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장사 *** 아름다운 내장산국립공원의 품안에 안겨 있는 내장사, 한때는 50여 동의 대가람이 들어섰던 때도 있었지만, 정유재란과 6.25 때 모두 소실되고 지금의 절은 대부분 그 후에 중건된 것이다. 금산사와 함께 전라북도의 대표적인 절이다. 내장산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가운데에 자리잡아 주변경치가 매우 아름다우며, 특히 가을철 단풍이 들 무렵의 절 주변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백양사,방장산, 장성호, 담양호 등이 주변에 있고 주요문화재로는 내장사 이조등종이 보존되어 있다. 전각 배치도
일주문
내장사 진입로
내장사 부도전(옛 영은사 절터)
부도탑과 비
천왕문
사대천왕
내장사는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백제 제30대 무왕(600-640)37년인
서기 636년(백제멸망 660년24년 전)에 당시 도승이신 영은조사께서 지금의 절 입구
부도전 일대로 추정되는 자리에 대웅전등 50여동에 이르는 대가람으로 백제인의 신앙적 원찰로서 영은사 란 이름으로 창건되었고 1098(고려조 숙종3년) 행안선사께서 전각당우를
내장산 내장사(內藏寺)
일주문
내장사 진입로
내장사 부도전(옛 영은사 절터)
부도탑과 비
천왕문
사대천왕
내장사는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백제 제30대 무왕(600-640)37년인
서기 636년(백제멸망 660년24년 전)에 당시 도승이신 영은조사께서 지금의 절 입구
부도전 일대로 추정되는 자리에 대웅전등 50여동에 이르는 대가람으로 백제인의 신앙적 원찰로서 영은사 란 이름으로 창건되었고 1098(고려조 숙종3년) 행안선사께서 전각당우를
중창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 자세한 연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혜루
1557년(조선조제13대 명종12년) 희묵대사가 법당과 요사를,1639년(인조17년) 부용대사가
사우를 중창하고 불상을 개금했으며,1779년(정조3년) 영운대사가
대웅전과 시왕전을 중수하고 요사를 개축하였다.
극락전
대웅전
1923년 백학명 선사가 사세를 중흥시킨 뒤 1938년 매곡선사가 대웅전과 명부전, 요사등을
신.개축하여 현 위치에 내장사의 면모를 일신시켰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1951년1월12일 소실된 것을 마지막으로 창건이래 5화 7건으로 역사가 있다.
해운당
1957년 주지 야은스님께서 요사,1958년에 현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1964년 무량수전을 세우고 1965년 대웅전 불상과 탱화를 조성 봉안 하였다.
그 후 1974년 국립공원 내장사 복원계획에 따라 일주문, 명부전, 정혜루를 복원하고 사천왕문이 신축되었다.조선조 성종때 석학 성임(1421-1484)은 정혜루기에서 영은사는 고려말엽 지엄선사의 개산에
서 비롯된다고 기록한 뒤, 정혜루는 당시 영은사의 문루로 1467년(세조12년)에 시작하여
다음해 준공된 3간으로 그 규모나 형태가 장엄무비하다고 전하고 있다.
석탑
최근 내장사는 향적원과 정혜원, 요사등을 신축하고 1994년 10월에
는 사리탑을 건립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관음전
관음보살상
원래 내장산에는 명찰 영은사가 있었으니 영은사는 지금의 부도전 위치에 있었다.
명부전
지장보살상
좌측
우측
범종각
경내 전경과 내장산
산내 암자로는 벽련암과 도덕암, 그리고 원적암이 있고 포교당이 한군데 있다.
현재 주지는 대원 스님이시다.
* 성보 문화재 *
1.조선동종
조선영조 44년(1768년)에 제작된 높이 80cm 종신의 높이60cm 구경50cm의 소형 범종이다.
용머리의 정교한 문양과 음향이 조선시대 작품으로 수작으로 꼽힌다.
명기에 영조 44년 시주 조한보가 그의 아버지 (조인구) 그의 어머니(양씨) 의 기복을 위하여
조성한 것이라 적혀있다. 전남 장흥군 보림사가 폐찰될 즈음하여
시왕상과 범종을 내장사로 옮겼다. 시왕상은 한국동란으로 소실되자
원적암에서 현 내장사로 옮겨온 것이다.
1979년 12월 27일 전라북도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되었다.
2. 영은사지
영은사는 636년 영은조사가 창건하였는데 가람이 50여 동에 이르는 대사찰이었다고 한다.
1539년 내장산에서 승려들의 난동이 일어난뒤 이웃한 내장사와 더불어 소각되었다.
1925년 내장사가 벽련암(碧蓮庵)이 있던 자리로 옮기면서 한때 이름이
벽련사로 바뀌었는데 이때 옛 영은사 자리에는 영은암을 두었다.
영은암은 현재 내장사의 부속암자로 되어 있다.
3. 용굴암지
금선계곡내 기름바위 못미쳐 신선봉으로 오르는 오른쪽 절벽위에 암굴이 있으니 바로 용굴이요, 이곳에 암 자가 있었으니 용굴암이며 건물은 없었다.
안의의 난중일기에 의 하면 선조25년(1592년)7월1일 경기전의 태조
어용과 전주사고 전 적을 맨 처음 피난시킨 곳이 용굴암이다.
4. 불출암지
불출봉 정상의 암벽에 형성된 반호반굴형의 공간으로서 내부에 암자가 있었다.
고려 광종26년(975년) 하원선 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근래 한국동란에 소실되었다. 암굴의 동 벽 약2M 높이에 10개의 자그마한 홍역형의
구멍이 파여있다. 불 출암은 완전히 동굴이 아니라 말하자면 암벽 밑에 반로반굴형의 공간이다.
내장사 단풍과 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