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29일 일요일 *구간코스:하늘재-탄항산-조령산-이화령 *산행날씨:흐른듯한 맑음,옅은듯한 깨스 *산행참석하신분 :산행대장 김호진님,산행부대장 가을의전설 한창조님 안산 안익환님,장산 김교길님,우리 조하근님,새터 정방유님,투사 김경석님 수련화 김경숙님,너에게 이명순님,율리 박명자님, 프로마운틴 산영 정태일님,오르리 이중호 12명 흐름산악회 회원님 포함 30여명 *특이사항:3번의 알바 및 암름 구간이라 산행 시간 오래 걸림 토요일 일이 늦게 끝났다 괜시리 피곤해서 산에 가기 싫은 생각도 쬐금 드는게 요상하다 이왕 이렇게 된거 술자리에 나가서 일요일 새벽 3시까지 한정없이 술잔을 기울이며 백두대간 마루금을 만나기 위해 기다린다 비몽사몽 차에 올라 눈을 감고 눈뜨는 순간이 하늘재 도착이다 ^^^ 술기운에 오르는 산길 고난의 길이 이어질것 같다 *구간별 산행거리(도상거리16.6km) 하늘재-2km-탄항산-2.4km-부봉갈림길-3.4km-마패봉- 1km-조령3관문-5.3km-조령산-2.5km-이화령 이마에 송글 송글 맺혀가는 땀방울 왠지 술냄새가 땀에도 베어 나오는듯 하여 더 정신이 없는것 같았다 처음 만나지는 작은 정상석 하나에도 만남의 기쁨을 나누고 싶어 진다 월항삼봉(856m) 탄황산은 월항삼봉(月項蔘峰)의 다른 이름입니다. 월항삼봉(851m)은 충주시 상모면과 경북 문경시 문경읍 평천리의 월항마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뾰족한 봉우리 세 개가 나란히 서있어 삼봉(三峰)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산삼이 많이 나는 산이라 해서 삼봉(蔘峰)으로 불리고 있다. 월악산 국립공원 내에 있으면서 독립된 산을 이루고 있으며 산세는 웅장하지 않으나 제법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산이다. 평천재에서 잠시 목을 축이며 함께 어울려 쉬어 본다 작은 된비알을 치고 오르자 이런 표지목이 보이면서 작년 한겨울 추위에 떨었던 주흘산시산제 산행의 느낌도 다시 한번 떠올려 보는 여유도 가져 본다 산행 일정 및 시간 *07:20분-하늘재산행들머리 *08:12분-탄항산 *08:33분-평천재 *부봉갈림길-1번째 알바 *09:30분-산성동문 *10:30분-산성북문(휴식 및 후미팀 기다림) *11:15분-마패봉 *11:45-12:45분:조령3관문 점심식사 *능선삼거리-2번째 알바 *14:47분-신선암봉 *15:39분-조령산정상 *조령샘삼거리-3번째 알바 *16:40분-이화령 *18:30분-수련화행님 마지막 도착 작은 알릉을 잠시 스쳐 가다가 만나지는 부봉삼거리 이곳에서 우측편 산성을 옆에 끼고 운행을 해야 하는데 우리 중간팀들이 첫번째 알바를 하게 된다 마루금을(0.5Km) 벗어나 잠시 다녀 올수는 있지만 그곳에서 직진하다 보면 소위 알바를 심하게 하며 마루금을 달리 하게 되는 것이다 부 봉 (915m) 백두대간 이나 정맥 종주의 제1 원칙은 능선 마루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원칙 때문에 종주자들이 종종 여러가지 갈등에 직면하게 된다. 그 중 가장 흔한 것이 마루금을 타는 도중, 쉽고 편한 지름길을 만났을 때이다. 대간이나 정맥을 이어 나가려면 보통 하루 평균 20㎞ 이상 걷기 때문에 종주자들의 몸과 마음은 늘상 지쳐있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와 같은 길을 만난다면 대부분의 종주자들은 적지않은 동요를 느끼게 된다. 또다른 갈등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발견하는 아주 특별한 풍광이다. 갈 길이 바빠 주변의 풍광에 눈을 감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백두대간이 용틀임하는 경북 문경의 부봉은 문경의 진산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의 새재골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6개의 암봉이 불꽃으로 치솟아 있는 이 봉우리는 한산모시 같이 시원하게 흘러내린 천길 벼랑과 수백년 세월을 인고로 버텨온 늘푸른 노송과의 조화가 그림 같은 곳이다. 웬만한 풍광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대간 종주자들도 이곳에 오면 더 이상의 발길을 옮기지 못할 정도다. 후미조를 기다리며 잠시 여유도 가져 보지만 웬지 오지 않은님 심한 알바 ^^^ 대장님의 무전을 받고서 돌아 왔다는 뒷담화가 있었다 북문에서 잠시 쉬어 보면서 기다리고 기다린다 율리님은 두번째 똑 같은 곳에서 알바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지 않은 님들을 뒤에 두고 마패봉으로 향해 나아 간다 잠시 오르막을 거치다 보니 이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 하여 준다 알바조들이 이곳을 오르면서 너에게님 왈 알바 휴유증으로 그 작은 된비알에도 하늘이 노랗었다며 조령에서 웃음띤 얼굴을 보여 주셨다 마패봉(927m) 월악산국립공원의 남서단에 위치한 일련의 암봉들로 충북 충주시 상모면과 괴산군 연풍면에 걸쳐 뻗어 있는 산들이다. 