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금이를 살해한 케네스 이병이 석방되었다. 8월 14일 가석방으로 풀려났다고 합니다. 원래 15년형을 받아 2008년 2월 출소예정인데, 가석방 되었다고 합니다.
석방 다음날 바로 미국으로 추방되었다고 하는데,, 분통하기도 하고, 가석방심사위원회를 어떻게 손봐주지,(힘도 없지만ㅠㅠ)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한미군범죄 관련 단체에서도, 언론에서도 석방 사실을 모른체 지나칠뻔 했던것 같습니다.
케네스 이병의 윤금이씨 살해사건
사건 일시:1992년 10월 28일 새벽 사건 발생장소: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431-50 1/7 16호 김성출씨 댁 안쪽 첫 번째 방 피해자:윤금이(여, 당시26세, 미군전용클럽 종업원) 가해자:케네스 리 마클(당시 20세, 미제2사단 25보병연대 5대대 이등병)
사건개요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에 있는 미군전용클럽 종업원이던 윤금이씨가 피살되었다. 28일 오후 4시 30분경 집주인 김성출씨가 피살체를 발견했을 때 피살자는 나체 상태였다. 자궁에는 맥주병 2개가 꽂혀 있었고 국부 밖으로는 콜라병이 박혀 있었다. 또한 항문에서 직장까지 27cm 가량 우산대가 꽂혀 있었다. 미2사단에 근무하는 미군병사 케네스 리 마클 이병은 윤금이씨의 머리를 콜라병으로 난타하고, 피흘리며 죽어가는 여성의 자궁에 콜라병을 박고 항문에 우산대를 꽂은 것이다. 온몸은 피멍과 타박상을 심하게 입어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 전신에 하얀 합성세제 가루를 뿌리고 윤씨의 입에 성냥개비를 부러뜨려 물려 넣었다.
사건 발생 시간은 10월 28일 새벽 1시경으로 추정되었으며, 사망 원인은 콜라병으로 맞은 앞 얼굴의 함몰 및 과다출혈로 나타났다.
결과
사건이 발생하자 의정부 경찰서 강력계 형사1부에서는 현직 형사 40명을 동원하여 수사에 나섰고, 미군측에서도 군 수사대를 출동하여 한,미합동으로 수사가 시작되었다. 윤씨의 자궁 속에서(시체 부검 중) 발견된 맥주병의 지문을 근거로 범인을 붙잡을 수 있었다.
1993년 4월 14일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고, 같은 해 12월 16일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15년으로 감형되었다. 윤씨의 유족이 미정부로부터 7천1백만원의 배상금을 수령하여 이른바 민사절차가 마무리되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피고인 케네스 이병은 다시 상고하였으나 1994년 4월 29일 대법원 1호 법정에서 열린 재판에서 기각되어 징역 15년이 확정되었다.
미국의 공식 사과와 범행미군의 구속수사를 요구하는 시위가 빗발쳤으나 범인은 끝내 구속되지 않았다. 1994년 5월 17일에야 비로소 신병이 한국측에 인도되어 천안소년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사건 발생 1년 6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한미행정협정 제22조에는 대한민국 법원이 선고한 구금형에 복역하고 있는 경우에도 미국이 요청하면 한국정부는 이 요청에 대하여 호의적 고려를 하도록 되어 있어 케네스 이병이 미국으로 송환되어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태이다.
미군 케네스 마클이 교도소 내에서 난동과 행패를 일삼은 사건이 뒤늦게 밝혀졌다. 케네스와 더프 리차드는 (더프는 살인 미수범이다. 그는 1993년 12월 16일 경기도 파주군에 소재한 에드워드 기지 앞에서 택시 운전기사 한창열씨의 목을 뒤에서 칼로 찔렀다. 그는 이 사건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천안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천안교도소에 복역 중인 죄수들이다. 이들은 공동 모의하여 19995년 5월 5일 10시 30분경 교도소 외국인 수용 사동인 제5사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그 날은 어린이 날이었다. 미군들은 교도소 재소자들에 대한 식사와 편지의 전달이 다음 날로 늦추어진다는 이유로 교도관들에게 욕설을 하였다. 케네스는 유리로 된 커피병을 집어들어 복도의 아크릴 창을 향하여 던져 창을 깨뜨렸다. 더프는 복도에 있던 분말 소화기 1개를 교도관 박성문과 송창호에게 분사하였다. 계속하여 케네스는 복도에 있는 분말 소화기를 집어서 교도관들을 향하여 분사하였다. 그들은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파괴하고 한국 공무원들에게 물건을 집어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마클과 더프는 공무집행 방해,
공용물건 손상의 죄명으로 추가 기소되어 1995년 1월 15일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10주년 맞는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새 진로 모색
주한미군 문제를 사회 이슈로 쟁점화하는 데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주미본)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 1일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아주 특별한 기념식이 열렸다. 주미본 창립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소희 사무국장은 "큰 욕심을 내기보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과제를 같이 고민하는 자리"라고 기념식에 의미를 부여했다.
