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치기 모녀와 커피녀

김진석2006.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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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꼴불견, '새치기 모녀'와 '커피녀' 지하철에서 만난 가족이기주의와 얌체 아줌마   새치기 모녀와 커피녀 ▲ 한가한 지하철 내부 모습 ⓒ 이승철
사회와 인심이 점점 각박해져서인지 살아가는 일이 전쟁을 치르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길거리나 시장, 사업장에서 사람들끼리 만나고 부딪치는 일들이 흡사 전투라도 벌이듯 너무나 살벌하고 치열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나 배려는 없고 오직 자기 주장, 자기 이익만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태를 꼬집는 말이다.

지난주 토요일 모임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동대문운동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탔을 때의 일이다. 내가 열차 안으로 들어서자 마침 맞은편 자리에서 내리는 사람이 있었는지 빈자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앞으로 다가가 자리에 앉으려다가 살펴보니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50대로 보이는 여성이 그 빈자리를 손으로 가리고 누군가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반사적으로 주춤거리며 그 앞에 섰다. 그런데 바로 그 빈자리 옆에 한 사람이 서 있는데 나이가 들어 보인다. 언뜻 보기에도 60대 중반은 되어 보였다. 나는 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바로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20대 후반쯤의 여성이 불쑥 들어와 그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옆에 서 있던 노인에게 자리를 권했던 나는 머쓱하여 노인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은 괜찮다는 무언의 인사인 것 같았다. 그런데 빈자리를 손으로 가리고 다른 젊은 여성을 불러들인 50대의 여성과 그 빈자리에 앉은 젊은 여성은 희희낙락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대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모녀간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던 모녀 중에서 어머니는 자리를 잡았는데 딸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가 옆자리의 승객이 내리자 그 자리를 손으로 가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딸을 불러앉힌 것이다. 모녀가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 빈자리 앞에 60대 중반의 노인이 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 중년 여성도 바로 앞에 서 있는 노인을 보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보다 적어도 10여 년은 더 늙은 노인이 앞에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그 노인이 앉지 못하게 손으로 가리고 자신의 젊은 딸을 불러앉힌 어머니의 이기심이 문제인 것이다.

자신과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가족이기주의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불과 세 번째 정거장인 광화문역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그들의 자리에 그 노인과 내가 나란히 앉았다. 노인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참 대단한 모녀지요?”

노인의 기분이 어떤가 싶어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런 꼴불견 가족, 요즘 흔한 모습 아닙니까?”

노인은 이미 그런 모습에 상당히 이골이 난 모양이었다. 올해 67세라는 이 노인은 오히려 힘들어하는 젊은 여성들을 보면 자신이 가끔 자리를 양보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가족이기주의에 빠져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자신의 나이를 잊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지하철의 40대 커피녀 꼴값 떨고 사라지다

새치기 모녀와 커피녀 ▲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지하철은 예절과 서로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곳이다 ⓒ 이승철
경기도 김포에서 있었던 점심모임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오후 다섯 시가 지나고 있었다. 지하철을 같이 탄 친구와 동행하느라 충무로 역까지 갔다가 4호선으로 갈아탔다. 열차 안은 그리 붐비지 않고 드문드문 빈자리까지 보이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당고개행 열차가 동대문역 근처를 통과할 무렵이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 남자가 일어나 출입문 앞에 서서 노선도를 살펴보고 있었다. 서울의 지리나 지하철에 익숙하지 않아 갈아타거나 내릴 역을 찾아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앞 칸에서 차량 연결부의 문을 밀치고 40대로 보이는 여성 한 명이 나타났다. 그 여성은 한 손에 1회용 종이컵을 들고 있었다. 그 여성이 출입문 앞에 이르렀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출입문 앞에 서서 노선도를 살펴보던 승객이 뒤로 물러서다가 그 안쪽으로 들어오던 그 여성승객과 부딪친 것이다.

“아저씨, 이게 뭐야! 에이!”

금속성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물러서던 남자승객과 살짝 부딪쳤지만 그 여성승객이 들고 있던 1회용 컵에서 커피가 왈칵 쏟아진 것이다.

지하철 통로에 쏟아진 커피는 그 여성의 옷에도 몇 방울 튀겼을 뿐만 아니라 나와 내 옆자리의 아주머니의 바지와 신발에도 몇 방울씩 튀겼다.

“아저씨! 좀 똑바로 보고 움직여요, 이게 뭐예요!”

다시 한번 그 여성이 앙칼진 목소리로 빽 소리를 질렀다. 뒤로 물러서다가 부딪친 남자승객은 아무 말도 못한 채 무안하고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그 남자승객을 매서운 눈길로 노려보던 여성이 한 쪽으로 돌아서 핸드백에서 꺼낸 휴지로 자신의 옷에 튀긴 커피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에이! 재수가 없으려니까.”

여전히 입으로는 투덜투덜 남자승객을 원망하며 자신의 옷에 묻은 커피를 닦아낸 여성은 험상궂은 얼굴로 다시 한 번 남자승객을 노려본 다음 자신이 바닥에 쏟은 커피를 거침없이 밟으며 다음 칸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이어난 일이었다.

“그 여자 참 되게 웃기는 여자네.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 진짜 꼴불견이 따로 없구먼.”

그 여성이 사라지고 나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승객들이 한마디씩 한다.

“아니, 커피는 밖에서 마실 일이지, 왜 차 안까지 가지고 들어와 가지고, 남의 탓을 하는 거야.”

그 옆자리의 할머니 두 분도 거든다. 아마 그 여성승객이 남자승객에게 화풀이를 할 때도 같은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서슬 퍼런 기세에 말을 못하고 있다가 내뱉는 말이었다.

그러자 잠자코 앉아 있던 내 옆자리의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가방에서 휴지를 꺼냈다. 자신의 신발과 옷에 묻은 커피를 닦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는 자신의 신발에 묻은 커피를 쓰윽 한 번 닦은 다음, 바닥에 지저분하게 묻은 커피를 닦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이 제법 많아서 처음에 꺼낸 휴지로는 제대로 닦을 수가 없었다. 내가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거들어주려고 하자, 말없이 그것을 받아 든 아주머니는 자신의 가방에서 더 꺼낸 휴지까지 합쳐 말끔하게 닦는 것이었다.

“아주머니 수고하셨습니다.”

내가 인사를 하자 아주머니는 오히려 쑥스러운 얼굴로 “그 깐 일로 뭘요” 하고 대수롭잖다는 반응이다.

거리나 지하철에서나 무심히 오가며 만나고 부딪치는 사람들, 모두가 소중한 우리 이웃들이다. 상대방에 대한 예절이나 작은 배려, 가벼운 인사 한 마디가 아쉬운 모습이었다. 새치기 모녀와 커피녀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시인이승철을 검색하시면 홈페이지 "시가있는오두막집"에서 다른 글과 시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2006-11-23 09:33 ⓒ 2006 OhmyNews