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ro 경기장 옆으로는 중심이 되는 강이 흐르고 있다. 그 강으로 나가 오후의 바람을 한껏 가슴으로 느껴본다. 속은 상하지만, 잠시 걸어본 이 도시는 마드리드와는 다르게 사람 마음을 들뜨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빨리 그것이 무언지를 알아봐야 하겠다 그 옆으로 굉장히 인상 깊은 탑이 보인다 Torre del oro. 황금의 탑이라는 뜻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세비야가 스페인의 해양으로 향한 가장 큰 관문이던 시절 이 탑은 지나는 모든 배들에게서 세금을 거두던 곳이었다고 한다. 물론 콜롬버스도 세금을 내고 나갔다고 한다. 12각형의 탑은 왠지 자꾸 내 마음을 끄는 형태적인 무엇이 있어 다리도 건너가 보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꾸 셔터를 눌러대게 한다. 다음 목표지. Giralda 탑과 대성당. 물론 일요일에는 오픈을 하지 않으니 올라가 볼 수는 없겠지만 (유럽의 대부분 도시는 도심의 중심부에 대성당을 짓고 그 성당에는 아주 높은 종루가 있기 마련이다. 그 종루에 올라가면 그 도시의 가장 좋은 전망과 만나게 된다. 물론 파리에서도 에펠탑에 오르는 것보다 시떼 섬에 있는 노틀담 성당의 종루에 오르는 것이 더욱 근사한 파리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무작정 가보기로 한다. La Giralda. 12세기 이곳을 지배하던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들이 건설한 4각의 매우 높은 탑이다. 스페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유럽 문화 속의 동양적인 향취. 그 진수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 탑을 부술 수도 있었을 텐데, 스페인인들은 나중에 무어인을 그 땅에서 몰아내고 그 옆에다 거대한 규모의 성당을 건설한다. 규모가 면적상으로는 기네스 북에 최고로 올라있다. 일본의 식민지배의 쓴 기억을 지우겠다고, 조선총독부 청사와 같이 건축적으로 훌륭한 건물을 거대한 국고를 들여서 부수는 대한민국 사람들과 그 옆에 더 정성 들여 성당을 짓고 쌍으로 묶어서 관광 상품화하여 입장 수입을 짭짤히 올릴 뿐더러 해외 관광객들을 무수히 유치하는 사람들 사이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순간이었다. 너무 훌륭한 탑의 자태에 셔터를 누르다 보니 저녁 8시를 넘어가는 시간이 눈에 띈다. 갑자기 앗 하는 뒷통수 침이 있었다. 여행 책자에서 읽은 스페인 사람들의 식사시간. 아침은 아주 간단히 하고 01:30부터 시작되는 점심은 서너 시간에 걸쳐 먹고, 저녁은 10시쯤 간단히 먹는다던 것. 지도상으로 매우 서쪽에 치우쳐 있음에도 유럽과 같은 시간을 사용하는 스페인은 당연히 해가 늦게 뜨고 늦게 지는 것이다. 그러니 해뜨고 해지는 것 기준으로는 너무도 당연한 시간에 밥을 먹는 것이지. 그리고 Siesta. 오후 1~3시 정도는 9월인데도 길을 걸으면 죽고 싶을 만큼 덥다. (섭씨 34도 정도) 그래서 하루에 6캔 정도의 대용량 환타가 없이는 절대로 여행이 불가능 하다. (참고적으로 똑같은 코카콜라도 세비야는 125pts, 바르셀로나는 150pts이다. 그건 상대적으로 잘사는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못사는 안달루시아 사람들을 돕는 방법 중에 하나라는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부산과 서울이 그러한 물가차이를 보인다면 어떤 표정이 될까?) 그러니 그 시간에 나돌아 다니는 것은 아주 무식한 짓이고 밥을 오래 먹거나 낮잠을 자고 해가 좀 식은 다음에 일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일일 것이다. 히랄다 탑 주위를 얼쩡거리며 사진을 거의 다 찍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누군가 뒤에서 "꼬레아나" 하고 묻는다. 여기 와서 한국인을 하나도 못 만나고, 하도 일본말로 인사하는 상인들을 많이 만난 터라 이태리와는 달리 이 나라 사람들은 한국인의 존재를 잘 모르나보다. 왜냐면 관광을 잘 안오니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차였는데 말이다. 뒤를 돌아보니 어떤 동양 여자와 스페인 남자 두 명. Yes라고 대답하자, 갑자기 한국말을 하며 그 여자 매우 좋아한다. 