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어느 살인자의 고백" 뉴욕시사회

이주현2006.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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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이 한창 유행했었다.

 내가 처음 읽었던 그의 책은

예쁜 일러스트가 곁들여진 유쾌하면서도 쓸쓸했던 '좀머씨 이야기'였지만,

 빠져들어가듯이 읽었던 책은 '향수'였다.

 이 세상 모든 냄새에 대한 감각이 탁월한,

그러나 정작 자신은 아무 냄새도 없는,

기이하고도 슬픈 한 살인자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고 아직까지도 널리 읽혀지고 있다.  

"향수-어느 살인자의 고백" 뉴욕시사회


 

그런데 얼마전에 이 소설이 영화화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유럽쪽에서는 개봉을 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곧 미국에서도 개봉을 한다고 하길래 예고편을 찾아보았다.(주봉미니홈피에 가면 있다:D)

 

 감독이 Run Lola Run (롤라런)으로 잘 알려진

톰 튀크베어 Tom Tykwer라는 사실에 더 놀랐다.

post-mtv 영화라고 불리우는 롤라런은 20분이라는 시간을 변형하여,

같지만 다른 이야기를 몇번이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보여주는

독특하고 감각적인 영화였다.

 그럼 젊은 감각으로 똘똘 뭉쳤던 감독이 풀어내는

'향수-어느 살인자의 고백'이 궁금해질 쯤,

운이 좋게도 교수가 보낸 전미비평가협회의 초대가 왔고,

들뜨는 마음으로 시사회에 참석할수 있었다.

 

 이번 시사회는 타임스퀘어에 있는 파라마운트 영화사에서 열렸다.

"향수-어느 살인자의 고백" 뉴욕시사회


 

소설을 읽은지 꽤 시간이 지나선지

 대략의 이야기는 생각이 났지만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았기에 거의 새로운 마음으로 영화를 볼수가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영화 향수에 관한 이야기지,

소설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18세기 프랑스.

시장판 더러운 악취속에서 태어난 그루느이는 냄새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는 사형을 당했기에

고아원에서 생활하다가 팔려가 힘겨운 노동일을 하며 살던중

처음 찾아간 파리에서 자두를 파는 한 아름다운 처녀의 냄새에 매혹되어 이끌리다가

실수로 그녀를 죽이고 만다. 

"향수-어느 살인자의 고백" 뉴욕시사회

 

그는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인해 그녀의 향기가 사그라드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그는 향기를 영원히 보존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향수 제조사 발디니(더스틴 호프만)의 밑으로 들어간다. "향수-어느 살인자의 고백" 뉴욕시사회

"향수-어느 살인자의 고백" 뉴욕시사회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해 수많은 향수들을 만들어내지만

그는 결국 '향을 영원히 보존하는 법'을 찾지 못해

발디니의 곁을 떠나 향수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도시 '그라스'로 떠난다.

 

그라스로 향하던 도중 그는 한 외진 동굴에서 '영원히 보존된' 바위의 향을 맡으며 지낸다.

그렇게 향기에 민감하던 그는 어느날 자신에게는 아무런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것을 깨닫는다. 냄새로, 향기로 모든것을 인식하던 그에게 자기 자신은 향이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것은

 자신의 존재자체를 부정당하는것과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궁극적인 '인간의 냄새'를 찾기 위해 그는 다시 그라스로 떠난다.

"향수-어느 살인자의 고백" 뉴욕시사회
궁극적인 인간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그는 아름다운 처녀들을 죽여 그 향을 채취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아름다운 처녀를 죽이고 그는 결국 그 향수를 완성하고 체포된다.  

"향수-어느 살인자의 고백" 뉴욕시사회

분노와 증오로 가득찬 시민들의 앞에서 사형을 당하게 된 그는 완성한 향수를 바르고 나타난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사실 '향기'라는 후각에 근거한 이야기를 시각으로 보여준다는것은 재미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우리는 머릿속에 어떤 후각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영화에서 어떤 영상을 보여주면 우리는 그것을 뇌속에 기억된 후각으로 인지한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라벤더밭이 나오면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는 은은한 라벤더향을 생각하며 기분이 좋아지고, 더러운 생선내장이나 시체를 보면 시각이 주는 꺼림칙한 느낌과 불쾌한 후각의 기억이 드는것이다. 영화초반에 등장하는 역겨운 영상들이 주는 후각의 기억,궁극적인 향기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우리가 가진 좋은 향기들에 대한 기억이 영화를 보는 관객을 계속 영화속으로 몰입하게 만들어준다.

 

"향수-어느 살인자의 고백" 뉴욕시사회

 

감독 톰튀크베어는 롤라런에서 보여줬던 방식과는 다르지만

역시나 감각적이고 독특하게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그르누이 그 자체를 대변하는 듯한

 '빛보다는 어둠속의 그림자'를 강조한 조명은

 램브란트와 카라바죠의 그림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향수-어느 살인자의 고백" 뉴욕시사회

사진은 Q&A때 찍은 것인데 너무 어두워서 잘 나오지가 않았다.

(왼쪽이 감독, 오른쪽이 그르누이 역을 한 Ben Whishaw.

 영화에서처럼 무척 말랐고, 분위기가 매우 독특했다. )

"향수-어느 살인자의 고백" 뉴욕시사회

역시나 생각보다 젊어서 놀랐던 감독.

한마디 모호한 질문을 하면 열마디 정확한 대답을 할수 있는,

내가 본 감독들중 가장 Q&A를 잘 이끌어 간 사람이었다. 

 

영화화하는 동안 작가 파뜨리크 쥐스킨트를 단 한번밖에 만날수 없었다는 감독은

작가의 개입이 전혀 없이 소설을 자신의 영화로 재창조 한것이다.

(작가가 영화를 본지 안본지조차 알수 없다고 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작가가 전화해서 만나자고 할지도 모른다며 농담을 던졌던 감독. 파뜨리크 쥐스킨트는 정녕 좀머씨그 자체인가.)

그가 보여주려고 한것은 그르누이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닌,

한 살인자의 고독하고 처절한 인생이 아니었을까.

냄새가 없기에 존재도 없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도 없고 자신도 사랑하는 사람이 없고 궁극의 향수를 몸에 쏟아부어 부랑자들에게 살을 뜯기고 찢겨져  트럭에 깔려 죽은 비둘기 마냥

닳고 닳아 결국 점하나도 되지 못하는

그런 살인자의 이야기를, 인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