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님

금관필200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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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 you know Benjamin Lee?

 

 이희소 박사님은 노벨물리학상을 받기로 되어있던 천재 핵물리학자이다. 천재 이론물리학자 가운데 아인슈타인이 서거 후 아인슈타인 보다 뛰어나다라고 평가될 만큼 세계 핵물리학자 중 가장 으뜸이었다. 실례로 그의 박사학위 시험에서 치른 시험은 미국역사상 전례없던 최고의 점수였다. 또한 그가 발표한 논문은 아직까지도 극비문서로 취급되어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는 아인슈타인이 근무했던 프리스턴에서 근무하다가 거대한 입자가속기가 건설된 페르미연구소의 부장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한국과 미국의 정치적인 상황을 잠시 언급하자면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을 선언하였고, 미국의 카터가 한국의 주한미군 철수라는 명분으로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한국은 이제 막 6.25의 전란을 겪은 후 어지러운 정국과 폐허가 된 대한민국 재건의 목적하에 박정희 대통령의 군부 독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직 틀이 잡히지 않은 상황하에 미국의 정치적 쇼에 의한 주한미군의 철수는 곧 전쟁의 위협이 되었으며, 주변의 강대국에 둘러싸여 마치 "범 앞에 놓인 토끼"와 같은 형국이었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의 자립을 부르짖었으며, 미국에 대한 도발 행위라 할 수 있는 핵개발과 유도탄 개발을 비밀리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실정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며, 막대한 외화를 감당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 그것을 만들어낼 만한 과학자가 국내에 없었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압박과 세계 강대국의 위협 속에서 어떻게든 핵개발 성공을 위해 해외에 근무하는 과학자들을 다시 불러들여 비밀리에 계속 진행해 나갔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끝내 미국에 있던 이휘소 박사님에게 간청하였지만, 미국은 이미 박사님의 행동, 말까지 24시간 FBI와 CIA 요원, 위성 감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자국 이익의 목적 앞에 무수한 사람들이 운명을 달리했는데, 바로 이휘소 박사님이 그 중 한 분이다.

 

 

한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님


 

다음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휘소 박사에게 쓴 친필 편지의 내용이다.

고급화선지에 글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쓴 필적이 나타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절절한 마음이 아래 편지에 잘 드러나 있다.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을지를 어렴풋이 느껴지며, 강대국의 위력 앞에 놓인 한국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느끼게 되었다.

 더욱 통탄해야 될 일은 지금은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심지가 강인하고 성품이 어진 대통령이 없을 뿐만아니라, 이휘소 박사님과 같은 조국의 위기에 목숨과 바꿀 만한 애국심을 가진 세계적으로 뛰어난 과학자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마음 속에 간직했던 한 귀절의 문구가 떠오른다.

 

 "나라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李輝昭 博士惠覽(이휘소 박사혜람)

 

 이휘소박사님, 안녕하십니까? 박사님을 뵈온 지 벌써 4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동안 박사님의 소식은 이 곳에서도 자주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박사님께서 본인이 선포한 유신에 반대한 것 때문에 저대로 많은 고민도 했습니다.

 

 본인은 언제까지 대통령직에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제 본인이 대통령직을 그만 두느냐 계속하느냐 하는 것은, 모든 것은 국방에 달렸다고 사료됩니다. 지금 나라는 어지럽고, 국방은 허술하고 언제 공산화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대통령직을 내놓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박사도 아시다시피 우리 정부에는 한 마디의 상의도 없이 이미 미군철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미사일부대는 이미 철수를 끝낸 단계이고, 지상군 17000명이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월남에서와 같이 한국이 공산화되어도 좋다는 전제의 신호이기도 합니다. 이제 얼무후면 한국에 남아 있는 핵도 철수할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본인도 미국정부측에 몇 번 자제를 호소하고, 부탁도 하여 보았지만 더 이상 구걸하는 것도 추한 꼴이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도 무엇하지만, 그래도 애원해서 들어줄 희망이라도 보인다면 봉인은 어떠한 일이라도 할 각오입니다. 이박사님도 아시다시피 본인이나 한국정부가 요구해서 들어줄 단계도 이미 지났습니다. 가능성도 없는 구걸 행각으로 국가의 이미지만 손상을 보는 추한 모습을 또 보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언제인가는 이런 때가 오리라는 생각으로 박사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독자적으로 유도탄 개발과 핵무기개발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재미과학자들을 본국에 초청한 것이나 귀국시킨 것도 이런 저의 뜻의 일부입니다. 이박사님을 초대하거나 모시지 못한 것은 박사님을 초대한다는 것은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는 결과나 마찬가지라는 중론에 못이기어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인은 사실 박사님의 능력을 추앙하고 박사님이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에 무한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그러나 조국은 위태로와 졌고 사정은 급박하여 졌습니다. 이미 카터와의 싸움은 시작이 되었고, 여기서 비굴하지 않고도 우리는 승리해야 할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비굴한 기운만 보이면 깔고 뭉게는 묘한 도덕정치를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의존하던 시대에 종막을 고할 때라고 사료됩니다. 우리 자체가 독자적으로 미사일개발, 핵무기개발, 인공위성개발까지 해서 감히 누구도 우리를 넘볼 수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다시는 6.25의 쓰라린 경험 같은 것은 맛보지 않게, 우리 백성들이 전쟁으로 상실되는 비극이 다시는 없도록 이박사께서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이휘소박사님, 조국을 건져 주십시오. 74년엔가 박사님을 처음 뵈었을 때 저는 '이박사를 보호하기 위하여는 60만 대군이라도 동원하겠다'라고 했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진심입니다. 우리 민족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는 지금 이박사의 마음에 달리어 있습니다.

 그 동안 재미물리학자들의 협력을 얻어 미사일개발부터 서둘렀고, 또 시험도 해보았지만, 하나같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이박사님의 힘이 필요할 때입니다.

 박사님이 처한 위치가 어떠한 지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박사님께서도 조국이 공산화되는 것을 눈뜨고 보고만 계시지만은 아니할 것입니다.

 이박사님께서 조국을 위해, 한 번 일어서 주십시오.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은 상황 앞에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절대 위기의 상황에서 감히 이렇게 박사님께 애원합니다.

 박사님의 건강과 기운이 길이 빛나기를 엎드려 비옵니다.

 1977년 3월 18일

 대한민국 대통령

                            朴正熙 拜上(박정희 배상)

 

 

친서의 여부는 확실치 않다. 또한 박사님의 죽음이 단순 교통사고라고 말한다.

항상 역사의 기록들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