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트머스-2

장진수200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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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마음을 다쳤었다.

그것은 회복 불능의 상태까지 나를 몰고 갔고, 항상 가족들의 동정어린 시선이 나를 따라 다녔다.

고향집을 내려갈때면 어머니를 항상 나의 결혼을 걱정하셨다.

 

서른 다섯...

삼년전의 상처는 아직 나의 가슴 속에서 아물지 못했다.

 

문자가 왔습니다~~

그녀다.

(밥 사줘요.  나 지금 야근중...)

(아직 회사에요?)

(ㅠㅠ 아사 직전~~)

(^^ ㅎㅎㅎ 내가 지금 그리로 갈께요.  오늘 같이 밥먹을 동무도 없었나봐요?)

(ㅡㅡ'' 왕따 당한거 같아요.)

(지금이 삼십분이니 열시까지 가겠음)

문자로 그녀와 대화하면서 난 벌써 자동차 키를 챙기고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나에게 다가온다.

작고 조그마한 그녀가 조금씩 나의 일상을 아무렇지 않은 듯 두드리고 있다.

 

[도대체 일을 얼마나 못하길래 이 시간까지 야근이에요?]

[그렇죠?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얼른 얼른 일을 잘해서 빨리 퇴근해야 하는데... ]

[맨날 이렇게 늦어서 무슨 연애라도 하겠어요? ]

[그렇죠? 나도 그게 걱정이에요.. 나중에 안되면 길가다 한명 잡아서 그냥 제가 데리고 살죠. 뭐~]

[나중에 그 길 알려줘요...^^]

[왜요?  피해 가시게요?]

[아뇨.... 앞에서 죽치고 있을라고...]

[하하하.... 알았어요.  나중에 안되면 죽치고 있는 사람 보쌈해서 가야지...]

[넵... 제발 부탁해요.]

[아~~ 정말 배고프다.]

[뭐 먹을래요?]

[순대국밥]

[역시...]

[왜요? ]

[오늘은 무슨 메뉴를 말할지 궁금했거든요.]

[이 외롭고 쓸쓸하고 춥고 배고픈 밤에 뜨뜻한 국물에 순대국 한그릇 좋잖아요.]

[가만 보고 있으면 남자 동료랑 같이 있는 거 같다니까요]

[그래요?  ^^ 하하하]

[자... 그럼 맛있는 순대국밥집으로 한번 가볼까요??]

 

그녀는 알까?

내가 조금씩 그녀에게 물들어 가고 있다는걸...

 

난 서른 다섯살의 노총각이다.

우리 어머님 주장에 의하면 말이다.

형수들의 성화에 못이겨 선이란걸 보러 나왔다.

다소곳하게 이쁘게 앉아있는 낯선 여인과 조우했다.

 

조건의 만남

 

이 여인 대뜸 나에게 자신과 결혼 생각이 있냐고 물어온다.

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순간 수인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

자신도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나왔다며 자신은 결혼 생각이 없다고 한다.

결혼이라는 올가미가 자신을 죄어와서 정기적으로 이렇게 나올뿐이라고...

그녀의 솔직한 대답에 오히려 안도의 한숨이 쉬어지는 건 나였다.

내심 그녀가 나에게 결혼이라도 하자면 어쩌지?하고 나름대로 걱정아닌 걱정을 했었다.

 

초등학교 교사라는 그녀와 난 그렇게 가볍게 차 한잔을 마시고 자리를 일어섰다.

 

결혼이라는 선택

난 섣불리 하고 싶지 않다.

가슴가득 아팠으므로...

가슴이 조각 날 정도로 무너졌으므로...

 

오늘따라 유난히 하늘이 눈부시다.

수인이 보고 싶다.

 

[뭐해요?]

[이사람이.... 대뜸 일하는 시간에 전화걸어서 뭐하냐긴... 샐러리맨이 아니 샐러리우먼이 다른게 있나요?  이 시간에 열심히 회사에 충성하는거지...]

[하늘 참 좋네요]

[갑자기 왠 하늘 타령이에요.  설마 땡땡이~~?]

[빙고~~]

[부럽다... 왠 땡땡이에요?]

[궁금하죠?]

[그럼요... 이 시간에 땡땡이라 부럽지요. 부러워서 궁금한걸요]

[실은 오늘 선 보러 나왔어요]

[아니 선보러 나온사람이 왜 이 시간에 전화를 해요?  오호라~~ 바람 맞았구만...]

[또...빙고~~]

[아니... 얼른 장가를 가서 효도를 해야지 이런 이른 시간에 바람을 맞으면 어쩝니까?]

[그러게요.]

 

[참 수인씨... 오늘 와인 만들기로 한 거 잊지 않았죠? 딸기 와인]

[오늘이 목요일 인가요? 시간이 벌써....]

[알았어요.  그럼 오늘 저녁 7시 반에 옥수동에서 봐요.]

[옥수역쪽으로 가면 되는 건가요?]

[네]

[혹시 준비물이라도...]

