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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대의 바이올린과 첼로, 현을 위한 협주곡 11번 - 파비오 비온디 / 에우로파 갈란테
(잠시 기다리시면 나옵니다)
비발디의 사계를 단 한 악절이라도 들어보지 않은 분들은 아마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사계는 유명하기도 하거니와, 수많은 명반들이 나와 있어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까닭에 사계는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만큼이나 '이제는 제발 그만 좀 듣자'는 생각마저 가끔씩 드는 곡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이 무지치의 연주는 앨범마다 다 좋긴 한데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겹기까지 하지요-이런 소리 하면 혼나는데-.
제가 같은 작곡가의 곡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곡인 것도 아닌 사계를 난데없이 끌고들어가는 이유는, 오늘 소개하려는 앨범의 연주자가 바로 그 지겹디 지겨운 사계를 완전히 새로운 해석으로 연주하고, 단 한 장의 앨범으로 자신이 조직한 앙상블을 세계적인 단체로 끌어올리고, 모든 메이저 레이블들이 영세 레이블에 불과한 'opus 111'의 필기체를 공포에 떨며 바라보게 만든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파격적이기보다는 차라리 파괴적이라고 해야 할 이들-파비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사계에 비하면, 이 앨범은 오히려 얌전한 편입니다. 하지만 얌전하다는 것은 사계 앨범에 '비해 비교적' 얌전하다는 얘깁니다. 그 역동성과 내재된 에너지만큼은 그대로지요. 어쩌면 충격적이었던 사계 앨범의 여운이 그대로 남아서, 조용조용 얌전히 연주해도 강렬하게 들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조화의 영감이나 화성의 영감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 이 곡은, 비발디가 일하던 베네치아 피에타 음악원의 여학생들을 위해 작곡한 것이라고 합니다. 화성적으로나 대위법적으로 상당히 모범적인 선례라 할 수 있기 때문인지, 바흐가 여기서 꽤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요.
구성은 전체 12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원래 12곡으로 작곡된 것은 아니고 비발디가 좋은 곡을 가려 뽑아 12곡으로 추렸다고 합니다. 한 대 혹은 두 대나 네 대의 바이올린과 다른 현악기들을 위해 쓰여진 곡들이 대부분이며, 독주악기들이 앞으로 나섰다가 합주부분으로 들어가는 구조나, 각 악기들 간의 조화가 매우 잘 이루어져 있어 그냥 듣기만 해도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아마, 어디선가 한 번씩 들어봤다, 싶은 곡들일 겁니다. 듣기로는 지하철 5~8호선 환승역 안내 시그널이 이 곡이라더군요(확인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더듬어 보자면, 초등학생 때(그 때는 국민학교였죠) 이 곡을 어쩌다 들었는데-지금 나오는 곡입니다-, 그 때는 부모님이 갖고 계신 그렇게 많지는 않은 LP 이외에는 클래식 음악을 접할 길이 없었는지라, 찾아서 들어볼 수는 없었지만, 대단히 인상이 깊었기 때문에 그 선율만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중학생 때 어머니께서 사오신 '웅진 마이 퍼스트 클래식(아마 집에 이거 있는 분 꽤 되실 듯)'에서 이 곡을 들을 수 있었고, CD가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앨범을 단어 몇 개로 표현하자면 아마도 '차분함'과 '세밀함'이 될 것입니다. 화산이 터지는 것 같던 사계에서의 분위기는 어디로 가고, 아직은 따갑지 않은 초여름의 햇살을 받으며 실바람이 살살 불어오는 평상에 앉아 수국의 꽃잎을 하나하나 세어나가는 듯한, 치밀하고 정교한 묘사가 일품이지요. 더구나 원래부터 완급조절에 능한 비온디이다보니, 대단히 차분하게 곡을 이끌어 가면서도 그 안에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는 것이 잘 느껴집니다. 다만 이 앨범에서는 그것이 뜨겁게 분출된 것이 아니라, 약간은 냉정하게 배어나온다고 할까요.
독주부분과 합주부분의 균형도 매우 적절합니다. 에우로파 갈란테는 앞으로 나서지 않고 연주 전체가 엇나가지 않도록 단단한 바닥을 이루어주고, 독주악기 주자들은 그 위에서 자신의 작은 감각들을 하나하나 살려내며 미묘한 공기의 흐름까지도 느껴질만큼 작고 예쁜 음률을 살려내지요. 네,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은 모두 작고 예쁜 곡들이고,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는 그에 딱 맞는 작고 예쁜 연주를 들려줍니다. 마치 그 연주가 본디 그러하다는 것처럼요.
