수 없는 것이라 여겼던 그 음식을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그 후로도 없다.

 

4번 그림- 역시 대학 3학년 어느 가을날, 도시락을 전해드리고 가라는 엄마 심부름으로 아빠가 근무하시는 학교에 전해드리고, 내가 다니는 학교 버스는 타지 않고 정반대의 대둔산 가는 버스를 타고 혼자 산에 갔던 기억. 랜드로바 신발에, 티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사파리 차림이었지만 그날 가방은 정말 무거웠다. 두꺼운 전공서적 3권을 학교도서관에 반납하는 날이어서 들고 나왔는데 학교가기엔 너무도 근사한 하늘이 나를 산으로 유혹했다. 그 산에서 만난 노신사 두분. 카이스트 박사님들이셨는데, 좋은 인생의 말씀들을 들었었지.

 

5번 그림 - 변산반도의 내변산을 야간 산행 했던 기억. 그날의 달빛을 잊을 수 없다. 달빛이 아직도 내 가슴에 스며 있는 듯하다. 젖은 그 달빛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멀리 소금기있는 바다가 있었고, 험하지 않으면서 굽이굽이 아름다운 산이 있고, 사람들이 있었으며, 달이 있던 밤이었다. 새벽 작은 암자에 도착한 우리들에게 독한 중국술을 건네던 스님도 떠오른다.

 

6번 그림- 강원도 골짝의 내설악을 혼자 오르던 1997년 9월의 일도 잊을 수 없다. 내설악 오세암의 노스님도 떠오른다. 처녀가 혼자 겁도 없다시며 욕을 내뺕다가도, 한끼 식사를 허락하신 그 따뜻함과 산사에서 얻어 먹은 그 밥이 아직도 혀끝을 맴돈다.

 

자, 내가 결혼을 하기 전 산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아버지란 존재가 앞서있다. 아버지는 산과 같은 존재였다. 오르기 험한 산이면서, 정복할 수도 있는 산이면서, 나를 품어주는 산이면서, 나를 꾸짖고 타이르는 산이면서, 나를 어디론가 이끌어주는 산이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산을 보여줄 수 있을까?

는 대학시절 어느 대학의 세미나에서 만난, 그저 우리에게는 먼저 세상에 이름을 떨친 선배로 부러움을 샀던 이상권이 글을, 도깨비 그림을 잘 그리는 것으로 기억되는 한병호의 그림으로 어우러져 있다.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서로 다르지만, 한편의 시처럼 가을 산에 오르는 부녀의 모습 속에서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 손에 이끌려 올랐던 몇 몇 산을 떠올렸다. 이제는 연로하셔 푸석해진 아버지, 그 삶에 윤기보다는 지난한 고통과 설움이 더 짙은 아버지. 아직도 여유보다는 맡은 일을 다하지 못한 자의 조급함이 더 있는 아버지. 그 아버지와 다녔던 적지 않은 산들이 떠오른다.

그림책에 나오는 산은 서울 도심의 도봉산 쯤으로 보이지만, 나는 거기서 구봉산도 보이고, 지리산도 보이고, 우리 동네 뒷산도 보였다. 가을산처럼 변해버린 아버지. 아버지의 삶은 붉은 단풍처럼 아름답지도 곱지도 않았지만, 그 진실함과 부단한 노력만은 우리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 산이 펼쳐지고 있는 요즘이다. 한 권의 그림책을 보면서 왜 이렇게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지 머릿 속이 부산스럽지만, 아무래도 이것또한 내 나이 탓인가 싶다. 또 핑계를 대자면 가을 탓이 아닌가 싶다. 아이들 손잡고 산에 올라야 겠다.

우리 동네가 훤히 다 보이는 우리집 뒷산 노적봉에 올라, 시원스레 고함 한번 지르고, 노랗게, 빨갛게 물든 동네 한번 구경하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