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현의 은퇴 기념 전국 순회 연주가 지금 한창이라고 하며 그의 인터뷰가 내게 작은 감동을 주고 있다 언제적 사람인데 아직도 기타를 치느냐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의 업적과 순탄치 않았던, 한국의 시대사를 보는 듯한 삶을 바라보는 것이 신비롭다.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 음악계의 맥이 끊긴것은 박정희 정권 때문이라고 했다니 대선 주자인 박근혜가 또 발끈 할 수 도 있는 민감한 발언 같구나. 사실 외아들인 박지만은 고딩 시절 부터 쿠데타 원흉의 아들이라고 지탄을 받으며 태자 처럼 화초 처럼 커왔다고 하고 그로인해 사관 학교에 가기 보다 당시 제일 유명세를 치루던 이장희 등의 음악 다방 데제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장발을 하고 대마초를 피웠다고 전해 진다. 이 사실을 안 박정희가 군부로서는 건달과 같은 사회 악으로 분류해 대대적인 단속을 펴는 동시에 중공의 문화 혁명 같은 순화 작업에 몰두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도 불건전 가요가 되고 찾집의 고독, 아침 이슬, 럭키 서울 같은 대중적인 노래들도 전부 싸잡아 금지 초치가 되고 만다. 제일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마약의 한 종류라는 대마는 그 전까지 전례 되어 오는 한약의 재료로 분류되어 왔었는데 캠페인을 통해 정신을 착란 시키는 환각류로 취급이 되며 국민들로 부터 딴따라는 약쟁이라는 마녀 재판식 판결을 받게 되었고, 결국 아무도 노래 가사에 어려운 주제를 담지 않았으며 코드 진행도 단순 무지한 스타일만 기형 적으로 쓰게 되었으니 그게 우리나라 뽕짝의 시초일 것이다. 김정구가 부르던 전통 가요를 보면 이태리 오브리 카토가 흐르며 이것은 일본의 수백년 클래식 표절을 이어 받은 것이고, 현인의 신라의 달밤에는 볼레로가 쓰여져 그 코드 변화가 현대 재즈에 가까울 정도로 난해 하다 70년대 전의 대중 가요는 이처럼 우리가 지금 아는 것 처럼 단순한 뽕짝은 없었으며 무슨 노래던, 이론에 부합하는 그 당시 유행을 벗어 나지 않는 세계적인 것이었다고 말들을 한다. 지금에야 들으면 뭐가 세계적이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미국 60년대 음악을 듣고 느껴본 진지한 음악인들은 대부분 상당수준 일본을 앞지르고 있었다고 말한다 20년의 세월이라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한 나라를 부흥 시키는데 충분한 시간이건만 하물며 음악 문화를 단절 시키는 정책은 커다란 국가적인 손실이 아닐 수 없어서 지금이라도 영화 산업에 투자를 중단하면 베트남 같은 나라에게 언젠가는 드라마를 수입하며 소녀 팬들이 인도네시아 가수에 눈물을 흘리는 날이 오는 것도 순식간 이다.
신중현의 은퇴 기념 전국 순회 연주가 지금 한창이라
신중현의 은퇴 기념 전국 순회 연주가 지금 한창이라고
하며 그의 인터뷰가 내게 작은 감동을 주고 있다
언제적 사람인데 아직도 기타를 치느냐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의 업적과 순탄치 않았던,
한국의 시대사를 보는 듯한 삶을 바라보는 것이 신비롭다.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 음악계의 맥이 끊긴것은 박정희
정권 때문이라고 했다니 대선 주자인 박근혜가 또
발끈 할 수 도 있는 민감한 발언 같구나.
사실 외아들인 박지만은 고딩 시절 부터 쿠데타 원흉의
아들이라고 지탄을 받으며 태자 처럼 화초 처럼 커왔다고
하고 그로인해 사관 학교에 가기 보다 당시 제일
유명세를 치루던 이장희 등의 음악 다방 데제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장발을 하고 대마초를 피웠다고 전해 진다.
이 사실을 안 박정희가 군부로서는 건달과 같은 사회
악으로 분류해 대대적인 단속을 펴는 동시에 중공의
문화 혁명 같은 순화 작업에 몰두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도 불건전 가요가 되고
찾집의 고독, 아침 이슬, 럭키 서울 같은
대중적인 노래들도 전부 싸잡아 금지 초치가 되고 만다.
제일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마약의 한 종류라는 대마는
그 전까지 전례 되어 오는 한약의 재료로 분류되어
왔었는데 캠페인을 통해 정신을 착란 시키는 환각류로
취급이 되며 국민들로 부터 딴따라는 약쟁이라는
마녀 재판식 판결을 받게 되었고,
결국 아무도 노래 가사에 어려운 주제를 담지 않았으며
코드 진행도 단순 무지한 스타일만 기형 적으로
쓰게 되었으니 그게 우리나라 뽕짝의 시초일 것이다.
김정구가 부르던 전통 가요를 보면 이태리 오브리 카토가
흐르며 이것은 일본의 수백년 클래식 표절을 이어 받은 것이고,
현인의 신라의 달밤에는 볼레로가 쓰여져 그 코드 변화가
현대 재즈에 가까울 정도로 난해 하다
70년대 전의 대중 가요는 이처럼 우리가 지금 아는 것 처럼
단순한 뽕짝은 없었으며 무슨 노래던,
이론에 부합하는 그 당시 유행을 벗어 나지 않는
세계적인 것이었다고 말들을 한다.
지금에야 들으면 뭐가 세계적이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미국 60년대 음악을 듣고 느껴본 진지한 음악인들은
대부분 상당수준 일본을 앞지르고 있었다고 말한다
20년의 세월이라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한 나라를
부흥 시키는데 충분한 시간이건만 하물며
음악 문화를 단절 시키는 정책은 커다란 국가적인 손실이
아닐 수 없어서 지금이라도 영화 산업에 투자를
중단하면 베트남 같은 나라에게 언젠가는 드라마를
수입하며 소녀 팬들이 인도네시아 가수에
눈물을 흘리는 날이 오는 것도 순식간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