수안보온천에서 동남쪽으로 약5㎞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 아래로는 문경새재 3관문을 비롯하여 문경새재길이 연결되어 있어 연중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승지이다. 신선봉과 마폐봉은 연계하여 오르는 경우가 많으며 산세는 비록 험준하나 수월한 편이며 능선에 올라서면 북쪽으로 펼쳐진 월악산 국립공원의 수려한 장관이 압도적이다. 마폐봉은 암행어사로 이름난 박문수가 삼관문 위의 봉우리에 마폐를 걸어 두고 쉬었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폐봉 정상은 멀리 대미산 포함산 부봉으로 타고 내려오는 백두 대간 자락으로 아래로 조령 삼관문을 거쳐 조령산 , 희양산, 대야산,속리산을 이어주며 서쪽으로 줄기를 뻗어 신선봉을 붙들고 있다. 마패봉이라 하지만 그곳 정상석에는 마역봉이라 기록 되어져 있었으며 능선상에서 잘나 보이는 길을 따라 직진 하다 보면 신선봉으로 향하면서 대간 마루금을 벗어나게 된다 정상에서 좌측편으로 길을 꺽어 내림짓을 해야만 조령3관으로 향해 갈수 있다 긴 걸음이라 하여도 이렇게 생기 발랄하게 동심으로 돌아간듯 즐기는 웃음을 뛰울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다 닥쳐올 알바의 고통을 상상도 못한채 넘 조아라 하시는 수련화 행님 ^^^ 조금은 급한 듯한 내림짓에 여념이 없다 보면 산성과 잘 어우러진 길을 스치다 잠시 후에 조령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만나는 점심시간 행복한 나눔의 시간을 가져 본다 걸죽한 막걸리 한병(5,000원) 또 한병 두병을 수련화행님의 찬조로 기쁨에 넘치듯 쭉 들이켜 보는 즐거운 시간이다 장산님의 부대찌개,우리님의 라면,율리님의 정성,수련화행님의 야채쌈 펼쳐지는 진수성찬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조령의 한낮을 한층 가을 스럽고 풍성하게 하여 주었다 조령(鳥嶺)=문경새재(650m) 옛 문헌에는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라는 의미다 새들도 쉬었다 넘어가는 산무루에는 조선 숙종 34년(1708년)에 세운 제 3관문인 조령관 이 묵묵히 지키고 있다. 또한 옛날 영남의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으로 과거 보러 다니던 유서깊은 고개로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미끄러진다는 금기가 있지만 새재를 넘으면 장원급제라는 '기쁜 소식을 든데 된다'하여 땀흘리며 넘나들던 과거(科擧)길이다 영남대로상의 가장 중요한 고개로서 정치,사회 전반과 군사적 요충지였다 임진왜란의 처참한 패배를 거울 삼아 협곡 중간에 1594년 제 2관문인 조곡관을 세우고 훗날 제1관문 주흘관과 제3관문 조령관을 세우게 되는 역사의 아픔을 품고 있다 8,000여명의 농민군이 산화되어진 뒤에 얻어지는 교훈은 그 아픔이 더 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조령에서 다시 마루금을 이어 길을 떠난다 된비알이 주는 거칠어지는 호흡소리에 깜짝 깜짝 스스로 놀랜다 그소리가 하도 커기 때문이다 늘푸른 님들을 뒤로 하고 먼저 토닥이며 발걸음을 옮긴다 한적하게 혼자 걷는 길이 넘 환상적으로 다가 온다 많이 먹은 점심에 술기운이 함께 어우러지는 걸음이다 ^^^ 올라선 능선은 왼편의 조령산과 오른쪽 깃대봉을 가리키는 표지석이 서있다 여기서 늘푸른 님들의 두번째 알바다 조령산이 아닌 깃대봉을 향해 나아가는 우를 범하게 된다 마루금을 벗어난 걸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조령을 거쳐 내달리는 산길은 조금은 특이하다 하나의 봉우리를 작게 넘어서면 알릉이 나타나고 또 넘어서면 로프를 동반한 작은 봉우리들이 줄기차게 나타난다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봉우리들이 때론 밉게 보이기 까지 하였다 마치 견고한 성채같은 바위 봉우리들이 줄지어 험준한 요새를 이루고 있어 본격적인 암릉 등산이 시작 되어 지는 것이다 하이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암봉들이 새로운 산행의 묘미를 물씬 선물하여 주면서 로프를 다잡아 쥐며 올라서는 즐거움 또한 작지만 않은게 특별한 행복을 주는 소중한 구간이 아닐까 싶다 신선이 놀았을것 같은 산세를 자랑하는 신선암봉 넓직한 평평한 바위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산우님들이 곳곳에 보이고 그 한적한 여유에 동참하지 못하고 혼자 길을 앞서 나아간다 오름짓에 여념이 없어도 주위에 보이는 경관에 탄성을 자아내고 스쳐 지나가는 산꾼들의 긴 행렬에도 뜨거운 열정이 묻어 나고 어쪄라 토탁이는 혼자만의 걸음에도 가슴 터질듯이 밀려오는 벅찬 감동은 어디로 어떻게 사그라 뜨려야 하는지 ^^^ 조령산에 올라서 이리 저리 기웃기웃 사진을 담으면서 혼자 웃고 있는 모습이 불쌍하게 보였는지 친절하게 사진사를 자청해서 정상사진을 담아 주시는 분도 있고 따뜻한 지깨에 기울이던 술잔을 권하는 분도 있다 역시 산꾼들의 친절함은 끝없어 보인다 잠시 쉬고 있을때 장산님이 도착해서 달콤한 사과 한쪽으로 내려가야 할 이화령을 바라 보며 지도를 펼쳐 든다! 