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 마시고 1층으로 내려가니 아직 숙소 문이 잠겨있고 주인도 잔다. 내가 깨우니 그때서야 문을 연다. 기사한테 확인 전화 부탁하고 거리로 나간다. 아침 7시 거리, 고요함과 어둠.
놀랍게도 아이들이 어떤 골목에서 쏟아져 나온다. 몇백명은 되는 것 같다.그 수많은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학교 운동장이었다. 학교운동장에서 모였다가 아침 달리기를 하면서 운동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 지금 시간이 몇시인데 아침 7시면 너무 이른 시간일 것 같은데 그 수많은 아이들이 모여서 아침 달리기를 한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학교 운동장으로 가보았다. 동네를 세번 정도 돌고 마무리하고 아침을 먹는다. 아침이라고 해봤자 소위 말하는 만토우이다.우리나라의 만두 개념과는 틀리고 그냥 밀가루빵이고 아무 맛도 없어서 현지인들은 그 만토우위에다가 이것 저것 양념이나 짱아찌를 같은 것을 얹어서 먹는 것이다.그 만토우 하나씩 받아들고 아이들은 운동장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앉아서 먹는다. 유난히 이 서부쪽은 아이들이 학교를 일찍 갔다가 전녁 늦게까지 있는 것 같다. 좋게 보면 전일제 교육인 셈이다.
아직 해 뜨기전이라서 몹시 춥다. 나도 만토우 하나 샀다. 따뜻하다. 만토우 들고 숙소 앞에서 기다려도 차는 오지 않는다.뭐야 200위앤이나 주고 차 빌려는데 늦게 와
속으로 살살 꽤씸해지고 있는데 차가 왔다.트럭
빵차가 아니고 트럭이다. 트럭을 타고 추나통을 가는 것이다. 세상에
나 말고도 중국인 관광객 세명이 더 있어서 기다려야 했다. 뭐야 난 내돈 다내고 게다가 1시간동안이나 기다리려니 아침 잠 설친 것이 아까워질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알람 시계를 안가지고 오는 바람에 순전 다 정신력으로 일어날려니 당연히 잠을 깊게 자질 못한다.그래서 난 여행만 끝나면 한달은 골골 앓는다.워낙 여행에서 체력과 정신력을 쏟아버리니
중국인 부부와 그 딸아이와 한팀이 되었다.나중에 친해져서 이야기를 나누니 그 아버지랑 나랑 나이 차이가 열살도 안나는 것이다. 헉 내가 보기에도 정말 나이들어보이는 아저씬데 나랑 나이차가 별로 안나니 갑자기 내가 살아온 시간이 무거워질려고 한다.
아침 차가운 기운에 산에는 구름이 걸려있다. 싸늘하다 못해 얼어붙을 것 같은 아침 공기에 차의 흔들림은 장난이 아니다. 앞 좌석에 기사와 나
뒷좌석에 중국인 부부와 딸이 탔는데 공간이 남으니까 더 주체가 안된다. 아예 빡빡하게 끼워 앉았으면 덜 흔들렸을텐데 공간이 남으니 나 혼자 앞에서 이리 저리로 마치 짐이 바닥에서 굴러다니듯 그렇게 흔들렸다. 어찌나 흔들리던지 발이 바닥에 닿을 시간도 없다.
트럭은 차가운 공기를 가로 지르면서 누지앙을 따라서 석문 이라는 곳을 지나서 추나통으로 간다. 중간에 랜스마크님이 이야기 해준 오리촌을 지난다.
