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가면 커피의 진실이 보인다
[하노이 리포트] 스타벅스가 베트남에 감사해야 할 이유
서울의 요지마다 들어선 스타벅스 체인점이 '커피의 나라'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실용주의 경제노선을 취하면서도 여전히 사회주의 체제를 굳건히 하고 있는 베트남이 미국식 자본주의의 상징인 스타벅스의 진출을 허용하지 않는 측면도 있지만, 그것보다 베트남만의 독특한 커피 문화가 스타벅스 못지 않게 뿌리깊은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베트남은 세계 2위의 커피 수출국이다. 인스턴트 커피로 주로 쓰이는 로부스타(Robusta) 원두 커피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기도하다. 베트남의 커피생산은 1995년 21만8000톤에서 2002년 69만2000톤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커피 원두 열매베트남의 커피 농사는 1857년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주로 남부 남부지역의 카톨릭 교회에서 재배하기 시작해 20세기 초까지 수 천ha 정도로 재배됐다. 베트남 전쟁 이후 베트남 정부는 다른 사회주의국가의 도움을 받아 고지대에 로부스타 커피를 경작하기 시작하여 매년 60~70만톤 정도의 생산량으로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이 됐다.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로부스타종은 쓴 맛이 강하고 향기는 남미의 아라비카종에 비해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다른 것과 배합하거나 인스턴트 커피를 제조하는데 사용된다.
세계 11위의 커피 소비국인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양의 커피를 수출하는 나라가 브라질이나 콜롬비아가 아니라 바로 베트남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은 2005년 한해만 8만5000여 톤, 자그마치 1억4000만달러(약 1323억원)어치의 커피를 수입했으며 베트남 커피가 전체 수입물량의 40%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유명 식품회사의 인스턴트용 커피들은 대부분 베트남 산으로 보면 된다.
하노이 시내 커피점. 아침일찍부터 직장인들이 커피를 마시고있다.베트남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길거리 카페로 가서 커피를 마신다. 다양한 커피 종류와 함께 길거리 작은 노점에서도, 식당에서도, 호텔 음식점에서도 베트남 커피를 판다. 커피를 마시는 방법도 우리와 달리 독특하다. 베트남 사람들은 커피를 마실 때 양철이나 알루미늄으로 만든 카페 핀(Cafe Fin)이라는 용기를 주로 사용한다. 원두 가루를 핀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알맹이는 핀의 미세한 구멍에 걸러지고 커피액이 핀 아래에 받친 컵에 떨어진다.
이렇게 추출한 커피에 뜨거운 물(Nong), 얼음(Da) 또는 연유(Sua ong Tho)를 타서 마신다. 한 때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베트남은 커피를 까페(Ca Phe)라고 하는데 까페농(Ca Phe Nong)은 뜨거운 커피, 까페다(Ca Phe Da)는 아이스커피, 까페쓰어농(Ca Phe Sua Nong)은 뜨거운 밀크커피, 까페쓰어다(Ca Phe Sua Da)는 아이스 밀크커피를 말한다.
베트남 커피는 한잔에 1만동~2만동으로 우리 돈으로 약 700원 안팎이다. 주로 연유를 넣어 마시는 베트남 커피는 약간 달면서도 맛있다. 스타벅스 커피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우리나라 자판기 커피나 다방커피와 비슷하지만 더 부드럽고 달면서도 무언가 독특하다.
베트남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커피에 관련된 모든 사업을 정부 기관인 비나카페(Vinacafe)에서 맡아왔으나 최근 이를 개인 기업에도 허용을 해 많은 업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베트남에서 가장 브랜드화된 커피회사는 쭝 응우웬과 하일랜드다. 90년대 초 몇 명의 베트남 젊은이들이 만든 회사로 호시민 씨티 시내에 많은 프랜차이즈를 갖고 있고 중국과 일본에도 진출하고 있다. 베트남판 스타벅스인 셈.
그런데 베트남이 커피 수출 대국으로 성장한 뒤편에는 세계 커피 제배 농민들의 아픔도 함께 담겨있다. 커피는 전세계 무역 물동량 면에서 석유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양이 거래된다. 게다가 작황에 따라 가격의 변동이 매우 심해 생산이 너무 많으면 커피의 국제 거래 가격이 폭락하고 너무 적으면 폭등한다.
