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dhood of Michael Jackson 1958년 미국 인디에나주 게리에서 태어 난 마이클 조셉 잭슨은 9남매중 일곱째로 아버지 조 잭슨과 어머니 캐더린 잭슨을 두고 있다. 9남매들 중에서 유독 재능이 뛰어났던 마이클은 귀저기 바람의 한살 반의 나이에 젓병을 들고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에 마춰 춤을 추어 어머니를 놀라게 했다. 그것은 마이클의 거대한 미래를 예감하는 작은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까?
마이클이 어린아이 답지 않은 엄청난 잠재된 재능과 열정으로 가득 찬 아이라는 사실을 부모조차, 그리고 본인 조차 몰랐을 무렵. 어머니 케더린이, 성부만을 골라 또렷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다섯살 마이클을 발견한것을 시작으로 잭슨파이브의 리드보컬로서 합류하게 된다. 그것은 역사상 최연소 리드 보컬의 기록을 세우는 일이였다!
어린 마음에 마이클은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것이 마냥 행복 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해서 이 업계에 들어온 것이라고 본인이 말했듯 지금도 마이클잭슨은 이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것에 대해선 조금의 후회도 없을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 볼 때나 무대 위에서 그를 볼 때 또는, 그의 창작물들을 통해 그를 보면 음악에 관한 깊은 애정과 열정, 자신의 재능에 대한 신뢰 등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기와 순서가 따르는 법인데 너무 이른 나이에 어른들의 세계에 뛰어 든것이 무작정 좋은 것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이것은 모두가 아는 이야기 이지만 마이클은 그 댓가로 어린시절을 싸그리 지불 해 버렸다.
일 때문에 학교도 다닐 수 없었음은 물론이고 또래의 친구를 사귄 다는것 조차 어림 없는 일이였다.스튜디오로 향하는 길 공원에서 뛰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눈물을 삼켜야 했던 마이클. 그는 거의 하루 일곱 시간을 노래 했고 보통 어린이들이 잠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다섯살배기 어린이에겐 아주 가혹한 일인데, 아버지의 폭력까지도 가해 졌으니 보통의 어린이들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달픈 일과를 보냈던 것이다. 고로 마이클이 이 비지니스계에 들어와 성공하면서 지불해 나간 것들은 생각 이상으로 커다란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가끔식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어린 시절이 없다는건 얼마나 슬프고도 비참한 일인가.
모타운 데뷔 전 마이클과 그의 형제들은 아마추어 콘테스트나 바에서 주로 공연을 했다. 그 어린 나이에 스트립 쇼와 폭력이 뒹구는 곳에서 공연을 해왔다니..한창 어리광 부릴 나이에 그들은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해왔던 것이였다. 5살짜리 어린 아이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험난한 하루 일과를 보냈다. 모타운에 소속되어 데뷔해 크게 인기를 끌게 된 후에도 크게 달라진건 없었다. 그들은 숨도 못쉬게 바빴고 어린이로서 누릴 수 있는 더 많은 권리들을 포기 해야 했다.
그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 서는 순간 그는 모든걸 다 잊어버리는 듯 했다. 무대 위에서 애띤 얼굴의 마이클은 진정으로 행복한 모습이였고 최선을 다 하고 있었다.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쑥스러워서 하지 못할 일들을 그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내는 것이다.
누군가 어린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발 좌우도 바꿔 신을 나이 인데 어디서 그런 노래가, 그런 춤이, 그런 재능이 나오는 거죠?'
새까맣게 어린 아이의 상상을 초월하는 노래 실력과 동작 하나 하나는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잭슨파이브 일원 중에서도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것은 역시 가장 어린 마이클이였다. 깡마르고 작은 몸 어딘가에서 그런 재능과 열정이 뿜어져 나온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였다. 사람들은 제임스 브라운의 스텝을 흉내내며 노래하는 그를 귀여워 했지만 그의 재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것 이상이였던 것이다. 마이클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줬지만 그런것들로 하여금 그는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했다.
무대 위에서 그는 빛났지만, 무대 뒤에서는 누군가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유약한 어린 아이였다. 사람들은 이 점을 간과해 버리는 듯 했다.
