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오 투린을 구경하고 웬모로 돌아왔다. 지도에 량산이라는 지명이 내 마음을 끌었다. 그 지도에는 이족전원풍경구(彛族田園風景區)라고 되어있었다. 영덕씨가 안 가보았지만 이족이 많이 산다고 이야기 했던 곳이었다. 왠지 그 곳에 가면 예쁜 정원이 있을 것 같았고 일몰을 보면 멋있을 것 같아서 량산을 가기로 했다. 량산에는 차가 하루에 두편 들어가는데 이미 차는 1시가 막차라서 빵차를 빌리기로 했다.왠지 기사들마다 별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눈치가 아니다. 80위앤에 어느 맘 좋은 이족 아저씨를 꼬셔서 량산을 갔다. 왜 가고 싶어 하지 않나고 물어 보았더니 길이 안좋은데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아서 돈도 많이 못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길은 안좋았고 끊임없이 산을 오른다. 1시간 정도 산을 오르니 저 멀리 웬모가 까마득이 보일 정도로 높이 올라왔다. 지도에는 이족전원풍경구라고 되어 있었지만 특별히 따로 풍경구나 민속촌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산이 워낙 높아서 내려다 보는 경치는 볼만했다. 활불사(活佛寺)라는 작은 절을 안내해준다. 절이라고 보다는 민속신앙의 성격이 더 강한 사당의 느낌이다. 벽에는 서유기 그림이 그려져 있고 들어가는 입구에는 신체 일부분을 과장해서 팔이 천장까지 닿는 인형과 다리가 길어서 키가 천장까지 닿는 인형들이 있었다.표정들은 사실적이다. 고통과 즐거움을 같이 표현한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안된다고 해서 비디오만 사정해서 찍었다. 마을은 오래된 흙담과 대문이 긴 세월이 지났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은 골목 사이 하늘이 기다랗게 보인다.
그 사이의 거미줄이라니
거미줄 사이로 지는 저녁햇살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마을의 고요함을 깨는 것은 내 발자국 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뿐이다. 절에서 내려오니 기사 아저씨가 타이어를 갈아끼고 있다. 나 땜에 이곳까지 와서 타이어까지 펑크 난 것 같아서 미안해서 내가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마을에는 작은 식당이 하나 있었다. 마을 안으로 걸어들어가니 그 곳은 시간의 흐름이 멈춘 곳 같다. 아주 작은 가게와 오래된 집들
공부하는 소리가 나서 한 민가안으로 들어가니 숫자를 쓰면서 큰 소리로 암기하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집안은 그야말로 그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무렇게나 널려져 있는 살림들,낡은 이불과 깨진 그릇들 하지만 그들의 미소와 웃음까지 아무렇지 않게 엉클어져 있는 살림살이이와는 상관이 없는 듯 했다. 내가 비디오카메라와 사진기 이렇게 두개를 들고 학교안으로 들어가니 난리가 났다. 온통 아이들이 내 곁으로 몰려와서 걸어 다닐 수가 없다. 내 뒤를 따라다니면서 자기네들끼리 깔깔거린다. 학교는 해가 저무는 시간인데도 아이들로 가득하다. 제법 큰 학교인지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제법 소년티가 나는 고학년까지 있다. 쉬는 시간인지 교실에 아이들은 몇명 띄엄 띄엄 앉아 있고 운동장은 아이들로 넘쳐난다. 매점앞에는 이것 저것 군것질꺼리와 학용품을 사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유난히 길게 줄을 서 있어서 보니 저녁 먹을 식권을 나눠준다. 아이들에게 비디오 카메라와 사진기를 보여 주면서 놀고 있는데 슬기씨와 은희씨가 나를 찾으러 왔다. 운전기사 아저씨 친구가 량산의 고위 관리라고 한다. 아마 면사무소장 정도 되지 않나 싶다. 지금까지 마을이 생기고 나서 외국인이 온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은희씨가 내가 소수민족의 삶에 관심이 있어서 이곳에 왔다고 하니 우리를 환영하는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한다. 내가 유일한 관광객이었던 적은 많았지만 마을을 방문한 최초의 외국인이라는 영광(?)까지 누릴 줄이야...
마을 잔치 분위기이다. 고기 반찬도 소고기,돼지고기,양고기,닭고기 네가지나 나오고 채소 반찬도 대여섯개 나와서 매일 이렇게 먹냐고 했더니 오늘은 우리땜에 특별히 차린 것이라고 한다.이족의 청객주(請客酒)는 유명하다.일명 동심주라고 한다. 노래를 부르면서 손님에게 술을 권하는 것이다. 올해 2월 밀러의 홍완춘에서 이족 제화절 축제 때 하도 많이 들어서 외울 정도인 청객주는 이곳 량산에서 다시 들으니 새롭다. 술은 전통주인데 증류주라서 맑다.과일이 동동 떠있길래 와인 정도로 생각하고 한입 마셨다가 그야말로 속에서 불이 난다. 거의 알콜 도수가 50도는 넘는 것 같다.
