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Bowie - Lets Dance

방영민200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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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영국 브릭스턴 태생인 데이비드 보위는 애청곡이 많은 뮤지션은 아니다. 이름도 꽤 알려졌고 챠트 활동도 부진한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감에 맞는 음악을 하지 않았던 탓인지 인기곡 하나 남겨 놓지 못했다. 그러나 영미 록 역사에서, 특히 1970년대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로 기록된다. 이른바 '살아 있는 전설'이다.

 

그는 가수가 노래하는 사람, 무대가 노래하는 장소라는 등식과 관념을 넘어섰다. 화려하고 원색적인 화장에 반짝거리는 의상을 하고 나와 무대에서 노래할 뿐만 아니라 '연기'를 했다. 그것은 자극적인 퍼포먼스였다. 그는 1972년 "지금 충격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극단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팬들이 자기 이미지를 오용하여 반사회적인 폭력을 일삼게 되자 곧바로 자기의 탈을 벗어버렸다. 이 시점부터 그는 어느것 하나에 정착하는 법이 없었다. '다이아몬드의 개'로 예언자가 되는듯 하더니 '로우'에서는 은둔자로 변신했며 나중에는 '야윈 백인공작'으로 탈바꿈했다.

 

음악도 이곳 저곳을 넘나들었다. 하드한 기타록을 하다가 소울 음악을 시도 하기도 했으며전자 음악도 했고 심지어 디스코 댄스 음악 세계에 빠지기도 했다. 긍정적으로 볼 때 그는 새로운 것에 과감히 가슴을 열어 끊임없는 혁신을 이룩한 음악인이었다. 데카당적인 틀은 유지했지만 그 속에서는 종 잡을 수 없는 '예술적 보헤미안'임을 의도적으로 나타냈다.

 

하지만 '한 우물 파기'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은 그를 '뿌리 없는 실험 병자'로 '음악적 곡예사'로 배격했다. 그가 펼쳐 놓은 무수한 장르의 파편들과 끝없는 변신의 행적을 보면 카멜레온이요, 기회주의자였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과연 이같은 무차별 변신을 두둔해야 하는가. 그러나 록계에서는 그의 음악이 언제나 예측 불허였으며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독창적이라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 30년간 록계에 몸담으면서 오로지 실험 정신으로 일관해 온 순례자로 떠받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