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성지수2006.11.19
조회86

사로잡힌 사람들

기방 호장이 말합니다

 

기녀 치고 마음에 시린 한 한 두가지 품지 않은 기녀가 어디있겠습니까?

그녀들에게 한은 '장신구만큼 익숙한 것이지요

 

 

그 장신구가

그녀들이 삶의 어느 부분을 붙잡고 뒤틀어버린

비수가 되어버린 여인네들이 있습니다.

 

백무, 매향, 그리고 진이, 진이의 어미 현금까지

그녀들은 지금 가슴 한 켠에 비수를 꽂아 놓고

거기 사로잡혀 있습니다.

 

백무

 

백무에게 삶의 목적은 재예입니다.

그것이 그녀 존재의 이유이기에

백무는 어린 황진이의 춤사위를 보고 그녀 손을 이끌어들이고

은호를 떼어놓기 위해 모사 부리기도 서슴치 않습니다.

 

사랑, 정분은 기녀의 몫이 아니라

재예만이 기녀의 삶을 삶답게 만드는 진리라고 여기기에

백무는

황진이가 다시 춤춘다는 것만으로도

그 재주를 다시 보여줄 수 있게 해줬다는 것만으로도

매향은 쓸만한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듯 오직 재예에만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백무는 진이에게 마음이 없는 재예는 쓰레기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매향

 

매향을 사로잡고 있는 비수는 권력입니다.

자기가 속한 사회의 가장 큰 권력이 그녀 존재의 이유입니다.

그래서 매향은 어느 누구와도 인간적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어린시절부터 데리고 있었던 제자 부용에게 모진 것도

황진이를 선뜻 받아들이는 것도

이 자가 내가 권력을 잡는데 필요한가 아닌가만이

매향이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진이

 

진이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재예도 권력욕도 아닙니다.

배반당하고 버려진 상처입니다.

첫사랑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에 대한,

그 사회에 대한 불신은 그녀 안에 독한 가시발을 만들었습니다.

 

시인은 인생의 엄살장이라고 합니다.

진이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재예도 권력욕도 아닙니다.
배반당하고 버려진 상처입니다.
첫사랑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에 대한,
그 사회에 대한 불신은 그녀 안에 독한 가시밭을 만들었습니다.

진이에게 아픔은 더 강하고 더 오래 갑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타고난 예인입니다.
다른 이들은 언제까지 그럴꺼냐? 고 이제 잊으라고 재촉하지만
진이는 계속 마음 속에 피를 흘리고 있기에
잊을 수도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그녀의 고통이
그녀 안의 가시를 돋게 했고
그 가시는 다른 이들을 찌를 뿐 아니라
그녀 자신도 아프게 찌르고 있습니다.

 

정한-살아남은 자의 아픔

부용은 정한에게 그가 진이에게 품은 마음이
다정지병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정한은 말합니다.

그런 종류의 사람이 있다네.
죽어 아파도 비명은 커녕 신음소리도 내지 않는 사람,
웃음 뒤에 울음을 숨겨두었다고나 할까
아니면 우는 방법을 바꾸었다고나 할까?

정한은 진이를 읽고 있습니다.
그 슬픔을 알아보는 정한의 슬픔,
부용은 다른 이의 슬픔을 쉬 알아보는
동병상련의 정한의 슬픔을 읽어냅니다.

정한과 진이는 똑같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안고 있습니다.

허망하게 죽어간 은호를 가슴에 묻고
독한 가시로 아픔을 안아버린 진이와

스승과 동문을 사지로 보내고 자신은 목숨을 부지했다는
상실과 자책의 심연에 잠겨 있는 정한은

"그는 죽고 나는 살았다"는 자책, 아픔을 똑같이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한은
무심히 뜯는 진이의 거문고에 담긴 마음의 짐을 듣고
대금으로 화답합니다.

뚱땅거리는 거문고 뜯는 소리를
고즈녁한 대금소리가 감싸 안는 그 장면이
그 둘의 앞날을 보여주더군요.

 

김정한 VS 벽계수

 

두 남자의 진이를 대하는 태도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벽계수는 거문고 뜯는 진이에게 계속 뜯으라며
전두를 두둑히 주겠다고 합니다.
그에게 진이는 기녀입니다.

벽계수는 진이가 ’기녀’임을 전제하고 그녀를 대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만나러 오라고 하고
그녀의 거절엔 아랑곳않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정하고
다른 연희를 못가게 권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벽계수가 진이를 대하는 태도에는
’너는 기녀이므로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는 종에게 진이를 호칭할 때도
’명월이 년’으로 부릅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김정한과 진이에게도 일어납니다.

석달열흘 놀아보자고 농을 건넬때에도
정한은 전두가 어마어마할테니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야 라고
진이의 가치를 높게 쳐줍니다.

놀아줄 기색 없으니 별 수 없이 혼자 일이나 해야겠다는
정한의 말에 담긴
진이를 존중하는 태도 뒤에는
그녀가 당연히 놀아줘야 하는 노리개가 아닌
자기 뜻을 가진 사람이라는 전제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해라’ 가 아닌 ’하면 어떤가?’ 로 진이에게 말을 겁니다.

거문고를 들려줄 수 있겠냐고 묻는 비슷한 장면에서도
정한은 조심스레 의견을 묻고
진이의 의견을 수용합니다.

정한에게 진이는 ’기녀’가 아닌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호장에게 진이에 대해 물을 때도
’기생년’이 아닌 ’그 아이’의 상처의 연유를 묻습니다.

진이가 서신을 보고야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벽계수는 서신 한 장으로 뭐 대단히 알 수 있냐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지만

정한은 글은 선비의 얼굴이므로
그를 보고 교유를 결정하는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두 사람의 태도의 전제는 이렇게 정반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렇듯 ’기녀’와 ’사람’으로 대하는 두 사람 중
누가 마음을 믿는
진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인가는 자명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