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더 엄밀하게 말하면, 캔 로치의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2006)을 보고 싶었으나, 상영 시간이 맞지 않아서 이 영화를 선택하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전남 벌교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은 의 욕과 설경구의 연기를 음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설경구의 연기는 이미 검증된 것처럼 실망스럽지 않았지만, 욕으로 문장을 만들어 버리는 벌교의 국어활용에 대해선 확인하지 못했다.
오히려 장진의 (1998)에서의 전라도와 경상도 좀도둑의 구수한 육두문자와 그것의 표준어 자막처리, (2005)와 (2006)로 널리 알려진 이준익 감독의 (2003)의 벌교 출신 욕 담당 백제병사 '거시기'를 연기한 이문식의 걸쭉한 입담이 그리워 졌다.
두 영화 모두 그 얼마나 거시기했던 영화들인가?
그러나 이 영화로 장편 입봉한 이정범 감독의 의 경우는, 일단 지역색을 살리는데 실패했다.
이정범 감독은 장진은 물론이요ㅡ현재 한국에서 장진의 말빨을 따라갈 감독은 없을테니 그는 제외 하더라도ㅡ이준익 감독이 그의 초기작 에서 보여준 말빨에도 따라가지 못했다.
이 영화 는 오히려 '독함'으로 승부하는 영화였다.
분명히 설경구와 나문희의 연기는 감독이 의도한 진득한 情과, 서로의 지독한 아픔과 복수, 회한에 대해서 잘 표현하고 있다. 그렇지만 감독과 편집감독은 두 배우의 아우라를 따라가지 못하는 듯 하다.
심재문(설경구 분)이 담배의 끝을 끈어서 피우는 것을 반복해서 보여줌으로 영화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분기를 넘나며들며 리듬감을 획득하는 듯 하다. 거기에 더해 각 시퀀스마다 간혹 유의미하지만 무관한 영상들의 커팅으로 필름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획득하는 듯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스타일들과, 좋은 연기들 그리고 느와르와 모성을 결합한 드마적 기술이 따로따로 놀았다는 것에 있다.
후반부 설경구의 멍한 눈빛, 체 마르지도 않은 눈물 그리고 그의 죽음을 담은 컷을 떠올려봐라. 자신의 작은 아들이라 농담하는 심재문의 죽음과, 심재문에게 살해당했을지도 모를 자신의 친자식 사이에서 한탄하는 김점심(나문희 분)의 오열 역시 떠올려봐라. 그리고 클로즈업한 꽃무늬 셔츠의 엔딩컷도 떠올려봐라.
그 모든 것들이 개별적으론 충분히 좋았지만, 영화 전반적으로 하나로 녹아들지 못했다.
하나로 융합하지 못한 장르적 네러티브와 이미지 사이에서, 영화의 음악은 너무 무거워져 버렸고(단 중반부 알라 푸가초바의 를 심수봉이 부른 의 삽입신은, 김점심과 심재문의 소통과 둘째 아들의 실종으로 인한 김점심의 상실을 음악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느와르적인 인물구성에 더해진 모성과 인간 본연의 회한에 대한 장르 충돌은 벌교의 황폐한 공간을 유령처럼 겉돌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 심재문의 내적 황폐함을 구체화 하는데 성공한 벌교라는 공간과, (2005. 류승환)와 (2005. 박진표)에서 상환(류승범 분)의 할머니와 석중(황정민 분)의 어머니 역을 연기했던 나문희의 절제된 연기. 그리고 야비한 건달이면서도 일견 모성으로의 따뜻한 회귀를 연기한 설경구.
비록 백만송이 장미는 아닐지라도, 이 세 송이 장미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열혈남아 ㅡ벌교에 피어난 세 송이 장미
감독 : 이정범
출연 : 설경구(심재문), 나문희(김점심), 조한선(문치국)
118분. 2006년. 한국
열혈남아 ㅡ벌교에 피어난 세 송이 장미
왕가위의 (熱血男兒. 1988)가 생각나서 이 영화를 선택하다.
좀더 엄밀하게 말하면, 캔 로치의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2006)을 보고 싶었으나, 상영 시간이 맞지 않아서 이 영화를 선택하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전남 벌교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은 의 욕과 설경구의 연기를 음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설경구의 연기는 이미 검증된 것처럼 실망스럽지 않았지만, 욕으로 문장을 만들어 버리는 벌교의 국어활용에 대해선 확인하지 못했다.
오히려 장진의 (1998)에서의 전라도와 경상도 좀도둑의 구수한 육두문자와 그것의 표준어 자막처리, (2005)와 (2006)로 널리 알려진 이준익 감독의 (2003)의 벌교 출신 욕 담당 백제병사 '거시기'를 연기한 이문식의 걸쭉한 입담이 그리워 졌다.
그 모든 것들이 개별적으론 충분히 좋았지만, 영화 전반적으로 하나로 녹아들지 못했다. 하나로 융합하지 못한 장르적 네러티브와 이미지 사이에서, 영화의 음악은 너무 무거워져 버렸고(단 중반부 알라 푸가초바의 를 심수봉이 부른 의 삽입신은, 김점심과 심재문의 소통과 둘째 아들의 실종으로 인한 김점심의 상실을 음악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느와르적인 인물구성에 더해진 모성과 인간 본연의 회한에 대한 장르 충돌은 벌교의 황폐한 공간을 유령처럼 겉돌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 심재문의 내적 황폐함을 구체화 하는데 성공한 벌교라는 공간과, (2005. 류승환)와 (2005. 박진표)에서 상환(류승범 분)의 할머니와 석중(황정민 분)의 어머니 역을 연기했던 나문희의 절제된 연기. 그리고 야비한 건달이면서도 일견 모성으로의 따뜻한 회귀를 연기한 설경구. 비록 백만송이 장미는 아닐지라도, 이 세 송이 장미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