마을에서 제일 관직이 높다는 여자가 와서 인사를 한다. 마을을 찾아주어서 고맙다고.
자꾸 술을 권하는데 한잔 다 마셨다가는 필름이 끊길 것 같아서 살짝 살짝 입에 대어도 술향기가 강해서 취하는 것 같다. 웬모로 돌아가야 하는데 자꾸 데리고 온 기사아저씨에 술을 권한다.아저씨가 우리를 데리고 왔기 때문에 우리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기사 아저씨가 그 술을 다 마셔야 한다고 한다.일종의 벌주인 셈이다. 다시 웬모로 돌아가야 하는데 기사 아저씨가 술을 마시니 걱정이다. 마을의 하나뿐인 작은 식당은 사람들고 가득했고 처음으로 이 곳에 온 외국인인 우리에게 이것 저것 물어본다. 자고 가라고 하는데 쿤밍에서부터 무거운 카메라 가방 매고 끙끙거리면서 올 영덕씨를 생각하면 아니 될 이야기이지
환대는 고맙지만 쿤밍에서 친구가 와서 가야 한다고 하니까 갔다가 친구랑 다시 오라고 한다. 정말 따뜻한 마음이다.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라고 해서 아리랑을 같이 불렀다. 낯선 땅에서 부르는 아리랑이라니..
해가 저물어서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가야 한다고 하니까 싸인을 하고 가라고 한다. 사무실로 들어가서 공책에다가 우리들의 이름을 썼다. 내 이름을 한자로 쓰니까 무지 좋아한다. 내 이름이 상당히 중국스럽지.자기 어머니랑 성이 같다고 나랑 친척이라고 한다.량산을 방문한 최초의 외국인이라는 영광과 이족 마을 사람들의 환대와 따뜻한 마음을 뒤로 하고 웬모로 돌아간다. 술을 마시긴 했어도 당연히 아저씨가 운전을 잘한다.
10시반경 쿤밍에서 영덕씨가 왔다. 투린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노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DSLR 카메라에 입문해서 아직 노출이랑 구도 맞추는 것이 어렵다.지금까지 십년이 넘도록 사진 안배우고 버티었는데 주위에 사진 찍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동화가 된 것 같다. 내가 사진을 안 배운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비디오 때문이다. 비디오 촬영하는 것만으로도 한짐에 한 부담인데 게다가 사진까지 같이 하면 내가 너무 정신이 사나울 것 같았는데 드디어 나도 사진 찍는 사람들 대열에 합류해서 카메라만 네대를 가지고 왔다.
마을을 방문한 최초의 외국인이 되다-량산(凉山)편
2006년 10월 23일 월요일
우마오 투린을 구경하고 웬모로 돌아왔다. 지도에 량산이라는 지명이 내 마음을 끌었다. 그 지도에는 이족전원풍경구(彛族田園風景區)라고 되어있었다. 영덕씨가 안 가보았지만 이족이 많이 산다고 이야기 했던 곳이었다. 왠지 그 곳에 가면 예쁜 정원이 있을 것 같았고 일몰을 보면 멋있을 것 같아서 량산을 가기로 했다. 량산에는 차가 하루에 두편 들어가는데 이미 차는 1시가 막차라서 빵차를 빌리기로 했다.왠지 기사들마다 별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눈치가 아니다. 80위앤에 어느 맘 좋은 이족 아저씨를 꼬셔서 량산을 갔다. 왜 가고 싶어 하지 않나고 물어 보았더니 길이 안좋은데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아서 돈도 많이 못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길은 안좋았고 끊임없이 산을 오른다. 1시간 정도 산을 오르니 저 멀리 웬모가 까마득이 보일 정도로 높이 올라왔다. 지도에는 이족전원풍경구라고 되어 있었지만 특별히 따로 풍경구나 민속촌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산이 워낙 높아서 내려다 보는 경치는 볼만했다. 활불사(活佛寺)라는 작은 절을 안내해준다. 절이라고 보다는 민속신앙의 성격이 더 강한 사당의 느낌이다. 벽에는 서유기 그림이 그려져 있고 들어가는 입구에는 신체 일부분을 과장해서 팔이 천장까지 닿는 인형과 다리가 길어서 키가 천장까지 닿는 인형들이 있었다.표정들은 사실적이다. 고통과 즐거움을 같이 표현한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안된다고 해서 비디오만 사정해서 찍었다. 마을은 오래된 흙담과 대문이 긴 세월이 지났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은 골목 사이 하늘이 기다랗게 보인다.
