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직업을 10년쯤 하게 되면 익숙해지기 시작하고, 20년쯤 지나면 장인 정신이 생기는 법이라고 누가 말했었다. 이제 영화감독 생활 24년째의 배창호 감독에게는 이런 말을 덧 붙여도 될거 같다. 영화장인 배창호라고.
그의 새영화-라고 하기엔 개봉이 심하게 늦춰졌지만- 을 보고나니 왜 그가 한국 영화계의 거장이라 불리는지 알것 같았다. 그는 이번 영화로 한층 깊어졌고, 세월의 향기를 덧 입으며 현자의 분위기마저 술술 풍긴채 우리 앞에 나타났다.
단도직입적으로 영화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이번 이라는 영화를 통하여 두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길'의 첫번째 의미인 길은 영화라는 텍스트 안에서 비춰지게 된다. 스스로 장돌뱅이 태석으로 분한 배창호 감독은 태석의 삶, 혹은 우리 인생의 여정길을 '길'에게 덧씌우면서 멈추어서면 의미를 잃게되는 '걸어야만 하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인생길에서 멈추어 서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반증이라도 하듯 감독은 태석을 끊임없이 길 위에 던져놓고 걷게 하면서 그 의미를 더욱 더 깊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태석이 갖고 있던 20여년 간의 오해도, 장터를 전전긍긍하는 장돌뱅이의 삶도, 가족도, 여행객도, 나그네도, 모두 길을 걷다 스치거나 동행하게 되는 사건, 사람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태석의 길과 접점을 가진 것들 모두 '길'이라는 거대한 메타포에 귀속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태석은 친구 득수의 장례식을 계기로 20여년 동안의 오해를 풀고 자신을 기다려온 가족들에게 찾아간다. 그러나 태석은 장돌뱅이라는 자신의 체질 탓인지, 혹은 배창호 감독, 자신의 영화 '길'에서 꾸준하게 보여주었던 태석이라는 캐릭터를 일관시켜 보여주고 싶었던 의지 탓인지. 그는 다시 길을 떠나게 된다.
정착이 아닌 방랑자의 삶.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길을 걷는 방랑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역설이라도 하듯이.
그렇기 때문에 태석이라는 캐릭터는 어쩌면 숙명적으로 '길'을 걸어야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생겨난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인간 보편성의 발현, 유목적 본성을 일깨우는 장돌뱅이 태석.그런 캐릭터에 관객들은 다시 한번 정착만을 원하고 갈망하는 현대인의 의식 기저에 자리잡은 유목성을 발견하고 그리워하는 감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떤 그리움.
그것은 또한 '길'이라는 단어 말고도 영화 내내의 정서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이기도 하다. 1950년대와 1970년대를 끊임없이 왕복하는 영화의 장면장면들, 옛 시골 장터들 구수한 미장셴, 한국적 정서의 흥취가 여전한 남도의 풍경들, 남도의 풍경을 처음으로 스크린에 거의 고스란히 담아냈던 류의 영화에 대한 막연한 향수마저도 영화의 플롯 뒤에 자리잡은 감정선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기에서 인생의 또 다른 이름인 '길'의 의미 외에도 영화를 통해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다른 의미의 '길'을 발견할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장소와 장소를 '연결하는 길'이라는 의미다.
영화에서의 길의 두번째 의미인 '연결하는 길'은 그렇다면 무엇과 무엇을 연결하는가? 물론 영화 내에서 남도의 많은 장터를 연결하는 길이라는 의미도 될수 있겠지만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정답은 바로 다름아닌 과거와 현재다.
70년대에서 태석이 만나게 되는 득수의 딸, 신영이 바로 그 접점의 길을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석이 걸어왔던 오해의 과거를 바로 연결해주는길의 역할. 덕분에 태석은 20여년만에 자신의 고향을 찾을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그러나 수십년동안 자신과 다른 길을 걸어온 가족 각자의 '걷고있는' 길을 발견하게 된 태석은 다시 자신의 '길'을 걷는다.
연결하는 길의 의미는 영화 밖에서도 나름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영화 내내 전반적으로 흐르는 그리움과 향수라는 감정선으로 인하여 2006년의 우리는 1970년대의 감흥과 1950년대의 감흥에 연결된다. 50년대, 70년대, 2000년대. 세 시기를 곧게 연결하는 '길'이라는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며 영화와, 관객까지도 통하게 해준다.
확실히 그는 전작 의 악몽을 뿌리치고 더 깊은 성찰로, 더 깊어진 지혜로 돌아왔다. 이라는 영화를 들고 말이다.
문득 이 영화는 연작처럼 몇편 더 이어져야 할것만 같다. 길이라는 제목이 함축하고 있는 영속성 때문일수도 있고, 배창호만의 감각으로 연결되는 서로 다른 시대의 길들을 보고 싶은 나의 욕심일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의 다음 작품 또한 이정도의 떨림을 가져다 주길 바라며 오늘 하루도 길을 걸어야겠다.
장인 배창호의 길.