강가 저편 마치 시간과 상관없는 듯 고요함으로 머물러 있은 마을
전깃줄 땜에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쉽지만 아침 안개와 같이 아련한 마을의 모습은 가슴에 담는다. 조금 가다 강을 건넌다. 기사는 강 절벽에 난 아주 작은 길을 가리키며 차마고도라고 이야기 한다. 그 순간 난 흥분했다. 차마고도다
물론 호도협 트레킹을 하면서 차마고도를 따라서 걸어보기도 했지만 원래 오리지널 차마고도는 이 누지앙쪽이다. 길은 너무도 좁다. 간신히 말 한마리와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 도대체 저 길을 어떻게 걸어서 갔을까 싶을 정도이다. 저 길을 따라서 끊임없이 걸어 걸어 더친으로 라싸로 차와 소금을 실어날랐을 것 이다. 물류와 문명의 발달로 이제 차마고도는 다큐멘타리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의 유물로 사라졌고 이제 마지막 마방들이 죽고 나면 아무도 그 길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텐데
멀리서 말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말을 재촉하면서 묵묵히 그렇게 그 길을 갔었던 사람들...
나도 그 길을 따라서 가고 싶다. 그렇게 말 없이 묵묵히 걸어서 더친까지
라싸까지 가고 싶다.
내가 윈난을 여행지로 택한 첫번째 이유가 티벳 접경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2005년 2월 쭝띠앤에서 엔징을 갈려던 계획은 실패했었지만 난 티벳 근처에만 가도 행복하다.
2시간 동안 요란한 흔들림 끝에 추나통에 도착한다. 차가 도착했는데도 내릴 수가 없다. 온 몸에 느껴지는 진동에 아직도 몸이 떨리는 것 같다. 이 길은 트럭이나 랜드 크루저가 아니면 다닐 수가 없다. 미안하게도 우리는 돈을 냈다는 이유로 좌석에 앉아서 오고 짐을 싣는 뒤칸에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이 마을 사람들이 트럭을 타고 다닌다.이 추운 겨울 아침에 장갑도 안 끼고 난간을 잡고 뒤에 흔들리면서 차를 타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추나통은 아주 작은 마을이다. 장족도 살지만 리수족과 다른 소수민족,누족도 산다. 마을은 주로 농사를 짓고 소와 돼지를 키운다. 마을 분위기는 평온하다.아침이라서 아침 준비를 하는 사람들과 가축에게 먹이를 주는 일손이 분주하다. 집안의 연기를 빼기 위해 지붕을 헐겁게 판자로 이어서 짓는 전통 가옥 형태이다. 내게는 너무도 익숙한 티벳의 향기이다.
민가에 들어갔더니 수유차를 권한다. 난 티벳을 너무 좋아하고 티벳의 문화에 열광하지만 적응 못하는 것이 이 수유차이다. 정말 야크고기나 이런 것은 내가 채식주의자라는 이유로 안 먹어도 이 수유차는 마실 수 있어야 하는데 수유차는 못마시겠다.
2004년도에 처음 티벳가서 라싸에서 타쉬 레스토랑에서 가서 수유차 마시고 조캉 사원 들어갔다가 즉사할 뻔 한 이후로 수유차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가 난다.
마을 안을 천천히 걸어다닌다.
아이들 웃음소리를 따라가 보니 학교에 가나 보다. 터벅터벅 집집마다 걸어가면서 아마 학교가자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 예쁜 가방메고 둘이서 손 꼭 잡고 학교로 가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냥 뒤를 따라가보니 처음에는 나를 경계하다 카메라 찍은 것을 보여주니 좋아한다. 어디가나 아이들이 제일 예쁘다. 문제는 내가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아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이 깊고 싶은 산중까지 위성 방송 안테나가 달리고 철탑이 들어서있다.
생활은 편해지지만 그 편한 만큼 잃어야 하는 것도 있는 것이다.
받드시 안다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알게 된다는 것은 비교를 동반한다.비교해서 내가 낫다고 생각하는 경우보다는 내가 못하다는 생각하기 마련이고 그럼 비교하기 전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들이 가치를 잃게 된다.
