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전 천동초등학교에 입학하여2학년때에는 석교

윤옥환200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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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전 천동초등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때에는 석교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리고 집안에 무슨 불상사가 발생하였던지

거의 1년동안 학교를 나가지 못하였다.

 

당시 우리 집은 아이스께끼 (아이스크림)공장을 하고 있어서 학교에 나가지 않는 동안에는 거의 온종일을 아이스께끼 공장에서 어머니를 따라 다녔었다.

당시에는 어려웠던 시절이라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던 아이들이 많았었다.

 

아침일찍 아이스께끼 공장에서 (말이 공장이지 거의 가내공장) 아이스께끼 모양의 틀에 원료를 채우고 얼린후, 어머니는 께끼통에 아이스께끼를 채워 어린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또래 아이들에게 지워 보내 거리에서 팔러 다니게 하였다.

 

당시 아이들은 으례히 머리를 빡빡 밀었다.

이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고 돈을 아껴야 하는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아이들은 머리를 청결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에 피부병이나 염증으로 고생을 하였으며 분같은 하얀 가루약을 바르고 다녔었다.

 

모두가 돈버는 일에 나섰던 때라서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 그리고 학교 수업후 돈벌이가

필요했던 아이들은 께끼 공장으로 달려와 줄을 서서 께끼를 가득 채운 께끼통을 어깨에 매고 팔러 나갔다.

 

책상 반만한 크기의 께끼통 줄을 어깨에 매고 아이들은 허리를 옆으로 굽히며 께끼통줄이 흘러내리지 않게 요령을 부려야 했다.

 

그것도 경쟁이 치열하여 늦은 아이는 께끼통을 맬 수가 없었으며 일단 께끼통을 맨 아이들은

시장이나 인파가 많은 거리로 다니며  "아이스께끼!"  "아이스께끼!"를 연신 외치며 손님을 찾았다.

 

돈이 부족하였던 때라서 고무신이나 신문지 그리고 젓가락,숫가락,낡은 농기구등 쇠붙이를 모아두었다가 께기장수를 불렀다.

어린아이들이었지만 제법 장사에 익숙하여져서

돈을 잘버는 아이들도 있었으며 께끼를 팔고 나면

각자 번 돈을 세며 신나게 돌아갔다.

게중에 불량한 아이들은 번돈을 가지고 돈내기 도박에 빠지거나 멋을 내는데 탕진을 하기도 하였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거의 불량식품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그 당시에는 아이스께끼의 인기는 이루 말할 수없었다.

 

나도 어머니를 졸라서 께끼통을 어깨에 매고

거리로 나간적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아이스께끼라는 소리가 목밖으로 나오지 않아 무던히 애를 먹었었다.

창피하고 어색하여 한동안 그냥 께끼통을 매고

돌아 다니기만 하였었다.

그러다 일단 한번 소리를 지르고 나자 자신이 생겼으며  돈버는 맛에 신바람이 났었다.신장에 비해

께끼통줄이 길어서 께끼통이 거의 땅에 닿을락 말락 하여 지금 상상하면 참으로 웃긴다.

 

어느정도 고참(?)이 된 아이들은 악센트나 발음을

제법 어른스럽게 내어 사람들의 주의를 끌을 수 있었다.

새벽에 두부장수가 소리를 질러 두부를 팔러 다니면 목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알고 사러 나왔듯이

께끼 파는 아이의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고

단골 손님이 부르는 것이다.

 

그런 아이스께끼가 발전하여 이제는  김구 선생도 생전에 보지못하였던 아이스 크림이 나온다.

아이스 크림도 생물처럼 계속 진보하고 있는 중이다.

미래에는 어떤 아이스 크림이 출현할지 자못

궁금하여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