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윤옥환200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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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으로부터 트블리스로 가는 도로역시 행인이나 민가가 없었으며 도로는 있으나 자동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질 못하였다.

민둥산의 정상부분을 머리위로 바라보며 산의 크기를 어림잡아보았다.

그리고 정상을 넘어서면 어떤 지형이 기다리고 있는지 짐작이 되질않는다.

음식과 마시는 것이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어서 마을이나 도시가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제르바이잔과의 국경으로부터 흑해연안 도시인 포티까지 거리가 500여킬로 남짓한 거리이므로 최악의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오르막을 따라 올라가 잠시 평원에 이르더니 우측으로 길게 꺽기는 오르막 끝에 정상인듯한 부분이 보였다.

정상에 도달하기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리지않았다.

정상부분의 언저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리막의 끝을 따라

희미하게 커다란 도시가 나타났다.

아침햇살이 찬란하였다.

내리막이 끝날 무렵에 왼편으로 식당과 카센타가 함께 붙어있는 곳이 있었으며 두세명의 주민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모습이 보였다.

휴식겸 식사시간을 가졌으며 움출였던 몸을 녹일 수있었다.

발아래 멀지않은 곳에 보이는 산아래도시가 조지아의 수도인 트블리스라는 것을 다시하번 확인을 하였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대도시에서는 비자문제를 제외하면 가능한한 속히 지나가는 것을 머리에서 떠올렸다.

필요한것만 구입하고 내리막을 빠르게 내리달리며 도로변의 주요소와 행인들을 눈길에 넣는듯 마는듯하였다.

트블리스는 크지않아서 짧은 시간사이에 등뒤에 바라보이는 형국이 되었다.

도심내에는 도로가 거칠고 손상이 되어있어서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며 통과를 하였다.

조지아는 중앙아시아의 여태까지의 모습과는 완전히 틀린다.

일단 초목과 나무들이 많이 보이고 산길도 많이 나타난다.

사막이나 광야는 이미 끊났으며 한국의 두메산골과 같은 정경이 이어졌다.

흑해를 향하여 가면 갈수록 다욱 과실수등의 나무와 새들의 울음소리가 마음을 편하게 하여준다.

단지 이곳에도 음주를 즐겨하는 사람들때문에 대낮에도 술에취한 사람들과 노상이나 점포앞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게되었다.

일자리가 많지 않고 기술을 요하는 일들이 많지않아서 인지 하루의 생활상들이 일생의 생활상인것 같다.

일을 빨리 처리할 이유도 없었으며 어딘가를 서둘러서 갈 필요도 없는 듯한 유유자적하는 모습들이다.

지나가는 나를 발견하면 손짓을하며 합석할것을 권하는것이 너무 자주있었으므로 갈길 바쁜 나는 그저 대충 답례를 하고

지나치는 것이 상책이었다.

도로변에서 공공취로 사업을 하거나 기타 공동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도시락과 함께 보드카를 나란히 챙겨놓고 있음이 보였다.

한국과 같이 산수가 풍부하고 수목이 많으니 식수가 풍족하고 수질이 좋았다.

아제르바이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웃거나 대화도중에 보이는 성인남여 거의 모두의 치아가 금을 된 금이라는 것이다.

치아가 상해서인지 아니면 멀쩡한 치아를 무시하고 금니로 바꾸는 지는 알수 없지만 이토록 금니를 많이 하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 어느곳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조지아에 들어서니 그러한 광경을 찾을 수가 없다.

아제르바이잔보다는 약간 더 거칠은 민심이지만 악한 사람은 없었다.

아제르바이잔보다는 더욱 물질이나 돈을 요구하였지만 그것도 그다지 심각한것은 아니었다.

굽는 빵의 맛과 매력에 점점 깊이 빠졌다.

머나먼 거리를 무료하게 가는것을 줄이기 위하여 구운 빵을 가방에 넣고 가면서 수시로 입에 물면 무료함을 확연하게 줄일수있어서 좋았다.

도로변에 특색있는 식당이 있고 식당옆에는 무료 생수를 제공하는 수도나 샘물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느나라나 마찬가지로 빈부의 차가 있듯이 값비싼 외제 자동차들을 타고 다니며 돈으 풍부하게 쓰는 층도 있다.

졸리울 듯한 한낮의 더위에 마을이나 민가앞의 그늘 아래엔 과일 파는 아저씨 아주머니가 있어 가끔은 과일로 목의 갈증을 줄일 수있다.

조지아의 끝에 위치한 포티라는 항구로 가는 마지막 도시가 제스타포니라는 도시이다.

그동안 치아중의 하나가 충치가 먹었는지 통증이 있었은데 더욱 심하여 참기 어려운 상황이 되엇다.

하루를 묵어야 하는 시간상의 고려때문에 겸사겸사하여 치과를 찾았다.

우리나라의 도서지방 낙후한 보건소 같은 치과를 찾아서 들어갔다.

그나마 이지역에선 최상의 의료시설이라 하나 누추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영어로 회화가 유창한 40대로 보이는 의사주변에 간호사들이 여럿 둘러싸서 대화와 진찰의 모습을 지켜본다.

그다지 환자도 많지 않은데다 피부색 눈색 다른 이방인을 대하는 그들의 호기심을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엇다.

병원이 일단 약간의 소동이 일어났다.

어금니 하나가 충치가 심하다며 임시로 스켈링을 하여주겟다고 담당의사가 이야기 하고는 즉시 치료에 들어갔다.

제스타포니에서 포티항구에 있는 우크라이나 행 훼리 시간표를 알아보려 했으나 알아 낼수 없었으므로 별수없이 포티라는 항구에 도착해서야 시간표를 알 수있었다.

모처럼 제스타포니에서 편안한 하루밤을 지낼수 있었으며

현지의 젊은 청년들과 유쾌한 시간을 함께 나누는 추억의 조각도 남길 수있었다.

사인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사진을 함께 찍자며 사진기를 가져오는 사람도 있었다.

모든것이 좋았는데 음주를 하지않는 나로서는 과음을 하며 권하는 술잔을 피하는것이 최대의 난관이었다.

젊은이들의 무책임한 일상을 보고있노라면 약간의 서글픔이 떠오른다.

세계와 한국을 비롯한 중국,일본등은 하루만 주저해도 경쟁에 밀리는 시간과의 싸움속에 살고 있는데...

대다수의 주택들은 한번 지으면 대를 이어서 수리하지않고 지낸다.

벽이 허물고 페인트가 모두 벗겨져 밤이면 유령이 나올듯 한데

일체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집집마다 정원과 마을의 공터에는 배나무 사과나무 포도나무등이 심겨져 있어서 과일은 부족하지 않아보였다.

자동차들 역시 연식이 너무 오래되어 조명장치나 방향등등이 모두 떨어져나간 차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현실과 경제 상황을 듣고 있는 마을의 젊은이들에겐 머나먼 이야기처럼 신기하게 들릴 일이다.

항구도시 포티에 다다르자 모든것이 새롭고 신선하다.

오래동안 전쟁을 치룬 나자신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그럴듯한 식당을 찾아 들어가 피자를 한판 주문하였으며 흑차를 마시며

조지아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어둡지만 식사후에 탐문을 하여 훼리표를 취급하는 여행사를 미리 물색하여 두고 나서 저렴한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흑해의 밤바람이 풍부하게 느껴졌으며 바닷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