대부분 중국 사람들은 텔레비젼으로 소일한다. 지금 아이들은 다 교육을 받지만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더 많으니 책을 읽을 수도 읽을 책도 없고 밤에 별 다른 소일거리가 없으니 오로지 텔레비젼만으로 시간을 때운다. 우리나라 텔레비젼 드라마를 보면 한국 사람이 봐도 호사스럽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의 현실성 없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인데 중국 사람들이 볼 때 다 한국사람들은 물질적으로 풍부하게 아무 걱정없이 그저 사랑 놀음이나 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자신들의 삶에 대한 비하가 될 수도 있다.
난 소위 세계 10대도시중 하나인 서울에 살지만 여기 추나통이 더 편하다.
이런 곳에서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이 들고 자연에서 나는 것을 먹고 자연에서 주는 것을 받으면서 살고 싶다. 삶이란 굳이 무엇을 가지고 얻어야 행복한 것은 아니다.
내 긴 생각은 마을 사람이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에 멈춘다.들어가니 부엌 겸 거실에는 늘 그렇듯 커다란 난로가 있고 그 난로에는 죽을 끊이나.뭐 사람 먹을 것은 아니고 여물인셈이다. 주전자에서 무엇인가 따라서 주길래 수유차 치고 차갑네
술이다.
아침도 만토우 하나 먹었는데 술이라니 아마 이것 마시면 오늘 추나통에서 하루 자야 할 껄
감사하다고 하면서 한입 마셨더니 막걸리에 가까운 발효주이다.아마 창인것 같다
2001년도 네팔에 갔을 때 포카라에서 티벳 유목민 촌에 갔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창을 사서 마신 적이 있었다.
그날은 무지하게 비가 왔었고 비오는 날 마신 창의 맛이란 5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이 난다.
그 창이다.
창은 우리나라 막걸리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기사가 가자고 나를 찾으러 왔다. 같이 왔던 중국인 부부와 딸팀은 민박집 주인하고 마을을 돌아다녔나 보다 민박집 아줌마에게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자기 한국 드라마 너무 좋아해서 매일 밤마다 한국 드라마 본다고 하면서 어쩜 이렇게 하얗고 예쁘냐고 한다.
아마 이 아줌마도 나랑 나이 차이 별로 안날것이다. 대부분 소수민족은 결혼을 빨리해서 조산을 하고 워낙 햇볕에 노출이 많이 되어서 늙어 보인다.
추나통에서 2시간 머물렀지만 현지인들의 집에서 차도 마시고 술도 대접받고 그들 사는 것에 잠시나마 같이 있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정말 멀고도 먼 길을 왔지만 그 고생이 하나도 힘들지 않다. 추나통에서 다시 빙쭝뤄로 돌아오는 길 물레방아에 들렸다.
그 물레방아길을 따라서 위로 올라가면 마지막 마방들이 살고 있고 지금도 가끔 내려와서 마방들이 물레방아를 이용해서 옥수수를 빻곤 한다는 것이다.비록 가서 마지막 마방도 옥수수를 빻는 것도 보지 못했지만 나중에 더라무(德裸姆) DVD 에서 그 물레방아를 다시 보니 가슴이 아련했다.
마을로 돌아오니 12시이다. 낮에는 덥다. 체크아웃을 하고 중국인 부부와 딸과 점심을 같이 먹었다. 아침에 자기네들 땜에 늦었다고 밥을 산다고 한다. 딸이 약간 영어를 하고 서로 잘 못알아듣는 것은 필담으로 했다.
내가 고기를 안 먹는 채식주의자라고 하니 무지하게 신기해한다.
나름대로 배려해서 감자와 채소 요리 그리고 볶음밥을 시켜준다.
정말 중국에서 채식주의자라는 것은 박물관에나 진열되야할 희귀한 것임을 나도 너무 잘안다.
절대 이해를 못한다.
처음에 중국에 갔을 때는 길게 써가지고 다녔다.