지현옥 님 그분은 영원히 산에서 잠들다! 지현옥 5주기 추모 안나푸르나 여신으로 영원히 살아있으라....... 글 김세준 중앙일보 기자 ■99안나푸르나원정대원 1999년 4월 29일 안나푸르나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여성산악인 지현옥씨가 우리 곁을 떠난 지 5주년이 됐다. 지현옥이라는 이름 석자를 떠올리면 지금도 콧날이 시큰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녀의 산악활동을 곁에서 지켜본 김세준(중앙일보 기자)씨가 지현옥을 다시 생각하며 5주기 추모글을 보내왔다. 한국인가운데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등정한 산악인은 누구일까? ■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고상돈씨를 떠올린다. 그러나 한국 여성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자를 묻는 질문에는 말문이 막히기 마련이다. 영원한 히말라야의 산처녀 지현옥. 그녀는 신들의 거처인 히말라야의 꼭지점을 국내 처음, 그리고 세계에서 열여섯 번째로 등정했던 이 시대의 ■원더우먼■이었다. 지현옥은 에베레스트 등정을 비롯해 남자들이 주축을 이룬 원정대 대장, 세계 최초로 가셔브럼Ⅱ봉(8035m) 무산소 단독 등반 등 역사가 일천한 한국 여성산악계에 수많은 기록을 남겼던 인물이다. 이제 고인이 된 지 벌써 다섯 성상(星霜)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산악인들 가슴에 깊이 각인됐던 그녀의 강렬했던 모습은 지워지질 않는다. 길지 않은 40평생 중 절반인 20년간을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산을 잡고 몸부림치게 만들었는가. 산을 사랑하고 이해하며 구도자의 모습으로 그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던 산악인 지현옥의 발자취를 이 자리를 빌어 잠시 되새겨 본다. 1961년 충남 논산군 연산면에서 태어난 지현옥은 히말라야를 올랐다고는 믿지 못할 정도의 자그마한 체격과 가냘픈 몸매의 평범한 여성이었다. 청주사범대학(서원대 전신)에 입학하기 전만 하더라도 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그러나 ■산악부가 독특한 서클■이라는 고등학교 선배의 말에 이끌려 산악부에 가입했다. 암벽등반을 하면서 산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됐고 대학 3학년 시절 남자 동기생 두 명이 군입대와 고시공부로 산을 멀리 하게 되자 자연스레 산악부장을 맡게 됐다. 이런 그녀에게 해외원정의 기회는 졸업 후 5년이 지난 뒤 찾아왔다. 1988년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6194m)를 등정했다. 여섯 명의 여성 클라이머로 구성된 매킨리 원정대에서 지현옥은 심한 고소증세를 느끼면서도 이를 극복하고 대원 중 가장 먼저 정상을 밟았다. 1993년 교보생명 사보 3월호에 실렸던 지현옥의 수기에는 당시의 고통스러웠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60㎏의 짐을 나르면서 들개처럼 헐떡거렸고 목에서는 피가 넘어왔다. 계속되는 구토는 막창의 그 무엇인가까지도 끌어 올리듯 지독하게 이어졌다. 희박한 산소로 인한 고소증세는 두개골이 빠개지는 듯한 고통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것이 등반이란 말인가? 이것이 인간이 할 짓인가? ■하는 갈등 때문에 여기서 포기하고 그토록 우습게 여기던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투처럼 치러진 첫 원정에서 나는 내 자신에 보란 듯이 승리했다.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그것은 산 정상에 올랐다기보다는 내 자신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산에 올랐고 하얀 산은 그 전투의 장을 마련해 주었을 뿐이다. ■ 이후 89년과 90년에는 안나푸르나(8091m)와 캉첸중가(8586m)를 등반했다. 그리고 91년 서원대 산악부를 이끌고 중국 곤륜산맥의 무즈타그아타(7546m)로 원정을 떠나 7000m대에서 비박을 하고 후배 대원 한 명과 함께 등정하는 쾌거를 이뤘다. 여기서 지현옥은 고산 등반가로서의 자질과 대장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게 되면서 이러한 경험은 2년 뒤 ■93한국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로 이어지게 된다 에베레스트 원정대원에 선발돼 현지 정찰 겸 적응훈련을 위해 92년 히말라야의 로부제(6183m)와 임자체(6119m)를 올랐다. 