오랫동안 강대국들은 커피를 주로 재배하는 중남미와 인도차이나반도의 빈곤국가들이 공산화 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 세계 국제 커피협정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커피 가격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은 구소련이 붕괴한 후 98년 끝내 국제커피협정을 탈퇴했고, 시장이 개방되고 다양해지면서 커피 값은 빠르게 균형을 잃기 시작했다. 그리고 브라질 같은 국가들은 커피 생산을 급속도로 늘리기 시작하면서 공급과잉으로 커피 도매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수급균형이 깨진 상황에서 베트남이 커피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1990년 이후 남부의 전통적 커피생산지에 이어 북부 산간지대를 커피 경작지로 변화시킨 베트남은 커피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베트남은 브라질 다음의 최대 커피 생산국이 되었고 이로 인해 커피 공급 과잉은 더 심해졌고 가격 붕괴가 가속화됐다.
브라질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들이 거의 점유하고 있던 커피 공급을 미국이 좀 더 싸게 매입하기 위해 베트남의 커피 생산 확대를 적극 지원해 가격 폭락을 유도했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하다.
하노이 시내의 아침 출근길 오토바이 행렬 협정의 붕괴와 공급의 과잉 그리고 때맞춰 향상된 커피 블렌딩 기술을 이용해 커피회사들은 승승장구 수익을 올린 반면, 커피 재배 농민들은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 수 십년째 허덕이고 있다. 과잉 공급 덕분에 무역업자들과 기업들은 생산자로부터 유례없이 낮은 가격에 커피를 살 수 있게 됐고 스타벅스와 같은 다국적 커피전문점들은 엄청난 이익을 냈다. 스타벅스 입장에서는 원두커피 공급 과잉을 초래한 베트남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반면에 커피를 생산하는 저개발국의 커피재배 농민들은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서 하루 종일 커피 재배에 매달리지만 여전히 가난하기만하다. 1998년 이후 세계 원두커피 가격이 그 이전과 비교할 때 70% 이상 폭락하면서 농민들이 생산비용조차 제대로 회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 때문에 커피 무역을 둘러싼 선진국과 저개발국 사이의 불균형에 대한 세계적 논의가 촉발됐고, 글로벌 시민운동 단체들은 공정무역 노력의 하나로 커피의 유통단계를 줄여 최소한 원두커피의 가격이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커피는 이제 세계화시대 불공정 무역의 대명사처럼 돼 전세계인들에게 공정무역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베트남에 가면 커피의 진실이 보인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베트남은 세계 2위의 커피 수출국이다. 인스턴트 커피로 주로 쓰이는 로부스타(Robusta) 원두 커피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기도하다. 베트남의 커피생산은 1995년 21만8000톤에서 2002년 69만2000톤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커피 원두 열매베트남의 커피 농사는 1857년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주로 남부 남부지역의 카톨릭 교회에서 재배하기 시작해 20세기 초까지 수 천ha 정도로 재배됐다. 베트남 전쟁 이후 베트남 정부는 다른 사회주의국가의 도움을 받아 고지대에 로부스타 커피를 경작하기 시작하여 매년 60~70만톤 정도의 생산량으로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이 됐다.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로부스타종은 쓴 맛이 강하고 향기는 남미의 아라비카종에 비해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다른 것과 배합하거나 인스턴트 커피를 제조하는데 사용된다.
세계 11위의 커피 소비국인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양의 커피를 수출하는 나라가 브라질이나 콜롬비아가 아니라 바로 베트남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은 2005년 한해만 8만5000여 톤, 자그마치 1억4000만달러(약 1323억원)어치의 커피를 수입했으며 베트남 커피가 전체 수입물량의 40%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유명 식품회사의 인스턴트용 커피들은 대부분 베트남 산으로 보면 된다.
하노이 시내 커피점. 아침일찍부터 직장인들이 커피를 마시고있다.베트남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길거리 카페로 가서 커피를 마신다. 다양한 커피 종류와 함께 길거리 작은 노점에서도, 식당에서도, 호텔 음식점에서도 베트남 커피를 판다. 커피를 마시는 방법도 우리와 달리 독특하다. 베트남 사람들은 커피를 마실 때 양철이나 알루미늄으로 만든 카페 핀(Cafe Fin)이라는 용기를 주로 사용한다. 원두 가루를 핀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알맹이는 핀의 미세한 구멍에 걸러지고 커피액이 핀 아래에 받친 컵에 떨어진다.
