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막 7장
Past
초가을이었다.
아침 일찍 장사를 나가서 청계천 육교 위에다 가방을 풀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사치들이 모여들었다. 임자에게 자리를 내 주다 보니 오후 세 시쯤 되자 층계 맨 끝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그 자리마저도 주인이 있었다. 칠십은 먹었음직한 할머니가 쑤세미 보따리를 이고 와서는 비켜달라고 쇠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시은이는 미련없이 가방을 챙겼다. 그려는 다른 자리를 알아보고 올테니 육교 밑에서 잠시 기다리라며 청계천 쪽으로 내려갔다.
"어, 꼬마?"
정우가 육교 아래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굵직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 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연석이였다.
"어, 형!"
우연히 동건이를 만나니 혈육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포장마차 하던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누나는?"
"장사할 장소를 찾으러 갔어요."
"요즘은 무슨 장사하는데?"
"액세서리 장사요."
"잘 돼?"
"그냥 그래요."
정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 참! 근데 너희들 포장마차는 왜 때려치운 거냐? 누가 못 하게 하던?"
동건이 점퍼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갑째 쥐고 손목을 가볍게 흔들자 담배 한 개피가 허공에 떠올랐다. 동건은 담배를 입으로 척 물고 붙였다.
"어떤 새끼 짓인지는 몰라?"
"몰라요."
"음! 내 손에 걸리면 요절을 내 줄 텐데‥‥‥."
동건은 필터를 질겅질겅 씹더니 꽁초를 바닥에 내뱉었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고 구둣굽으로 짓이겼다.
"어, 오빠!"
등 뒤에서 시은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제법 먼 거리인데도 시은이가 동건을 알아보고는 반색을 하며 달려왔다.
"우리 시은이가 세상 잘못 타고나 고생 오지게 하는구나."
동건은 싱긋 웃으며 시은이의 볼을 가볍게 움켜쥐고 흔들었다.
"헤헤! 고생은요."
시은이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그거 이리 줘라."
동건이 액세서리 가방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손을 내밀었다.
"왜요?"
"줘 봐."
정우는 얼떨결에 가방을 건네 주었다.
"따라와라."
동건은 가방을 쥐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디 가는데요?"
"가 보면 알아!"
시은이가 달려가며 조심스럽게 묻자 동건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동건이 지나가자 장사치들이 인사를 했다. 대충 인사를 받으며 걸어가던 동건이 걸음을 멈춘 곳은 종로 5가 지하철 탑승구 입구였다.
"김씨, 저쪽으로 조금만 옮겨요. 고흥댁도 이쪽으로 좀 가고."
동건은 노점상들을 한쪽으로 조금씩 밀어냈다. 그러자 가로수 아래에 제법 넓은 공간이 생겼다.
"자, 여기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여기서 장사하거라!"
동건이 가로수 아래에다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에?"
시은이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정우 역시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동건이가 만들어 준 자리는 언뜻 보기에도 상당히 괜찮아 보였다.
"애들은 내 사촌이오. 김씨하고 고흥댁이 잘 좀 보살펴 주쇼."
동건은 옆에서 오방떡을 파는 사십대 후반의 아저씨하고 오징어, 땅콩을 파는 삼십대 중반의 아주머니에게 특별히 당부까지 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행운이었다. 미처 고맙다는 말을 건네기도 전에 동건은 손을 흔든 뒤 사라져 버렸다.
고정된 자리가 생기자 시은이는 보관소에서 손수레를 헐값에 샀다. 누군가 맡겨 놓고서 찾아가지 않은 것이었다.
손수레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어서 붉은 녹이 슬어 있었다. 녹을 털어내고 페인트를 칠하고, 빈 공간은 합판으로 덮은 다음 장판을 깔았다.
손수레는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그 위에 액세서리를 진열해 놓으니 보자기에 풀어놓았을 때와는 달리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러자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여학생과 아가씨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 고객이 삼사십대에서 십대와 이십대로 바뀌자 시은이는 진열에 각별히 신경쓰기 시작했다. 조화(造化)나 선글라스, 예쁜 선물 상자를 이용해 진열하기도 했고, 화구점에서 뎃생용 석고상을 사서 목걸이나 귀걸이를 진열하기도 했다.