주미본은 내년부터 일반인들이 더욱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단체이름도 바꿀 계획이다. "주미본의 특색을 살리는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이소희 사무국장은 "객관적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 설득력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데 중심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993년 기지촌 여성이었던 윤금이씨가 케네스 마클이라는 주한미군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즉각 윤금이 공대위를 중심으로 끈질긴 투쟁이 벌어졌고 결국 케네스 마클은 실형선고를 받았다. 투쟁을 이끌었던 윤금이 공대위가 바로 주미본의 모태가 되었다.
단체간 협의체로 출발한 주미본은 초기에 투쟁조직 성격이 강했다. 주한미군 범죄를 다루는 단체가 주미본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군기지&환경&기지촌&양민학살까지 다루지 않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변화가 있었다. 미군범죄 문제가 사회이슈로 부각되고 사안별로 관련단체가 생기면서 운동이 세분화&전문화됐다.
주미본은 미군범죄와 소파(SOFA)개정 등 주한미군관련 운동을 대중화한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미군범죄가 10년 전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도 주미본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반면 한계도 분명히 드러난다. 이 국장은 "정부의 의지가 없는 한 주미본의 한계는 분명하다"고 단언한다. 정부에서 보안을 이유로 정보접근 자체를 제한하는 등 운동의 기반이 척박하다는 얘기다. 이 국장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하는데도 정부에서는 반미단체라며 색안경을 끼고 본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국장은 "주한미군이 다 철수해도 주미본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한미군 기지가 없어지면 개인 차원의 범죄는 사라지겠지만 환경오염 문제나 기지촌 문제 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국장은 미군들이 철수하고 나서 그런 문제들이 현안으로 부각된 필리핀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이 국장은 "군사적 종속관계가 이어지는 한 미군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며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윤금이씨를 생각하며
윤금이를 살해했던 마클 케네스, 석방되다.....
윤금이를 살해한 케네스 이병이 석방되었다.
8월 14일 가석방으로 풀려났다고 합니다.
원래 15년형을 받아 2008년 2월 출소예정인데,
가석방 되었다고 합니다.
석방 다음날 바로 미국으로 추방되었다고 하는데,,
분통하기도 하고,
가석방심사위원회를 어떻게 손봐주지,(힘도 없지만ㅠㅠ)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한미군범죄 관련 단체에서도, 언론에서도
석방 사실을 모른체 지나칠뻔 했던것 같습니다.
케네스 이병의 윤금이씨 살해사건
사건 일시:1992년 10월 28일 새벽
사건 발생장소: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431-50 1/7 16호 김성출씨 댁 안쪽 첫 번째 방
피해자:윤금이(여, 당시26세, 미군전용클럽 종업원)
가해자:케네스 리 마클(당시 20세, 미제2사단 25보병연대 5대대 이등병)
사건개요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에 있는
미군전용클럽 종업원이던 윤금이씨가 피살되었다.
28일 오후 4시 30분경 집주인 김성출씨가 피살체를 발견했을 때
피살자는 나체 상태였다.
자궁에는 맥주병 2개가 꽂혀 있었고
국부 밖으로는 콜라병이 박혀 있었다.
또한 항문에서 직장까지 27cm 가량 우산대가 꽂혀 있었다.
미2사단에 근무하는 미군병사 케네스 리 마클 이병은
윤금이씨의 머리를 콜라병으로 난타하고,
피흘리며 죽어가는 여성의 자궁에 콜라병을 박고
항문에 우산대를 꽂은 것이다.
온몸은 피멍과 타박상을 심하게 입어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 전신에 하얀 합성세제 가루를 뿌리고
윤씨의 입에 성냥개비를 부러뜨려 물려 넣었다.
사건 발생 시간은 10월 28일 새벽 1시경으로 추정되었으며,
사망 원인은 콜라병으로 맞은 앞 얼굴의 함몰 및 과다출혈로 나타났다.
결과
사건이 발생하자 의정부 경찰서 강력계 형사1부에서는
현직 형사 40명을 동원하여 수사에 나섰고,
미군측에서도 군 수사대를 출동하여
한,미합동으로 수사가 시작되었다.