자기도 한국인으로 자기 교구의 신부님의 고향인 이곳에서 신부님의 조카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여행중이라고 했다. 게다가 스페인어를 미리 배우고 여행중인지라 어느 정도 그 스페인 사람들과 언어 소통이 되고 있었다. 잠시 스스로 머리를 때리는 순간이었다. 모름지기 말이라도 배우고 여행을 하는 것이 예의였을 텐데. 또는 제대로 즐기고 여행하는 법이었을 텐데. 함께 음료수를 마시고 유람선을 타면서 처음의 말이 통하지 않았을 때의 머쓱함을 극복하고, 서로 잘 하지 못하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이어갔다. 깔라트라바라는 유명한 건축가의 EXPO 다리를 지나면서야 경찰관이 직업인 이 스페인 남자와 건축적인 해박한 지식을 드러내며 즐거운 대화를 할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느낌이 좋은 건물의 건축가가 누군지를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너무나 다정다감한(?) 이 나라 사람들의 생활 습관에 이미 익숙하였는지 그 여자는 그 남자들이랑 서로 얼굴을 어루만지며 "무이 보니또"를 연발하는데 구한말 여인네 같은 강지선은 눈 둘 곳을 모르고. 그리고 배운 말. 베싸메 무쵸. 어렸을 때 익숙히 들은 노래가사. 알고보니 키쓰 많이해달라는 뜻이란다. 이걸 누구한테 써먹나? 흐흐흐 헤어지며 기습적으로 그러나 기분 좋게 스페인식 인사를 당했(?)다. 서로 볼을 왔다갔다 대고는 입으로 쪽쪽 소리를 내는 것이다. 왠지 나쁘지 않다. 우리도 그런 인사를 하면 좀더 친해질 텐데. 숙소로 돌아와 다시 한숨 돌리고 좋은 저녁을 포기한 채, 낮에 잠시 들렀던 카페의 싸고 맛있던 크로와상과 cafe con leche를 생각해냈다. 1500원의 돈이면 그 모든 것이 해결된다. 이들의 밤 문화는 보통 11시가 넘어야 시작된다. 당연히 플라밍고 공연도 11시가 넘어야 볼수 있다길레 천천히 갔는데, 공연 중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줄을 서서 기다린 후에야 들어갈 수가 있었다. Tablao el Arenal. 최고의 플라밍고를 볼 수 있다고 추천 받은 곳. 정말 그런것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아주 외진 골목 안에 아주 조그만 간판 하나 댕그마니 걸려있고 웨이터가 한명 나와 상냥하게 안내할 뿐이다. 한 10분을 기다리니 50여명이 넘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두 얼굴이 상기되어 연방 "Wonderful"을 외치며 문을 나선다. 정말로 기대된다. 첫 줄에 섰지만, 혼자인 관계로 사이드에 있는 테이블에 안내되고, 입장료에 포함된 음료수를 무엇으로 마실 것인지 물어온다. 난 너무 무식한 까닭에 알아듣는 것은 스페인의 민속 음료인 샹그리야뿐이어서 그것을 시켜봤다. 빨간 칵테일에 과일을 동동 띄워주는 샹그리아는 모양처럼 맛있지만, 생각보다 취한다. 아니면 내가 피곤해서 술이 마구 오른 것일수도. 혼자 그런데를 온 내가 아무레도 이상한지 다른 손님들이 힐끗거리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작은 무대에서 무엇이 시작될지 주목한다. 먼저 기타리스트 두 명이 나와 자리를 잡고 기타 연주를 시작하면, 다른 남자 가수 세 명이 나와서 노래와 동시에 인간이 내는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우뢰같은 소리의 박수를 쳐댄다. 그러면 무희가 서로 다른 의상과 주제에 맞추어 나와서 춤을 춘다. 또는 노래를 부른다. 젊고 허리가 개미 허리만한 아가씨 무희는 아주 우아하고 아름답고 절도있는 플라밍고를. 허리가 절구통보다 좀 가는 아줌마 무희는 치마를 훌렁훌렁 거둬들며, 남자를 유혹하는 야한 춤을 춘다. 어느 때는 너무 애절해서 가슴이 터질 듯한 노래를 부르며 절망적인 몸짓을 해댄다. 그 쩌렁쩌렁한 박수소리에 그 현란한 무희의 몸동작에 정신을 못 차리다 보니 1시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고. 잊을 수 없이 아름다웠던 플라밍고의 유혹에 거리가 가까운 까닭에 택시도 타지 않고, 인적 없는 밤 골목을 돌고돌아 새벽 1시 반에 가까와지는 시간에 난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서 춤을 추었다. 비록 내 식으로 해석된 플라밍고일 망정, 미친 여자로 오인 받아 린치를 당할 수도 있을 위험한 시간, 위험한 장소에서 말이다. 집시의 혼과 열정이 조금은 전염되었던 까닭이었을까? 아니면 이국에서의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여행일기3-10-09-2000-Sevilla
Toro 경기장 옆으로는 중심이 되는 강이 흐르고 있다.