동건은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다. 호떡이나 군고구마 같은 것을 들고 불쑥 나타나서 안겨 주고 가기도 했고, 뜨내기 장사꾼들이 와서 자리를 뺏으려고 하며 귀신처럼 알고 나타나서는 간단히 쫓아 주었고, 재수가 없어 노점상 단속에 걸려들면 경찰서까지 찾아와서 빼내 주었다.
손수레는 놓고 고정된 자리에서 장사를 하면서부터 정우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본격적으로 책을 보았다. 장사가 안정이 되니 글씨도 한결 눈에 들어왔다.
정우는 공부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합격 통지서가 날아온 날, 시은이는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 날 저녁 시은이는 큰맘 먹고 소고기를 반 근 샀다. 무를 송송 썰어 넣어서 국을 끓이고 남은 것은 양파와 함께 프라이팬으로 볶았다. 모처럼 만에 고기 냄새가 집안에 진동했다.
[소설] 해/바/라/기 ---- 3막 7장
작은 새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막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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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이었다.
아침 일찍 장사를 나가서 청계천 육교 위에다 가방을 풀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사치들이 모여들었다. 임자에게 자리를 내 주다 보니 오후 세 시쯤 되자 층계 맨 끝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그 자리마저도 주인이 있었다. 칠십은 먹었음직한 할머니가 쑤세미 보따리를 이고 와서는 비켜달라고 쇠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시은이는 미련없이 가방을 챙겼다. 그려는 다른 자리를 알아보고 올테니 육교 밑에서 잠시 기다리라며 청계천 쪽으로 내려갔다.
"어, 꼬마?"
정우가 육교 아래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굵직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 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연석이였다.
"어, 형!"
우연히 동건이를 만나니 혈육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포장마차 하던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누나는?"
"장사할 장소를 찾으러 갔어요."
"요즘은 무슨 장사하는데?"
"액세서리 장사요."
"잘 돼?"
"그냥 그래요."
정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 참! 근데 너희들 포장마차는 왜 때려치운 거냐? 누가 못 하게 하던?"
동건이 점퍼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갑째 쥐고 손목을 가볍게 흔들자 담배 한 개피가 허공에 떠올랐다. 동건은 담배를 입으로 척 물고 붙였다.
"어떤 새끼 짓인지는 몰라?"
"몰라요."
"음! 내 손에 걸리면 요절을 내 줄 텐데‥‥‥."
동건은 필터를 질겅질겅 씹더니 꽁초를 바닥에 내뱉었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고 구둣굽으로 짓이겼다.
"어, 오빠!"
등 뒤에서 시은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제법 먼 거리인데도 시은이가 동건을 알아보고는 반색을 하며 달려왔다.
"우리 시은이가 세상 잘못 타고나 고생 오지게 하는구나."
동건은 싱긋 웃으며 시은이의 볼을 가볍게 움켜쥐고 흔들었다.
"헤헤! 고생은요."
시은이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그거 이리 줘라."
동건이 액세서리 가방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손을 내밀었다.
"왜요?"
"줘 봐."
정우는 얼떨결에 가방을 건네 주었다.
"따라와라."
동건은 가방을 쥐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디 가는데요?"
"가 보면 알아!"
시은이가 달려가며 조심스럽게 묻자 동건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동건이 지나가자 장사치들이 인사를 했다. 대충 인사를 받으며 걸어가던 동건이 걸음을 멈춘 곳은 종로 5가 지하철 탑승구 입구였다.
"김씨, 저쪽으로 조금만 옮겨요. 고흥댁도 이쪽으로 좀 가고."
동건은 노점상들을 한쪽으로 조금씩 밀어냈다. 그러자 가로수 아래에 제법 넓은 공간이 생겼다.
"자, 여기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여기서 장사하거라!"
동건이 가로수 아래에다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네에?"
시은이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정우 역시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동건이가 만들어 준 자리는 언뜻 보기에도 상당히 괜찮아 보였다.
"애들은 내 사촌이오. 김씨하고 고흥댁이 잘 좀 보살펴 주쇼."