뭐 이런 내용이다
저는 채식주의자이니 고기를 넣지 마시고
소위 돼지기름(猪 油)을 쓰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한자를 못 읽는 사람도 있고 이 사람들은 사람이 고기를 안 먹는 다는 것을 이해 못한다.
이제는 내가 포기하고 그냥 매일 밥이나 볶아 달라고 해서 먹고 만다.
내가 한자를 읽을 줄 아는 것에 신기해한다. 두롱족이 사는 마을로 갈려고 했다. 식당 아줌마가 이 마을에도 두롱족이 한명 있으니 만나보라고 한다. 사진 찍는데 50위앤이라고 한다.기분이 유쾌하진 않았지만 만나보기로 했다. 그러나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최선의 선택이 되었다. 나 혼자 두롱족 마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길잃고 말았으니까
얼굴에 문신을 하는 두롱족 풍습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40대 이상에서만 문신을 했고 요즘 사람들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두롱족들이 모여 사는 곳은 꽁샨에서 트럭으로 7시간 정도 들어가면 모여 사는 마을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두롱강을 가지 못해서 아쉽다.
사진을 찍히고 돈을 받는 두롱족 할머니
그 할머니에게 내가 뭐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왠지 사진을 찍을 때마다 할머니의 영혼을 빼앗는 것 같아서 들이대고 사진을 찍기가 싫었다.
쌍라라는 마을에서 1시간 정도 올라가면 두롱족 마을로 갈 수 있다고 해서 나 혼자 용감하게 쌍라까지 히치해서 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길 찾는데는 결국 실패한다.현지인에게 안내를 부탁했어야 하는데 부탁할 사람도 없고 해서 그냥 외길 같아서 올라갔다가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다. 빙쭝뤄로 나가는 막차가 5시 반에 끊기는데 걱정이 된다. 이 경우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다시 찬찬히 길을 되짚어 나가서 다시 쌍라까지 내려오는 데는 성공했지만 두롱족 마을을 가는 데는 실패했다. 다시 히치해서 빙쭝뤄로 돌아가면서 내가 두롱족 마을에 갈려고 했다니까 거의 이 여자 제 정신이 아니구나 하는 표정이다.
빙쭝뤄에서 다시 꽁샨까지 버스를 타고 나왔다. 10위앤
아쉽다. 만 하루를 머물다 떠나는구나
이 곳에 오고 싶어했던 영덕씨 생각이 났다.
아마 영덕씨가 왔었더라면 티벳 국경까지 갔었을 것이다
하지만 추나통에서 보낸 시간만으로도 난 너무 행복했다.
꽁샨에서 푸꽁가는 버스는 12시가 막차이다.이미 차 끊긴지 오래이지
어차피 차 없다는 것을 알고 갔으니까
우리나라 치면 무쏘 스포츠 같이 짐을 싣을 수 있는 빵차를 잡아 탔다. 푸꽁까지 200위앤에 가기로 했다. 오늘 이곳에서 자고 낼 아침부터 시작하면 쿤밍에 도착할 수야 있겠지만 그러면 너무 내가 지겨울 것 같아서 오늘 푸꽁까지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것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밤이라서 강 풍경을 볼 수 없었고 서로 말도 안통하니 그냥 묵묵히 앉아서 푸꽁에 도착해서 다시 푸꽁 빈관에 가서 묵었다. 다시 왔으니까 깍아달라고 해도 안깍아 주어서 80위앤.
영덕씨에게 전화해서 내일 쿤밍으로 출발한다고 이야기 했다 너무 지쳐서 누가 류쿠까지 그냥 실어다 준다고 해도 못가겠다고 하면서 그러나 그날 날 루큐까지 갔어야 했다.
추나통(秋那通)-내 영혼의 고향
2006년 10월 30일 월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났다 .7시에 추나통에 갈려고 차를 빌려놓았다.
차 한잔 마시고 1층으로 내려가니 아직 숙소 문이 잠겨있고 주인도 잔다. 내가 깨우니 그때서야 문을 연다. 기사한테 확인 전화 부탁하고 거리로 나간다. 아침 7시 거리, 고요함과 어둠.