세상이 크고 위대한 것을 강조하고 찬양하며 기릴 때, 작고 아름다운 것의 가치는 더 커 보이게 마련입니다.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주류인 시대에, 바로크 시대의 원전연주에 관심이 몰리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조화에의 영감'은 바로 그런 작고 아름다운 가치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앨범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그러한 작은 가치를 있는 그대로 잘 살려냈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파비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는 요즘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비발디의 곡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바로크 음악들을 연주하고, 그에 머무르지 않고 영역을 확장해 가면서도 자신들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배어 있는 좋은 음반들을 많이 녹음하고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이들이 이 앨범에서 보여준 '작은 것'의 미학을, 언제까지나 유지해 주었으면 합니다. 많은 다른 원전연주 단체들도 좋은 연주를 들려주고 있지만, 이들의 연주는 여전히 자신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R]비발디 조화에의 영감 - 파비오 비온디
파격적이기보다는 차라리 파괴적이라고 해야 할 이들-파비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사계에 비하면, 이 앨범은 오히려 얌전한 편입니다. 하지만 얌전하다는 것은 사계 앨범에 '비해 비교적' 얌전하다는 얘깁니다. 그 역동성과 내재된 에너지만큼은 그대로지요. 어쩌면 충격적이었던 사계 앨범의 여운이 그대로 남아서, 조용조용 얌전히 연주해도 강렬하게 들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조화의 영감이나 화성의 영감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 이 곡은, 비발디가 일하던 베네치아 피에타 음악원의 여학생들을 위해 작곡한 것이라고 합니다. 화성적으로나 대위법적으로 상당히 모범적인 선례라 할 수 있기 때문인지, 바흐가 여기서 꽤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요. 구성은 전체 12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원래 12곡으로 작곡된 것은 아니고 비발디가 좋은 곡을 가려 뽑아 12곡으로 추렸다고 합니다. 한 대 혹은 두 대나 네 대의 바이올린과 다른 현악기들을 위해 쓰여진 곡들이 대부분이며, 독주악기들이 앞으로 나섰다가 합주부분으로 들어가는 구조나, 각 악기들 간의 조화가 매우 잘 이루어져 있어 그냥 듣기만 해도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아마, 어디선가 한 번씩 들어봤다, 싶은 곡들일 겁니다. 듣기로는 지하철 5~8호선 환승역 안내 시그널이 이 곡이라더군요(확인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더듬어 보자면, 초등학생 때(그 때는 국민학교였죠) 이 곡을 어쩌다 들었는데-지금 나오는 곡입니다-, 그 때는 부모님이 갖고 계신 그렇게 많지는 않은 LP 이외에는 클래식 음악을 접할 길이 없었는지라, 찾아서 들어볼 수는 없었지만, 대단히 인상이 깊었기 때문에 그 선율만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중학생 때 어머니께서 사오신 '웅진 마이 퍼스트 클래식(아마 집에 이거 있는 분 꽤 되실 듯)'에서 이 곡을 들을 수 있었고, CD가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앨범을 단어 몇 개로 표현하자면 아마도 '차분함'과 '세밀함'이 될 것입니다. 화산이 터지는 것 같던 사계에서의 분위기는 어디로 가고, 아직은 따갑지 않은 초여름의 햇살을 받으며 실바람이 살살 불어오는 평상에 앉아 수국의 꽃잎을 하나하나 세어나가는 듯한, 치밀하고 정교한 묘사가 일품이지요. 더구나 원래부터 완급조절에 능한 비온디이다보니, 대단히 차분하게 곡을 이끌어 가면서도 그 안에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는 것이 잘 느껴집니다. 다만 이 앨범에서는 그것이 뜨겁게 분출된 것이 아니라, 약간은 냉정하게 배어나온다고 할까요.
독주부분과 합주부분의 균형도 매우 적절합니다. 에우로파 갈란테는 앞으로 나서지 않고 연주 전체가 엇나가지 않도록 단단한 바닥을 이루어주고, 독주악기 주자들은 그 위에서 자신의 작은 감각들을 하나하나 살려내며 미묘한 공기의 흐름까지도 느껴질만큼 작고 예쁜 음률을 살려내지요. 네, 이 앨범에 실린 곡들은 모두 작고 예쁜 곡들이고,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는 그에 딱 맞는 작고 예쁜 연주를 들려줍니다. 마치 그 연주가 본디 그러하다는 것처럼요. 세상이 크고 위대한 것을 강조하고 찬양하며 기릴 때, 작고 아름다운 것의 가치는 더 커 보이게 마련입니다.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주류인 시대에, 바로크 시대의 원전연주에 관심이 몰리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조화에의 영감'은 바로 그런 작고 아름다운 가치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앨범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그러한 작은 가치를 있는 그대로 잘 살려냈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파비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는 요즘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비발디의 곡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바로크 음악들을 연주하고, 그에 머무르지 않고 영역을 확장해 가면서도 자신들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배어 있는 좋은 음반들을 많이 녹음하고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이들이 이 앨범에서 보여준 '작은 것'의 미학을, 언제까지나 유지해 주었으면 합니다. 많은 다른 원전연주 단체들도 좋은 연주를 들려주고 있지만, 이들의 연주는 여전히 자신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