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새벽 초등학교 6학년 가을이었다. 어머니는 새벽잠에 깊이 잠들어있는 나의 귀에 속삭이시며 어서 일어나라고 채근하셨다. 나는 아침잠이 많았으므로 손을 내저으며 어머니에게 "조금만 더요!"하며 담잠속에서 나오는것을 완강히 거절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동안의 제스쳐요 엄살이란것을 나자신이 알고 있었으므로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켰다. 동네를 통틀어 자전거가 고작해야 두세대정도 있는 때였으므로 자전거가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어머니의 심부름도 있었지만 가끔은 이웃의 심부름까지 부탁을 받는 경우가 있다. 그날도 어머니는 동네사람의 부탁을 받아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려고 하는것이었다. 마침 진주에 계신 이모님께서도 대전에 있는 우리집에 방문차 와 계셨으므로 아침일찍 부터 어머니는 닭도 잡으시고 이런저런 특별한 음식을 준비중이셨다. 워낙 자전거 타는것을 좋아하여 걸핏하면 어머니에게 심부름할 것 없는지를 물었다. 간단한 시장거리나 생필품을 사는 일은 모두 자전거를 좋아하는 나의 몫이었다. 그날도 새벽녁 아직 날이 밝으려면 멀었는지 닭도 울지 않고 있었다. 자전거를 끌고 나가는 나의 등뒤에서 이모님께서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걱정어린 소리가 들렸으며,나는 목소리 높여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있게 대답을 하였다. 초등학교 이전부터 타는 자전거라서 거의 도사 아닌 도사가 된 흉내를 다 내며 자전거의 기교를 부리기 일쑤였다. 특히 학교 등교와 하교시 친구들이나 여자 아이들앞에선 더욱 자전거 멋을 부리며 우쭐거렸던 때도 있었다. 더할나위 없이 맑고 신선한 새벽바람이 폐부를 타고 뇌리에 와 닿는듯 날으는 기분이 어찌나 좋은지... 새벽잠을 박차고 일어나는 것은 힘이 들지만 일단 자전거를 끌고 도로에 나서면 자전거를 앞세워 힘차게 올라탄 후 숨이 차도록 패달을 밟고 전진한다. 어른용 자전거의 높이가 다소 높은 어린 다리이지만 속도를 내기 위하여 안장과 핸들사이에 버티고 서서 바둥거리며 패달을 밟는 숙달된 자세에 스스로도 감탄을 하곤하였다. 눈감고도 훤한 이웃마을 그리고 몇개 마을을 지난 마을까지도 나의 자전거 활동 범위였다. 왕복 50킬로정도는 두려움없이 달려가곤한다. 그런데 그날은 도로에 새벽 안개가 깔려있었고 심부름을 모두 마치고 돌아오는길에 새벽당번인 친구를 만났다. 그 친한 친구는 학교에서 우리집을 거쳐서 두개정도의 마을을 지나야 집이있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그친구가 혼자 걷는 모습을 발견하고 소리질러 내 자전거 뒤에 자신있게 태웠었다. 그런데 평소 다니던 도로의 지리에 대하여 너무 자신을 하여 뒷좌석에 앉아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종종 뒤를 쳐다보았다. 그사이 커브가 나타났고 커브에서 당황하여 방향을 잃고 도로밖으로 자전거가 벗어나며 제방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속도가 너무 빨랐었고 당시 일명'신작로'는 비포장이어서 갓길에는 자갈이쌓여서 자전거가 미끄러지기 십상이었다. 균형을 읽고 도로밖으로 미끌어지는 사이 뒷좌석의 친구는 넘어지며 떨어졌고 나는 자전거 핸들을 놓지않아서 3-4미터의 제방아래 시냇물 바닥에 떨어졌다. 얼굴부터 물바닥에 떨어졌는데 일어나는 순간 흙물이 얼굴을 덮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눈이 어떻게 됬는지 알고 내심 당황을 하였었다. 물소리가 나는곳으로 기어가서 얼굴을 물로 닦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놀란 친구가 다가오며 얼굴 닦는것을 도와주었다. 얼굴을 물로 닦으니 비로서 앞이 보였다. 그런데 피가 얼굴 어디선가 계속 흘렀다. 코를 '흥'하면서 힘껏 푸는데 피가 콧구멍 위의 눈앞쪽에서 튀어나가는 것이었다. 워낙 거친놀이를 자주하는 왈가닥이었던 터라서 다치는 일이 보통아이보다 많았다. 그런 경험에서 피가 튀는 방향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금방 알았다. 자전거는 친구에게 맡기고 1킬로 정도 되는 거리를 걸었다. 얼굴에서 피가 계속 흘렀으므로 자전거를 끌거나 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집에 도착하여 마당에 들어서니 방문을 열고 앉아있던 이모님이 놀라며 어머니를 부르고는 맨발로 나에게 달려와 얼굴을 살피셨다. 부엌에서 나오신 어머니는 그런 내모습에 순간 놀래시면서도 냉정함을 유지하셨다. 그리고는 병원에 실려가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코로 인하여 오래동안을 병원과 약국을 오고갔으며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에 다닐때까지 늘 코가 말썽이었다. 축농증이 오래되자 비염이 되더니 비염이 오래되자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진화를 하였다. 그런데 자전거로 세상으로 나가 돌아 다니는 동안 그렇게 고생스럽던 코병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자전거가 병주고 약을 주었다.