이렇게 추출한 커피에 뜨거운 물(Nong), 얼음(Da) 또는 연유(Sua ong Tho)를 타서 마신다. 한 때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베트남은 커피를 까페(Ca Phe)라고 하는데 까페농(Ca Phe Nong)은 뜨거운 커피, 까페다(Ca Phe Da)는 아이스커피, 까페쓰어농(Ca Phe Sua Nong)은 뜨거운 밀크커피, 까페쓰어다(Ca Phe Sua Da)는 아이스 밀크커피를 말한다.
베트남 커피는 한잔에 1만동~2만동으로 우리 돈으로 약 700원 안팎이다. 주로 연유를 넣어 마시는 베트남 커피는 약간 달면서도 맛있다. 스타벅스 커피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우리나라 자판기 커피나 다방커피와 비슷하지만 더 부드럽고 달면서도 무언가 독특하다.
베트남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커피에 관련된 모든 사업을 정부 기관인 비나카페(Vinacafe)에서 맡아왔으나 최근 이를 개인 기업에도 허용을 해 많은 업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베트남에서 가장 브랜드화된 커피회사는 쭝 응우웬과 하일랜드다. 90년대 초 몇 명의 베트남 젊은이들이 만든 회사로 호시민 씨티 시내에 많은 프랜차이즈를 갖고 있고 중국과 일본에도 진출하고 있다. 베트남판 스타벅스인 셈.
그런데 베트남이 커피 수출 대국으로 성장한 뒤편에는 세계 커피 제배 농민들의 아픔도 함께 담겨있다. 커피는 전세계 무역 물동량 면에서 석유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양이 거래된다. 게다가 작황에 따라 가격의 변동이 매우 심해 생산이 너무 많으면 커피의 국제 거래 가격이 폭락하고 너무 적으면 폭등한다.
오랫동안 강대국들은 커피를 주로 재배하는 중남미와 인도차이나반도의 빈곤국가들이 공산화 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 세계 국제 커피협정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커피 가격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은 구소련이 붕괴한 후 98년 끝내 국제커피협정을 탈퇴했고, 시장이 개방되고 다양해지면서 커피 값은 빠르게 균형을 잃기 시작했다. 그리고 브라질 같은 국가들은 커피 생산을 급속도로 늘리기 시작하면서 공급과잉으로 커피 도매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수급균형이 깨진 상황에서 베트남이 커피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1990년 이후 남부의 전통적 커피생산지에 이어 북부 산간지대를 커피 경작지로 변화시킨 베트남은 커피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베트남은 브라질 다음의 최대 커피 생산국이 되었고 이로 인해 커피 공급 과잉은 더 심해졌고 가격 붕괴가 가속화됐다.
브라질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들이 거의 점유하고 있던 커피 공급을 미국이 좀 더 싸게 매입하기 위해 베트남의 커피 생산 확대를 적극 지원해 가격 폭락을 유도했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하다.
하노이 시내의 아침 출근길 오토바이 행렬
협정의 붕괴와 공급의 과잉 그리고 때맞춰 향상된 커피 블렌딩 기술을 이용해 커피회사들은 승승장구 수익을 올린 반면, 커피 재배 농민들은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 수 십년째 허덕이고 있다. 과잉 공급 덕분에 무역업자들과 기업들은 생산자로부터 유례없이 낮은 가격에 커피를 살 수 있게 됐고 스타벅스와 같은 다국적 커피전문점들은 엄청난 이익을 냈다. 스타벅스 입장에서는 원두커피 공급 과잉을 초래한 베트남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반면에 커피를 생산하는 저개발국의 커피재배 농민들은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서 하루 종일 커피 재배에 매달리지만 여전히 가난하기만하다. 1998년 이후 세계 원두커피 가격이 그 이전과 비교할 때 70% 이상 폭락하면서 농민들이 생산비용조차 제대로 회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 때문에 커피 무역을 둘러싼 선진국과 저개발국 사이의 불균형에 대한 세계적 논의가 촉발됐고, 글로벌 시민운동 단체들은 공정무역 노력의 하나로 커피의 유통단계를 줄여 최소한 원두커피의 가격이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커피는 이제 세계화시대 불공정 무역의 대명사처럼 돼 전세계인들에게 공정무역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