그리고 이듬해 32살의 나이에 13명의 대원을 이끌고 에베레스트 원정에 나서 5월 10일 오전 10시45분(한국 시간 오후 2시) 최오순(당시 26세), 김순주(25세)와 함께 정상을 밟았다. 그렇게 황금 같은 젊은 시절을 산에서 보내고 꿈에도 그리던 에베레스트를 등정했건만 이러한 영광은 그녀에게 한 순간의 꿈처럼 다가왔다 사라졌다. 자부심을 안고 귀국한 지현옥의 앞에는 영광과 찬사가 아니라 갖가지 험담과 시기 ■질투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모든 것이 잘못 알려진 것으로 판명됐지만 당시 지현옥에게는 치욕이자 좌절이었고 그녀는 ■오랜 번민 끝에 등정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며 ■가을에는 캉첸중가에 도전하겠다■고 밝혔었다. 프랑스 산악인 가스통 레뷔파는 ■산은 하나의 다른 세계다. 그것은 지구의 일부라기보다는 동떨어져 독립된 신비의 왕국이다. 이 왕국에 들어서기 위한 유일한 무기는 의지와 애정뿐이다 ■라고 말했다. 삶의 의지와 히말라야에 대한 애정으로 철저히 무장한 그녀는 여성들만의 K2원정대를 꾸리는 것을 인생의 마지막 목표로 잡았던 것이다. 미국의 여성 산악인인 난다데비 언솔드는 ■산은 우리를 태어나게 하고 다시 우리를 거두어들인다. 어차피 우리의 삶이란 신이 허락한 짧은 숨결이다■라고 말했다. 지현옥도 안나푸르나 원정에서 ■1982년 한국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등반에 나섰고 하고픈 등반활동을 끊임없이 해왔으며 대자연 속에서 격렬하게 몸부림치다 대자연의 품에 안겼던 J모 선배가 몹시도 그리웠다 ■고 말했다. 등반기술을 가르칠 때는 사정없이 매서워 시어머니라고 불리지만 평소에는 후배들에게 자상한 선배로 인기만점의 지현옥. 매사에 치밀하고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안경 너머로 보이는 짙은 눈썹과 서글서글한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그리운 것은 무엇때문일까...... ( 덧붙여서) 안나푸르나란 산스크리트어로 '풍요의 여신' 또는 '수확의 여신'을 의미하며 인류에 의해 최초로 등정된 8,000m 이상의 고봉이라 하여 'Premier 8,000m'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고합니다..... 지현옥님이 안나푸르나에서 짦은생(38세)을 마감당시, 99년도에는 산악인박영석씨와 엄홍길씨가 경쟁적으로 희말야야 14등 등정을 벌이고잇던시기로, 더욱 안타까운것은 엄홍길이가 안나푸르나 4번도전실패후 5섯번째 도전파트너로써 지현옥님을초청햇다고합니다.. 엄홍길이는 소원대로 먼저정상등정후 하산하고 곧이어지현옥님은 단독정상등정후 생애 마지막육성인 “안녕하세요..여기는안나 푸르나 지현옥입니다...” 라는 무전을남기고 차디찬 안나푸르나품으로.... 영원히... 산이 좋아 산이 되어버린 고인의 평안한 영면을 기도 드립니다 -오르리배상-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그래도 두뇌를 가졌다는 인간이. 짐승처럼 헐떡이며 고상함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이 짓을 나는 왜 하는가 생각한다. 그러나 이건 내가 선택한 삶이다. 20대에 나는 결심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갖지 않아도 좋다. 산에만 가게 해 달라. ” 1999년 4월 28일 안나푸르나의 정상 등정 개시 하루 전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여성이 있다. 고 지현옥. 그는 다음날 엄홍길의 열한 번째 히말라야 8000m봉 등정 성공에 이어 안나푸르나 정상에 섰다. 그러나 더는 내려오지 못했다. ‘산에만 가게 해 달라’ 소원하던 그는 영원히 히말라야 산자락에 묻혀 산이 되었다. 안나푸르나에서 사라진 여성 산악인 지현옥. 그렇지만 이렇게만 그를 추억하기에는 우리의 기억이란 게 너무 야속하다. 그는 1993년 여성으로서는 국내 최초, 세계 여성으로는 세 번째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했고, 1998년에는 가셔브룸2봉을 여성 최초로 무산소 단독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여성 산악인의 역사를 새로 쓴 인물이다. “산은 너무나 무감각해요. 자기밖에 몰라요. 눈사태 같은 것도 자기가 원래 하는 일이에요. 산은 사람이 오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죠. 인간이 여기 와서는 과연 내가 이 난관을 뚫고 갈 수 있나, 자신을 시험하는 거죠. 산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나에 대한 도전이지요. 또한 유가족들이 오열하던 지현옥씨의 첫 추모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너무 애석한 마음에서 엄대장이 왜 그녀를 막지 못했을까 이야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엄대장은 할말이 없고, 지현옥은 자기 갈 길을 간 겁입니다.