그날새벽 초등학교 6학년 가을이었다.어머니는 새벽잠
그날새벽 초등학교 6학년 가을이었다.
어머니는 새벽잠에 깊이 잠들어있는 나의 귀에 속삭이시며 어서 일어나라고 채근하셨다.
나는 아침잠이 많았으므로 손을 내저으며
어머니에게 "조금만 더요!"하며
담잠속에서 나오는것을 완강히 거절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동안의 제스쳐요 엄살이란것을 나자신이 알고 있었으므로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켰다.
동네를 통틀어 자전거가 고작해야 두세대정도 있는 때였으므로 자전거가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어머니의 심부름도 있었지만 가끔은 이웃의 심부름까지 부탁을 받는 경우가 있다.
그날도 어머니는 동네사람의 부탁을 받아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려고 하는것이었다.
마침 진주에 계신 이모님께서도 대전에 있는 우리집에 방문차 와 계셨으므로 아침일찍 부터 어머니는 닭도 잡으시고 이런저런 특별한 음식을 준비중이셨다.
워낙 자전거 타는것을 좋아하여 걸핏하면 어머니에게 심부름할 것 없는지를 물었다.
간단한 시장거리나 생필품을 사는 일은 모두 자전거를 좋아하는 나의 몫이었다.
그날도 새벽녁 아직 날이 밝으려면 멀었는지 닭도 울지 않고 있었다.
자전거를 끌고 나가는 나의 등뒤에서 이모님께서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걱정어린 소리가 들렸으며,나는 목소리 높여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있게 대답을 하였다.
초등학교 이전부터 타는 자전거라서 거의 도사 아닌 도사가 된 흉내를 다 내며 자전거의 기교를 부리기 일쑤였다.
특히 학교 등교와 하교시 친구들이나 여자 아이들앞에선 더욱 자전거 멋을 부리며 우쭐거렸던 때도 있었다.
더할나위 없이 맑고 신선한 새벽바람이 폐부를 타고 뇌리에 와 닿는듯 날으는 기분이 어찌나 좋은지...
새벽잠을 박차고 일어나는 것은 힘이 들지만 일단 자전거를 끌고 도로에 나서면
자전거를 앞세워 힘차게 올라탄 후 숨이 차도록 패달을 밟고 전진한다.
어른용 자전거의 높이가 다소 높은 어린 다리이지만 속도를 내기 위하여 안장과 핸들사이에 버티고 서서 바둥거리며 패달을 밟는 숙달된 자세에 스스로도 감탄을 하곤하였다.
눈감고도 훤한 이웃마을 그리고 몇개 마을을 지난 마을까지도 나의 자전거 활동 범위였다.
왕복 50킬로정도는 두려움없이
달려가곤한다.
그런데 그날은 도로에 새벽 안개가 깔려있었고 심부름을 모두 마치고 돌아오는길에 새벽당번인 친구를 만났다.
그 친한 친구는 학교에서 우리집을 거쳐서 두개정도의 마을을 지나야 집이있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그친구가 혼자 걷는 모습을 발견하고 소리질러 내 자전거 뒤에 자신있게 태웠었다.
그런데 평소 다니던 도로의 지리에
대하여 너무 자신을 하여 뒷좌석에 앉아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종종 뒤를 쳐다보았다.
그사이 커브가 나타났고 커브에서 당황하여 방향을 잃고 도로밖으로 자전거가 벗어나며 제방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속도가 너무 빨랐었고 당시 일명'신작로'는 비포장이어서 갓길에는 자갈이쌓여서
자전거가 미끄러지기 십상이었다.
균형을 읽고 도로밖으로 미끌어지는 사이 뒷좌석의 친구는 넘어지며 떨어졌고
나는 자전거 핸들을 놓지않아서
3-4미터의 제방아래 시냇물 바닥에 떨어졌다.
얼굴부터 물바닥에 떨어졌는데 일어나는 순간 흙물이 얼굴을 덮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눈이 어떻게 됬는지 알고 내심 당황을 하였었다.
물소리가 나는곳으로 기어가서 얼굴을 물로 닦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놀란 친구가 다가오며 얼굴 닦는것을 도와주었다.
얼굴을 물로 닦으니 비로서 앞이 보였다.
그런데 피가 얼굴 어디선가 계속 흘렀다.
코를 '흥'하면서 힘껏 푸는데 피가 콧구멍
위의 눈앞쪽에서 튀어나가는 것이었다.
워낙 거친놀이를 자주하는 왈가닥이었던 터라서 다치는 일이 보통아이보다 많았다.
그런 경험에서 피가 튀는 방향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금방 알았다.
자전거는 친구에게 맡기고 1킬로 정도 되는 거리를 걸었다.
얼굴에서 피가 계속 흘렀으므로 자전거를 끌거나 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집에 도착하여 마당에 들어서니 방문을 열고 앉아있던 이모님이 놀라며 어머니를 부르고는 맨발로 나에게 달려와 얼굴을 살피셨다.
부엌에서 나오신 어머니는 그런 내모습에 순간 놀래시면서도 냉정함을 유지하셨다.
그리고는 병원에 실려가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코로 인하여 오래동안을 병원과 약국을 오고갔으며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에 다닐때까지 늘 코가 말썽이었다.
축농증이 오래되자 비염이 되더니 비염이 오래되자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진화를 하였다.
그런데 자전거로 세상으로 나가 돌아 다니는 동안 그렇게 고생스럽던 코병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자전거가 병주고 약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