마이클은 여러가지로 정통했고 어릴적에도 엔터테이너의 기질을 유감 없이 발휘 했다. 그는 일찍이 본인이 만든 안무를 사용 하는 등 대중들은 물론이고 가까이 있는 가족들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어릴 때에도 특유의 고집이 있어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노래는 절대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이유 등으로 아버지와 가장 마찰이 잦았던건 마이클이였다. 그의 고집은 완강했던 아버지의 권력 조차도 꺾을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는 어렸지만 항상 자기 의사와 의지가 확고 했던 것이다.
'제가 무엇을 노래하든, 그것은 제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내용이에요. 그런 마음으로 저는 노래를 불러요. 정말 제가 뜻하는 내용이 아니라면 노래하지 않아요.'
이 말이 12살짜리 어린이가 할 말은 분명 아니다. 어른들의 세계에 있었던 만큼 그의 정신도, 본인도 모르는새 훌쩍 커버리는 것이다.
언젠가 마이클은 자신의 아버지를 한번도 아버지라 불러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 바 있다. 아버지는 자신을 '조'라고 부르게 했고, 마이클은 그를 데디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으로 간절한 어린이였다. 왜 자녀와 아버지 사이에 거리감 있는 명칭으로 사이에 벽을 두려 했는지 어린 그는 이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88년 내놓은 자서전을 통해 아직까지도 아버지는 미스테리한 존재라고 했다. 그 때문인지 자녀들에게 아낌 없는 사랑을 쏟아 부은 어머니에 대한 마이클의 존경심과 애정은 강하게 드러난다.
마이클은 어린 시절 부터 외모에 대해 민감했던 모양이다. 그는 유독 코가 컸다. 형제들과 아버지가 하도 코에 대해 놀려대는 통에 그런 성향을 띄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의 형제들은 그에게 코주부라는 별명 까지 붙여 놀려 댔고 그의 아버지는 그런 일에 더욱 앞장 섰다고 한다. 믿었던 가족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그런 놀림을 당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까. 아마도 마이클은 그 때 부터 나중에 반드시 코를 고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던것 같다.
그 뿐 아니라 마이클이 외모에 대한 신경이 극에 닿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은 그에게 사춘기가 찾아 오면서 피부 이곳 저곳에 생겨버린 여드름에 관한 이야기다. 그 무렵 그는 밖같에도 잘 나가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어머니와 이야기 할 때도 고개를 숙이고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다고 한다. 마이클도 언제까지나 귀여운 아역 스타로 자리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그도 성장을 했다. 사람들은 그를 못알아 보는 경우가 태반이였고, 얘가 마이클이란 말이야? 하는 반응이 대부분 이였다. 명랑하고 장난기 가득한 귀여운 소년이였던 마이클은 하루 하루 성장함에 따라 내성적으로 변해 갔다. 지금까지도 자신의 외모에 민감한 것은 어쩌면 어릴적 아버지와 형들의 놀림이 크게 작용 했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그는 나이가 들 수록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 심리와 함께 상처는 더 커져 간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린 시절에 대한 갈망. 그리고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꿈들과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지면서 초조함과 그리움이 극에 달해 자신의 집에 놀이 공원을 세우는 등의 행동으로 위로 받는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유난히 어린 아이들을 좋아하는 까닭은 그들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발견하며 위로 받으려 하는 것은 아닐까. 그는 연예인들 가운데 가장 많은 기부를 했다. 그 많고 많은 기부들 중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어린이들을 돕는것은 자선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고통스러운 유년기를 보냈던 그 이기에 누구보다도 어린이들을 이해하고 실질적인 도움에 앞장 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린이들에 관해 말하는 그를 보면 어느 때보다도 총기가 넘치는 눈으로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어린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그에게 있어서 잃어버린 단면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마이크를 붙잡고 좁은 방 한켠에서 슬퍼 하고 있는 그의 어린 시절 자화상은 그가 보통의 평범한 이들은 범접할 수 없는 다른 세계를 살았다고 말해 준다. 그런 그의 사고와 행동이 일반인들과 조금 다르다고 해서 괴짜등의 저속한 언어들로 비난하는건 수준 이하의 비겁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안 그래도 상처로 가득한 사람을 짖밟는 것에도 모자라 돌까지 던지는 행위이다.
그의 전 프로듀서였던 퀸시 존스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다섯살 때 부터 대중들의 시선에 노출된 그에게서 어떻게 옆집의 폴 아저씨를 기대 할 수 있는가?'
