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 2006

권순현200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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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쉬이 설명할 수 없지만 행복에 겨운, 혹은 미치도록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커리어우먼의 이야기일 법 하다. '달콤'이 그렇고 '내'가 그렇고 '도시'가 그렇고 작가가 그렇다. 그러나 '도시'의 '나'에 대한 이야기임은 맞지만 역시 쉬이 그렇듯, 결코 달콤하지는 않다. 오히려 폐부를 깊숙이 찌를 정도의 적나라함이 책장 곳곳에 묻어나 있다. 그녀는 쿨하지만, 그녀의 도시는 그녀를 쿨하게 놓아두지 않는다. 정이현의 신작 의 이야기이다.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정이현은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는 아니다. 정이현의 소설은 대체로 도회적인 코드에 맞물려 있다. 문학상 수상작인 이나 의 경우는 다소 이야기가 다르지만 여성의 삶을 그리되 마찬가지로 여성의 시선을 통해 가장 리얼리스틱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언급한 작품의 경우도 도시적인 삶의 코드를 따른다는 점에서는 일치를 보인다. 무엇보다 에 담긴 열이 채 안되는 단편들과 첫 장편인 의 경우가 정확히 들어맞는다. 는 오히려 어디에서도 달콤한 무언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한다. 흡사 시트콤 를 보듯 어느덧 혼기를 훌쩍 넘긴 미혼 여성들, 그러니까 시쳇말로 노처녀들의 일과 사랑, 나아가 그들의 삶을 읊어내준다. 그러나 의 그것과는 다르다. 정이현의 인물들은 감정이 풍부하고 각기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는 점에서 그와 같지만 결정적으로 이들의 색채는 훨씬 더 단조롭다. 그것은 단순함의 의미가 아니라 흑백의 의미이다. 마치 잔가지를 툭툭 쳐내듯 좀 더 냉정하게, 감정은 풍부하지만 서투른 감상주의적 인물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는 결코 달콤하지 않다. 그런데 그래서 달콤하다. 달달한 껍데기를 두른 당의정과 박하사탕의 뒷맛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기에.

 

소설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 도시의 주인공 은수와 그녀의 친구 유희와 재인, 트렌드를 반영한 듯 철모르지만 열정에 불타는 태오, 이름만큼이나 평범하지만 그 가지런한 배치 안에 어딘가 균열의 낌새가 내재된 영수, 유희의 사촌이자 정지우 감독의 영화 의 인물 정우를 떠올리게 하듯, 소울메이트같이 편안한 친구에서 남자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유준 등. 이들은 작가에게 있어 결코 스쳐지나가는 조연이 아니다. 작가는 수십 장의 지면을 할애해 이들의 묘사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만큼 는 은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령 재인의 신혼 생활이 파경을 맞았을 때 은수는 재인의 친구에 다름아니다. 각각의 인물들이 툭툭 튀어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순간만큼은 그들이 주인공이다. 마치 영화 , 그보다 를 보듯 인물들은 어느 순간 뛰쳐나와 할당된 분량만큼의 역량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은수의 시선이기 때문에 '나'의 도시일 뿐, 중점은 어디까지나 '도시'에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이들은 작가에게 있어 주연에 버금가는 애증의 인물들이지만 책장을 덮을 때까지 이들은 조연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소설의 마무리에 해결점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 는 도시의 시민들을 소설의 자장 안에 마음껏 에두르지만 그들은 그냥 그렇게 흘러갈 뿐이다. 정이현은 감각적인 문장과 도발적인 플롯을 이용해 독자를 자극하지만 결정적인 '한 방'을 갖고 있지 못하다. 작가의 소소한 문체는 차라리 구세대적 감성을 떨쳐낸 박완서의 그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약간은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차마 소설에 담을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도시의 단면을 까발리는 는 그러나, 잠언투의 강렬한 문장과 드라마적 감성에 절은 심리에 빠질 수 없다면 조근조근한 문장마저 지겹게 느껴진다.

 

리뷰를 작성하고 나서 이 작품이 신문연재소설을 묶어 펴낸 단행본임을 알았다. 그러고보면 매회 연재되는 탓에 기조를 유지하기 힘들어 중견작가도 꺼린다는 신문연재 방식을 택했다면 너그러이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여기저기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어떨까. 황석영의 이 가진 완성도를 생각해 보면 그것이 완전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