가을은 벌써 나를 두고(하늘재-이화령)
2006년 10월 29일 일요일
*구간코스:하늘재-탄항산-조령산-이화령
*산행날씨:흐른듯한 맑음,옅은듯한 깨스
*산행참석하신분 :산행대장 김호진님,산행부대장 가을의전설 한창조님
안산 안익환님,장산 김교길님,우리 조하근님,새터 정방유님,투사 김경석님
수련화 김경숙님,너에게 이명순님,율리 박명자님,
프로마운틴 산영 정태일님,오르리 이중호 12명
흐름산악회 회원님 포함 30여명
*특이사항:3번의 알바 및 암름 구간이라 산행 시간 오래 걸림
토요일 일이 늦게 끝났다
괜시리 피곤해서 산에 가기 싫은 생각도 쬐금 드는게 요상하다
이왕 이렇게 된거 술자리에 나가서 일요일 새벽 3시까지
한정없이 술잔을 기울이며 백두대간 마루금을 만나기 위해
기다린다
비몽사몽 차에 올라 눈을 감고 눈뜨는 순간이 하늘재 도착이다 ^^^
술기운에 오르는 산길
고난의 길이 이어질것 같다
*구간별 산행거리(도상거리16.6km)
하늘재-2km-탄항산-2.4km-부봉갈림길-3.4km-마패봉-
1km-조령3관문-5.3km-조령산-2.5km-이화령
이마에 송글 송글 맺혀가는 땀방울
왠지 술냄새가 땀에도 베어 나오는듯 하여
더 정신이 없는것 같았다
처음 만나지는 작은 정상석 하나에도
만남의 기쁨을 나누고 싶어 진다
월항삼봉(856m)
탄황산은 월항삼봉(月項蔘峰)의 다른 이름입니다.
월항삼봉(851m)은 충주시 상모면과
경북 문경시 문경읍 평천리의 월항마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뾰족한 봉우리 세 개가 나란히 서있어
삼봉(三峰)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산삼이 많이 나는 산이라 해서 삼봉(蔘峰)으로 불리고 있다.
월악산 국립공원 내에 있으면서 독립된 산을 이루고 있으며
산세는 웅장하지 않으나 제법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산이다.
평천재에서 잠시 목을 축이며 함께 어울려 쉬어 본다
작은 된비알을 치고 오르자 이런 표지목이 보이면서
작년 한겨울 추위에 떨었던 주흘산시산제 산행의 느낌도
다시 한번 떠올려 보는 여유도 가져 본다
산행 일정 및 시간
*07:20분-하늘재산행들머리
*08:12분-탄항산
*08:33분-평천재
*부봉갈림길-1번째 알바
*09:30분-산성동문
*10:30분-산성북문(휴식 및 후미팀 기다림)
*11:15분-마패봉
*11:45-12:45분:조령3관문 점심식사
*능선삼거리-2번째 알바
*14:47분-신선암봉
*15:39분-조령산정상
*조령샘삼거리-3번째 알바
*16:40분-이화령
*18:30분-수련화행님 마지막 도착
작은 알릉을 잠시 스쳐 가다가
만나지는 부봉삼거리 이곳에서 우측편 산성을 옆에 끼고
운행을 해야 하는데
우리 중간팀들이 첫번째 알바를 하게 된다
마루금을(0.5Km) 벗어나 잠시 다녀 올수는 있지만 그곳에서 직진하다 보면
소위 알바를 심하게 하며 마루금을 달리 하게 되는 것이다
부 봉 (915m)
백두대간 이나 정맥 종주의 제1 원칙은 능선 마루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원칙 때문에 종주자들이 종종 여러가지 갈등에 직면하게 된다.
그 중 가장 흔한 것이 마루금을 타는 도중, 쉽고 편한 지름길을 만났을 때이다.
대간이나 정맥을 이어 나가려면 보통 하루 평균 20㎞ 이상 걷기 때문에
종주자들의 몸과 마음은 늘상 지쳐있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와 같은 길을 만난다면
대부분의 종주자들은 적지않은 동요를 느끼게 된다.
또다른 갈등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발견하는 아주 특별한 풍광이다.
갈 길이 바빠 주변의 풍광에 눈을 감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백두대간이 용틀임하는 경북 문경의 부봉은 문경의 진산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의 새재골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6개의 암봉이 불꽃으로 치솟아 있는 이 봉우리는 한산모시 같이
시원하게 흘러내린 천길 벼랑과 수백년 세월을 인고로 버텨온
늘푸른 노송과의 조화가 그림 같은 곳이다.
웬만한 풍광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대간 종주자들도
이곳에 오면 더 이상의 발길을 옮기지 못할 정도다.
후미조를 기다리며 잠시 여유도 가져 보지만
웬지 오지 않은님
심한 알바 ^^^
대장님의 무전을 받고서 돌아 왔다는 뒷담화가 있었다
북문에서 잠시 쉬어 보면서 기다리고 기다린다
율리님은 두번째 똑 같은 곳에서 알바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지 않은 님들을 뒤에 두고 마패봉으로 향해 나아 간다
잠시 오르막을 거치다 보니 이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 하여 준다
알바조들이 이곳을 오르면서 너에게님 왈
알바 휴유증으로 그 작은 된비알에도 하늘이 노랗었다며
조령에서 웃음띤 얼굴을 보여 주셨다
마패봉(927m)
월악산국립공원의 남서단에 위치한 일련의 암봉들로
충북 충주시 상모면과 괴산군 연풍면에 걸쳐 뻗어 있는 산들이다.