한 직업을 10년쯤 하게 되면 익숙해지기 시작하고, 20년쯤 지나면 장인 정신이 생기는 법이라고 누가 말했었다. 이제 영화감독 생활 24년째의 배창호 감독에게는 이런 말을 덧 붙여도 될거 같다. 영화장인 배창호라고.
그의 새영화-라고 하기엔 개봉이 심하게 늦춰졌지만- 을 보고나니 왜 그가 한국 영화계의 거장이라 불리는지 알것 같았다. 그는 이번 영화로 한층 깊어졌고, 세월의 향기를 덧 입으며 현자의 분위기마저 술술 풍긴채 우리 앞에 나타났다.
단도직입적으로 영화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이번 이라는 영화를 통하여 두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길'의 첫번째 의미인 길은 영화라는 텍스트 안에서 비춰지게 된다. 스스로 장돌뱅이 태석으로 분한 배창호 감독은 태석의 삶, 혹은 우리 인생의 여정길을 '길'에게 덧씌우면서 멈추어서면 의미를 잃게되는 '걸어야만 하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인생길에서 멈추어 서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반증이라도 하듯 감독은 태석을 끊임없이 길 위에 던져놓고 걷게 하면서 그 의미를 더욱 더 깊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태석이 갖고 있던 20여년 간의 오해도, 장터를 전전긍긍하는 장돌뱅이의 삶도, 가족도, 여행객도, 나그네도, 모두 길을 걷다 스치거나 동행하게 되는 사건, 사람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태석의 길과 접점을 가진 것들 모두 '길'이라는 거대한 메타포에 귀속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태석은 친구 득수의 장례식을 계기로 20여년 동안의 오해를 풀고 자신을 기다려온 가족들에게 찾아간다. 그러나 태석은 장돌뱅이라는 자신의 체질 탓인지, 혹은 배창호 감독, 자신의 영화 '길'에서 꾸준하게 보여주었던 태석이라는 캐릭터를 일관시켜 보여주고 싶었던 의지 탓인지. 그는 다시 길을 떠나게 된다.
정착이 아닌 방랑자의 삶.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길을 걷는 방랑자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역설이라도 하듯이.
그렇기 때문에 태석이라는 캐릭터는 어쩌면 숙명적으로 '길'을 걸어야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생겨난 캐릭터일지도 모르겠다. 인간 보편성의 발현, 유목적 본성을 일깨우는 장돌뱅이 태석.그런 캐릭터에 관객들은 다시 한번 정착만을 원하고 갈망하는 현대인의 의식 기저에 자리잡은 유목성을 발견하고 그리워하는 감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떤 그리움.
그것은 또한 '길'이라는 단어 말고도 영화 내내의 정서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이기도 하다. 1950년대와 1970년대를 끊임없이 왕복하는 영화의 장면장면들, 옛 시골 장터들 구수한 미장셴, 한국적 정서의 흥취가 여전한 남도의 풍경들, 남도의 풍경을 처음으로 스크린에 거의 고스란히 담아냈던 류의 영화에 대한 막연한 향수마저도 영화의 플롯 뒤에 자리잡은 감정선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기에서 인생의 또 다른 이름인 '길'의 의미 외에도 영화를 통해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다른 의미의 '길'을 발견할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장소와 장소를 '연결하는 길'이라는 의미다.
영화에서의 길의 두번째 의미인 '연결하는 길'은 그렇다면 무엇과 무엇을 연결하는가? 물론 영화 내에서 남도의 많은 장터를 연결하는 길이라는 의미도 될수 있겠지만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정답은 바로 다름아닌 과거와 현재다.
70년대에서 태석이 만나게 되는 득수의 딸, 신영이 바로 그 접점의 길을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석이 걸어왔던 오해의 과거를 바로 연결해주는길의 역할. 덕분에 태석은 20여년만에 자신의 고향을 찾을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그러나 수십년동안 자신과 다른 길을 걸어온 가족 각자의 '걷고있는' 길을 발견하게 된 태석은 다시 자신의 '길'을 걷는다.
연결하는 길의 의미는 영화 밖에서도 나름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영화 내내 전반적으로 흐르는 그리움과 향수라는 감정선으로 인하여 2006년의 우리는 1970년대의 감흥과 1950년대의 감흥에 연결된다. 50년대, 70년대, 2000년대. 세 시기를 곧게 연결하는 '길'이라는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며 영화와, 관객까지도 통하게 해준다.
확실히 그는 전작 의 악몽을 뿌리치고 더 깊은 성찰로, 더 깊어진 지혜로 돌아왔다. 이라는 영화를 들고 말이다.
문득 이 영화는 연작처럼 몇편 더 이어져야 할것만 같다. 길이라는 제목이 함축하고 있는 영속성 때문일수도 있고, 배창호만의 감각으로 연결되는 서로 다른 시대의 길들을 보고 싶은 나의 욕심일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의 다음 작품 또한 이정도의 떨림을 가져다 주길 바라며 오늘 하루도 길을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