윤씨의 자궁 속에서(시체 부검 중) 발견된 맥주병의 지문을 근거로
범인을 붙잡을 수 있었다.
1993년 4월 14일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고,
같은 해 12월 16일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15년으로 감형되었다.
윤씨의 유족이 미정부로부터 7천1백만원의 배상금을 수령하여
이른바 민사절차가 마무리되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피고인 케네스 이병은 다시 상고하였으나
1994년 4월 29일 대법원 1호 법정에서 열린 재판에서 기각되어
징역 15년이 확정되었다.
미국의 공식 사과와
범행미군의 구속수사를 요구하는 시위가 빗발쳤으나
범인은 끝내 구속되지 않았다.
1994년 5월 17일에야 비로소 신병이
한국측에 인도되어 천안소년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사건 발생 1년 6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한미행정협정 제22조에는
대한민국 법원이 선고한 구금형에 복역하고 있는 경우에도
미국이 요청하면 한국정부는 이 요청에 대하여
호의적 고려를 하도록 되어 있어
케네스 이병이 미국으로 송환되어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태이다.
미군 케네스 마클이 교도소 내에서
난동과 행패를 일삼은 사건이 뒤늦게 밝혀졌다.
케네스와 더프 리차드는
(더프는 살인 미수범이다.
그는 1993년 12월 16일 경기도 파주군에 소재한
에드워드 기지 앞에서
택시 운전기사 한창열씨의 목을 뒤에서 칼로 찔렀다.
그는 이 사건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천안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천안교도소에 복역 중인 죄수들이다.
이들은 공동 모의하여 19995년 5월 5일 10시 30분경
교도소 외국인 수용 사동인 제5사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그 날은 어린이 날이었다.
미군들은 교도소 재소자들에 대한
식사와 편지의 전달이 다음 날로 늦추어진다는 이유로
교도관들에게 욕설을 하였다.
케네스는 유리로 된 커피병을 집어들어
복도의 아크릴 창을 향하여 던져 창을 깨뜨렸다.
더프는 복도에 있던 분말 소화기 1개를
교도관 박성문과 송창호에게 분사하였다.
계속하여 케네스는 복도에 있는
분말 소화기를 집어서 교도관들을 향하여 분사하였다.
그들은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파괴하고
한국 공무원들에게 물건을 집어던지며 난동을 부렸다.
마클과 더프는 공무집행 방해,
공용물건 손상의 죄명으로 추가 기소되어
1995년 1월 15일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10주년 맞는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새 진로 모색
주한미군 문제를 사회 이슈로 쟁점화하는 데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주미본)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 1일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아주 특별한 기념식이 열렸다.
주미본 창립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소희 사무국장은
"큰 욕심을 내기보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과제를 같이 고민하는 자리"라고 기념식에 의미를 부여했다.
주미본은 내년부터 일반인들이 더욱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단체이름도 바꿀 계획이다.
"주미본의 특색을 살리는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이소희 사무국장은
"객관적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
설득력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데 중심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993년 기지촌 여성이었던 윤금이씨가
케네스 마클이라는 주한미군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즉각 윤금이 공대위를 중심으로 끈질긴 투쟁이 벌어졌고
결국 케네스 마클은 실형선고를 받았다.
투쟁을 이끌었던 윤금이 공대위가 바로 주미본의 모태가 되었다.
단체간 협의체로 출발한 주미본은 초기에 투쟁조직 성격이 강했다.
주한미군 범죄를 다루는 단체가 주미본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군기지&환경&기지촌&양민학살까지 다루지 않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변화가 있었다.
미군범죄 문제가 사회이슈로 부각되고
사안별로 관련단체가 생기면서 운동이 세분화&전문화됐다.
주미본은 미군범죄와 소파(SOFA)개정 등
주한미군관련 운동을 대중화한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미군범죄가 10년 전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도
주미본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반면 한계도 분명히 드러난다.
이 국장은 "정부의 의지가 없는 한 주미본의 한계는 분명하다"고 단언한다.
정부에서 보안을 이유로 정보접근 자체를 제한하는 등
운동의 기반이 척박하다는 얘기다.
이 국장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하는데도
정부에서는 반미단체라며 색안경을 끼고 본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국장은 "주한미군이 다 철수해도 주미본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한미군 기지가 없어지면 개인 차원의 범죄는 사라지겠지만
환경오염 문제나 기지촌 문제 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국장은 미군들이 철수하고 나서
그런 문제들이 현안으로 부각된 필리핀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이 국장은 "군사적 종속관계가 이어지는 한
미군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며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안"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