놀랍게도 아이들이 어떤 골목에서 쏟아져 나온다. 몇백명은 되는 것 같다.그 수많은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학교 운동장이었다. 학교운동장에서 모였다가 아침 달리기를 하면서 운동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 지금 시간이 몇시인데 아침 7시면 너무 이른 시간일 것 같은데 그 수많은 아이들이 모여서 아침 달리기를 한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학교 운동장으로 가보았다. 동네를 세번 정도 돌고 마무리하고 아침을 먹는다. 아침이라고 해봤자 소위 말하는 만토우이다.우리나라의 만두 개념과는 틀리고 그냥 밀가루빵이고 아무 맛도 없어서 현지인들은 그 만토우위에다가 이것 저것 양념이나 짱아찌를 같은 것을 얹어서 먹는 것이다.그 만토우 하나씩 받아들고 아이들은 운동장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앉아서 먹는다. 유난히 이 서부쪽은 아이들이 학교를 일찍 갔다가 전녁 늦게까지 있는 것 같다. 좋게 보면 전일제 교육인 셈이다.
아직 해 뜨기전이라서 몹시 춥다. 나도 만토우 하나 샀다. 따뜻하다. 만토우 들고 숙소 앞에서 기다려도 차는 오지 않는다.뭐야 200위앤이나 주고 차 빌려는데 늦게 와
속으로 살살 꽤씸해지고 있는데 차가 왔다.트럭
빵차가 아니고 트럭이다. 트럭을 타고 추나통을 가는 것이다. 세상에
나 말고도 중국인 관광객 세명이 더 있어서 기다려야 했다. 뭐야 난 내돈 다내고 게다가 1시간동안이나 기다리려니 아침 잠 설친 것이 아까워질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알람 시계를 안가지고 오는 바람에 순전 다 정신력으로 일어날려니 당연히 잠을 깊게 자질 못한다.그래서 난 여행만 끝나면 한달은 골골 앓는다.워낙 여행에서 체력과 정신력을 쏟아버리니
중국인 부부와 그 딸아이와 한팀이 되었다.나중에 친해져서 이야기를 나누니 그 아버지랑 나랑 나이 차이가 열살도 안나는 것이다. 헉 내가 보기에도 정말 나이들어보이는 아저씬데 나랑 나이차가 별로 안나니 갑자기 내가 살아온 시간이 무거워질려고 한다.
8시가 넘어서야 트럭은 추나통으로 출발한다.누지앙 마지막 동네이자 산만 넘으면 티벳인 마을.
아침 차가운 기운에 산에는 구름이 걸려있다. 싸늘하다 못해 얼어붙을 것 같은 아침 공기에 차의 흔들림은 장난이 아니다. 앞 좌석에 기사와 나
뒷좌석에 중국인 부부와 딸이 탔는데 공간이 남으니까 더 주체가 안된다. 아예 빡빡하게 끼워 앉았으면 덜 흔들렸을텐데 공간이 남으니 나 혼자 앞에서 이리 저리로 마치 짐이 바닥에서 굴러다니듯 그렇게 흔들렸다. 어찌나 흔들리던지 발이 바닥에 닿을 시간도 없다.
트럭은 차가운 공기를 가로 지르면서 누지앙을 따라서 석문 이라는 곳을 지나서 추나통으로 간다. 중간에 랜스마크님이 이야기 해준 오리촌을 지난다.