수안보온천에서 동남쪽으로 약5㎞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 아래로는 문경새재 3관문을 비롯하여 문경새재길이 연결되어 있어
연중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승지이다.
신선봉과 마폐봉은 연계하여 오르는 경우가 많으며
산세는 비록 험준하나 수월한 편이며 능선에 올라서면
북쪽으로 펼쳐진 월악산 국립공원의 수려한 장관이 압도적이다.
마폐봉은 암행어사로 이름난 박문수가 삼관문 위의 봉우리에
마폐를 걸어 두고 쉬었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폐봉 정상은 멀리 대미산 포함산 부봉으로 타고 내려오는
백두 대간 자락으로 아래로 조령 삼관문을
거쳐 조령산 , 희양산, 대야산,속리산을 이어주며
서쪽으로 줄기를 뻗어 신선봉을 붙들고 있다.
마패봉이라 하지만
그곳 정상석에는 마역봉이라 기록 되어져 있었으며
능선상에서 잘나 보이는 길을 따라 직진 하다 보면 신선봉으로 향하면서
대간 마루금을 벗어나게 된다
정상에서 좌측편으로 길을 꺽어 내림짓을 해야만 조령3관으로 향해 갈수 있다
긴 걸음이라 하여도
이렇게 생기 발랄하게 동심으로 돌아간듯
즐기는 웃음을 뛰울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다
닥쳐올 알바의 고통을 상상도 못한채
넘 조아라 하시는 수련화 행님 ^^^
조금은 급한 듯한 내림짓에 여념이 없다 보면
산성과 잘 어우러진 길을 스치다 잠시 후에
조령에 도착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만나는 점심시간
행복한 나눔의 시간을 가져 본다
걸죽한 막걸리 한병(5,000원) 또 한병 두병을 수련화행님의 찬조로
기쁨에 넘치듯 쭉 들이켜 보는 즐거운 시간이다
장산님의 부대찌개,우리님의 라면,율리님의 정성,수련화행님의 야채쌈
펼쳐지는 진수성찬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조령의 한낮을
한층 가을 스럽고 풍성하게 하여 주었다
조령(鳥嶺)=문경새재(650m)
옛 문헌에는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라는 의미다
새들도 쉬었다 넘어가는 산무루에는 조선 숙종 34년(1708년)에 세운
제 3관문인 조령관 이 묵묵히 지키고 있다.
또한 옛날 영남의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으로 과거 보러
다니던 유서깊은 고개로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미끄러진다는 금기가 있지만
새재를 넘으면 장원급제라는 '기쁜 소식을 든데 된다'하여
땀흘리며 넘나들던 과거(科擧)길이다
영남대로상의 가장 중요한 고개로서 정치,사회 전반과 군사적 요충지였다
임진왜란의 처참한 패배를 거울 삼아 협곡 중간에 1594년 제 2관문인 조곡관을 세우고
훗날 제1관문 주흘관과 제3관문 조령관을 세우게 되는
역사의 아픔을 품고 있다
8,000여명의 농민군이 산화되어진 뒤에 얻어지는 교훈은
그 아픔이 더 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조령에서 다시 마루금을 이어 길을 떠난다
된비알이 주는 거칠어지는 호흡소리에 깜짝 깜짝 스스로 놀랜다
그소리가 하도 커기 때문이다
늘푸른 님들을 뒤로 하고 먼저 토닥이며 발걸음을 옮긴다
한적하게 혼자 걷는 길이 넘 환상적으로 다가 온다
많이 먹은 점심에 술기운이 함께 어우러지는 걸음이다 ^^^
올라선 능선은 왼편의 조령산과 오른쪽 깃대봉을 가리키는 표지석이 서있다
여기서 늘푸른 님들의 두번째 알바다
조령산이 아닌 깃대봉을 향해 나아가는 우를 범하게 된다
마루금을 벗어난 걸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조령을 거쳐 내달리는 산길은
조금은 특이하다 하나의 봉우리를 작게 넘어서면
알릉이 나타나고 또 넘어서면
로프를 동반한 작은 봉우리들이 줄기차게 나타난다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봉우리들이 때론 밉게 보이기 까지 하였다
마치 견고한 성채같은 바위 봉우리들이
줄지어 험준한 요새를 이루고 있어
본격적인 암릉 등산이 시작 되어 지는 것이다
하이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암봉들이 새로운 산행의 묘미를 물씬 선물하여 주면서
로프를 다잡아 쥐며 올라서는 즐거움 또한
작지만 않은게 특별한 행복을 주는
소중한 구간이 아닐까 싶다
신선이 놀았을것 같은 산세를 자랑하는
신선암봉 넓직한 평평한 바위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산우님들이 곳곳에 보이고 그 한적한 여유에 동참하지 못하고
혼자 길을 앞서 나아간다
오름짓에 여념이 없어도 주위에 보이는 경관에
탄성을 자아내고
스쳐 지나가는 산꾼들의 긴 행렬에도 뜨거운 열정이 묻어 나고
어쪄라 토탁이는 혼자만의 걸음에도
가슴 터질듯이 밀려오는 벅찬 감동은
어디로 어떻게 사그라 뜨려야 하는지 ^^^
조령산에 올라서 이리 저리 기웃기웃 사진을 담으면서
혼자 웃고 있는 모습이
불쌍하게 보였는지 친절하게 사진사를 자청해서 정상사진을 담아 주시는 분도 있고
따뜻한 지깨에 기울이던 술잔을 권하는 분도 있다
역시 산꾼들의 친절함은 끝없어 보인다
잠시 쉬고 있을때 장산님이 도착해서
달콤한 사과 한쪽으로 내려가야 할 이화령을 바라 보며
지도를 펼쳐 든다!
