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가 구두를 밟는 것처럼

신용연200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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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가 구두를 밟는 것처럼

 

올 가을에는 유난히 경, 조사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서 너 개의 봉투를 함께 쓸 때도 있었습니다.

`축 결혼" `부의" 그리고 다시 `축 결혼".

경, 조사에 자주 다니다 보니 상가의 슬픔이나 결혼식장의 기쁨에 녹아드는 강도가 자꾸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의례적인 조문객, 하객이 되어있음을 보고 스스로 놀라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섞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녁 상가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亡者의 신발뿐이다

-유홍준의 시 `상가에 모인 구두들" 중에서-

 

조문이라는 것도 주고 받는 것이지요. 유족에게 눈도장 찍고, 아는 얼굴끼리 모여 술잔을 나누다 보면 산 사람들의 목청만 높아갑니다. 나중에는 상가임에도 죽은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구두가 구두를 밟는 것처럼, 살아있는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술과 함께 욕지거리를 건넵니다. 육개장에 밥 말아먹고, 술까지 나눠 마십니다. 장례식장은 갈수록 커지고, 유족은 편해지고, 음식은 기름집니다. 그럴수록 죽은 사람은 더 외로워 보입니다.

〈김택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