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이가 서른 이상 되시는 분들은 어릴 적에 다들 펜팔이란 것을 해보셨을 겁니다. 꼭 잡지책 뒷장의 명단에서 찾진 않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이성 또는 동성친구에게 펜으로 종이에 꾹꾹 눌러가며 편지를 써 보냈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또 그렇게 편지를 보내놓고서 답장을 기다릴 때의 그 설렘과 마침내 기다리던 답장을 받아 뜯어 펼쳐보았을 때의 그 환희(?)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럼 그때 그 편지를 가져다주시던 집배원 아저씨도 기억하십니까? 저는 기억합니다. 그땐 편지를 기다렸던 건지 그 아저씨를 기다렸던 건지, 편지가 반가웠던 건지 그 아저씨가 반가웠던 건지 암튼 기다려지고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아저씨를 여태껏 기억하는 이유가 그게 다는 아닙니다. 제가 20년을 넘게 살았던 시골에서 그 아저씨는 우리 동네 담당 집배원이시기 이전에 이웃집 아저씨였고 제 친구(?)였습니다. 당신은 우스갯소리로 제 애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암튼 그 아저씨와 제가 친분이 좀 많았습니다.
제가 의정부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한 번도 뵙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그곳에 있는(연락되는) 지인을 통해 메일 주소를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떠나올 때만 해도 컴맹이셨던 아저씨였는데 그사이 컴맹에서 탈출을 하신 모양입니다. 전 바로 아저씨께 메일을 보냈습니다. 한 삼사일 지나서 아저씨께 답장이 왔습니다. 안부 인사와 함께 당신은 아직도 컴퓨터를 발명한 사람이 원망스럽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줄 바꿈을 하지 않은 대여섯 줄 분량의 메일이었습니다.
답장을 잘 받았다는 메일을 바로 보내드렸어야 했는데 어찌하다보니 메일 보내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한 일주일이 지나 아저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당신이 보낸 메일을 제가 잘 받았는지 궁금하셨다는 것입니다. 혹시 내용이 너무 길어서 전송오류가 난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셨다고 합니다. (대여섯 줄이 뭐가 길다고... ^o^)
요즘 사람들은 더 이상 집배원들을 반가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반가운 편지는 전부 다 컴퓨터로 주고받고 집배원들은 돈 내라는 공과금 고지서나 청첩장, 반갑지 않은 광고 DM들만 가져다주니 말입니다. 그러니 집배원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자기 직업에 대한 보람이나 사명감 같은 것은 사라진지 오래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 어떻습니까? 편지는 고사하고 제대로 메일 한 통 보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저 상대방의 미니홈피, 블로그 방명록에 몇 줄 남기는 것이 다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점점 빨라지고 편해지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추구하는 세태가 잘못되었다고 얘기 하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펜으로 눌러 써내려간 장문의 편지나 자판 두드려 올린 몇 줄의 방명록이나 서로의 마음이 오가는 건 마찬가지일 테니까 말입니다. 정성의 문제라고요? 몇 줄만 달랑 써 있는 편지도 있고 끝없이 스크롤을 해야 하는 방명록도 있으니 정성을 운운하는 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빠르고 편한 방법을 알면서도 그 방법을 놔두고 느리고 불편한 방법을 고수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손이 많이 불편한 저는 예전처럼 떨리는 손으로 펜을 움켜쥐고 서너 시간 괴발개발 써내려간 편지를 멀리 있는 우체통에다 넣고 오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단지 그 옛날의 정취가 그리운 것이겠지요.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봉투 한쪽에 “집배원 아저씨,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적힌 편지를 한 통 쯤은 꼭 받아보고 싶습니다.
그리운 집배원 아저씨
지금 나이가 서른 이상 되시는 분들은 어릴 적에 다들 펜팔이란 것을 해보셨을 겁니다. 꼭 잡지책 뒷장의 명단에서 찾진 않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이성 또는 동성친구에게 펜으로 종이에 꾹꾹 눌러가며 편지를 써 보냈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또 그렇게 편지를 보내놓고서 답장을 기다릴 때의 그 설렘과 마침내 기다리던 답장을 받아 뜯어 펼쳐보았을 때의 그 환희(?)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럼 그때 그 편지를 가져다주시던 집배원 아저씨도 기억하십니까? 저는 기억합니다. 그땐 편지를 기다렸던 건지 그 아저씨를 기다렸던 건지, 편지가 반가웠던 건지 그 아저씨가 반가웠던 건지 암튼 기다려지고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아저씨를 여태껏 기억하는 이유가 그게 다는 아닙니다. 제가 20년을 넘게 살았던 시골에서 그 아저씨는 우리 동네 담당 집배원이시기 이전에 이웃집 아저씨였고 제 친구(?)였습니다. 당신은 우스갯소리로 제 애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암튼 그 아저씨와 제가 친분이 좀 많았습니다.
제가 의정부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한 번도 뵙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그곳에 있는(연락되는) 지인을 통해 메일 주소를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떠나올 때만 해도 컴맹이셨던 아저씨였는데 그사이 컴맹에서 탈출을 하신 모양입니다. 전 바로 아저씨께 메일을 보냈습니다. 한 삼사일 지나서 아저씨께 답장이 왔습니다. 안부 인사와 함께 당신은 아직도 컴퓨터를 발명한 사람이 원망스럽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줄 바꿈을 하지 않은 대여섯 줄 분량의 메일이었습니다.
답장을 잘 받았다는 메일을 바로 보내드렸어야 했는데 어찌하다보니 메일 보내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한 일주일이 지나 아저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당신이 보낸 메일을 제가 잘 받았는지 궁금하셨다는 것입니다. 혹시 내용이 너무 길어서 전송오류가 난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셨다고 합니다. (대여섯 줄이 뭐가 길다고... ^o^)
요즘 사람들은 더 이상 집배원들을 반가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반가운 편지는 전부 다 컴퓨터로 주고받고 집배원들은 돈 내라는 공과금 고지서나 청첩장, 반갑지 않은 광고 DM들만 가져다주니 말입니다. 그러니 집배원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자기 직업에 대한 보람이나 사명감 같은 것은 사라진지 오래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모습 어떻습니까? 편지는 고사하고 제대로 메일 한 통 보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저 상대방의 미니홈피, 블로그 방명록에 몇 줄 남기는 것이 다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점점 빨라지고 편해지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추구하는 세태가 잘못되었다고 얘기 하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펜으로 눌러 써내려간 장문의 편지나 자판 두드려 올린 몇 줄의 방명록이나 서로의 마음이 오가는 건 마찬가지일 테니까 말입니다. 정성의 문제라고요? 몇 줄만 달랑 써 있는 편지도 있고 끝없이 스크롤을 해야 하는 방명록도 있으니 정성을 운운하는 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빠르고 편한 방법을 알면서도 그 방법을 놔두고 느리고 불편한 방법을 고수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손이 많이 불편한 저는 예전처럼 떨리는 손으로 펜을 움켜쥐고 서너 시간 괴발개발 써내려간 편지를 멀리 있는 우체통에다 넣고 오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단지 그 옛날의 정취가 그리운 것이겠지요.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봉투 한쪽에 “집배원 아저씨,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적힌 편지를 한 통 쯤은 꼭 받아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