마이클잭슨 어린시절
Childhood of Michael Jackson
1958년 미국 인디에나주 게리에서 태어 난 마이클 조셉 잭슨은 9남매중 일곱째로 아버지 조 잭슨과 어머니 캐더린 잭슨을 두고 있다. 9남매들 중에서 유독 재능이 뛰어났던 마이클은 귀저기 바람의 한살 반의 나이에 젓병을 들고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에 마춰 춤을 추어 어머니를 놀라게 했다. 그것은 마이클의 거대한 미래를 예감하는 작은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까?
마이클이 어린아이 답지 않은 엄청난 잠재된 재능과 열정으로 가득 찬 아이라는 사실을 부모조차, 그리고 본인 조차 몰랐을 무렵. 어머니 케더린이, 성부만을 골라 또렷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다섯살 마이클을 발견한것을 시작으로 잭슨파이브의 리드보컬로서 합류하게 된다. 그것은 역사상 최연소 리드 보컬의 기록을 세우는 일이였다!
어린 마음에 마이클은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것이 마냥 행복 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해서 이 업계에 들어온 것이라고 본인이 말했듯 지금도 마이클잭슨은 이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것에 대해선 조금의 후회도 없을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 볼 때나 무대 위에서 그를 볼 때 또는, 그의 창작물들을 통해 그를 보면 음악에 관한 깊은 애정과 열정, 자신의 재능에 대한 신뢰 등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기와 순서가 따르는 법인데 너무 이른 나이에 어른들의 세계에 뛰어 든것이 무작정 좋은 것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이것은 모두가 아는 이야기 이지만 마이클은 그 댓가로 어린시절을 싸그리 지불 해 버렸다.
일 때문에 학교도 다닐 수 없었음은 물론이고 또래의 친구를 사귄
다는것 조차 어림 없는 일이였다.스튜디오로 향하는 길 공원에서 뛰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눈물을 삼켜야 했던 마이클. 그는 거의 하루 일곱 시간을 노래 했고 보통 어린이들이 잠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다섯살배기 어린이에겐 아주 가혹한 일인데, 아버지의 폭력까지도 가해 졌으니 보통의 어린이들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달픈 일과를 보냈던 것이다. 고로 마이클이 이 비지니스계에 들어와 성공하면서 지불해 나간 것들은 생각 이상으로 커다란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가끔식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어린 시절이 없다는건 얼마나 슬프고도 비참한 일인가.
모타운 데뷔 전 마이클과 그의 형제들은 아마추어 콘테스트나 바에서 주로 공연을 했다. 그 어린 나이에 스트립 쇼와 폭력이 뒹구는 곳에서 공연을 해왔다니..한창 어리광 부릴 나이에 그들은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해왔던 것이였다. 5살짜리 어린 아이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험난한 하루 일과를 보냈다. 모타운에 소속되어 데뷔해 크게 인기를 끌게 된 후에도 크게 달라진건 없었다. 그들은 숨도 못쉬게 바빴고 어린이로서 누릴 수 있는 더 많은 권리들을 포기 해야 했다.
그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 서는 순간 그는 모든걸 다 잊어버리는 듯 했다. 무대 위에서 애띤 얼굴의 마이클은 진정으로 행복한 모습이였고 최선을 다 하고 있었다.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쑥스러워서 하지 못할 일들을 그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내는 것이다.
누군가 어린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발 좌우도 바꿔 신을 나이 인데 어디서 그런 노래가, 그런 춤이, 그런 재능이 나오는 거죠?'
새까맣게 어린 아이의 상상을 초월하는 노래 실력과 동작 하나 하나는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잭슨파이브 일원 중에서도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것은 역시 가장 어린 마이클이였다. 깡마르고 작은 몸 어딘가에서 그런 재능과 열정이 뿜어져 나온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였다. 사람들은 제임스 브라운의 스텝을 흉내내며 노래하는 그를 귀여워 했지만 그의 재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것 이상이였던 것이다. 마이클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줬지만 그런것들로 하여금 그는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했다.
무대 위에서 그는 빛났지만, 무대 뒤에서는 누군가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유약한 어린 아이였다. 사람들은 이 점을 간과해 버리는 듯 했다.