그 사이의 거미줄이라니
거미줄 사이로 지는 저녁햇살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마을의 고요함을 깨는 것은 내 발자국 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뿐이다. 절에서 내려오니 기사 아저씨가 타이어를 갈아끼고 있다. 나 땜에 이곳까지 와서 타이어까지 펑크 난 것 같아서 미안해서 내가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마을에는 작은 식당이 하나 있었다. 마을 안으로 걸어들어가니 그 곳은 시간의 흐름이 멈춘 곳 같다. 아주 작은 가게와 오래된 집들
공부하는 소리가 나서 한 민가안으로 들어가니 숫자를 쓰면서 큰 소리로 암기하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집안은 그야말로 그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무렇게나 널려져 있는 살림들,낡은 이불과 깨진 그릇들 하지만 그들의 미소와 웃음까지 아무렇지 않게 엉클어져 있는 살림살이이와는 상관이 없는 듯 했다. 내가 비디오카메라와 사진기 이렇게 두개를 들고 학교안으로 들어가니 난리가 났다. 온통 아이들이 내 곁으로 몰려와서 걸어 다닐 수가 없다. 내 뒤를 따라다니면서 자기네들끼리 깔깔거린다. 학교는 해가 저무는 시간인데도 아이들로 가득하다. 제법 큰 학교인지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제법 소년티가 나는 고학년까지 있다. 쉬는 시간인지 교실에 아이들은 몇명 띄엄 띄엄 앉아 있고 운동장은 아이들로 넘쳐난다. 매점앞에는 이것 저것 군것질꺼리와 학용품을 사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유난히 길게 줄을 서 있어서 보니 저녁 먹을 식권을 나눠준다. 아이들에게 비디오 카메라와 사진기를 보여 주면서 놀고 있는데 슬기씨와 은희씨가 나를 찾으러 왔다. 운전기사 아저씨 친구가 량산의 고위 관리라고 한다. 아마 면사무소장 정도 되지 않나 싶다. 지금까지 마을이 생기고 나서 외국인이 온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은희씨가 내가 소수민족의 삶에 관심이 있어서 이곳에 왔다고 하니 우리를 환영하는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한다. 내가 유일한 관광객이었던 적은 많았지만 마을을 방문한 최초의 외국인이라는 영광(?)까지 누릴 줄이야...
마을 잔치 분위기이다. 고기 반찬도 소고기,돼지고기,양고기,닭고기 네가지나 나오고 채소 반찬도 대여섯개 나와서 매일 이렇게 먹냐고 했더니 오늘은 우리땜에 특별히 차린 것이라고 한다.이족의 청객주(請客酒)는 유명하다.일명 동심주라고 한다. 노래를 부르면서 손님에게 술을 권하는 것이다. 올해 2월 밀러의 홍완춘에서 이족 제화절 축제 때 하도 많이 들어서 외울 정도인 청객주는 이곳 량산에서 다시 들으니 새롭다. 술은 전통주인데 증류주라서 맑다.과일이 동동 떠있길래 와인 정도로 생각하고 한입 마셨다가 그야말로 속에서 불이 난다. 거의 알콜 도수가 50도는 넘는 것 같다.
마을에서 제일 관직이 높다는 여자가 와서 인사를 한다. 마을을 찾아주어서 고맙다고.
자꾸 술을 권하는데 한잔 다 마셨다가는 필름이 끊길 것 같아서 살짝 살짝 입에 대어도 술향기가 강해서 취하는 것 같다. 웬모로 돌아가야 하는데 자꾸 데리고 온 기사아저씨에 술을 권한다.아저씨가 우리를 데리고 왔기 때문에 우리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기사 아저씨가 그 술을 다 마셔야 한다고 한다.일종의 벌주인 셈이다. 다시 웬모로 돌아가야 하는데 기사 아저씨가 술을 마시니 걱정이다. 마을의 하나뿐인 작은 식당은 사람들고 가득했고 처음으로 이 곳에 온 외국인인 우리에게 이것 저것 물어본다. 자고 가라고 하는데 쿤밍에서부터 무거운 카메라 가방 매고 끙끙거리면서 올 영덕씨를 생각하면 아니 될 이야기이지
환대는 고맙지만 쿤밍에서 친구가 와서 가야 한다고 하니까 갔다가 친구랑 다시 오라고 한다. 정말 따뜻한 마음이다.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라고 해서 아리랑을 같이 불렀다. 낯선 땅에서 부르는 아리랑이라니..
해가 저물어서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가야 한다고 하니까 싸인을 하고 가라고 한다. 사무실로 들어가서 공책에다가 우리들의 이름을 썼다. 내 이름을 한자로 쓰니까 무지 좋아한다. 내 이름이 상당히 중국스럽지.자기 어머니랑 성이 같다고 나랑 친척이라고 한다.량산을 방문한 최초의 외국인이라는 영광과 이족 마을 사람들의 환대와 따뜻한 마음을 뒤로 하고 웬모로 돌아간다. 술을 마시긴 했어도 당연히 아저씨가 운전을 잘한다.
10시반경 쿤밍에서 영덕씨가 왔다. 투린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노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DSLR 카메라에 입문해서 아직 노출이랑 구도 맞추는 것이 어렵다.지금까지 십년이 넘도록 사진 안배우고 버티었는데 주위에 사진 찍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동화가 된 것 같다. 내가 사진을 안 배운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비디오 때문이다. 비디오 촬영하는 것만으로도 한짐에 한 부담인데 게다가 사진까지 같이 하면 내가 너무 정신이 사나울 것 같았는데 드디어 나도 사진 찍는 사람들 대열에 합류해서 카메라만 네대를 가지고 왔다.
여행 두번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