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일본제국을 닮아가는 북한 정권의 행태

김재엽2006.11.15
조회42

소위 '벼랑 끝 전술'이라고 불리는 북한 정권의 극단적이며, 때로는 비이성적으로 여겨지는 강경 발언과 행동들은 이미 한국과 국제사회에 악명이 자자하다. 게다가 지난달 저지른 핵실험 강행으로 인해 그 정도는 거의 절정에 이르다시피 했다. 북한 정권도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언행 하나하나에 경악하는 외부 세계의 반응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냉전 종식으로 자신들 편을 들어줄 나라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사실상 파탄난 상황에서 자칭 '강성대국'으로 세계에 인정받는 길이라고는 핵과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비롯한 대량살상용 군사력과 이를 바탕으로 한 자해공갈 수법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필자는 문득 현재 북한 정권이 보여주고 있는 주장과 행태가 1세기 전 어느 세력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름아닌 구 일본제국이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1866년 메이지유신을 시작한 일본은 근대화를 단순한 국가부흥뿐만 아니라 대외 팽창의 계기로 만들려 했다. 16세기 말 "중국 명 황조를 정벌한다"면서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처럼 일본은 자신들을 다른 아시아 대륙국가들보다 별개의, 혹은 우월한 존재로 자처했으며, 메이지유신으로 급성장한 국력을 바탕으로 이를 실현코자 했던 것이다. 우선 1910년 한반도를 침탈했으며, 이어 1930년대 들어서 만주사변을 일으켜 본격적인 중국 대륙 침략을 벌여 나갔다. 유럽의 주요 강대국과 미국 등이 이에 반발하자, 일본은 아예 동남아시아에까지 침략의 마수를 뻗어 아시아 전체를 손아귀에 넣으려 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이를 그럴싸한 명분으로 포장시켰다. 우선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는 "조선이 청의 오랜 종속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면서 '조선의 자주독립'을 기치로 내걸었다. 물론 이는 한반도에서 전통적 우위를 차지해온 중국 청 황조의 세력을 몰아내어 자신들의 한반도 침탈을 용이하게 할 속셈에 따른 것이었다. 1930년대 이후 침략 범위가 아시아 거의 전부로 확장될 당시에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문구를 내세웠다. 해당 지역들이 유럽 식민지배 아래 있었는데, 일본이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논리였다. 물론 실제로는 식민지배의 주체가 바뀌는 것이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를 북한의 경우와 비교해 보자. 지난 1950년 6.25 전쟁 이후 계속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주둔과 한국-미국 두 나라의 군사동맹 관계는 휴전 이후 반세기 동안 북한에 의한 또다른 전쟁을 방지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고 있지만, 북한에게는 자신들의 최대 목표인 한반도 장악에 있어서 최대 걸림돌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여러 차례에 걸쳐 주한미군 철수와 미국의 한국방위 공약 중단을 요구했으며, 이때 내세우는 용어가 바로 '자주', '외세배격'이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는 '우리민족끼리'라는 더 그럴듯한 말장난을 남발하여 한국 내 온건주의 세력과 대다수 국민들의 감정에 편승하려 들고 있다.

 

신성히 여겨져야 할 '평화'란 단어마저 함부로 왜곡시킨 것도 공통점이다. 청일전쟁으로 중국 청 황조를 한반도에서 몰아낸 후 러시아가 새 경쟁자로 나타나자, 일본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서양(러시아를 지칭)에 맞서 한반도를 지킨다"면서 러일전쟁에 나섰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승리한 직후 '보호'라는 명목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마침내는 나라 자체를 병합해 버렸다.

 

북한 역시 사상 초유의 동족상잔인 3년 동안의 6.25 전쟁과 전후 동포인 한국 국민을 상대로 숱한 납치, 테러, 국지도발을 일으킨 장본인임에도 그 책임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적반하장 격으로 주한미군과 미국의 한국 방위공약, 미국 내 일각의 대북 강경정책, 그리고 한국의 방위력 향상노력과 반공주의 등이 평화의 진정한 위협이라고 강변하고 있기까지 하다. 지난 7월 초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직후 열린 남북 장관급회담에서는 북측 대표가 "북의 선군정치가 남측을 지켜주고 있다"는 식의 망발을 퍼붓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뿐만이 아니다. 1930년대 초 만주사변으로 본격화된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미국 등 서양 강대국들이 반발하여 일본에 대한 압력을 증대시키자, 일본은 이에 승복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을 구실로 삼아 도발의 수위를 높이더니 마침내는 태평양전쟁을 통해 전쟁을 확대시켰다. 1941년 12월 진주만의 미 해군기지 공습 당시에도 일본은 '서양 세력의 경제봉쇄에 대한 자구책'이라면서 선전포고 없이 감행된 공격을 정당화시키려 했다. 이는 북한도 마찬가지여서 금년에 벌어진 핵과 미사일 시험 모두가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압살에 대한 자위적 조치'라는 변명들이 늘 따라나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언급될 수 있는 공통점은 소수 지배세력의 안전 여부를 국가 생존과 동일시하려는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다. 구 일본제국은 1945년 말 전세가 더 이상 돌이키기 어려워진 시점에서도 '천황제의 존속'을 내세우면서 가망없는 전쟁만 계속해 나가려 했다. 그 과정에서 죄없는 일본국민들만 계속 죽어갔고, 끝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투하까지 벌어진 후에야 전쟁이 끝났다.

 

북한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한국과 국제사회의 거듭되는 핵폐기 요구가 나올 때마다 늘 내세우는 요구는 '김정일 체제의 안전보장'이다. 국가 자체도 아닌 김정일과 그 하수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독재체제의 생존에 집착하는 것이 북한 정권의 수준인 것이다. 그동안 북한의 자발적인 변화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이들이 많았음에도 북한 정권이 끝내 중국, 베트남 수준의 개혁과 개방을 수용하려 들지 않았던 것도 바로 개혁, 개방이 자신들의 정권 지속에 유익하지 못하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만일 김정일 정권이 진정으로 국익과 국민 복리에 책임을 지는 집단이었다면 이런 선택을 했을 리 없다.

 

9.19 공동성명이 나온지 1년이 훨씬 지난 시점에서 다시 6자회담 재개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직후에 열리는 것이기 때문에 핵폐기와 그 반대급부를 둘러싼 양측 사이의 줄다리기가 더욱 격화될 우려가 충분히 존재한다. 과연 북한 정권은 패망한 구 일본제국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민족과 자기 주민들에 대한 책임의식을 따라 새출발할 기회를 선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