동건은 옆에서 오방떡을 파는 사십대 후반의 아저씨하고 오징어, 땅콩을 파는 삼십대 중반의 아주머니에게 특별히 당부까지 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행운이었다. 미처 고맙다는 말을 건네기도 전에 동건은 손을 흔든 뒤 사라져 버렸다.
고정된 자리가 생기자 시은이는 보관소에서 손수레를 헐값에 샀다. 누군가 맡겨 놓고서 찾아가지 않은 것이었다.
손수레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어서 붉은 녹이 슬어 있었다. 녹을 털어내고 페인트를 칠하고, 빈 공간은 합판으로 덮은 다음 장판을 깔았다.
손수레는 몰라보게 깨끗해졌다. 그 위에 액세서리를 진열해 놓으니 보자기에 풀어놓았을 때와는 달리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러자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여학생과 아가씨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 고객이 삼사십대에서 십대와 이십대로 바뀌자 시은이는 진열에 각별히 신경쓰기 시작했다. 조화(造化)나 선글라스, 예쁜 선물 상자를 이용해 진열하기도 했고, 화구점에서 뎃생용 석고상을 사서 목걸이나 귀걸이를 진열하기도 했다.
동건은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었다. 호떡이나 군고구마 같은 것을 들고 불쑥 나타나서 안겨 주고 가기도 했고, 뜨내기 장사꾼들이 와서 자리를 뺏으려고 하며 귀신처럼 알고 나타나서는 간단히 쫓아 주었고, 재수가 없어 노점상 단속에 걸려들면 경찰서까지 찾아와서 빼내 주었다.
손수레는 놓고 고정된 자리에서 장사를 하면서부터 정우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본격적으로 책을 보았다. 장사가 안정이 되니 글씨도 한결 눈에 들어왔다.
정우는 공부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합격 통지서가 날아온 날, 시은이는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 날 저녁 시은이는 큰맘 먹고 소고기를 반 근 샀다. 무를 송송 썰어 넣어서 국을 끓이고 남은 것은 양파와 함께 프라이팬으로 볶았다. 모처럼 만에 고기 냄새가 집안에 진동했다.
"정우야, 밥 먹자!"
시은이가 함박 웃음을 지으며 밥상을 들고 왔다.
"와아! 이게 웬 살?"
정우는 허기가 져서 젓가락으로 소고기 볶음부터 집어먹었다. 입안에 금세 고소한 내음이 가득 찼다.
"맛있니?"
시은이가 먹는 모습늘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응! 맛있어서 기절할 거 같아!"
"많이 먹어!"
시은이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정우는 배가 고팠던 터라 숟가락을 들고 소고기볶음을 듬뿍 떠서는 밥과 함께 먹었다. 보기에는 많아 보였는데 몇 숟가락 먹지도 않았는데 소고기볶음은 바닥이 났다.
"국도 먹어 봐!"
시은이가 국그릇을 밀어 주었다.
그릇 안에는 은가루를 뿌린 듯한 기름기와 함께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고깃덩어리가 동동 떠 있었다. 내려다보기만 했는데도 입안에 군침이 들었다. 숟가락으로 고기와 국물을 동시에 떠 먹어 보았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향긋했다.
"맛있어?"
시은이가 숟가락을 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죽여!"
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시은이의 국그릇을 보았다. 자신의 국그릇에는 고기가 가득한데 시은이의 국그릇은 멀건 국물뿐이었다.
"말아 먹어."
"응."
시은이가 시킨 대로 밥그릇을 기울여 국에 말았다. 무심코 말고 나서 다시금 시은이의 국그릇을 보았다. 왠지 가슴이 허전했다.
"식기 전에 먹어."
"응, 누나‥‥‥."
정우는 숟가락으로 밥과 국을 떠서 입안에 넣었다. 향긋한 기름기가 물결치듯 입안에서 전신으로 퍼져 갔다.
"맛있지?"
시은이가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물었다.
정우는 그녀의 목울대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갑자기 목에 꽉 메어 오며 가슴이 전기에 감전된 듯 저르르 저려 왔다. 까닭 모를 눈물이 핑 돌았다.
"누나!"
정우는 숟가락을 내던지고 시은이를 와락 껴안았다. 눈물이 몸 속깊은 곳에서부터 온천수처럼 펑펑 치솟았다.
[KIESBEST]
키 - 베 - 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