강가 저편 마치 시간과 상관없는 듯 고요함으로 머물러 있은 마을
전깃줄 땜에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쉽지만 아침 안개와 같이 아련한 마을의 모습은 가슴에 담는다. 조금 가다 강을 건넌다. 기사는 강 절벽에 난 아주 작은 길을 가리키며 차마고도라고 이야기 한다. 그 순간 난 흥분했다. 차마고도다
물론 호도협 트레킹을 하면서 차마고도를 따라서 걸어보기도 했지만 원래 오리지널 차마고도는 이 누지앙쪽이다. 길은 너무도 좁다. 간신히 말 한마리와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 도대체 저 길을 어떻게 걸어서 갔을까 싶을 정도이다. 저 길을 따라서 끊임없이 걸어 걸어 더친으로 라싸로 차와 소금을 실어날랐을 것 이다. 물류와 문명의 발달로 이제 차마고도는 다큐멘타리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의 유물로 사라졌고 이제 마지막 마방들이 죽고 나면 아무도 그 길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텐데
멀리서 말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말을 재촉하면서 묵묵히 그렇게 그 길을 갔었던 사람들...
나도 그 길을 따라서 가고 싶다. 그렇게 말 없이 묵묵히 걸어서 더친까지
라싸까지 가고 싶다.
내가 윈난을 여행지로 택한 첫번째 이유가 티벳 접경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2005년 2월 쭝띠앤에서 엔징을 갈려던 계획은 실패했었지만 난 티벳 근처에만 가도 행복하다.
2시간 동안 요란한 흔들림 끝에 추나통에 도착한다. 차가 도착했는데도 내릴 수가 없다. 온 몸에 느껴지는 진동에 아직도 몸이 떨리는 것 같다. 이 길은 트럭이나 랜드 크루저가 아니면 다닐 수가 없다. 미안하게도 우리는 돈을 냈다는 이유로 좌석에 앉아서 오고 짐을 싣는 뒤칸에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이 마을 사람들이 트럭을 타고 다닌다.이 추운 겨울 아침에 장갑도 안 끼고 난간을 잡고 뒤에 흔들리면서 차를 타는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추나통은 아주 작은 마을이다. 장족도 살지만 리수족과 다른 소수민족,누족도 산다. 마을은 주로 농사를 짓고 소와 돼지를 키운다. 마을 분위기는 평온하다.아침이라서 아침 준비를 하는 사람들과 가축에게 먹이를 주는 일손이 분주하다. 집안의 연기를 빼기 위해 지붕을 헐겁게 판자로 이어서 짓는 전통 가옥 형태이다. 내게는 너무도 익숙한 티벳의 향기이다.
민가에 들어갔더니 수유차를 권한다. 난 티벳을 너무 좋아하고 티벳의 문화에 열광하지만 적응 못하는 것이 이 수유차이다. 정말 야크고기나 이런 것은 내가 채식주의자라는 이유로 안 먹어도 이 수유차는 마실 수 있어야 하는데 수유차는 못마시겠다.
2004년도에 처음 티벳가서 라싸에서 타쉬 레스토랑에서 가서 수유차 마시고 조캉 사원 들어갔다가 즉사할 뻔 한 이후로 수유차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가 난다.
마을 안을 천천히 걸어다닌다.
아이들 웃음소리를 따라가 보니 학교에 가나 보다. 터벅터벅 집집마다 걸어가면서 아마 학교가자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다. 예쁜 가방메고 둘이서 손 꼭 잡고 학교로 가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냥 뒤를 따라가보니 처음에는 나를 경계하다 카메라 찍은 것을 보여주니 좋아한다. 어디가나 아이들이 제일 예쁘다. 문제는 내가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아주어야 하는데 그것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이 깊고 싶은 산중까지 위성 방송 안테나가 달리고 철탑이 들어서있다.
생활은 편해지지만 그 편한 만큼 잃어야 하는 것도 있는 것이다.
받드시 안다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알게 된다는 것은 비교를 동반한다.비교해서 내가 낫다고 생각하는 경우보다는 내가 못하다는 생각하기 마련이고 그럼 비교하기 전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들이 가치를 잃게 된다.