[음...준비물이라... 딸기도 아지트에 있고 다른것도 다 있으니...  섹시한 앞치마에 잘빠진 고무장갑 단단한 마음을 준비해 오세요]

[하하하 섹시한 앞치마에 잘빠진 고무장갑 단단한 마음이라... 넵~ 그럼 저녁에 옥수동에서 뵈요]

[네 나중에 뵐께요]

 

그녀와의 만남은 상큼한 레몬티 같다.

상큼함에 저절로 미소지어지는...

 

딸기와인이 궁금해지는 오후...

 

두리번 거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수인이다.

[여기에요]

[일찍 도착하셨네요?]

[그럼요. 시간도 남는데 뭐하겠어요.  일찍와서 단단한 마음을 준비하고 있었죠]

[네?  아~~ 하하하]

[음.....섹시한 앞치마라고 했나요? 그것도 두장준비하고 잘빠진 고무장갑도 두놈 준비하고...

이만하면 됐죠?]

[네 늦겠어요.  얼른가요]

 

그녀가 아지트라고 부르는 곳으로 갔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알콜향에 기분이 좋아진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딸기를 놓고 다듬기에 여념이 없다.

 

수인과 나도 딸기를 받아들곤 꼭지를 다듬는 작업부터 했다.

 

[이야... 이거 만만치 않은데요.  20KG를 다 다듬는 거에요?]

[그럼요...]

[이거 언제쯤 알싸한 와인이 되는 거에요?]

[몇달을 푹 기다려야 되요...  와인은 기다림이거든요.  숙성시키고 발효시키고 걸러주고 침전시키고... 제가 작년 9월경에 포도로 와인을 담궜죠.  10월에는 사과로 와인을 담고 오늘 마침 온 김에 포도 와인은 병입은 시키고 갈려구요. ]

[병입이라... 그냥 병에 담기만 하는 거에요?]

[병에 담고 코르크를 막고 캡을 씌우고 라벨링을 하고...  모든게 수작업이죠.]

[이야...]

[모든게 수작업이고 느릿느릿해도 전 조용히 익어가는 이 와인이 좋아요.  내가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을 줄 수록 이 놈은 멋진 놈이 되거든요..^^]

[난 어때요? 수인씨]

[뭐가요?]

[달콤한 와인처럼 느릿느릿 조용하게 익혀서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을 주면 안될까요? 

그럼 멋진 와인이 될것 같은데...]

[하하하...  인규씨 농담이죠? 사람이 와인이랑 같나]

[진담일 수도 있죠? 잘 숙성시키면 안될려나??]

 

꼭지가 잘려나가는 빨간 딸기를 보며 그녀의 대답을 목마르게 기다린다.

[음....그렇다면 보름만 생각하고 대답할께요. 

내 오크통에 인규씨를 보관할건지 말건지 고민 좀 하게요.]

[보름이라....? 알았어요.  보름 후에는 대답을 듣는 건가요?]

[인규씨.... 혹시 오늘 선 본 대타를 나로 땜방하려는 속셈??]

[하하하 아니에요.]

 

그녀의 표정은 알 수 없는 미로다.

얼굴에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이 타는 건 나다.

갑자기 내 마음이 그녀를 향해 왜 이렇게 나서고 있을까?

 

내가 너무 쉽게 시작하는 건 아닐까?

 

그녀에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는 꺼냈지만, 담담한 그녀의 반응...

그냥 장난으로 받아들이면 어쩌지?

 

서른 다섯해의 내 나이가 무색해질만큼 가슴이 떨리고 있다.

 

[이거 병에 담는 것 좀 도와줘요]

그녀가 큰 유리병을 들고 낑낑대고 있다.

[아니 이런 것도 못 들면서 어떻게 이건 다 담궜데요? 포도 양도 장난 아니었겠구만...]

[그쵸?  ^^  나머지는 다 미모만 되면.... 도와주죠.  하하하 농담이구요.  다들 잘 도와주세요.

인규씨 부른 오늘 같은 날 뭐해요.  섹시한 앞치마도 입었겠다 막부려 먹어야죠.]

[이거 이렇게 일단 병에 담으면 되나요?]

[네 일단 병에 담고 다 담고 나면 코르크 작업하게요]

 

그녀의 옆모습이 와인병에 아로 새겨진다.

[참 인규씨...저기 와인잔 하나 가져와봐요.  그래도 저의 처녀작인데.... 시음시켜 드리죠]

[음....향도 좋고 맛이 파는 와인과 다른 걸 모르겠어요.  깔끔한데요.]

[다행이다...^^  처녀작이 실패가 아니라서...]

 

딸기향과  알콜이 섞인 포도향이 나의 코끝에서 맴돈다.

 

[자....이거 선물이에요]

그녀가 코르크까지 맊은 포도와인 한병을 건넨다.

[대신에 나머지 이병들은 집까지 실어다 주세요.  ^^ 부탁드려요]

[넵... 당연히 실어 드리죠.]

 

차에 올라 탄 그녀는 어느새 고개를 가로 떨어뜨리고 새근새근 졸기 시작했다.

 

조금 더 이렇게 그녀의 옆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가만히 그녀를 보고 있으니 첨 그녀를 만날때가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