마이클은 여러가지로 정통했고 어릴적에도 엔터테이너의 기질을 유감 없이 발휘 했다. 그는 일찍이 본인이 만든 안무를 사용 하는 등 대중들은 물론이고 가까이 있는 가족들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어릴 때에도 특유의 고집이 있어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노래는 절대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이유 등으로 아버지와 가장 마찰이 잦았던건 마이클이였다. 그의 고집은 완강했던 아버지의 권력 조차도 꺾을 수 없을 때가 많았다. 그는 어렸지만 항상 자기 의사와 의지가 확고 했던 것이다.
'제가 무엇을 노래하든, 그것은 제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내용이에요. 그런 마음으로 저는 노래를 불러요. 정말 제가 뜻하는 내용이 아니라면 노래하지 않아요.'
이 말이 12살짜리 어린이가 할 말은 분명 아니다. 어른들의 세계에 있었던 만큼 그의 정신도, 본인도 모르는새 훌쩍 커버리는 것이다.
언젠가 마이클은 자신의 아버지를 한번도 아버지라 불러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 바 있다. 아버지는 자신을 '조'라고 부르게 했고, 마이클은 그를 데디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으로 간절한 어린이였다. 왜 자녀와 아버지 사이에 거리감 있는 명칭으로 사이에 벽을 두려 했는지 어린 그는 이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88년 내놓은 자서전을 통해 아직까지도 아버지는 미스테리한 존재라고 했다. 그 때문인지 자녀들에게 아낌 없는 사랑을 쏟아 부은 어머니에 대한 마이클의 존경심과 애정은 강하게 드러난다.
마이클은 어린 시절 부터 외모에 대해 민감했던 모양이다. 그는 유독 코가 컸다. 형제들과 아버지가 하도 코에 대해 놀려대는 통에 그런 성향을 띄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의 형제들은 그에게 코주부라는 별명 까지 붙여 놀려 댔고 그의 아버지는 그런 일에 더욱 앞장 섰다고 한다. 믿었던 가족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그런 놀림을 당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까. 아마도 마이클은 그 때 부터 나중에 반드시 코를 고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던것 같다.
그 뿐 아니라 마이클이 외모에 대한 신경이 극에 닿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은 그에게 사춘기가 찾아 오면서 피부 이곳 저곳에 생겨버린 여드름에 관한 이야기다. 그 무렵 그는 밖같에도 잘 나가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자신의 어머니와 이야기 할 때도 고개를 숙이고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다고 한다. 마이클도 언제까지나 귀여운 아역 스타로 자리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그도 성장을 했다. 사람들은 그를 못알아 보는 경우가 태반이였고, 얘가 마이클이란 말이야? 하는 반응이 대부분 이였다. 명랑하고 장난기 가득한 귀여운 소년이였던 마이클은 하루 하루 성장함에 따라 내성적으로 변해 갔다. 지금까지도 자신의 외모에 민감한 것은 어쩌면 어릴적 아버지와 형들의 놀림이 크게 작용 했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그는 나이가 들 수록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보상 심리와 함께 상처는 더 커져 간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린 시절에 대한 갈망. 그리고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꿈들과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지면서 초조함과 그리움이 극에 달해 자신의 집에 놀이 공원을 세우는 등의 행동으로 위로 받는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유난히 어린 아이들을 좋아하는 까닭은 그들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발견하며 위로 받으려 하는 것은 아닐까. 그는 연예인들 가운데 가장 많은 기부를 했다. 그 많고 많은 기부들 중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어린이들을 돕는것은 자선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고통스러운 유년기를 보냈던 그 이기에 누구보다도 어린이들을 이해하고 실질적인 도움에 앞장 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린이들에 관해 말하는 그를 보면 어느 때보다도 총기가 넘치는 눈으로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어린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그에게 있어서 잃어버린 단면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마이크를 붙잡고 좁은 방 한켠에서 슬퍼 하고 있는 그의 어린 시절 자화상은 그가 보통의 평범한 이들은 범접할 수 없는 다른 세계를 살았다고 말해 준다. 그런 그의 사고와 행동이 일반인들과 조금 다르다고 해서 괴짜등의 저속한 언어들로 비난하는건 수준 이하의 비겁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안 그래도 상처로 가득한 사람을 짖밟는 것에도 모자라 돌까지 던지는 행위이다.
그의 전 프로듀서였던 퀸시 존스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다섯살 때 부터 대중들의 시선에 노출된 그에게서 어떻게 옆집의 폴 아저씨를 기대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