대부분 중국 사람들은 텔레비젼으로 소일한다. 지금 아이들은 다 교육을 받지만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더 많으니 책을 읽을 수도 읽을 책도 없고 밤에 별 다른 소일거리가 없으니 오로지 텔레비젼만으로 시간을 때운다. 우리나라 텔레비젼 드라마를 보면 한국 사람이 봐도 호사스럽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의 현실성 없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인데 중국 사람들이 볼 때 다 한국사람들은 물질적으로 풍부하게 아무 걱정없이 그저 사랑 놀음이나 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자신들의 삶에 대한 비하가 될 수도 있다.
난 소위 세계 10대도시중 하나인 서울에 살지만 여기 추나통이 더 편하다.
이런 곳에서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이 들고 자연에서 나는 것을 먹고 자연에서 주는 것을 받으면서 살고 싶다. 삶이란 굳이 무엇을 가지고 얻어야 행복한 것은 아니다.
내 긴 생각은 마을 사람이 자기 집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에 멈춘다.들어가니 부엌 겸 거실에는 늘 그렇듯 커다란 난로가 있고 그 난로에는 죽을 끊이나.뭐 사람 먹을 것은 아니고 여물인셈이다. 주전자에서 무엇인가 따라서 주길래 수유차 치고 차갑네
술이다.
아침도 만토우 하나 먹었는데 술이라니 아마 이것 마시면 오늘 추나통에서 하루 자야 할 껄
감사하다고 하면서 한입 마셨더니 막걸리에 가까운 발효주이다.아마 창인것 같다
2001년도 네팔에 갔을 때 포카라에서 티벳 유목민 촌에 갔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창을 사서 마신 적이 있었다.
그날은 무지하게 비가 왔었고 비오는 날 마신 창의 맛이란 5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이 난다.
그 창이다.
창은 우리나라 막걸리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기사가 가자고 나를 찾으러 왔다. 같이 왔던 중국인 부부와 딸팀은 민박집 주인하고 마을을 돌아다녔나 보다 민박집 아줌마에게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자기 한국 드라마 너무 좋아해서 매일 밤마다 한국 드라마 본다고 하면서 어쩜 이렇게 하얗고 예쁘냐고 한다.
아마 이 아줌마도 나랑 나이 차이 별로 안날것이다. 대부분 소수민족은 결혼을 빨리해서 조산을 하고 워낙 햇볕에 노출이 많이 되어서 늙어 보인다.
추나통에서 2시간 머물렀지만 현지인들의 집에서 차도 마시고 술도 대접받고 그들 사는 것에 잠시나마 같이 있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정말 멀고도 먼 길을 왔지만 그 고생이 하나도 힘들지 않다. 추나통에서 다시 빙쭝뤄로 돌아오는 길 물레방아에 들렸다.
그 물레방아길을 따라서 위로 올라가면 마지막 마방들이 살고 있고 지금도 가끔 내려와서 마방들이 물레방아를 이용해서 옥수수를 빻곤 한다는 것이다.비록 가서 마지막 마방도 옥수수를 빻는 것도 보지 못했지만 나중에 더라무(德裸姆) DVD 에서 그 물레방아를 다시 보니 가슴이 아련했다.
마을로 돌아오니 12시이다. 낮에는 덥다. 체크아웃을 하고 중국인 부부와 딸과 점심을 같이 먹었다. 아침에 자기네들 땜에 늦었다고 밥을 산다고 한다. 딸이 약간 영어를 하고 서로 잘 못알아듣는 것은 필담으로 했다.
내가 고기를 안 먹는 채식주의자라고 하니 무지하게 신기해한다.
나름대로 배려해서 감자와 채소 요리 그리고 볶음밥을 시켜준다.
정말 중국에서 채식주의자라는 것은 박물관에나 진열되야할 희귀한 것임을 나도 너무 잘안다.
절대 이해를 못한다.
처음에 중국에 갔을 때는 길게 써가지고 다녔다.