그 강으로 나가 오후의 바람을 한껏 가슴으로 느껴본다.
속은 상하지만, 잠시 걸어본 이 도시는
마드리드와는 다르게 사람 마음을 들뜨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빨리 그것이 무언지를 알아봐야 하겠다
그 옆으로 굉장히 인상 깊은 탑이 보인다
Torre del oro.
황금의 탑이라는 뜻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세비야가 스페인의 해양으로 향한 가장 큰 관문이던 시절
이 탑은 지나는 모든 배들에게서 세금을 거두던 곳이었다고 한다.
물론 콜롬버스도 세금을 내고 나갔다고 한다.
12각형의 탑은 왠지 자꾸 내 마음을 끄는 형태적인 무엇이 있어
다리도 건너가 보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꾸 셔터를 눌러대게 한다.
다음 목표지.
Giralda 탑과 대성당.
물론 일요일에는 오픈을 하지 않으니 올라가 볼 수는 없겠지만
(유럽의 대부분 도시는 도심의 중심부에 대성당을 짓고
그 성당에는 아주 높은 종루가 있기 마련이다.
그 종루에 올라가면 그 도시의 가장 좋은 전망과 만나게 된다.
물론 파리에서도 에펠탑에 오르는 것보다
시떼 섬에 있는 노틀담 성당의 종루에 오르는 것이
더욱 근사한 파리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무작정 가보기로 한다.
La Giralda.
12세기 이곳을 지배하던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들이 건설한
4각의 매우 높은 탑이다.
스페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유럽 문화 속의 동양적인 향취.
그 진수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 탑을 부술 수도 있었을 텐데,
스페인인들은 나중에 무어인을 그 땅에서 몰아내고
그 옆에다 거대한 규모의 성당을 건설한다.
규모가 면적상으로는 기네스 북에 최고로 올라있다.
일본의 식민지배의 쓴 기억을 지우겠다고,
조선총독부 청사와 같이 건축적으로 훌륭한 건물을
거대한 국고를 들여서 부수는 대한민국 사람들과
그 옆에 더 정성 들여 성당을 짓고 쌍으로 묶어서 관광 상품화하여
입장 수입을 짭짤히 올릴 뿐더러
해외 관광객들을 무수히 유치하는 사람들 사이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순간이었다.
너무 훌륭한 탑의 자태에 셔터를 누르다 보니
저녁 8시를 넘어가는 시간이 눈에 띈다.
갑자기 앗 하는 뒷통수 침이 있었다.
여행 책자에서 읽은 스페인 사람들의 식사시간.
아침은 아주 간단히 하고 01:30부터 시작되는 점심은
서너 시간에 걸쳐 먹고,
저녁은 10시쯤 간단히 먹는다던 것.
지도상으로 매우 서쪽에 치우쳐 있음에도
유럽과 같은 시간을 사용하는 스페인은
당연히 해가 늦게 뜨고 늦게 지는 것이다.
그러니 해뜨고 해지는 것 기준으로는
너무도 당연한 시간에 밥을 먹는 것이지.
그리고 Siesta.
오후 1~3시 정도는 9월인데도 길을 걸으면 죽고 싶을 만큼 덥다.
(섭씨 34도 정도)
그래서 하루에 6캔 정도의 대용량 환타가 없이는
절대로 여행이 불가능 하다.
(참고적으로 똑같은 코카콜라도 세비야는 125pts, 바르셀로나는
150pts이다. 그건 상대적으로 잘사는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못사는
안달루시아 사람들을 돕는 방법 중에 하나라는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부산과 서울이 그러한 물가차이를 보인다면
어떤 표정이 될까?)
그러니 그 시간에 나돌아 다니는 것은 아주 무식한 짓이고
밥을 오래 먹거나 낮잠을 자고 해가 좀 식은 다음에 일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일일 것이다.
히랄다 탑 주위를 얼쩡거리며
사진을 거의 다 찍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누군가 뒤에서 "꼬레아나" 하고 묻는다.
여기 와서 한국인을 하나도 못 만나고,
하도 일본말로 인사하는 상인들을 많이 만난 터라
이태리와는 달리 이 나라 사람들은
한국인의 존재를 잘 모르나보다. 왜냐면 관광을 잘 안오니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차였는데 말이다.
뒤를 돌아보니 어떤 동양 여자와 스페인 남자 두 명.
Yes라고 대답하자, 갑자기 한국말을 하며 그 여자 매우 좋아한다.
자기도 한국인으로 자기 교구의 신부님의 고향인 이곳에서
신부님의 조카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여행중이라고 했다.