지현옥 님 그분은 영원히 산에서 잠들다!
지현옥 5주기 추모
안나푸르나 여신으로 영원히 살아있으라.......
글 김세준 중앙일보 기자
■99안나푸르나원정대원
1999년 4월 29일 안나푸르나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여성산악인 지현옥씨가
우리 곁을 떠난 지 5주년이 됐다. 지현옥이라는
이름 석자를 떠올리면 지금도 콧날이 시큰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녀의 산악활동을 곁에서 지켜본 김세준(중앙일보 기자)씨가
지현옥을 다시 생각하며 5주기 추모글을 보내왔다.
한국인가운데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등정한 산악인은 누구일까?
■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고상돈씨를 떠올린다.
그러나 한국 여성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자를 묻는 질문에는 말문이 막히기 마련이다.
영원한 히말라야의 산처녀 지현옥. 그녀는 신들의 거처인 히말라야의 꼭지점을 국내 처음,
그리고 세계에서 열여섯 번째로 등정했던 이 시대의
■원더우먼■이었다.
지현옥은 에베레스트 등정을 비롯해 남자들이 주축을 이룬 원정대 대장,
세계 최초로 가셔브럼Ⅱ봉(8035m) 무산소 단독 등반 등
역사가 일천한 한국 여성산악계에 수많은 기록을 남겼던 인물이다.
이제 고인이 된 지 벌써 다섯 성상(星霜)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산악인들 가슴에 깊이 각인됐던 그녀의 강렬했던 모습은 지워지질 않는다.
길지 않은 40평생 중 절반인 20년간을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산을 잡고 몸부림치게 만들었는가.
산을 사랑하고 이해하며 구도자의 모습으로 그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던 산악인 지현옥의 발자취를 이 자리를 빌어 잠시 되새겨 본다.
1961년 충남 논산군 연산면에서 태어난 지현옥은 히말라야를 올랐다고는
믿지 못할 정도의 자그마한 체격과 가냘픈 몸매의 평범한 여성이었다.
청주사범대학(서원대 전신)에 입학하기 전만 하더라도 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그러나 ■산악부가 독특한 서클■이라는 고등학교 선배의 말에 이끌려 산악부에 가입했다.
암벽등반을 하면서 산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됐고
대학 3학년 시절 남자 동기생 두 명이 군입대와 고시공부로
산을 멀리 하게 되자 자연스레 산악부장을 맡게 됐다.
이런 그녀에게 해외원정의 기회는 졸업 후 5년이 지난 뒤 찾아왔다.
1988년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6194m)를 등정했다.
여섯 명의 여성 클라이머로 구성된 매킨리 원정대에서
지현옥은 심한 고소증세를 느끼면서도 이를 극복하고 대원 중 가장 먼저 정상을 밟았다.
1993년 교보생명 사보 3월호에 실렸던 지현옥의 수기에는
당시의 고통스러웠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60㎏의 짐을 나르면서 들개처럼 헐떡거렸고 목에서는 피가 넘어왔다.
계속되는 구토는 막창의 그 무엇인가까지도 끌어 올리듯 지독하게 이어졌다.
희박한 산소로 인한 고소증세는 두개골이 빠개지는 듯한 고통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것이 등반이란 말인가? 이것이 인간이 할 짓인가?
■하는 갈등 때문에 여기서 포기하고 그토록 우습게 여기던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투처럼 치러진 첫 원정에서 나는 내 자신에 보란 듯이 승리했다.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그것은 산 정상에 올랐다기보다는
내 자신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산에 올랐고 하얀 산은 그 전투의 장을 마련해 주었을 뿐이다.
■
이후 89년과 90년에는 안나푸르나(8091m)와 캉첸중가(8586m)를 등반했다.
그리고 91년 서원대 산악부를 이끌고 중국 곤륜산맥의 무즈타그아타(7546m)로 원정을 떠나
7000m대에서 비박을 하고 후배 대원 한 명과 함께 등정하는 쾌거를 이뤘다.