뭐 이런 내용이다
저는 채식주의자이니 고기를 넣지 마시고
소위 돼지기름(猪 油)을 쓰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한자를 못 읽는 사람도 있고 이 사람들은 사람이 고기를 안 먹는 다는 것을 이해 못한다.
이제는 내가 포기하고 그냥 매일 밥이나 볶아 달라고 해서 먹고 만다.
내가 한자를 읽을 줄 아는 것에 신기해한다. 두롱족이 사는 마을로 갈려고 했다. 식당 아줌마가 이 마을에도 두롱족이 한명 있으니 만나보라고 한다. 사진 찍는데 50위앤이라고 한다.기분이 유쾌하진 않았지만 만나보기로 했다. 그러나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최선의 선택이 되었다. 나 혼자 두롱족 마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길잃고 말았으니까
얼굴에 문신을 하는 두롱족 풍습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40대 이상에서만 문신을 했고 요즘 사람들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두롱족들이 모여 사는 곳은 꽁샨에서 트럭으로 7시간 정도 들어가면 모여 사는 마을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두롱강을 가지 못해서 아쉽다.
사진을 찍히고 돈을 받는 두롱족 할머니
그 할머니에게 내가 뭐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왠지 사진을 찍을 때마다 할머니의 영혼을 빼앗는 것 같아서 들이대고 사진을 찍기가 싫었다.
쌍라라는 마을에서 1시간 정도 올라가면 두롱족 마을로 갈 수 있다고 해서 나 혼자 용감하게 쌍라까지 히치해서 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길 찾는데는 결국 실패한다.현지인에게 안내를 부탁했어야 하는데 부탁할 사람도 없고 해서 그냥 외길 같아서 올라갔다가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다. 빙쭝뤄로 나가는 막차가 5시 반에 끊기는데 걱정이 된다. 이 경우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다시 찬찬히 길을 되짚어 나가서 다시 쌍라까지 내려오는 데는 성공했지만 두롱족 마을을 가는 데는 실패했다. 다시 히치해서 빙쭝뤄로 돌아가면서 내가 두롱족 마을에 갈려고 했다니까 거의 이 여자 제 정신이 아니구나 하는 표정이다.
빙쭝뤄에서 다시 꽁샨까지 버스를 타고 나왔다. 10위앤
아쉽다. 만 하루를 머물다 떠나는구나
이 곳에 오고 싶어했던 영덕씨 생각이 났다.
아마 영덕씨가 왔었더라면 티벳 국경까지 갔었을 것이다
하지만 추나통에서 보낸 시간만으로도 난 너무 행복했다.
꽁샨에서 푸꽁가는 버스는 12시가 막차이다.이미 차 끊긴지 오래이지
어차피 차 없다는 것을 알고 갔으니까
우리나라 치면 무쏘 스포츠 같이 짐을 싣을 수 있는 빵차를 잡아 탔다. 푸꽁까지 200위앤에 가기로 했다. 오늘 이곳에서 자고 낼 아침부터 시작하면 쿤밍에 도착할 수야 있겠지만 그러면 너무 내가 지겨울 것 같아서 오늘 푸꽁까지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것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밤이라서 강 풍경을 볼 수 없었고 서로 말도 안통하니 그냥 묵묵히 앉아서 푸꽁에 도착해서 다시 푸꽁 빈관에 가서 묵었다. 다시 왔으니까 깍아달라고 해도 안깍아 주어서 80위앤.
영덕씨에게 전화해서 내일 쿤밍으로 출발한다고 이야기 했다 너무 지쳐서 누가 류쿠까지 그냥 실어다 준다고 해도 못가겠다고 하면서 그러나 그날 날 루큐까지 갔어야 했다.
다시 푸꽁 빈관 똑같은 방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큰 짐 맡기고 작은 배낭 싸서 갔다올 것 그랬다.
여행 9일째 피곤에 절어 잠을 잔다.
빙쭝뤄에 있다 오니 푸꽁 추운 줄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