게다가 스페인어를 미리 배우고 여행중인지라
어느 정도 그 스페인 사람들과 언어 소통이 되고 있었다.
잠시 스스로 머리를 때리는 순간이었다.
모름지기 말이라도 배우고 여행을 하는 것이 예의였을 텐데.
또는 제대로 즐기고 여행하는 법이었을 텐데.
함께 음료수를 마시고 유람선을 타면서
처음의 말이 통하지 않았을 때의 머쓱함을 극복하고,
서로 잘 하지 못하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이어갔다.
깔라트라바라는 유명한 건축가의 EXPO 다리를 지나면서야
경찰관이 직업인 이 스페인 남자와
건축적인 해박한 지식을 드러내며 즐거운 대화를 할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느낌이 좋은 건물의
건축가가 누군지를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너무나 다정다감한(?) 이 나라 사람들의 생활 습관에
이미 익숙하였는지 그 여자는 그 남자들이랑
서로 얼굴을 어루만지며 "무이 보니또"를 연발하는데
구한말 여인네 같은 강지선은 눈 둘 곳을 모르고.
그리고 배운 말. 베싸메 무쵸.
어렸을 때 익숙히 들은 노래가사.
알고보니 키쓰 많이해달라는 뜻이란다.
이걸 누구한테 써먹나?
흐흐흐
헤어지며 기습적으로 그러나 기분 좋게
스페인식 인사를 당했(?)다.
서로 볼을 왔다갔다 대고는 입으로 쪽쪽 소리를 내는 것이다.
왠지 나쁘지 않다.
우리도 그런 인사를 하면 좀더 친해질 텐데.
숙소로 돌아와 다시 한숨 돌리고 좋은 저녁을 포기한 채,
낮에 잠시 들렀던 카페의 싸고 맛있던 크로와상과
cafe con leche를 생각해냈다.
1500원의 돈이면 그 모든 것이 해결된다.
이들의 밤 문화는 보통 11시가 넘어야 시작된다.
당연히 플라밍고 공연도 11시가 넘어야 볼수 있다길레
천천히 갔는데, 공연 중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줄을 서서 기다린 후에야 들어갈 수가 있었다.
Tablao el Arenal.
최고의 플라밍고를 볼 수 있다고 추천 받은 곳.
정말 그런것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아주 외진 골목 안에
아주 조그만 간판 하나 댕그마니 걸려있고
웨이터가 한명 나와 상냥하게 안내할 뿐이다.
한 10분을 기다리니 50여명이 넘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두 얼굴이 상기되어 연방 "Wonderful"을 외치며 문을 나선다.
정말로 기대된다.
첫 줄에 섰지만, 혼자인 관계로
사이드에 있는 테이블에 안내되고,
입장료에 포함된 음료수를 무엇으로 마실 것인지 물어온다.
난 너무 무식한 까닭에 알아듣는 것은
스페인의 민속 음료인 샹그리야뿐이어서 그것을 시켜봤다.
빨간 칵테일에 과일을 동동 띄워주는 샹그리아는
모양처럼 맛있지만, 생각보다 취한다.
아니면 내가 피곤해서 술이 마구 오른 것일수도.
혼자 그런데를 온 내가 아무레도 이상한지
다른 손님들이 힐끗거리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작은 무대에서 무엇이 시작될지 주목한다.
먼저 기타리스트 두 명이 나와 자리를 잡고 기타 연주를 시작하면,
다른 남자 가수 세 명이 나와서 노래와 동시에
인간이 내는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우뢰같은 소리의 박수를 쳐댄다.
그러면 무희가 서로 다른 의상과 주제에 맞추어 나와서 춤을 춘다.
또는 노래를 부른다.
젊고 허리가 개미 허리만한 아가씨 무희는
아주 우아하고 아름답고 절도있는 플라밍고를.
허리가 절구통보다 좀 가는 아줌마 무희는
치마를 훌렁훌렁 거둬들며, 남자를 유혹하는 야한 춤을 춘다.
어느 때는 너무 애절해서 가슴이 터질 듯한 노래를 부르며
절망적인 몸짓을 해댄다.
그 쩌렁쩌렁한 박수소리에
그 현란한 무희의 몸동작에 정신을 못 차리다 보니
1시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고.
잊을 수 없이 아름다웠던 플라밍고의 유혹에
거리가 가까운 까닭에 택시도 타지 않고,
인적 없는 밤 골목을 돌고돌아
새벽 1시 반에 가까와지는 시간에
난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서 춤을 추었다.
비록 내 식으로 해석된 플라밍고일 망정,
미친 여자로 오인 받아 린치를 당할 수도 있을 위험한 시간,
위험한 장소에서 말이다.
집시의 혼과 열정이 조금은 전염되었던 까닭이었을까?
아니면 이국에서의 외로움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