여기서 지현옥은 고산 등반가로서의 자질과 대장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게 되면서
이러한 경험은 2년 뒤 ■93한국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로 이어지게 된다
에베레스트 원정대원에 선발돼 현지 정찰 겸 적응훈련을 위해
92년 히말라야의 로부제(6183m)와 임자체(6119m)를 올랐다.
그리고 이듬해 32살의 나이에 13명의 대원을 이끌고 에베레스트 원정에 나서
5월 10일 오전 10시45분(한국 시간 오후 2시) 최오순(당시 26세), 김순주(25세)와
함께 정상을 밟았다.
그렇게 황금 같은 젊은 시절을 산에서 보내고 꿈에도 그리던 에베레스트를 등정했건만
이러한 영광은 그녀에게 한 순간의 꿈처럼 다가왔다 사라졌다.
자부심을 안고 귀국한 지현옥의 앞에는 영광과 찬사가 아니라 갖가지 험담과 시기
■질투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모든 것이 잘못 알려진 것으로 판명됐지만
당시 지현옥에게는 치욕이자 좌절이었고 그녀는
■오랜 번민 끝에 등정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며
■가을에는 캉첸중가에 도전하겠다■고 밝혔었다.
프랑스 산악인 가스통 레뷔파는 ■산은 하나의 다른 세계다.
그것은 지구의 일부라기보다는 동떨어져 독립된 신비의 왕국이다.
이 왕국에 들어서기 위한 유일한 무기는 의지와 애정뿐이다
■라고 말했다. 삶의 의지와 히말라야에 대한 애정으로 철저히 무장한 그녀는
여성들만의 K2원정대를 꾸리는 것을 인생의 마지막 목표로 잡았던 것이다.
미국의 여성 산악인인 난다데비 언솔드는
■산은 우리를 태어나게 하고 다시 우리를 거두어들인다.
어차피 우리의 삶이란 신이 허락한 짧은 숨결이다■라고 말했다.
지현옥도 안나푸르나 원정에서
■1982년 한국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등반에 나섰고 하고픈 등반활동을 끊임없이 해왔으며
대자연 속에서 격렬하게 몸부림치다 대자연의 품에 안겼던 J모 선배가 몹시도 그리웠다
■고 말했다.
등반기술을 가르칠 때는 사정없이 매서워 시어머니라고 불리지만
평소에는 후배들에게 자상한 선배로 인기만점의 지현옥.
매사에 치밀하고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안경 너머로 보이는 짙은 눈썹과 서글서글한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그리운 것은 무엇때문일까......
( 덧붙여서)
안나푸르나란 산스크리트어로 '풍요의 여신' 또는 '수확의 여신'을 의미하며
인류에 의해 최초로 등정된 8,000m 이상의 고봉이라 하여 'Premier 8,000m'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고합니다.....
지현옥님이 안나푸르나에서 짦은생(38세)을 마감당시,
99년도에는 산악인박영석씨와 엄홍길씨가 경쟁적으로
희말야야 14등 등정을 벌이고잇던시기로,
더욱 안타까운것은 엄홍길이가 안나푸르나 4번도전실패후
5섯번째 도전파트너로써 지현옥님을초청햇다고합니다..
엄홍길이는 소원대로 먼저정상등정후 하산하고
곧이어지현옥님은 단독정상등정후 생애 마지막육성인
“안녕하세요..여기는안나 푸르나 지현옥입니다...” 라는 무전을남기고
차디찬 안나푸르나품으로.... 영원히...
산이 좋아 산이 되어버린 고인의 평안한 영면을 기도 드립니다 -오르리배상-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그래도 두뇌를 가졌다는 인간이.
짐승처럼 헐떡이며 고상함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이 짓을 나는 왜 하는가 생각한다.
그러나 이건 내가 선택한 삶이다.
20대에 나는 결심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갖지 않아도 좋다.
산에만 가게 해 달라.
” 1999년 4월 28일 안나푸르나의 정상 등정 개시 하루
전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여성이 있다.
고 지현옥.
그는 다음날 엄홍길의 열한 번째 히말라야 8000m봉 등정 성공에
이어 안나푸르나 정상에 섰다.
그러나 더는 내려오지 못했다.
‘산에만 가게 해 달라’ 소원하던 그는 영원히 히말라야 산자락에 묻혀 산이 되었다.
안나푸르나에서 사라진 여성 산악인 지현옥.
그렇지만 이렇게만 그를 추억하기에는 우리의 기억이란 게 너무 야속하다.
그는 1993년 여성으로서는 국내 최초,
세계 여성으로는 세 번째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했고,
1998년에는 가셔브룸2봉을 여성 최초로 무산소
단독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여성 산악인의 역사를 새로 쓴 인물이다.
“산은 너무나 무감각해요.
자기밖에 몰라요.
눈사태 같은 것도 자기가 원래 하는 일이에요.
산은 사람이 오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죠.
인간이 여기 와서는 과연 내가 이 난관을 뚫고 갈 수 있나, 자신을 시험하는 거죠.
산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나에 대한 도전이지요.
또한 유가족들이 오열하던 지현옥씨의 첫 추모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너무 애석한 마음에서 엄대장이 왜 그녀를 막지 못했을까
이야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엄대장은 할말이 없고, 지현옥은 자기 갈 길을 간 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